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413)
제 444화
120화. 왜 하이란인가(8)
이번엔 론의 무형 검기가 함포를 막아내기도 전에, 함포보다도 더 서슬 퍼렇게 빛나는 검기가 그 앞을 가로막았다.
전장에 있는 모두가 경악할 수밖에 없는 대목이었다.
거대한 두 줄기의 빛이 맞물린 것 같은 형상이었다. 린파의 검기와 함선 그르닐의 포가 맞부딪힌 것은.
파아아아……!
포가 갈라지며 우박처럼 푸른 파편들이 떨어졌다. 그러나 이번엔 다른 무인들이 그 파편을 감당할 필요가 없었다.
푸른 검기에 뒤이은, 론의 무형 검기가 공중에서 파편을 쓸어내고 있기 때문이었다. 마치 강풍에 먼지가 휩쓸리듯 파편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갔다.
그 모습을 본 조는 이렇게 소리칠 수밖에 없었다.
“맙소사, 이게 무슨 일이야아아악!”
기우뚱……!
함선 그르닐이 일순 한쪽으로 기우는 모습을 보였다. 린파의 검기가 함포를 가르고, 투명 보호막까지 뚫으며 선체에 직접적인 타격을 준 것이다.
단 일검에 그렇게 될 수 있던 것은, 지금껏 론이 투명 보호막에 타격을 준 덕이었다.
괴력, 차원이 다른.
린파는 단 일격에 지상의 무인들에게 경외심을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과연 멸망한 최강의 전투 종족, 그 네 번째 투왕다운 무위.
세인들은 명왕족의 존재를 잘 모르는 만큼 그녀가 단지 진의 동료 중 하나라고만 생각했다. 다만 저런 엄청난 존재가 진을 위해 싸우는 것이 신기할 뿐이었다.
“으아아아, 조 아저씨. 분명 함선으로 돌아온 순간부터는 안전할 것이라고 하지 않았나요!?”
마르지엘라가 소리쳤다.
그녀는 진과 괴한이 싸우는 동안 비슈켈, 부바르와 함께 구조되어 선내에서 치료를 받는 중이었다.
“원래 그래야 하는데 말이죠, 갑자기 예상치 못한 변수가…….”
“마르지엘라, 상처가 벌어졌다, 움직이지 마.”
“어억, 허, 허리야! 비슈켈 님, 제 허리가!”
“닥쳐라, 부바르!”
조가 지팡이를 짚고 일어서 다시 전황을 살폈다.
처음엔 당황해서 제대로 보지 못했으나, 선체에 타격을 준 것은 분명 명왕족이었다.
그가 연구하고 있는 생체 골렘, ‘명인’의 근간이 되는 존재인 것이다.
“며, 명왕족……!”
조가 눈동자를 희번덕이며 미소를 지었다.
“명왕족입니다, 마르지엘라! 표본, 표본을 확보하면 분명 완벽한 명인을 제조할 수 있을…… 크악!”
쾅-!
선체 내부로 또 한 번 충격이 전해졌다.
이번엔 론의 무형 검기가 선두를 후려친 결과였다. 보호막이 완전히 깨지진 않은 덕에 무형검의 위력을 온전히 받아내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만으로도 선내는 난리가 나고 있었다.
“아악!”
“마르지엘라!”
“허, 허리. 내 허리!”
“표본, 표본을 붙잡아야……!”
각자 반사적으로 말을 내뱉고 있는 와중.
선두에 펼쳐진 창으로 무언가 시커먼 것이 날아들고 있었다. 언뜻 보기엔 검기의 향연에 지상에서부터 튀어 오른 바위 같았으나, 선내의 킨젤로들은 일순 그것의 안광이 번뜩이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린파였다.
외성벽에서부터 단 한 번의 도약으로 함선 그르닐의 선두까지 닿고 있는 것이다. 그녀가 뛴 외성벽은 그 힘을 이기지 못해 허물어지고 있었다.
킨젤로들이 헛숨을 삼켰고, 다음 순간 그들이 마주한 것은 린파의 대검이었다.
마치 신화 속 거대한 짐승이 발톱을 휘두른 것 같았다. 허공에 그려진 대검의 궤적은 함선 그르닐을 가로지르고도 남을 크기였다.
콰드드득-! 파짓-!
시퍼런 검기가 선체를 할퀴었다.
순간적으로 함선 그르닐의 고도가 낮아졌고, 선체 전반을 장식하고 있는 온갖 복잡한 장치들이 부서지며 가루처럼 잔해가 떨어졌다.
쿵!
린파가 착지한 땅이 파이며 반원 형태의 깊은 구덩이가 생겼다.
그 진동이 다 가시기도 전에, 그녀는 한 번 더 도약해 선체 아랫부분을 노리는 모습.
‘흑기사였던 바르톤조차 검기를 추진력으로 이용했었는데, 린파 형제는…… 그냥 뛰어서 날아버리는군.’
린파가 투왕 중에도 강한 편에 속한다는 것은 라프라로사에서 수련을 할 때부터 알던 사실이지만, 그녀가 제대로 힘을 쓰는 것은 진도 처음 보았다.
문득 처음에 린파의 금언 수련을 비꼬았던 기억이 스쳐 지나갔다.
다시 생각하니 괜히 아찔한 기분이 들었다.
쩌어엉……!
린파의 대검이 선체 하부를 때리자, 이번엔 시커먼 구멍이 생겼다. 찌르기, 특별할 것도 없는 평범한 찌르기에 선체에 집채만 한 균열이 번진 것이다.
그리고 린파가 다시 착지하려는 찰나.
별안간 뇌전으로 이루어진 폭풍이 함선 그르닐을 휘감았다. 방금까지 검황성으로 쏘아대던 그 지옥 같은 함포보다도 더욱 거센 뇌전이었다.
린파는 그 뇌전의 폭풍에 휩쓸려 착지하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허공에 무방비한 상태로 떠 있을 때 맞은 불의의 일격, 그 광경을 본 무인들의 머릿속에 공통적으로 지나간 생각은 그것이었다.
진의 동료가 과연 저 뇌전의 폭풍 속을 빠져나왔을 때 멀쩡할 수 있을까?
무인들의 상식 속에선 어려운 이야기였다. 무위를 보아하니 빠져나올 수는 있을 테지만, 성하진 못하리라 예상되는 것이다.
수만 갈래의 우레가 함선 그르닐에 똬리를 튼 것 같았다. 검황성 일대가 번쩍이는 푸른빛으로 물들었고, 그 빛에 지상에 서 있는 이들의 그림자가 길어지고 있었다.
그사이에도 론과 베락트의 검이 격돌하고 있었다. 론은 한결 여유를 되찾았으나, 그간 검황성 전체를 지켜온 것 때문에 다소 지친 기색이었다.
물론 지쳤다고 해서 검황의 위엄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많은 피를 흘렸고, 지쳤음에도 론의 무형검은 갈수록 예리해지고 있는 것이다.
진은 여전히 외성벽에서 전황을 내려다보며 몸을 다스리고 있었는데, 당연하게도 그는 뇌전의 폭풍 속에 갇힌 린파를 전혀 걱정하지 않았다.
‘함포 외에 저런 공격 수단이 있는 줄은 몰랐군. 미친놈들, 그건 린파 형제를 자극하는 일밖에 되지 않을 거다.’
쿠르르……!
뇌전의 폭풍이 걷혀가고 있었다. 그리고 진을 제외한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린파는 털끝 하나 다치지 않은 멀쩡한 모습으로 지상에 내려앉고 있었다.
그녀가 땅에 닿자마자 내뱉은 첫마디는 이것이었다.
“우리의… 힘을 흉내… 가짜. 불쾌하군…….”
대검에 모인 뇌기가 더욱 날카로운 빛을 뿜고 있었다.
린파는 다시 함선을 향해 뛰어오르지 않고 론과 베락트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함선은 이미 제 기능을 다 하기 어려울 만큼 파괴했으니, 지상의 적을 죽이는 게 우선이라는 판단이 든 것이다.
백랑족.
사실 처음 소환되었을 때부터 린파는 백랑족 특유의 냄새를 맡고 묘한 기분에 휩싸인 상태였다.
잊고 있던 옛 장난감을 마주한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시선을 느낀 베락트가 론과 거리를 벌렸다. 이제 베락트도 거칠고 무거운 호흡을 내뱉고 있었다.
“네놈도 들어와라, 두 놈을 한꺼번에 상대해주마.”
베락트가 웅혼한 기운을 담은 목소리로 말했다.
백랑족 대전사, 그 이름은 결코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명왕족이라는, 수천 년 동안 피에 각인되어온 절대적인 공포조차 단 한 번의 의지로 짓누르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현세대에 존재하는 수인들 중 그 공포를 의지로 억누를 수 있는 이들은 한 손으로 헤아릴 수 있었다.
베락트의 입장에서, 린파까지 상대하겠다고 말한 것은 허세가 아니었다.
그 역시 극지에 닿은 무인인 만큼 자신의 무위에 절대적인 자신감을 갖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린파의 입장에선 하룻강아지가 짖어대는 소리와 다를 바가 없었다.
“너흰… 예나 지금이나… 겁이 나면, 우선 짖는 버릇이 있네. 백랑족치고 뛰어난… 놈이긴 한 것 같다만.”
린파와 론이 동시에 베락트에게로 쇄도했다.
피할 수가 없었다. 베락트는 대검을 세워 동시에 두 자루의 검을 받아냈는데, 그가 딛고 있는 대지가 통째로 가라앉는 모습이 이어졌다.
“누군지는 모르나, 고맙소. 덕분에 나의 기사들이 한숨 돌릴 수 있겠군.”
이 싸움이 명예를 건 일대일 결투였다면, 론은 린파의 참전을 결코 허용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론에게 이번 전투는 그저 검황성을 습격한 테러단과 짐승을 척결하는 일이었다. 짐승을 더 효율적으로 잡는 일에 명예를 생각할 필요는 없었다.
“인사는 나의… 형제에게 하시오… 어차피 나는 오늘 일을 기억하지 못하니.”
진이 어지간해서는 형제들을 부르고 싶지 않은 첫 번째 이유였다.
검은빛 부르기로 인세로 나서는 명왕족들은 엄밀히 말하면 소환이라기보다는 영기와 영혼으로 이루어진 수호자에 가깝다.
그 영혼은 다시 라프라로사로 돌아갈 때 인세에서 겪은 모든 일을 잊게 된다.
이미 멸망해 잊힌 형제들에게 못할 짓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진 룬칸델이 그대의 형제인가?”
론은 베락트를 상대하느라 검은 문에서 린파가 빠져나오는 광경을 직접 지켜보지 못했다.
그 혼자 검황성 전체를 방어하고 있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으니 말이다.
“그렇소.”
“전투가 끝난 후 직접 감사를 전하도록 하지.”
“날 앞에 두고, 감히……!”
베락트가 포효를 내지르며 대검을 올려쳤으나, 두 사람의 힘을 한꺼번에 감당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피로 물든 털가죽과 살점이 찢기고 있었다.
공중 지원이라도 있었다면 이렇게까지 밀리지 않았을 테지만, 함선 그르닐은 아까처럼 빠르게 뇌전을 모으지 못하는 상태였다.
완파.
그게 진의 목표였다. 그르닐을 박살내고, 가능하다면 베락트와 킨젤로 일당까지 숨통을 끊어놓고 싶었다.
다만 염두에 둔 문제가 한 가지 있었다.
‘전황이 이렇게까지 밀리면, 그 단장 놈이 등장할 가능성이 높다…… 암흑마법회 때 그랬던 것처럼, 놈들을 데리고 탈출할 수 있어.’
하지만 전장엔 론과 린파만이 있는 게 아니었다.
하늘은 여전히 무라칸과 퀴칸텔을 비롯한 용들이 있었고, 더 이상 파편이 떨어지지 않으니 지상의 무인들도 다시 전투에 가세할 수 있는 것이다.
오더라도, 그때처럼 쉽사리 탈출할 수는 없을 거다.
진은 이를 악물며 그렇게 결론을 내렸고, 그 순간.
프스스스……!
돌연 함선 그르닐의 선두 앞에 ‘철조각’이 모이는 광경이 이어졌다.
철문을 인지한 무라칸이 진의 옆에 내려앉으며 기운을 드러냈다.
[진. 그놈이다.]“그래, 올 줄 알았어. 양반은 못 될 놈이로군.”
불쾌한 듯 미간을 좁히는 무라칸.
다행히 킨젤로 단장의 철문이 완성되기 전에, 진은 몸을 회복하고 한 가지 마법을 준비할 수 있었다.
“우린 저걸 상대하자고, 무라칸.”
진이 마력을 끌어올리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