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409)
제 444화
120화. 왜 하이란인가(4)
물론 비약일 수도 있었다. 이제 겨우 한 합을 나눴을 뿐이니까. 그가 흑기사라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었다.
‘하지만 흑기사들을 마주쳤을 때 느끼곤 했던, 그 특유의 위기감이…… 너무 비슷하군.’
마저 싸워보면 알 일, 재차 검을 밀어 넣었다.
두 괴한의 검 사이로 어둡게 물든 브라다만테의 칼날이 밀려 들어갔고, 단테도 그 틈을 타 괴한들의 후방으로 일격을 내리쳤다.
진이 흑기사라고 느낀 괴한은 검으로 원을 그려 두 사람의 공격을 동시에 막아냈고, 나머지 괴한이 뒤돌아 단테의 목을 노렸다.
이미 지쳐있는 데다 본래 목표인 만큼, 단테를 먼저 처리하려는 움직임이었다.
“큭!”
단테가 뒤쪽으로 보법을 밟으며 검기를 흩뿌렸다. 출혈이 상당히 심한 듯 보이는데도 빛나는 오러가 매서웠다.
함께 싸운 적이 그리 많지는 않으나, 늘 그래왔듯이. 진과 단테는 오랜 시간 합을 맞춰온 이들처럼 서로의 검을 유연하게 읽는 모습.
전세가 변하는 건 당연한 수순이고, 괴한들은 계획이 틀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했다.
카가각-!
진이 괴한들의 검을 헤치며 단테의 옆에 자리를 잡았다.
눈을 내려 살펴보니 검을 쥔 단테의 손아귀가 떨리고 있었다.
두려움 때문이 아니었다.
분하기 때문이었다. 주변에 쓰러져 있는 수많은 시체들은 모두 단테가 구하려던 사람들이거나, 단테를 구하려던 사람들이었다.
-단테!
-예, 조부님!
-기사들은 전원 집결이 불가하다. 이미 바깥에도 놈들이 깔려있구나.
-바깥에도……!
-검황성의 주인이 될 기사로서, 책임지고 일반객들을 대피시켜라.
사태가 시작되었을 때, 론은 단테에게 그런 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단테는 자신이 그 명령을 수행하기는커녕, 더 많은 사람을 죽음으로 내몰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 마음이 훤히 보여 진도 심정이 좋지 않았다.
“단테,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한다.”
당장은 위로를 해줄 수가 없었다. 위로한다고 나아질 수 있는 문제도 아니고.
“……알고 있소. 그대 덕에 정신이 조금 드는군.”
검을 쥔 손의 떨림이 멎었다.
단테와 어울리지 않는, 어둡게 가라앉은 눈동자가 괴한들을 노려보았다.
그러나 그런 어두운 눈동자를 한 사람이 펼치는 것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찬란한 오러가 단테의 칼날을 물들이고 있었다.
‘시간을 벌어주시오.’
소리 내어 말하지 않아도 단테의 의도를 알 수 있었다.
제왕검.
하이란의 적자 전승 검술. 그 비기가 펼쳐지려는 것이다.
그 검을 알아본 괴한들이 다시 검을 뻗기 시작했다. 진은 단테가 오러를 무사히 끌어올릴 수 있도록 그들의 검을 가로막았다.
한 명은 문제가 되지 않았으나 흑기사급 괴한의 검이 매서웠다.
일격, 일격이 어지간한 상위 무인의 절기와 맞먹는 위력을 품고 있었다.
아무렇지 않게 휘두른 듯 보이는 일반적인 종베기조차 태산 같은 무게가 담겨 있는 것이다.
완벽한 순금처럼, 한 치의 불순물도 없이 정제된 검술.
이런 검을 휘두를 수 있는 자들은 정말로 흔치 않았다. 흑기사, 또 한 번 진의 뇌리에 그 이름이 스쳤다.
핏!
괴한의 검이 진의 콧등을 스쳤다. 흑기사급 괴한이 자세를 무너뜨린 사이 내지른 검이었고, 반응하지 못했다면 그대로 목이 베었을 터.
세 자루의 칼날이 어지럽게 불꽃을 튀기고 있었다. 검신에서 뿜어지는 열기 때문에 땀과 핏방울이 허공으로 튀는 즉시 증발할 지경.
‘빡빡하군, 젠장.’
언뜻 보기엔 전투가 호각세로 가는 듯 보였으나.
그건 어디까지나 아직 흑기사급 괴한이 전력을 다하고 있지 않기 때문일 뿐이었다.
그는 진이 등장한 이후 묘하게 힘을 아끼고 있었는데, 신중을 가하기 위함인지 다른 생각이 있기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사이에 하나라도 숫자를 줄여야 했다.
‘왜 전력을 다하지 않는 것인지는 몰라도, 실력이 떨어지는 놈이라도 지금 죽여야 해.’
후우웅……!
시커먼 영기가 진의 근처로 모여들었다. 순식간에 곳곳에 관 같은 영기의 장막들이 생겨났고, 진은 그 사이를 오가며 검은 검기를 쏘아댔다.
그 와중에 단테를 보호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약 십여 초, 단테가 온전히 제왕검을 펼치기까지 필요한 시간.
몸 상태가 멀쩡했다면 그렇게 시간을 잡아먹지 않았을 테지만, 이미 심한 출혈로 인해 어쩔 수 없었다.
단테의 고질적인 문제인 ‘체력’을 감안하면 비기를 꺼내는 것 자체가 대단한 일이었다.
스걱-!
장막 속에서 쏘아진 검은 검기가 괴한의 팔을 잘라냈다.
검을 쥐고 있는 팔이었다. 놈이 움찔하며 검을 주우려는 순간, 브라다만테가 그 목으로 쇄도해갔다.
캉!
역시나 흑기사급 괴한이 브라다만테를 쳐내는 모습.
‘짜증나는군……!’
그러나 그 순간.
단테의 비기가 완성되었다. 진과 괴한들이 예상한 것보다 훨씬 빠른 속도, 단테의 검은 이미 괴한들에게로 향하고 있었다.
마치 섬광포가 터질 때처럼, 번쩍이는 빛이 일순 대전당을 가득 채웠다.
그다음엔 소리였다. 칼날이 허공을 가르는 특유의 날카로운 소음이, 귀가 울릴 정도로 증폭되어 울렸다.
“하이란을, 우습게 보았느냐……!”
광휘 속에서 검신이 빠져나왔다.
한 자루가 아니었다. 대전당을 물들인 광휘 곳곳에서 새하얀 검신이 쏟아지고 있었다.
제왕검 비기
태양
단테가 펼친 검의 이름.
그 이름처럼, 대전당을 채운 오러의 광휘가 꼭 태양처럼 보였다. 진이 펼쳐둔 영기의 장막들조차 그 오러에 묻혀 모습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수백 자루의 검이었다.
흑기사급 괴한이 진의 검을 막아주긴 했으나, 태양의 검까지 모조리 막아줄 수는 없었다.
푹, 팔이 잘린 괴한의 등허리에 한 자루의 검이 꽂혔고.
놈은 부르르 몸을 떨며 피하려 했으나, 사방에서 날아드는 검신들은 어쩔 수가 없었다.
외마디 비명을 내뱉기도 전에 새로운 검들이 놈의 복부를, 가슴을, 목을, 머리를 찌르고 있었다.
놈은 곧, 태양 속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떨어진 살점과 뼈, 피조차 오러의 열기에 재가 되는 형상이었다.
‘강해졌군, 단테.’
하이란 또한 룬칸델과 어깨를 견주는 세계 제2의 검가고, 단테는 그 차기 가주였다. 그에 걸맞은 힘을 갖고 있는 것이다.
이제 남은 것은 흑기사급 괴한 한 명.
그에게도 계속해서 태양의 검들이 쇄도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앞서 죽은 괴한과 달리 그 수백 자루의 검을 단 한 자루도 놓치지 않고 쳐내는 괴력을 보여주었다.
로브가 찢기고 있긴 하나, 몇 초가 더 흘러도 단테의 검이 그를 직접 베지는 못하는 모습.
‘이미 지친 상태로 억지로 펼쳤으니, 비기가 본래의 위력을 다 내지는 못할 테지.’
진의 생각대로였다.
상대가 룬칸델 흑기사급 괴물이라 할지라도 단테의 비기에 작은 부상 하나도 입지 않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단테가 광휘 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비기 태양을 펼치고도 괴한을 어쩌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에 울분이 차올랐으나, 눈동자는 냉철하게 빛나고 있었다.
후우, 후……!
옆에 선 단테의 호흡이 느껴졌다. 처음 진이 찾아왔을 때보다도 몇 배는 거칠어진 상태. 진은 단테가 한계에 다다랐다는 사실을 직감했다.
그건 흑기사급 괴한도 마찬가지였다. 그 역시 단테가 더 이상 싸우는 건 기적에 가까운 일이라는 걸 명확히 인지하고 있었다.
“거기서 더 힘을 사용하면, 죽을 수도 있다. 하이란의 차기 가주.”
처음으로 흑기사급 괴한이 목소리를 냈다.
어딘가 뭉개져 변조된 목소리였다. 하지만 진짜 목소리라 할지라도 진이 알아볼 수 있는 흑기사는 몇 사람 되지 않아 의미가 없었다.
‘역시, 단테를 죽이려고 하지 않는군.’
단지 하이란의 멸망이 목적이라면, 단테를 죽이는 것이 가장 좋았다.
하나 이미 단테를 죽일 수 있는 기회는 수도 없이 많았다. 흑기사급 괴한이 압도적인 실력을 갖고도 단테와 계속 싸움을 이어가고 있던 건, 생포를 위한 전투를 한 결과였다.
“명예를 모르는 자들이 걱정할 것이 아니다, 나의 목숨은.”
그러자 흑기사급 괴한이 고개를 저었다.
“서 있기도 벅차 보이는데, 역류라도 시작되면 평생을 불구로 살아가야 할 거다. 그래도 괜찮단 말인가?”
괴한의 말이 옳았다.
평소라면 모를까, 지금은 하이란의 최고 치유사들이 단테를 곧장 치료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불구가 되거나, 오러를 잃거나, 사망하거나. 역류가 시작되었을 때 단테가 겪을 수 있는 경우의 수는 그 세 가지뿐이었다.
‘그리고 그 경우엔 인질로서의 가치가 급격히 떨어지지. 괴한 놈이 가장 피하고 싶은 경우일 거다.’
괴한의 목적은 단테를 납치하는 것이다. 킨젤로는 차후 단테를 이용해 하이란이나 다른 가문들과 협상을 벌일 것이고.
그때 단테가 멀쩡하지 않은 상태라면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단테는 결코 물러날 분위기가 아니었다.
그 어떤 상황에서도 물러서거나, 굴욕적인 선택을 하지 않는 것이 단테 하이란이니까.
단테가 목숨을 구걸하거나 신념을 훼손하더라도 보다 효율적인 선택을 하는 모습은, 도무지 떠오르지가 않았다.
‘그런 네 녀석이 멋지고, 좋기는 하지만.’
친구가 불구가 되거나 죽는 꼴을 가만히 지켜볼 수는 없었다.
“네놈이 걱정할 수 없는 문제라고 하였……!”
빠각!
진이 손날로 단테의 목젖을 후려쳤다.
“커허억, 켁!”
단테는 그 길로 한 움큼 피를 토하며 앞으로 고꾸라졌는데, 진에게 이게 무슨 짓이냐며 따지거나 분노할 겨를 따위는 없었다.
정말이지 죽을 수도 있을 정도로, 아슬아슬한 힘을 실어 목젖을 친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이 강직한 친구를 도저히 말릴 수가 없을 테니.
‘어째 베라딘도 그렇고, 단테도 그렇고. 이런 식으로 기절시키는 경우가 잦은 것 같단 말이야.’
쓰러진 단테가 움찔거리다 움직임을 멈췄다.
진은 즉시 그의 맥박을 짚으며 역류 반응을 확인했고, 다행히도 멀쩡히 의식을 잃은 모양새였다.
“후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자칫하면 방금 일격 때문에 오히려 역류가 시작될 수도 있었으니까.
진으로서도 큰 도박을 한 셈이었다.
대전당을 물들인 태양의 오러가 일시에 잦아들었다.
잠시 진과 흑기사급 괴한 사이에 정적이 감돌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야. 나는 네놈이 룬칸델의 흑기사인 것 같거든.”
휘릭, 진이 브라다만테를 돌리며 괴한에게 겨누었다.
“네놈이 흑기사라면 그냥 물러가는 걸 추천하지. 하이란을 무너뜨리려다 소속 가문의 차기 가주와 척을 지는 건, 수지가 다소 안 맞는 장사 아니겠나?”
휘이이이……! 화륵!
브라다만테가 영기로 개방되며 테스의 푸른 불꽃을 드러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