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364)
제 333화
111화. 흔적(5)
나무 속을 들여다보는 진의 눈빛이 빠르게 차가워졌다.
“네 말대로 고약한 족속들인 것 같군, 요정족의 후예들은.”
샤악-!
진이 나무를 베어버리며 말했다. 가볍게 휘두른 검에 나무가 반듯하게 썰려나갔다. 그 속에 있던 루루도 함께 베였으나, 그건 진짜 루루가 아니라 고약한 환영에 불과했다.
피투성이 루루의 환영이 사라지자 그 자리에 드러난 것은 마법진의 형태를 한 덫이었다. 만약 두 사람이 그냥 다가갔다면 함정이 발동했을 것이다.
킥킥킥킥-!
숲 안쪽에서부터 기분 나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진과 발레리아는 무표정한 얼굴로 상대가 나타나기를 가만히 기다렸다.
[안 속네?]피리링, 피링, 피리리링……!
숲 너머의 어둠에서부터 무언가 반짝이는 모습과 함께 경쾌한 소리가 일었다.
요정족의 후예가 날갯짓을 하는 소리였다. 모습을 드러낸 요정족은 킥킥대던 불쾌한 웃음소리와 전혀 상반되는 아름다운 형상이었다.
작고 빛나는 앙증맞은 날개, 당장이라도 손을 뻗어 만지고 싶을 만큼 귀여운 얼굴, 장난기 가득한 사랑스러운 표정.
물론 막 등장한 요정족의 후예를 바라보는 진과 발레리아의 눈빛엔 싸늘한 기운만이 묻어나고 있었다.
[킥, 안녕? 장난에 기분 나빴던 건 아니지?]요정족의 후예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묘인족들은 어디에 있나?”
[왜 이렇게 성급해? 통성명 정도는 먼저 해야지. 다시 한 번 안녕! 나는 마일라, 요정왕의 동생이다.]대답 없이 마일라를 내려다보는 진과 발레리아.
[……내가 별로 반갑지 않은가? 이 숲을 찾았다가 우연히 날 만난 인간들은, 열이면 열 신비롭다며 꽥꽥 소리를 질러대곤 했는데.]“묘인족들은 어디에 있느냐고 물었다.”
진이 낮은 목소리로 다시 묻자 마일라가 웃음을 흘렸다.
[묘인족들은 나와 내 동족들이 잘 보호해주고 있어. 잔뜩 다쳐서는 완타라모 숲을 찾아왔는데, 어찌나 불쌍하던지. 도와주지 않을 수가 없었지 뭐야!]마일라가 진과 눈동자를 마주치며 뒷말을 이었다.
[그런데, 시론 룬칸델의 막내아들 진 룬칸델. 다소 예의가 없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 이 몸은 먼저 이름을 밝혔는데, 넌 끝까지 목이 무겁네? 확 꺾어줄까? 옆에 인간도 그렇고.]“그따위 장난질을 해놓고 내가 예의를 갖추길 바라는 건가?”
[뭐 어때? 내가 루루를 진짜로 다치게 한 것도 아닌데. 나이도 어린 녀석이 고지식한 구석이 있네. 오히려 난 그 녀석들을 치료해줬다고.]마일라가 뾰로통 입술을 내밀었다.
그러고는 상대가 자신의 귀여운 모습에 계속 전혀 반응하지 않는 게 섭섭한 듯 고개를 저었다.
몇 번쯤 더 애교스러운 몸짓을 보여주기도 했는데, 진과 발레리아의 머릿속엔 묘인족만 아니라면 이 짜증나는 족속을 당장 공격했을 것이란 생각뿐이었다.
[……좋아, 알겠어. 뭔, 두 번 장난쳤다간 날 베어버릴 기세로군. 묘인족들을 만나게 해줄게. 따라와.]마일라가 다시 숲 안쪽으로 찬찬히 날아가기 시작했다.
신기하게도 마일라가 움직일 때마다 숲에 변형이 일어났다. 나무나 바위 같은 것들이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마일라를 따라 유기적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걷는 동안 진과 발레리아는 다소 신경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었다.
마일라에 대한 신뢰가 전혀 없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어느 순간에 갑자기 함정 같은 게 나올 수도 있고, 공격이 시작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었다.
[흥, 네 녀석들하곤 더 이상 장난치지 않을 거니까 걱정 마. 너희처럼 재미없는 인간은 처음 보거든.]그 말에도 대답하지 않자 도착할 때까지 마일라도 더는 입을 열지 않았다. 셋은 한 시간 동안 묵묵히 깊은 숲으로 들어섰다.
다행히 또 다른 함정은 없었다.
[다 왔어.]그들이 도착한 곳엔 수천 그루의 나무들이 기묘하게 휘고 꼬여서 하나의 거대한 동굴을 이루고 있었다.
[나와, 얘들아.]마일라가 말하자 동굴 안에서부터 돌연 눈부신 빛이 쏟아졌다.
한꺼번에 수천 명의 요정족 후예가 동굴을 빠져나오며 생긴 빛이었다. 그들의 괴팍한 성격과 별개로 상당한 장관이었다.
피리링, 피링, 피리링! 순식간에 일대를 가득 채운 요정족들이 깔깔대며 진과 발레리아를 둘러쌌다.
마지막으로 동굴을 빠져나온 것은 두 사람의 묘인족과, 마일라나 다른 이들보다 두 배쯤 큰 날개를 가진 한 요정족 후예였다.
“루루!”
[진 룬칸델!]루루와 미루.
묘인족의 동굴에서, 마지막 순간까지 망령대를 상대로 결계를 지킨 세쌍둥이 중 두 사람.
진은 그들을 보자마자 가슴 한쪽을 무겁게 짓누르던 걱정이 풀리는 느낌이었으나. 한편으론 급격히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네루 님은 어디에 계십니까?”
설마 마지막까지 결계를 지키다 전사한 것일까, 걱정하는 찰나 루루가 미소를 지었다.
[네루는 나머지 일족을 이끌고 다른 곳에 숨어있어. 요정족들에게 몸을 의탁한 건 나와 미루가 전부야. 그때, 다들 좀 다치긴 했지만 다행히 아무도 죽지 않았어.]그때서야 진도 미소를 지었다.
그 동굴에서 모두 무사히 도망친 것이다.
“다들 살아남아줘서, 고맙습니다.”
진이 허리를 숙여 루루와 미루의 손을 붙잡았다.
[어머, 너무 감동적인 상봉이네. 정말, 눈물 없이 못 보겠는걸. 안 그렇습니까? 왕이시여.]마일라가 루루와 미루, 그리고 가장 큰 날개를 가진 요정족 후예의 옆에 내려앉으며 말했다.
그자가 요정족 후예들의 왕이었고, 마일라와 달리 썩 품격이 있는 분위기였다.
“진 룬칸델입니다.”
[쉴라라고 부르게.]쉴라는 마일라의 언니이자 요정왕이었다.
[오는 길에 마일라가 분명 짓궂은 장난을 쳤을 텐데, 내 대신 사과하도록 하지.] [사과? 사과를 왜 해요? 왕이시여, 저들은 엄밀히 말하면 침입자들입니다. 사실 그냥 죽였어도 문제될 게 없다고요.] [묘인족들을 구하러 찾아온 것이지 않느냐, 마일라. 또한 묘인족들은 내게 허락을 구하고 흔적을 남긴 것이다.] [그 흔적을 읽는 자가 기록 마법 능력자일 수도 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알린 적이 없지만 말이에요.]비꼬듯 이야기하는 마일라의 목소리에 발레리아의 눈동자가 미세하게 왼쪽으로 치우쳐졌다.
묘인족과 요정족들은 그녀가 초조해졌기 때문에 그런 버릇이 나왔다는 사실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으나, 진은 정확히 꿰뚫어보았다.
그리고 진 역시 발레리아와 마찬가지로 조금은 당황하고 있었다.
‘발레리아가 기록 마법 능력자라는 사실을, 마일라가 어떻게 알아본 거지? 숲 초입에서 기록 마법을 펼칠 때 확인한 건가? 게다가, 루루 님과 미루 님에게도 발레리아의 존재를 알린 적은 없어.’
피링, 피리링, 피리리…….
마일라의 말에 근처에 모인 요정족 후예들이 자기들끼리 수군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진과 발레리아가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였다.
[진.]“예, 루루 님.”
[우린 요정족 후예들의 땅에 몸을 의탁하면서, 줄곧 두 가지 흔적을 함께 남기고 있었어. 네가 찾아올 수 있도록 말이야…….]루루와 미루가 남긴 두 종류의 흔적은, 기록 능력을 보유한 자와 그렇지 못한 자가 찾을 수 있는 것이었다.
굳이 그렇게 두 종류의 흔적을 남긴 건 다름이 아니었다.
발레리아의 추적 속도가 지나치게 빠르기 때문이었다. 함께 남긴 일반적인 흔적은 아직까지 칠색조가 손도 대지 못하고 있으니, 발레리아의 추적 속도는 분명 정상 범주를 한참 뛰어넘고 있었다.
루루와 미루가 생각하기에 기록 마법이라도 보유하지 않고는 그토록 빨리 자신들을 찾아올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추적자를 기록 마법 능력자라고 상정한 뒤, 한 가지를 확인하려고 했다.
추적자가 진의 사람인지, 아닌지를.
발레리아가 처음 예상한 대로, 묘인족들은 후자의 경우 요정족 후예들의 힘을 빌려 추적자를 제거할 계획을 갖고 있었다.
루루가 이러한 내용을 설명하자 진은 고개를 끄덕였고, 발레리아는 잠시 생각에 잠기는 눈치였다.
“내가 진의 사람이 아닌 경우, 날 죽이려 한 이유는 뭐지?”
[이곳에 솔더렛의 계약자와 관련이 없는 기록 마법사가 확인해선 안 될 것이 있기 때문이다.]요정족 후예들의 왕 쉴라가 루루를 대신해 대답했다.
그리고 진은 직감적으로 쉴라가 말하는 게 무엇인지를 짐작할 수 있었다.
‘테마르의 네 번째 무덤이 이곳에 있는 건가. 루루와 미루 님은 도피 도중, 자연스레 날 네 번째 무덤으로 인도하기 위해 다른 묘인족들과 달리 완타라모 숲으로 온 거다.’
정확했다.
요정족 후예들은 테마르의 네 번째 무덤으로 닿을 수 있는 길을 알고 있었다.
잠시 정적이 흘렀다.
마일라는 쉴라가 너무 쉽게 그런 정보를 내어주는 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표정을 구기고 있었다.
[인간이여, 그대는 진 룬칸델과 어떠한 관계인가?]쉴라의 갑작스러운 물음.
발레리아가 대답하려는 찰나, 진이 대신 입을 열었다.
“동료입니다. 세상 그 누구보다도 신뢰할 수 있는.”
[그렇다면 나, 요정족 후예들의 왕 쉴라는 솔더렛과의 오랜 약속을 지키겠노라. 아울러, 내가 약속을 지킬 수 있도록 도움을 준 오랜 벗, 묘인족 루루와 미루에게도 감사를 전해야겠군.]화앗……!
쉴라의 날개가 한층 더 강렬한 빛을 발했다.
그건 완타라모 숲에서 최고의 권위를 나타내는 상징이었고, 마일라를 포함한 다른 모든 요정족 후예들이 일제히 지상에 내려앉아 쉴라를 향해 고개를 조아렸다.
과연 요정족 후예들의 왕이라 할 만한 위엄이 도드라지는 풍경이었다.
[진 룬칸델과 그의 동료 마법사, 그리고 나의 벗들은 따라오도록. 무덤은 동굴 안에 있다. 드디어 지난 천 년 동안 지고 있던 무거운 짐을 내려놓을 수 있겠어.]쉴라가 나무가 꼬이고 휘어 형성된 동굴 속을 향해 날갯짓을 시작했다.
진과 동료들이 그 뒤를 따라 동굴로 걸음을 옮겼다. 그들이 모두 동굴로 들어설 때까지도 바깥에 모인 요정족 후예들은 감히 고개를 들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당연히, 그 모습에 진은 요정족 후예의 왕으로서 쉴라의 권위가 절대적이리라 생각했으나.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루루, 미루. 아마 그대들은 여기서 지내는 동안 눈치채고 있었겠지.]크저적, 크적, 크드득!
돌연 나무들이 휘고 꼬이며 동굴의 입구를 막고 있었다.
돌아보니, 급격히 좁아지고 있는 틈 사이로 마일라가 웃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마일라는 날 배신한 지 오래되었어.]동굴의 입구가 막힌 건 쉴라가 권능을 부린 결과가 아니었다.
그녀는 지위만 왕일 뿐, 실질적인 권력과 완타라모 숲을 다루는 힘은 이미 마일라와 다른 요정족 후예들에게 넘어간 상태였다.
[예, 느끼고 있었습니다. 쉴라 님…….] [마일라는 솔더렛과의 약속을 지킬 생각이 없다. 그래서 언제든 기회가 오면. 이렇게 날 가둬놓을 생각이었지. 천 년의 계약자까지 함께 가두는 건 기대하지 않았을 것 같지만 말이야.]갑작스러운 상황 변화에, 진과 발레리아는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 마일라라는 요정족 후예의 행동과 태도를 돌아보면 충분히 있을 법한 일이었다.
[아마 이제 곧 마일라가 붙은 인간들이 완타라모를 찾아올 걸세.] [어디에 붙었습니까?] [지플, 그 녀석의 허황된 욕심을 채워줄 만한 세력은 그들뿐이야.]쉴라가 옅은 미소를 지었다. 어둠 속에서 유난히 빛나는 그녀의 날개가 무척이나 쓸쓸해 보였다.
“쉴라 님, 뭔가 계획이 있으신 것 같군요. 마일라가 배신한 걸 알고도 일부러 갇혀준 것을 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