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380)
제 333화
117화. 누가 진짜 룬칸델인가(1)
바리아 중앙 이동 관문이 완전히 무너진 탓에, 진은 밤이 되어서야 간신히 칼론에 도착할 수 있었다.
“도, 도련님. 진 도련님……!”
허겁지겁, 가장 먼저 달려온 것은 집사 페트로였다.
그는 회의에서 메리가 테마르의 무덤에 관한 내용을 공론화한 후, 매일같이 휴페스터 중앙 이동 관문에 나와 진이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메리가 회의 때 발언한 것이 9월 15일이니 그로부터 벌써 열흘이 흐른 상태였다. 그 열흘간 페트로는 진을 걱정하느라 간장이 다 녹아날 지경이었다.
“역시 이번에도 자네가 가장 먼저 날 찾아올 줄 알았어.”
안절부절 진땀을 쏟고 있는 페트로와 달리 진은 덤덤한 표정으로 미소를 지었다.
다만 귀신대 살수들의 피를 잔뜩 뒤집어쓴 탓에 그 모습이 페트로에겐 무척 힘겨워 보였다.
“어디 다치신 겁니까!? 여봐라! 당장 의료진을 부르고, 데운 수건을 가져와라!”
“의료진은 됐어.”
“도련님, 그리고 그 커다란 자루는 대체.”
“아, 이거.”
털썩!
진이 어깨에 자루처럼 메고 있던 로브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반사적으로 자루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 확인한 페트로의 얼굴은 즉시 사색이 되었고 말이다.
“이 사…… 람은. 귀신대의 페이 프로치 아닙니까?”
자루 안에는 여전히 의식을 잃은 채 손발이 포박된 페이가 담겨 있었다.
“협상용 포로다.”
진이 페이를 살려둔 이유는 그녀가 포로로서의 가치가 매우 뛰어나기 때문이었다. 그냥 죽여봐야 귀신대의 원한만 더 깊게 살 뿐, 살려두면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었다.
“귀신대가 도련님을 쳤단 말입니까.”
주먹을 그러쥐며 이를 가는 페트로.
“그래. 라타 프로치가 자신의 동생과 살수 열 명을 보냈지. 그리고 보다시피 페이는 내게 생포되었고 말이야.”
“……원로회의 짓이군요.”
페트로는 단박에 의뢰 주체를 유추해냈다. 하필이면 이 시기에 귀신대에 의뢰를 맡길 만한 자들은 원로회밖에 없었다.
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안 그래도 메리 아가씨가 도련님께 받은 정보를 폭로한 이후, 원로회에서 뭔가 움직임이 있으리라 생각은 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빠를 줄 몰라 대비하지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자네가 대비할 게 뭐가 있나. 괜찮아. 길리는?”
길리의 이름이 나오자 페트로의 표정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현재 구금 중입니다.”
진의 눈동자에도 일순 살기가 깃들었다.
하지만 금세 차분한 눈빛을 되찾았다.
“어디에? 설마 지하 감옥은 아닐 테지. 그랬다면 무라칸이 가만히 있지 않았을 테니.”
“안 그래도 구금 이야기가 나왔을 때, 무라칸 님께서 검의 정원 일부를 파손하셨습니다. 수호기사들이 무라칸 님을 막느라 진땀을 뺐고요.”
“무라칸에겐 따로 조치가 취해진 것 없지?”
“그렇습니다.”
검의 정원 일부를 깨부쉈음에도, 또한 길리처럼 진에 대해 가장 많은 정보를 알고 있는 사람임에도 무라칸은 달리 처벌을 받지 않았다.
“길리가 말리지 않았다면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벌어졌을지도 모릅니다.”
‘가문의 오랜 수호신’으로서 예우 받는 한계점을 넘지는 않은 덕이었다. 그 선을 넘었다면 무라칸이라 할지라도 무사할 수는 없었다.
“불행 중 다행이군.”
“그리고 길리는 감옥 대신 원로회의 비밀 거처 중 한 곳에 구금되었다고 들었습니다. 호민회장께서 인간적인 대우를 약조하셨으니, 너무 걱정하진 않으셔도 될 겁니다.”
길리는 원로회로부터 진과 함께 테마르의 무덤을 찾아갔던 일 때문에 구금당한 상태였다.
또한 진의 유모인 만큼, 그녀는 진에 대해 그 누구보다도 많은 정보를 알고 있을 테니 원로회로서는 추궁하는 게 당연한 일이었다.
‘테마르의 무덤’이란, 그만큼 룬칸델에서 예민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는 정보였다.
‘완타라모 숲에선 무라칸이 없던 게 아쉬웠는데, 가문에 남겨두고 오길 잘했군. 녀석이 있었으니 아무도 길리를 아주 함부로 대할 순 없었을 거다. 선을 넘었다면 위험했겠지만.’
게다가 호민회장 텔롯은 이번에도 눈치 좋게 길리를 챙겼다. 그로서도 구금을 막는 것까진 무리였으나 최대한 진을 배려해준 것이다.
“돌아오자마자 할 일이 많겠군.”
진이 하인이 가져온 수건으로 얼굴에 내려앉은 피딱지를 닦아냈다.
새로운 피를 묻힐 시간이었다.
“가지.”
강철 마차를 타고 검의 정원으로 이동했다.
이동 관문에 있던 다른 수호기사들은 그보다 더욱 빠르게 검의 정원으로 가 진의 복귀 사실을 알렸다.
철컹……!
검의 정원 대문에 걸린 빗장이 풀리는 소리가 유난히 무거웠다.
예상대로 검의 정원은 입구부터 심상치 않은 분위기였다. 수백 명의 수호기사가 위압적으로 도열해 있었고, 그 앞엔 원로회와 기수들이 우뚝 서 있는 모습.
이윽고 진이 마차에서 내리자.
네 자루의 검이 진의 목을 조여들었다. 집행기사들의 검이었다.
“12기수, 무장을 해제하시오.”
집행기사들의 낮은 목소리에 진이 피식 웃음을 흘렸다.
“반역자라도 된 기분이로군.”
“무장을 해제하라고 하였소.”
“싫다면?”
“법도를 따를 수밖에.”
원로회장!
별안간 진이 소리를 질렀다. 응축된 기운이 담긴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정원의 고요를 찢어발겼다.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가문의 막내, 12기수가 원로회장을 그토록 불경하게 부르는 것은.
즉시 조르덴의 이마에 굵은 핏대가 불거졌고, 원로들은 대경실색한 채 눈동자가 거의 튀어나올 지경이었다.
‘와, 저 미친놈. 내 동생이지만 진짜 멋지게 미친놈이다, 저건.’
기수 중에는 메리만이 불끈 주먹을 쥐며 왠지 통쾌하다는 생각을 했다.
나머지 기수들은 제 귀를 의심하며 진을 쳐다볼 뿐이었다. 매번 만사가 다 귀찮다는 태도를 취하던 룬티아조차 눈동자를 끔뻑이고 있었다.
“저, 저……!”
“말세로군! 감히 12기수가 가문의 원로회장을 그토록 불경하게 호칭한단 말인가!”
뒤늦게 정신을 차린 원로들이 일갈하며 조르덴의 눈치를 살폈다.
조르덴은 충격이 상당히 큰 듯, 그때까지도 다소 넋이 나간 얼굴로 진을 쳐다보고만 있었다.
집행기사들은 무표정한 얼굴로 여전히 진의 목에 칼날을 대고 있었다.
“……님!”
“푸흣. 크흠, 흠.”
결국 메리는 그 대목에서 웃음을 참지 못해 헛기침을 해댔다.
사실 그녀는 회의 때 나타나지 않은 진에게 상당히 화가 난 상태였으나, 막내라는 놈은 늘 이토록 큰 재미를 선사하니 도무지 미워할 수가 없었다.
“어차피 이 자리에서 절 죽이실 것 같진 않은데, 조금 더 가볍게 대해주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뭐라……?”
“가문은 제게 들어야 할 말이 많을 겁니다. 저 없이 시조의 무덤을 어떻게 찾을 것이며, 가문의 옛 영광은 어떻게 재현할 것입니까?”
조르덴의 미간이 좁혀졌다.
그는 이제 간신히 이성을 붙잡은 채 죽일 듯이 진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걸 믿고 이렇게 날뛰는 것인가, 12기수.”
눈빛에 담긴 살의와 달리 조르덴은 매우 점잖은 말투였다.
“그렇습니다.”
“목숨이 아깝지 않은 게로구나. 네가 7기수에게 알렸다는 정보가 과연 가치가 있을지는 모르는 일이다.”
“원로회장님께서야말로 명예가 아깝지 않으신 모양입니다.”
한 마디, 한 마디가 조르덴의 신경을 매섭게 긁어댔다. 불거진 핏대가 금방이라도 터져버릴 것 같았다.
“감히 네놈이 내게 명예를 운운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
“운운하지 못할 건 또 뭡니까? 저는 오히려 원로회장님을 돕고 싶은 마음에 명예를 운운한 것입니다. 흑검회 소속 집행기사들까지 데려와서 제 목에 칼을 들이미셨는데…….”
톡톡.
진이 손가락으로 집행기사들의 칼날을 건드리며 뒷말을 이었다.
“이거. 절 베지 않고 그냥 넘어가면 그게 무슨 개망신이란 말입니까? 한두 명이 보고 있는 것도 아닙니다. 소문을 틀어막을 수도 없다는 뜻이죠.”
옆에 선 페트로는 진이 한 마디를 할 때마다 수명이 몇 년씩 깎이는 기분이었다. 새하얗게 질린 페트로의 얼굴에서 쉴 새 없이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하지만 진은 확신할 수 있었다.
‘원로회장은 날 죽이지 않는다.’
못하는 것은 아니다.
조르덴이 도발에 분을 못 이겨 집행기사들에게 진의 목을 가져오라는 명령을 내리는 건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다만 가능하기만 할 뿐, 조르덴에게 이익이 되는 바가 전혀 없는 것이다.
오히려 막대한 손해를 입게 될 수밖에 없었다. 조슈아를 견제할 수단이 없어지는 것은 물론, 차후 테마르의 무덤을 통해 타 세력이 이익을 얻기라도 하면 뒷말이 나올 테니까.
심지어 마음만 먹으면 조르덴이 반드시 진을 죽일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설령 원로회장이 꼭지가 돌아 집행기사들에게 날 죽이라고 명령을 내려도, 어머니가 막을 가능성이 높다.’
로사가 진보다 테마르의 무덤에 대해 더 많은 정보를 갖고 있는 게 아니라면. 그녀의 입장에서도 아직 진은 죽어선 안 된다.
조르덴이 이성을 잃는 것도, 로사가 그를 막는 것도. 모두 10할의 가능성은 아니지만 진은 자신이 있었다.
진이 슬쩍 눈을 올려 검의 정원 안채를 바라보았다. 로사의 집무실에 초점을 맞추며 씨익 미소를 짓기도 했다.
정적이 흘렀다.
초유의 사태, 그보다 이 상황을 잘 표현할 말은 없을 것이다.
“……오만하고 방자하기가 이를 데 없구나. 너 같은 것도 룬칸델의 깃발을 들어 올릴 수 있다니, 시대가 변하긴 변한 모양이야.”
막 복귀한 진을 집행기사들로 압박하자고 결정했을 때, 조르덴은 당연히 이런 그림을 예상하지 않았다.
그가 원했던 모양새는 진이 이번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상황을 무마하기 위해 다른 이의 도움을 청하는 것이었다.
만약 진이 다른 기수들이나 텔롯에게 원로회의 압박을 물려주라며 거래를 제안했다면, 조르덴은 그걸 빌미로 진과 그의 잠정적 아군들이 정확히 누구인지를 파악하려고 했었다.
설마 이렇게까지 진이 막 나올 줄은 몰랐던 것이다. 늘, 진을 상대해온 사람들 모두가 그랬듯이.
그렇기에 조르덴으로선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다.
정말로 여기서 그냥 넘어가면, 진의 말대로 망신살이 제대로 뻗칠 수밖에 없으니까.
“변화에 적응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요, 원로회장님.”
“그래. 맞는 말이다. 그런데 자네, 아직까지도 무장을 해제하지 않았군.”
조르덴이 고개를 저으며 나지막이 뒷말을 이었다.
“놈의 양팔을 베어라.”
스걱-!
집행기사들은 조르덴의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그야말로 서슴없이, 진의 두 팔을 잘라냈다.
툭, 툭.
잘린 팔이 바닥에 떨어지며 둔탁한 소리를 냈다.
그리고 진은 떨어진 제 팔을 한 번 쳐다보지도 않았다.
한 걸음, 진이 조르덴 쪽으로 가까이 다가섰다.
“다 하셨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