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408)
제 444화
120화. 왜 하이란인가(3)
무형의 검기들이 론과 베락트의 인근을 배회하며 스산한 파공음을 일으키고 있었다.
베락트가 씨익 웃음을 흘렸다.
“오만하구나.”
그의 허벅지에서 흘러내리는 피가 빠르게 멎어가고 있었다. 근본적으로 상처가 아무는 것은 아니었으나, 육체를 통제하는 베락트만의 방법인 듯했다.
진은 베락트의 미소에서 묘한 위화감을 느끼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위화감이 아니라 위기감에 더 가까운 느낌이었다.
‘론 경이 옆에 있건만, 이토록 불길한 위기감이라.’
무라칸이 처음 보자마자 루나조차 장담할 수 없다고 평한 백랑족 최강의 전사.
베락트는 론의 무형검에 허벅지를 베이고도 전혀 놀라는 눈치가 아니었다.
오히려 보다 더 강한 존재들을 만나왔었다는, 그리고 그들을 모두 꺾었었다는, 그런 묘한 자부심이 담긴 눈빛.
‘함선 그르닐의 힘도 아직 다 드러나지 않은 상태다.’
아직까진 투명 보호막과 뇌운만을 보여줬으나 그게 전부는 아닐 터.
하이란에 위기가 찾아왔다.
그건 진뿐만이 아니라 이곳에 있는 이들 대부분이 공통적으로 내린 결론이었다. 여전히 여유로운 듯 보이는 론도 마찬가지였다.
베락트가 자세를 가다듬으며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싸움에 휩쓸려 죽는 인간들이 결코 적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너 때문에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지, 론 하이란.”
쿵, 쿵, 크저적……!
베락트의 발걸음이 빠르게 무거워지고 있었다.
그저 ‘걷는’ 것일 뿐인데도, 지면이 갈라지고 땅속 깊은 곳에서부터 묵직한 울림이 전해졌다. 꼭 땅이 베락트에게 짓밟혀 비명을 내지르는 것 같았다.
그 걸음은 고작 몇 초 만에 지진을 일으키고 있었다.
“내가 좋게 물러난다고 했을 때 말을 들었다면 좋았을 것을.”
론의 무형 검기들이 베락트에게로 모여들고 있었으나, 그에게 쉽사리 닿지 못하는 모습이 이어졌다.
베락트에게서 뿜어지는 오러가 주변 공간을 일그러뜨리고 있기 때문이었다.
일그러진 공간 위에 주먹만 한 소용돌이들이 번진 모습, 기운에 밀려 떠오른 돌무더기들이 그 소용돌이로 빨려 들어가며 고운 가루가 되고 있었다.
무형 검기도 그 소용돌이의 인력에 영향을 받는 모양새였다.
바위나 흙덩이처럼 문자 그대로 분해되는 것은 아니었으나, 열에 닿은 종이가 쪼그라지듯 론이 본래 목표한 궤적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것이다.
궤적이 변한 검기들은 희끄무레한 빛깔로 변해 시야에 드러나기도 했다.
베락트의 걸음에서 시작된 지진은 초가 지날 때마다 거세지고 있었다.
론과 열 걸음까지 거리가 좁혀졌을 때, 베락트가 대검으로 지면을 내리쳤다.
터무니없이 큰 검기가 땅과 허공을 가르며 론에게로 쇄도했다. 론이 함선 그르닐에 쏘았던 검기보다도 거대한 형상이었다.
론은 그 검기를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앞으로 나아가 라시드를 휘둘렀는데, 새하얀 칼날이 닿자 거짓말처럼.
베락트의 검기가 사라지는 모습이었다.
최강에 가까운 이들의 싸움이었다. 두 사람이 검을 휘두를 때마다 전장의 풍경이 변화무쌍하게 바뀌고 있었다.
이윽고 거리를 좁힌 두 사람의 검이 맞닿았다.
대검과 장검이 부딪히자, 두 사람을 중심으로 일대의 지면이 통째로 내려앉았다. 진조차 몸을 빼야 할 정도로 강력한 충격파가 사방을 찢어발기기까지.
문제는 그 한 번의 격돌은 시작에 불과하다는 사실이었다.
카아아아-!
괴성을 내지르는 베락트와 론의 검이 쉴 새 없이 맞부딪히고 있었다. 그때마다 퍼지는 충격파에 검황성의 외벽이 갈려나갔다.
이대로라면 검황성이 무너지게 될 것이다.
“무라칸!”
함선 그르닐로 심상찮은 기운이 모이고 있었다.
함포였다. 코젝의 그것과 마찬가지로 황금빛 마력이 드러난 포신을 가득 물들인 모습. 함포가 떨어지기 시작하면 검황성은 견디지 못할 터였다.
‘당장은 함포를 쏘지 않을 것이다. 비슈켈 일당이 확보되기 전까지는.’
하이란의 기사들이 비슈켈을 찾고 있으나, 전황이 혼란해 쉽지 않은 상태였다.
“너도 비슈켈을 찾아!”
[알았다.]어지러운 전장 속에서, 진의 머릿속도 복잡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비슈켈 일당을 인질로 잡는 것도 중요하지만, 놈들도 분명 다른 계획이 더 있을 거다……!’
만약 자신이라면.
검황성을 습격한 킨젤로 일당이 자신이라면, 어떤 선택을 내릴 것인가. 어떻게 검황성을 압박해야 가장 효과적인가.
머잖아 진은 답을 내릴 수 있었다.
‘킨젤로는 등장하자마자 일부러 비슈켈 일당의 이름을 말했다. 그들만 찾으면 돌아가겠다는 식으로.’
말하자면 검황성에 있는 모두의 신경이 비슈켈 일당에게 쏠리게 만들었다.
만약 그사이, 단테 하이란이 킨젤로의 손아귀에 넘어간다면?
‘단테가 잡히는 순간 이 싸움은 끝이야. 검황성은 모든 걸 잃게 된다.’
단테 하이란.
진이 만약 킨젤로 소속이었다면, 그는 이 상황에 단테를 납치했을 것이다. 그보다 더 쉽게 이 싸움을 이기는 수는 없었다.
단테를 찾아야 했다.
“슈리!”
[먀!]진이 다시 슈리에 올라타며 주위를 살폈다. 슈리는 여전히 등에 베라딘을 묶어두고 있었다.
“성내로 가자, 단테를 찾아야 해!”
[먀먀!]슈리가 도약하며 전장 안쪽으로 내달리기 시작했고, 베락트는 론과 싸우는 와중에도 그 모습을 놓치지 않았다.
‘룬칸델의 12기수…… 저놈이 설마 단테 하이란을 찾으러 가는 것인가. 조, 그 멍청한 놈이 저놈을 견제해야 할 텐데.’
그러나 조는 진의 움직임을 파악하지도 않고 있었다.
“케흐흐헤헥!”
비슈켈이 없는 곳마다 함선의 뇌전을 떨구며 미친 사람처럼 웃고 있을 뿐. 함선 그르닐의 압도적인 힘에 완전히 도취된 것 같았다.
‘저 새끼한테 그런 걸 기대한 내가 바보로군.’
하지만 베락트는 조에게 명령을 내릴 수 없었다.
명령을 내리느라 목소리를 높였다간 검황성이 단테를 찾기 위해 본격적으로 움직일 수 있었고, 단테를 언급하는 순간부터 상황이 종료됐을 때 발뺌할 수단이 모조리 사라지기 때문이었다.
“퀴칸텔 님!”
성내로 완전히 진입하기 전, 진이 동료들에게 들렀다.
[진.]“단테를 찾아야 합니다. 베라딘을 좀 맡아주십시오.”
진이 동료들에게 베라딘을 넘겼다. 공교롭게도 다른 이들은 손이 바쁜 상태인지라 엔야가 베라딘을 업는 모양새가 되었다.
“어, 생각보다 가볍네…… 아니, 그게 아니지. 공자, 어디로 가세요!?”
“성내로, 단테 하이란을 찾아야 해. 킨젤로가 그 녀석을 노리고 있을 거다.”
“비슈켈 경이 아니라 단테 경을요?”
“비슈켈도 마찬가지야. 놈들은 이미 안전한 곳으로 내뺀 것 같은데, 확실치는 않아. 보이면 확보해줘.”
동료들은 진과 함께 움직일 수 없었다. 그들이 담당하고 있는 방어의 한 축이 꽤나 크므로 빠지는 순간 대량의 인명 피해를 피할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성내로 들어서자 한층 더 아수라장이 된 풍경이 보였다.
이미 성내 곳곳이 론과 베락트의 충격파를 이기지 못하고 무너진 상태였다.
다행히 내부의 기사들이 후문까지 이어지는 퇴로를 확보하긴 했으나, 시시각각 무너지는 벽과 천장에 깔린 일반인들이 단말마의 비명을 내지르고 있었다.
“단테 하이란은 어디에 있나!”
“아까 전까진 대전당 쪽에서 인명 구출을 하고 있었습니다!”
병사들의 대답에 진이 곧장 대전당으로 이동을 시작했다. 아까 하인들이 그려준 약도에 대전당도 포함되어 있었다.
대전당으로 들어서자마자.
진은 자신의 판단이 옳았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단테!”
로브를 뒤집어쓴 괴한들에게 포위된 단테의 모습이 보인 것이다.
상당히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던 듯 호흡이 거칠었다. 이미 몸 곳곳에 부상을 입어 옷에 핏물이 가득하기도 했다.
“진……!”
단테의 근처에 척 보기에도 수십은 넘어가는 시체가 쌓여 있었다. 그들은 단테가 구출하고 있던 하이란의 식솔들이었다.
심지어 하이란 고위 기사의 시체도 보였다. 방금까지 단테와 함께 괴한들에 맞서 싸운 고위 기사의 시체였다.
‘잔챙이들이 아니다.’
괴한은 세 명에 불과했다.
고작 셋이서 단테와 하이란 고위 기사들을 완벽하게 압도했다는 뜻.
킨젤로의 사람이 분명한데, 당장 떠오르는 인물은 없었다. 지금껏 진이 겪어온 킨젤로 내 실력자들은 대부분 마법사거나 수인이었다.
반면 괴한들은 무인이었다.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그들은 아까 싸웠던 회색 로브들과 달리, 순수한 인간 무인이라는 것을.
“내가 알기로 킨젤로는 인력난이 극심했는데 말이야, 이제 구색을 제대로 갖춰가고 있는 건가?”
“진, 보통 놈들이 아니오.”
“알아, 괜찮냐?”
대답 대신 쓴웃음을 짓는 단테. 진이 다가서자 괴한 셋 중 둘이 그 앞을 가로막았다.
스릉…….
브라다만테가 칼집을 빠져나왔다.
“남의 연회장에서 뭐하는 짓들인지, 미친놈들이.”
먼저 검을 내지른 쪽은 괴한들이었다.
두 명의 괴한이 동시에 진에게 검을 뻗었고, 매서웠다.
‘최소 8성 이상, 그래도 이 두 놈은 문제될 게 없어.’
신경 쓰이는 건 여전히 단테를 압박하고 있는 한 명이었다. 놈에게선 두 명과 다른 위험한 느낌이 진하게 풍기고 있었다.
어쩌면 자신과 단테가 함께 싸워도, 결전기와 마검 비기까지 꺼내야 상대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
그리고 이름이 알려진 무인들 중, 그만큼 초월적인 무위를 지닌 인물은 그리 많지 않았다. 9성 후반, 혹은 10성에 다다른 이들에게나 해당되는 이야기.
하나 그만큼 유명한 무인이 난데없이 킨젤로에 동참했을 가능성은 낮았다. 대전당에서도 싸움이 길어지면 하이란의 다른 검들이 올 테니, 10성이라 할지라도 언제까지 복면 속에 숨어있을 수는 없는 것이다.
정체가 밝혀지면 차후 하이란과 적대 관계가 되는 건 피할 수 없는 일.
빠르게 두 명을 정리하고 단테를 도와야 했다.
두 괴한의 검이 허공을 갈랐다.
그리고 다음 순간, 진은 단 일격에 한 사람의 목을 베어낼 수 있었다. 괴한들이 습관적으로 ‘일반적인 기사’를 상대할 때처럼 싸웠기 때문이었다.
챙, 스걱-!
목이 베인 괴한은 분명 브라다만테를 쳐냈으나, 괴한의 목을 벤 것은 검은 칼날이었다.
영검 2식, 가위가 그의 목을 벤 것이다.
설마 룬칸델 12기수를 상대로 첫 합에 한 사람이 죽는 것은 예상치 못했는지, 나머지 한 사람이 흠칫하며 거리를 벌렸다.
그는 무엇이 동료의 목을 베었는지 인지하지 못한 상태였다. 그저 시커먼 무언가가 속임수처럼 지나갔다고만 인지하고 있을 뿐.
“하이란을 칠 때, 네놈들도 죽음을 각오했을 테니 아쉽게 생각할 건 없을 테지.”
한 차례 더 가위의 검은 칼날이 괴한에게로 쇄도해갔다.
한 번만 더 볼 수 있었다면, 괴한도 가위를 몇 합쯤은 막아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는 이제야 자신의 등 뒤에서 칼날이 형성된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죽음을 피할 수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단테를 상대하던 괴한이 몸을 던져 검은 칼날을 가로막았다. 그 충격에 진이 뒤쪽으로 밀려나며 호흡을 골랐다.
가위를 쳐낸 놈의 검이 어쩐지 익숙하게 느껴졌고, 그 때문에 순간적으로 머리에 떠오르는 한 집단이 있었다.
‘……흑기사!?’
진이 검을 고쳐 쥐며 복면 너머 괴한의 눈빛을 마주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