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362)
제 333화
111화. 흔적(3)
“아마 제가 말하지 않았다면 누님은 영원히 알 수 없었을 겁니다.”
“그랬다면 아마 어머니께서…….”
나와 다른 기수들에게 알리셨을 것이다. 그게 결국 가문을 위한 일일 테니.
메리는 그 뒷말을 잇지 못했다. 이 이야길 듣기 전이었다면 모를까, 지금은 로사가 정말로 가문을 위한 판단만을 한다는 확신이 없었다.
로사를 향한 신뢰의 모래성이 허물어진 것이다.
“……아무튼, 뜻하지 않게 대단한 이야기를 들었군. 내가 회의장에서 이 내용을 공개하면, 분명 가문에 혼란이 찾아올 거다.”
메리와 디푸스는 물론이고, 앞으로는 모든 기수들이 테마르의 무덤을 찾고, 지키기 위해 움직일 것이다. 기수뿐만이 아니라 원로회의 굵직한 인물들, 특히 조르덴 같이 아직까지 늙고 오랜 야망을 붙잡고 있는 자들까지도.
그건 좀처럼 찾아오지 않는, ‘위업 달성’의 기회이기 때문이었다.
순수하게 가문만을 위해서 나서는 이들도 있을 것이고, 명예라는 욕망을 채우고자 나서는 자들도 있을 터였다.
테마르의 무덤을 찾거나 지킨 자는, 영원히 룬칸델에 그 이름이 남을 수밖에 없었다.
“혼란. 돌아보면 가문에서 늘 그게 제 역할이었더군요.”
“그러니까 원로회에 그렇게 미운털이 박히지.”
그렇게 말하는 메리의 목소리가 한층 누그러져 있었다.
“그건 누님도 마찬가지지 않습니까.”
“아닐걸? 노인네들 중에 나 좋아하는 사람들도 많아. 흐음, 이번에 네 녀석이 일으킨 혼란 다음엔 질서가 좀 찾아오면 좋겠군. 회의 때 보자.”
* * *
하지만 진은 다음 회의에 참석하지 않았다. 임무를 핑계로 또 한 번 가문을 떠난 것이다.
‘마침 내게 배정된 임무가 있던 게 다행이로군.’
어차피 회의에서 어떤 안건이 나오든 결국 중심 주제는 테마르의 무덤이 될 것이다.
메리가 폭탄을 터뜨릴 그 회의에 참석해봤자 진은 얻을 게 전혀 없었다.
‘메리 누님은 내가 빠진 것에 당황하고 계시려나? 그래도 공론화는 그대로 밀어붙였을 테니, 지금쯤 회의장에 난리가 났겠어.’
그 풍경을 직접 보지 못한 건 아쉽지만, 괜히 피곤한 상황에 말려들고 싶지 않았다.
진은 천천히 복귀할 생각이었다. 무대에 설 만한 인물들이 모두 준비를 끝마치고, 본격적인 활동을 개시할 즈음까지 말이다.
‘열흘, 혹은 보름. 그 정도 뒤에 복귀하면 충분하겠지. 이번 임무는 나름 굵직하니까. 아, 해상 요새에 납치 중인 왕족 구출이면 기수 임무치고는 그렇게까지 대단하지는 않은 건가?’
물론 그 굵직한 임무를 진이 직접 해결하는 건 아니었다.
벨롭 슈미츠, 이번에도 그가 진을 대신해 왕족을 구출할 예정이었다.
그 녀석이 잘 해낼 수 있을지 조금 걱정되긴 하는군, 진이 그렇게 생각하는 와중.
벨롭은 비먼트 인근의 해상 요새들을 전부 뒤져보며 절규하는 중이었다. 대체 구출 대상은 어디에 있는 거야, 소리를 치며 말이다. 쉴 새 없이 날아드는 용병들의 칼날은 덤이었다.
‘힘내라, 벨롭.’
또 힘을 내야 할 사람이 하나 더 있었다.
정확히는 사람이 아니라 용.
진은 그 용이 깨어나는 걸 보기 위해 티칸을 찾은 참이었다.
“오셨습니까? 공자.”
“우오옷! 진 공자다!”
“오셨습니까요!”
저택으로 들어서자 카시미르와 엔야, 제트가 동시에 진을 반겼다. 다른 동료들도 모여서 인사를 나눴다.
엔야는 또 언제나처럼 등을 보이며 사인을 운운했고, 진은 물처럼 부드럽게 그녀의 셔츠 등짝에 글씨를 쓰는 모습.
“이건 맨날 의미도 없는 사인을 받고 앉았어.”
무라칸이 엔야의 머리를 헝클며 말하자 알리사가 피식 웃음을 흘렸다.
“무라칸 님도 의미 없는 책자를 모으는 일에 취미가 있으시지 않습니까.”
“알리사, 그건 아니지. 그토록 고상한 서적을 모으는 게 어떻게 의미가 없을 수 있나? 그보다, 이 냄새. 흐음, 퀴칸텔 녀석. 약을 잘 달인 모양이로군.”
킁킁, 콧구멍을 벌름거리는 무라칸. 그가 약이라고 표현한 것은 다름이 아니었다.
오즈도크의 내단.
진이 내단을 구해준 이후, 퀴칸텔은 날마다 밤을 새워가며 영약을 달였다. 율리안의 수호룡 칼토르를 깨우기 위해서 말이다.
피콘에겐 분명 내단으로 달인 영약 따위엔 관심이 없다고 말했으나. 무라칸도 용은 용인 듯, 영약의 향에 저도 모르게 입맛을 다시고 있었다.
“거, 아직 실력이 죽지 않았구만. 퀴칸텔이 영약 하나는 옛날부터 기가 막히게 달였어. 그래, 그 칼토르라는 놈은 좀 어때? 차도가 있나?”
구출된 이후 칼토르는 그야말로 시체나 다름이 없는 상태였다.
맥은 명의조차 간신히 짚어볼 수 있을 정도였고 숨도 거의 쉬지 않았다.
부서진 뼈마디는 다시 붙을 기미가 없었고 간신히 아문 상처는 빠짐없이 흉이 남았다.
누구든 그 모습을 보았다면 이미 죽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심장에 치명상을 입은 용이란, 자력으로는 결코 다시 일어설 수 없었다.
자타공인 최강의 용이었던 무라칸조차 심장을 다치고 천 년이나 잠들어 있었다.
그마저도 진이 폭풍성 지하실을 찾지 않았다면 지금도 깨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차도는 있습니다. 다만 퀴칸텔 님이 말씀하시기를, 몸이 너무 쇠약해진 상태라 영약을 먹이는 것도 극히 조심스럽게 할 필요가 있다고 하시더군요.”
라트리가 걱정스러운 듯 저쪽의 문을 바라보았다. 그 문 너머는 과거 미샤가 무라칸을 치유했던 방이었다.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하다는 뜻이로군.”
“네. 그래도 깨어나지 못할 일은 없다고 하셨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것 같습니다.”
“걱정은 무슨…….”
그렇게 대답했으나, 무라칸은 구석에 앉아있는 율리안 쪽으로 슬쩍 눈동자를 굴렸다. 나름대로 신경이 쓰이는 모양새였다.
율리안은 며칠째 식사도 거르고 그 자리에 앉아 칼토르가 깨어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진은 그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려다 그냥 삼켰다. 무슨 얘기든 칼토르의 의식이 돌아온 다음에 해줘도 늦지 않을 것 같았다.
“그나저나, 베리스가 안 보이는군.”
“아, 스승님은 지금 일하고 계세요. 곧 리트라 다과 2호점이 열릴 계획인데, 그곳 주방장으로 지내실 것 같고요. 라트리 님이 말하기로는 재능도 상당하시다고…….”
엔야는 여전히 베리스를 스승으로 모셨다.
그리고 베리스도 이제는 밀어내기를 포기한 채 진심으로 마법을 전수하고 있었다.
‘타이뮨 마리우스의 사냥개에서, 다과점의 주방장이라…….’
사냥개이자 육체가 개조된 천재 마법사로서 명령에 따라 사람을 죽이던 시절보다, 쿠키를 굽는 일상이 이제는 더 익숙해진 베리스였다.
‘워낙 어린 시절부터 살인 인형으로 키워졌으니, 마법을 잃은 다음에도 평범한 생활이 가능할까 싶었는데. 의외로 잘 맞나 보군.’
어쩐지 요나가 떠오르는 진이었다. 자신의 막냇누이도 언젠가 평범한 삶을 살 수 있게 된다면 무척 좋겠다는 마음과 함께.
“쿠잔은?”
“쿠잔 씨는 아까 칠색조 일거리들 확인하러 갔…… 어, 저기 오네요?”
자연스레 일행의 고개가 이제 막 복도로 들어선 쿠잔에게로 돌아갔다.
그는 양손 가득 칠색조의 서류들을 들고 있었는데, 진을 보자마자 꾸벅 인사를 하다가 그만 다 쏟아버리고 말았다.
촤르륵!
“에헤이! 조심 좀 하지, 이 사람.”
제트가 후다닥 달려가 떨어진 서류를 정리하는 걸 도왔다. 그러고는 오늘 밤, 한잔? 허공에 술잔 부딪히는 몸짓을 하는 걸 보니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두 사람은 의외로 죽이 잘 맞았다.
“공자님, 안 그래도 연락을 드리려고 했는데. 마침 잘 오셨습니다. 공자님께 서신이 왔습니다.”
티칸에서 진에게 올 편지는 단 하나뿐이었다.
‘발레리아인가!’
지익! 받자마자 편지를 뜯었다.
(묘인족의 흔적을 발견했다. 키켄 제후국 서쪽에 있는 ‘완타라모’라는 이름의 숲이야. 너라면 그곳이 평범한 숲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을 것 같군.
자세한 건 만나서 이야기하지. 9월 19일까지 키켄 제후국 남서부의 가장 큰 여관으로 와.
그리고 화장품이 다 떨어졌어. 조금만 챙겨줘.)
무려 세 달을 기다린 연락이었다.
그리고 발레리아는 묘인족을 찾겠다고 호언장담한 사실을 지켰다.
그간 칠색조도 가용 범위 내에서 최대의 인원을 투입해 묘인족을 찾았으나, 자그마한 단서조차 발견할 수 없어 답답하던 참이었다.
그만큼 묘인족을 찾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기록 마법이 있기에 세 달이라도 걸려 찾을 수 있던 것이다.
‘그나저나, 완타라모라고……? 처음 들어보는 지명인데. 게다가 평범한 숲이 아니라는 건 또 무슨 말이지?’
발레리아는 진이 알고 있으리라 생각했으나, 완타라모 숲은 전생의 기억까지 더듬어도 생소한 이름이었다.
“뭐래냐? 꼬마. 묘인족 찾았대?”
“완전히 찾은 건 아니고, 흔적을 발견한 모양이야. 키켄 제후국의 완타라모라는 숲이라는데, 어떤 곳인지 아냐?”
“완타라모? 그런 숲도 있어?”
다른 동료들도 전혀 모르는 눈치인 와중, 딱 한 사람. 카시미르가 무언가를 떠올린 듯 손뼉을 쳤다.
“황자 시절에 아버지와 대신들이 완타라모라는 숲에 대해 이야기하는 걸 들은 기억이 있습니다. 워낙 어릴 때라 잊고 있었는데, 이름을 들으니 떠오르는군요. 제가 일곱, 여덟쯤일 시기였습니다.”
“오, 미물. 맞아, 네 녀석. 황족이었지? 제후국의 땅이니 들어봤을 법도 하군.”
평범한 숲이 아니다.
무라칸을 제외한 동료들은 진이 내려둔 편지에 적힌 그 대목을 유심히 살펴보고 있었다.
“제국의 황제와 대신들이, 세상 사람들 대부분은 존재조차 모를 만한 제후국의 한 숲에 대해 일없이 이야길 나눌 일은 없었을 테지요. 숲에 뭔가 있기는 한가 봅니다.”
카시미르가 말하자 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말대로 황제가 대신들과 직접 논할 만한 지명이라면, 결코 평범한 숲은 아니라는 뜻이었다.
“카시미르 경, 혹시 또 떠오르는 건 없으십니까?”
“없는 것 같…… 아! 그때, 대신들이 완타라모와 협상에 실패했다는 이야길 했었습니다. 새삼, 다시 생각해보니 이상한 기억이로군요. 제국의 대신들이 제후국의 숲과 협상 운운을 하다니.”
제국과 제후국의 숲 사이에 협상을 할 일 따위가 존재할 수는 없었다.
치외 법권.
완타라모 숲은 비먼트의 영토에 속해있으면서도, 통치를 받지 않는 땅이었다.
“꼬마, 일단 가보면 그 아리아 아울하트라는 녀석이 어떤 곳인지 알려주겠지. 복잡하게 생각할 거 있냐?”
무라칸의 말이 옳았다.
“상대는 내가 다 알고 있을 줄 아는데, 아무것도 모르면 민망할까 봐.”
진이 어깨를 으쓱이며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