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381)
제 333화
117화. 누가 진짜 룬칸델인가(2)
콸콸콸……!
절단면에서 피분수가 쏟아졌다. 바닥엔 순식간에 피웅덩이가 고였고, 집행기사들은 검을 거둔 채 한 걸음 물러선 상태였다.
여전히 진은 담담한 얼굴이었다. 그리고 조르덴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조르덴으로서는 풋내기의 그 담담한 시선이 그토록 섬뜩할 수가 없었다. 무장은커녕, 팔이 잘린 채로 저벅저벅 다가오기만 할 뿐인데도, 왜인지 등허리에 베인 듯 서늘한 감각이 일고 있었다.
‘비약이다……!’
이를 악문 조르덴의 머릿속에 그런 생각이 스쳐갔다.
비약.
지금 저 건방진 핏덩이에게서 젊은 시절의 시론 룬칸델이 보이는 것은 비약이라고 말이다.
그 시절, 기수 2진으로서 시론과 경쟁할 때 단 한 번. 조르덴은 시론으로부터 무언의 경고를 받은 적이 있었다.
눈빛.
계속 도전하면 제거하겠다는 눈빛.
청년 조르덴은 시론의 그 덤덤한 경고를 마주하고 나서야 절감할 수 있었다. 그와 나는 격이 다르고, 사는 세계가 다르고, 차원이 다른 존재였다고.
자신은 시론이 언제든 짓밟아 죽일 수 있는 개미 한 마리 정도에 불과했다고.
‘그때의 가주는 이미 세상의 정점이었다. 문자 그대로 독존獨尊하는 자였어.’
그런데 어째서, 저 두 팔 잘린 12기수가 그와 같은 아우라를 갖고 있단 말인가. 시론 이후 그 누구에게서도 경험해보지 못한 그 끔찍한 아우라를!
껌뻑……!
한 차례 눈을 감았다 뜨는 동안 빛처럼 빠르게 감상이 지나갔다.
이 모든 기시감이 겨우 눈을 껌뻑이는 찰나의 순간 속에 녹아있었다.
의료진, 의료진을 불러라아아아……!
누군가 다급하게 소리치는 소리가 물속에서 듣는 듯 늘어지게 귓속을 파고들었다.
허억!
조르덴은 그때서야 헛숨을 삼키며 기시감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목덜미에 찬 쇳가루 같은 소름이 돋아있었다.
“빨리 의료진을 데려와! 젠장, 빨리!”
그렇게 소리치고 있는 것은 집사 페트로였다.
원로와 기수들이 앞에 서 있건만 집사 따위가 이렇게 악을 쓸 순 없다. 하나 페트로의 머릿속엔 진의 팔이 괴사하기 전에 치료를 시작해야 한다는 일념 하나뿐이었다.
최상급 치유사들에게도 절단상을 완벽하게 치료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떨어진 신체를 다시 붙이는 것쯤이야 간단하나, 무인의 팔은 일반인의 것과 다르다. 완벽하게 본래의 기능을 되찾지 못하면 무인은 날개가 꺾이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대륙의 손꼽히는 치유사들조차 절단 직후 조금이라도 때를 놓치면 다시는 원상태로 되돌리지 못하는 것이다.
“의료진!”
메리도 아랫입술을 깨물며 의료진을 호출했다. 그녀의 기사들이 미친 듯이 의료원을 향해 뛰는 모습이 이어졌다.
채 20초가 지나기 전에 의료진을 업은 기사들이 돌아왔다. 그사이 디푸스와 메리가 진땀을 쏟으며 진의 양팔을 지혈했다.
‘조르덴 당숙, 당신은 끝이 좋지 않을 거다.’
혼란한 와중 진은 속으로 승리의 미소를 삼켰다.
하지만 진이 미소를 숨겼음에도 중정에서 이 광경을 지켜본 이들은 모두가 다 알고 있었다. 진과 조르덴, 둘 중 누가 승자인지를 말이다.
“비켜주십시오!”
“너희 둘은 가서 약재를 챙겨라! 응급 처치만 하고, 12기수를 수술실로 옮겨야 한다!”
룬칸델 치유사들이 진의 몸을 살피며 소리를 질렀다.
“막내는 괜찮은 것인가!? 팔을 되돌릴 수 있는 것이냔 말이다!”
계속 타는 속으로 눈치만 살피던 토나 형제도 결국 뛰어와서 의료진에게 질문을 던졌다.
“확답을 드릴 수 없습니다!”
출혈이 극심한 데다 진은 이미 가문으로 복귀하기 전부터 암살자들을 상대하느라 피로가 누적되어 있었으니 상황이 썩 좋지 않았다.
룬칸델의 의료원은 분명 휴페스터 최고의 치유사들로 구성되어 있으나, 그들로서도 팔을 완벽히 돌려놓을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었다.
“반드시 완벽하게 치료해라, 반드시!”
“7기수, 전 괜찮으니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진이 메리를 보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절단면에 마력을 쏟고 있는 치유사들의 호흡이 거칠었다.
“그리고 회의 혼자 떠넘긴 것 미안합니다.”
“그딴 거 신경 쓰지 말고, 젠장. 아직 너랑 한참 싸워야 한단 말이다.”
“페트로.”
“예, 도련님!”
진이 턱짓으로 마차 속 페이를 가리켰다.
“저건 내 전리품이다.”
자신이 수술 받는 동안, 그 누구에게도 페이를 내어주거나, 확인하도록 두지 말라는 뜻.
본래는 페트로가 수행하기에 버거운 명령이었다. 이런 상황에 원로회가 요구하면 페이를 내놓을 수밖에 없는 게 페트로의, 그리고 그의 주군인 진의 위치였다.
그러나 이번 일로 가문 내에서 진 룬칸델이라는 이름은 한 단계 높은 격을 얻게 되었다.
더 이상 그 누구도 12기수는 물론이고, 12기수의 사람들도 함부로 건드릴 수 없게 된 것이다.
원로회장조차 나름 타당한 이유를 들이밀며 진을 압박했다 이런 망신살이 뻗쳤으니, 이제 가문 내에서 진을 건드리는 건 정말로 각오가 필요한 문제가 되었다.
“알겠습니다!”
계속 진이 걱정되긴 했으나, 페트로는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올라오는 자부심에 뒷골이 찌르르 울리는 듯했다.
“12기수, 수술실로 이동하겠습니다!”
“잘 부탁하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응급 처치를 끝낸 의료진이 진을 수술실로 이동시키기 시작했다.
조르덴과 원로들은 한동안 그 모습을 지켜보며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아직 원로회장께서 12기수에게 볼일이 남았으니 다들 물러나라거나, 감히 집사가 끼어들어 의료진을 부른 행위를 질책하거나, 집행기사들이 법도를 어긴 기수의 팔을 자른 것은 합당하니 호들갑 떨지 말라고 일갈하거나…….
원로회가 그런 것들을 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무엇보다도, 조르덴은 다소 전의를 잃어버렸다.
‘순간적이라고는 하나, 이 조르덴이 기시감만으로 저 애송이에게 공포를 느꼈다.’
젊은 시절 시론으로부터 느낀 공포감이 그만큼 대단한 것인가. 아니면 12기수가 형용하기 어려운 의지를 보인 것인가. 어느 쪽인지 얼른 분간이 가질 않았다.
‘하나 확실한 것은, 결코 쉽게 볼 놈이 아니라는 것이다……!’
사실 조르덴은 진의 잠재력을 이미 옛적부터 알아보았다. 진이 다른 기수들보다 분명 비범한 구석이 있다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과 ‘진짜로 싸울 수 있는’ 상대라고 판단한 적은 없었다.
마치 오래전의 시론이 그랬던 것처럼, 언제든 짓밟을 수 있다고만 생각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생각은 오늘의 굴욕으로 인해 완전히 바뀌었다. 한평생 검을 잡아오며, 상대를 뜻대로 베고도 패배한 기분을 느끼는 것은 처음이었다.
‘조슈아, 2기수보다도 내게 더 큰 위협이 될 수 있는 놈이다. 아니, 어쩌면…….’
차마 뒤돌아볼 수는 없었으나 조르덴은 안채에서부터 전해지고 있는 로사의 시선을 인지하고 있었다.
‘로사 경보다도 위험할 수 있다.’
조르덴과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이 하나 더 있었다.
조슈아 룬칸델, 가문의 2기수. 그는 불길한 예감에 휩싸인 채 진이 흘리고 간 피웅덩이를 내려다보았다.
‘……언뜻 무모해 보였으나 분명 다 계산된 행동이었다. 애초에 메리가 초대 가주의 무덤에 관한 내용을 공론화시키도록 종용한 시점부터, 놈은 가문에 폭탄을 터뜨릴 준비를 끝내고 있었을 거다.’
방금 조르덴 원로장과 펼친 일전은 그 전초에 불과하다.
조슈아는 그렇게 확신하고 있었다.
‘절대 이 정도로 끝낼 놈이 아니야. 확실하게 믿는 구석이 있으니 이런 일을 벌인 것일 텐데.’
메리가 저번 회의 때 진에게 들은 정보를 터뜨린 후.
조슈아는 줄곧 진의 의도가 무엇인지를 고민해왔다.
유산.
메리는 분명 초대 가주의 무덤에 솔더렛이 진을 위해 남겨둔 유산들이 있다고 말했었다.
‘단지 어느 시점부터 그 유산들을 혼자 찾는 것이 버겁다고 판단했기 때문만은 아닐 거다. 뭔가 다른 이유가 있어. 그게 무엇이냐, 진.’
수술이 끝나기 전에 진의 의도를 파악할 필요가 있었다.
분명 수술이 끝나자마자 또 한 번 가문에 소란을 일으킬 테니 말이다.
조슈아가 생각하는 막내는 그러고도 남을 위인이었다.
대처를 해야 했다. 방금처럼 예상치 못한 전개에 넋 놓고 있다간 막내의 계획을 쫓아갈 수 없었다.
온갖 경우의 수가 조슈아의 뇌리를 어지럽혔다. 머리가 터질 것 같았고, 왠지 모를 불안감에 가슴이 답답했다.
‘본질적인 무언가가 있을 거다. 막내의 행동들은 결국 녀석이 궁극적으로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함일 테니.’
고민을 거듭하던 조슈아는 이윽고 한 가지 결론에 도달할 수 있었다.
가주 경쟁!
왜 그걸 곧바로 떠올리지 못했는지 스스로가 의아할 지경이었다.
‘막내가 메리에게 초대 가주의 정보를 흘린 건, 가주 경쟁에서 이점을 차지하기 위함이다.’
메리를 통해 무덤을 찾는 일에 다른 룬칸델들이 참여하도록 유도한 것도, 메리만 회의에 참석시키고 자신은 빠져있던 것도, 복귀하자마자 두 팔을 잃어가면서까지 조르덴의 위신을 떨어뜨린 것도.
모두 가주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한 행동들이었다.
‘초대 가주의 정보를 메리가 흘리게 한 것은 명분을 얻기 위해서였어. 메리 혼자 회의에 참석시킨 건, 그사이 가문의 힘을 빌리지 않고 얻을 수 있는 마지막 유산을 챙기기 위해서였을 거다. 그리고 원로장의 위신을 떨군 건…….’
존재감 과시.
결론을 내린 조슈아가 한 차례 주위를 살폈다.
보이는 것은, 술렁이고 있는 룬칸델들의 모습.
진의 일거수일투족은 이제 룬칸델에 결코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 진이 가문의 분위기를 살피는 게 아니라, 가문이 진이 일으키는 흐름을 쫓아가는 형세가 된 것이다.
그건 곧 12기수라는 지위에 상당한 무게감이 생겼음을 뜻했다.
그간 공고하게 다져놓은 차기 가주로서 자신의 입지에 균열이 생길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하워드.”
조슈아가 자신의 집사를 찾았다.
“예, 주군.”
“오늘 이후 막내에게 자신의 운명을 거는 자들이 나오기 시작할 거다.”
그러자 하워드가 흠칫하며 조슈아와 눈을 맞췄다.
“놀랄 것 없다. 애초에 아버지께서 눈여겨보던 녀석이니, 그렇게 되는 것이 당연하지. 아주 적을 테지만, 구르는 눈덩이가 커지는 건 한순간이다.”
“어떻게 대처하실 생각이십니까?”
“내 기사들을 모두 검의 정원으로 집합시켜라. 막내의 수술이 끝나기 전까지 도착할 수 있는 모든 인원을, 한 사람도 빠짐없이.”
“알겠습니다.”
조슈아가 기사들을 집합시키는 이유는 다름이 아니었다.
진이 수술을 다 받고 깨어났을 때, 또 어떤 폭탄을 터뜨리든.
가문 제2기수, 차기 가주의 위엄을 드러낼 필요가 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