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379)
제 333화
116화. 룬칸델이 암살자를 상대하는 법(2)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진과 살수들의 칼날이 뒤엉키기 시작했다. 맞부딪힌 검들에서 정신없이 불꽃이 튀었고, 그들이 내뿜는 오러에 객실 전체가 진동을 일으켰다.
콰앙, 펑, 퍼펑!
두꺼운 원목 재질의 의자와 내부 장식, 기둥 같은 것들이 충격파에 수수깡처럼 터지고 있었다.
귀신대의 살수들은 더 이상 방심하지 않았다. 검에 실린 살기는 이전보다 정제되었고, 움직임은 예리해졌다.
특히 검진의 중심에 있는 대장급 살수의 일격은 매 순간 등허리가 서늘해질 만큼 위협적이었다.
지위는 페이 프로치가 가장 높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그녀가 귀신대장 라타 프로치의 혈육이기 때문일 뿐, 순수 실력은 대장급 살수가 훨씬 빼어났다.
페이의 쌍검도 매섭기는 했다. 분명히 어디서든 입이 닳도록 천재 소리를 들을 만한 잠재력을 갖고 있기도 했다.
그럼에도 이제 겨우 스물다섯에 불과한 애송이였다. 재능이 아무리 뛰어나다 한들, 진의 기준에선 그다지 충격적일 것도 없는 수준이고 말이다.
‘대장급 살수를 빨리 끝장내는 게 관건이다.’
이미 부하를 다섯이나 잃은 그는 잔뜩 독기가 올라있었다.
노회한 뱀처럼 공방을 유연하게 풀어가면서도 가장 까다롭고 위력적인 공격을 퍼붓고 있으니 여간 성가신 게 아니었다.
애초에 진은 지친 상태로 이 싸움을 시작했다.
지금까지는 비장의 수들로 귀신대의 방심을 잘 유도해왔으나 귀신대는 그저 그런 용병단 따위가 아니었다.
그들도 저력이 있는 것이다.
“놈의 검에서 마법 같은 것이 작용해 인력을 만들고 있다. 다들 그걸 계산해서 움직여라!”
과연 대장급 살수는 즉시 명왕검 압제의 힘을 알아보았다. 그 말에 페이와 살수들이 다시 거리를 조절했다.
“여기서 죽기 아까운 인물이 하나 있었군. 이름이 무엇이냐?”
대장급 살수는 그 물음에 대답하지 않았다.
“말하기 싫다면 어쩔 수 없지.”
후우웅-!
브라다만테를 타고 영기가 소용돌이쳤다. 소용돌이의 결을 따라 검은 검기가 사방으로 뻗어나갔는데, 진은 그걸 또 장막처럼 이용해 계속 귀신대의 시야를 교란했다.
쉴 새 없이 보법을 밟느라 숨이 차올랐다. 집중력을 한계까지 끌어올리자 요나가 남긴 살기가 점점 더 선명해지는 게 느껴졌다.
선명해진 만큼 적들의 살기는 쉽게 읽힌다. 진은 아슬아슬하게 일곱 자루의 검 사이를 오가며 브라다만테를 휘둘렀는데, 그건 어디까지나 겉보기에만 위태롭게 보이는 것이었다.
진에겐 영기 갑옷을 스치고 지나가는 칼날들이 무척 멀고 안전하게 느껴졌다.
‘단지 살기를 읽어 공방을 완전히 장악하는 경지가 있다고 들었지. 그게 이런 느낌이었나.’
심안의 극치, 진은 그것과 유사한 상태를 경험하는 중이었다.
분명 위험한 상황인데도 저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다.
진은 언제나 이런 싸움을 선호했다. 위험하지만 결코 지지 않을 것 같은.
뮬타의 룬에 가려 그 모습이 귀신대에게 보이진 않았으나, 대장급 살수는 명백히 인지하고 있었다.
‘즐기고 있다. 우릴 앞에 두고도……!’
대장급 살수는 진이 마치 자신들을 ‘가지고 노는’ 듯한 기분에 휩싸일 수밖에 없었다.
말이 안 되는 이야기였다. 객관적인 전력은 분명 자신들이 앞서고 있으니, 아니. 최소한 비등비등하고 치열한 싸움이 이어지고 있으니 진에게선 최소한의 절박함 같은 게 보여야 했다.
그런데 마치 맛있는 먹잇감을 앞에 둔 맹수와 같은 태도라니.
오만하기 이를 데 없다.
그러나 평생 검이라는 도구를 사용해온 한 사람으로서, 묘한 경외감이 일어나기도 했다.
‘우리와는 피부터 다르다는 것인가, 진 룬칸델.’
카아아-!
대장급 살수가 기합을 내지르며 검을 뻗었다.
복면에 가려진 그의 두 눈동자 속엔, 당연히 진도 가졌어야 할 진한 절박감이 깃들어 있었다.
텅!
검신을 세워 일격을 받아낸 진이 뒷걸음질을 쳤다. 자세가 무너졌고, 귀신대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페이의 쌍검과 네 자루의 검이 진의 온몸으로 날아들었다.
그러나 그들은 뼈와 살을 관통하는 익숙한 감각을 느낄 수 없었다. 이번에도 칼끝을 타고 전해지는 것은 쇠붙이를 때렸을 때의 공허한 소음이 전부였다.
진이 아무런 피해를 입지 않은 건 아니었다.
‘영기를 너무 많이 사용하고 있다.’
거의 8성에 다다른 영기 해방으로도 부족했다. 지친 몸으로 살수들을 압도할 만큼 영기를 방출하고, 갑옷까지 형성하는 것은 말이다.
영기 갑옷의 강도가 약해졌다.
평소라면 몸을 찌른 여섯 개의 칼날을 피해 없이 막아냈을 테지만, 뼈와 근육에 균열이 일었다.
쿠득, 늑골과 대퇴근이 파열되는 감각에 헛숨을 삼키는 진.
하나 잃는 것이 있으면 얻는 것도 있기 마련이다. 갑옷으로 버티며 내지른 영검 2식 가위에 선두에 있던 살수의 손목이 잘렸다.
검을 들고 있던 손목이었다. 무참히 바닥으로 떨어진 칼 쥔 손목에서 쨍겅, 소리가 나기도 전에. 돌진한 진이 그의 가슴에 브라다만테를 꽂았다.
‘이제 다섯.’
남은 것은 페이와 살수 넷.
진도, 귀신대도 호흡이 거칠었다. 그리 길지 않은 공방임에도 다들 전력을 다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삐!
고막에서부터 날카로운 이명도 들려왔다.
먼저 집중력을 잃는 쪽이 베인다. 애써 이명을 무시하며 검을 더욱 꽉 그러쥐는 진.
짧은 순간, 진과 대장급 살수의 시선이 맞닿았다.
진은 머릿속으로 다시 검이 뒤섞이는 모습을 그렸고, 대장급 살수는 선택을 했다.
후회하기도 했다.
조금 전에 진이 말했던 세 번의 기회를 놓치지 말 걸 그랬다고 말이다.
그 자체로 대장급 살수의 입장에선 이루 말할 수 없이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나, 그는 진과 입장이 달랐다.
페이 프로치.
주군의 하나뿐인 혈육을 지켜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아가씨, 제가 시간을 벌겠습니다. 도망치십시오.”
지이이잉……!
오러에 휩싸인 대장급 살수의 검이 음울한 진동을 내뿜었다.
그건 룬칸델의 결전기도, 하이란의 비기도, 그밖에 다른 명문 무가들의 정수가 아니었다.
그저 한 개인이 끊임없이 수련해 이룩한, 한 이름 없는 검의 결실.
진은 그것이 그의 마지막 일격이 되리라는 것을 직감했다.
“우린 진 룬칸델을 죽이라는 의뢰를 받았다. 그리고 나는 저놈을 죽이라고 하였지.”
“그리할 것입니다. 하나 아가씨의 목숨을 담보로 잡을 순 없습니다.”
“네가 목숨을 건다면 나 또한 목숨을 건다.”
“아가씨.”
“그게 귀신대고, 프로치의 명예다. 우리가 진다면, 오라버니가 복수를 해줄 것이다.”
대장급 살수는 더 이상 페이를 말릴 수 없었다.
진이 다시 기운을 드러내고 있었으니까.
대장급 살수의 마지막 일격을 막기 위해, 진도 남은 힘을 모조리 끌어내고 있었다.
‘저걸 막지 못하면 내게도 다음은 없다.’
승패는 일격에 판가름이 날 것이다.
명왕군림검이나 마검 비기, 마황의 유산을 꺼낼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을 테지만. 그럴 만한 힘은 없었다.
진이 펼칠 수 있는 것은 검이라는 사물의 본질을 그 무엇보다도 깊이 담고 있는 일격.
‘벤다, 무엇이 날아오든.’
그리고 무인의 의지.
주문을 외듯, 검에 의지를 싣자 일순 주위가 고요해지고 앞이 캄캄해졌다.
뿌옇게 변한 시야엔 살수들의 형체만 희미하게 남았으나 선명할 때보다도 수월하게 거리를 잴 수 있었다.
자연스레 뮬타의 룬과 영기 갑옷이 해제되었다. 몸을 보호할 최소한의 영기조차 ‘베겠다는 의지’로 변해 브라다만테로 녹아들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십여 초쯤, 진과 대장급 살수가 대치하는 동안.
페이와 살수들은 가만히 서 있는 진을 섣불리 공격하지 못했다.
잠시간 진과 대장급 살수 사이에 그들과는 격이 다른 기운이 보이지 않는 막을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 막을 함부로 넘나드는 것은 같은 경지에 이른 사람들에게만 허용되는 일이었다.
그리고 페이와 살수들은 믿고 있었다.
대장급 살수가 이번에야말로 진을 도륙할 것이라고.
혹 목숨을 끊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자신들이 마무리를 지을 수 있을 만큼 치명상을 남길 것이라고.
‘온다.’
거의 동시에, 진과 대장급 살수의 검이 움직였다.
번쩍이는 검광과 어두운 영기가 두 사람 사이를 가로질렀다. 빛처럼 빠른 두 칼날이 서로의 몸을 꿰뚫었다.
그토록 빛나는 검은 꼭 규격 외의 천재들만이 가질 수 있는 게 아니다.
평생을 검에 바쳐온 인간이라면 누구나 한 번은, 진짜배기 각오를 통해 얻을 수 있었다.
대장급 살수에겐 지금이 바로 그런 순간이었다. 꺼지기 직전의 불씨가 일순 맹렬하게 빛나는 바로 그런 순간.
위험했다.
‘치명상을 입었을 거다.’
그가 진이 가진 마지막 비장의 수를 미리 알고 있었다면, 분명 치명상을 입혔을 것이다.
대장급 살수의 검은 진의 허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진을 지나친 그의 등에 시퍼런 불덩이가 맺혀 있었다. 청화, 브라다만테에 담긴 테스의 힘.
‘중압이 아니었다면…….’
검이 맞부딪힌 마지막 순간, 청화의 중압이 대장급 살수를 짓눌렀다.
귀신대와 치열한 공방이 이어지던 와중에도 일부러 사용하지 않은 그 힘이, 끝내 승부를 가르고야 말았다.
귀신대는 진이 마검사라는 사실과 불사조 테스의 계약자라는 것을 미리부터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진이 전투 내내 테스를 소환하지 않았으니 청화는 배제하고 있던 것이다.
그들의 머릿속에 불사조가 계약자의 검에 자신의 힘을 담아놓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일이었으니까.
커헉……!
가슴 한가운데를 꿰뚫린 대장급 살수가 쇠를 긁는 것 같은 마지막 숨을 토했다.
동시에 페이와 살수들이 진을 덮쳤으나, 중심을 잃은 그들은 이제 진의 상대가 될 수 없었다.
피와 살점이 부서진 객실을 뒤덮기 시작했다. 남은 네 명의 살수가 죽음을 맞이하기까지는 채 3분이 필요하지 않았다.
독이 퍼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해독제를 미리 마셨다곤 하나, 그들은 진처럼 만독불침에 가까운 육체가 아니었다.
이윽고 홀로 살아남은 페이 프로치만이 피눈물을 흘리며 진을 노려보았다.
전투 중 입은 부상들 때문에 그녀 역시 본격적으로 온몸에 독이 퍼져 마비가 시작된 상태였다.
“반드시, 내 오라비 라타 프로치가 너를 죽일 것이다. 나와 그리몰, 그리고 죽은 귀신들을 대신해서.”
“이자의 이름이 그리몰이었나.”
진이 죽은 대장급 살수, 그리몰의 시체를 뒤돌아보았다.
그 순간 페이는 혼신의 힘을 다해 몸을 던졌으나, 진은 가볍게 그녀의 검을 피했다.
페이는 그것을 끝으로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기억하도록 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