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412)
제 444화
120화. 왜 하이란인가(7)
“조… 부…….”
악을 쓰듯 내뱉었으나, 이제 막 깨어나 기력이 없기 때문인지 단테의 목소리는 크게 울리지 않았다. 바로 옆에 있는 진이나 겨우 들을 수 있는 작은 목소리였다.
그러나 그 조그마한 부름에 론이 고개를 돌렸다. 그의 시선은 정확히 진과 단테가 서 있는 외벽을 향하고 있었다.
“조, 부님!”
씨익.
론이 손자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온몸에 피를 뒤집어쓰고 있으나, 다행히 그게 모두 론의 피는 아닌 듯했다.
‘론 경이 저 정도 부상을 입다니…… 베락트 또한 세계에서 분명 손꼽히는 강자일 테니, 어느 정도 대단한 싸움이 되리라고는 예상했지만.’
막상 부상 당한 론을 직접 보니 도무지 현실처럼 느껴지지가 않았다. 시론을 제외하면, 세계 최강을 논할 때 수위권을 다투는 인물인 것이다.
‘게다가 겉보기엔 베락트의 부상이 조금 더 옅어 보인다.’
베락트가 론보다 강한 것인가?
어쩐지 선뜻 납득이 가지 않았다. 론에 대해서는 전생에서부터 숱한 무용담과 찬양을 들어온 반면, 베락트는 이번 생에 처음 알게 된 인물이기 때문이었다.
얼마 전 베락트가 로사의 적수였다는 걸 파악하긴 했으나 그게 전부였다.
분명 인세에서 베락트는 그리 유명한 인물이 아니었다. 론과 베락트조차 초면인 듯했고.
“진정해, 단테.”
단테가 몸부림을 치고 있었다. 조부에게로 가고자 하는 몸부림이었으나, 기진맥진해서 간신히 허우적대는 게 고작이었다.
“하, 지만. 조부님이.”
“여긴 검황성이고, 저분은 론 하이란, 세계 최고의 기사시다. 그런데 네 조부님께서 당하실 리가 있냐?”
검황성 한복판에서 론 하이란이 누군가에게 당한다…….
세상 그 어떤 사람도 그런 광경은 쉽사리 상상할 수 없을 터였다. 룬칸델이나 지플이 총공격이라도 하지 않는 이상, 그건 불가능한 일이라는 게 보편적인 인식이었다.
심지어 비먼트 황제가 대군을 이끌고 직접 나서더라도, 과연 론이 지키는 검황성을 어찌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도 이견이 많을 지경이었다.
세상은 넓다.
베락트가 론보다 강하다 해도 결코 말이 되지 않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다만 진은 다른 무언가가 개입되었으리라는 직감이 있었다.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차분히 전장을 다시 살펴보았다.
무너진 외성벽과 건물들의 형태가 낯설었다. 검기에 파괴된 것치고는 절단면이 지나치게 울퉁불퉁했다. 어떤 거인이 마구잡이로 쥐어뜯은 것 같이 흉측한 형태.
물론 두 사람의 검기가 부딪히며 깨진 파편이 마구잡이로 튀었을 수도 있고, 충격파에 부서져 그런 것일 수도 있지만, 그것만으론 설명이 부족했다. 잔해 대부분이 새카맣게 탄 모습 때문이었다.
진이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르닐이라…….’
킨젤로의 공중 함선 그르닐.
그르닐의 선두에 뻗어있는 함포에서 시커먼 연기가 치솟고 있었다.
‘저 함포를 막느라 론 경이 밀리고 있는 것인가?’
거기까지 생각한 찰나, 함포에 마력이 모이는 모습이 이어졌다.
파지지직-!
진의 기준에서도 어마어마한 뇌기가 포신에 쌓이고 있었다. 전조도 없이 저런 뇌기를 모을 수 있다는 게 충격적일 지경.
‘이런 미친!’
함포가 쏘아지기 직전, 진이 황급히 보호막을 둘렀다.
콰아아아……!
함포는 그야말로 터무니없이 거대한 뇌전을 방출해냈다.
번쩍이는 빛에 일순 사위가 대낮보다도 밝아져 눈이 부셨고, 함포를 중심으로 퍼진 충격파는 구름을 갈기갈기 찢는 것도 모자라 지상까지 타격을 주고 있었다.
그리고 눈에 보이지 않음에도 그 엄청난 크기를 짐작할 수 있는, 무형의 검기가 함포를 가로막았다.
론 하이란의 검기였다. 그 검기는 함포가 지상에 닿기 전에 분해하는 역할이었다.
검기에 부서진 함포가 불길한 푸른빛으로 가득한 유성처럼 검황성을 난타하고 있었다. 하이란의 기사들과 무인들이 필사적으로 함포의 파편들을 막아내는 모습.
함포의 후폭풍이 진이 펼친 보호막을 사납게 두들겨댔다.
무력감에 이를 악문 단테의 핏발 선 눈동자가 떨리고 있었다. 한 움큼 피를 토하기도 했는데, 격분한 탓에 역류 반응이 빨라진 것이었다.
“크아아……!”
“단테, 제발 내 말 들어. 폭발이 끝나면 즉시 후송할 테니, 흥분을 가라앉혀. 역류가 심해진다고. 부탁이다. 론 경을 생각해서라도, 그분도 네가 더 다치는 걸 원치 않으실 거다.”
과거 콜론 유적지에서 코젝을 상대하던 순간이 떠올랐다.
단언할 수 있었다.
함선 그르닐의 힘은 그때의 코젝과는 비교할 수 없이 강하다고. 당시엔 탈라리스 혼자 함포 대부분을 막아냈고, 진은 원주민들에게 떨어지는 파편을 쳐내다 죽음을 맞이할 뻔했다.
지금 검황성엔 적게 잡아도 수천 명의 기사와 무인들이 있었다. 콜론 때와 달리 그들 모두가 파편을 쳐내고 있음에도 검황성이 부서지는 걸 저지하기엔 역부족인 듯했다.
‘검황성에 쳐들어와 놓고 그토록 당당했던 이유가 이것이었나.’
하지만 검황은 검황이다.
본래라면 정말이지 단 한 번, 많아야 두 번의 포격이면 검황성이 통째로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을 위력이지만. 론이 있기에 버티고 있는 것이었다.
그의 무형 검기도 부서진 함포와 마찬가지로 잘게 나뉘어 지상으로 떨어지는 함포의 파편들을 가로막고 있었다.
말하자면 론은 베락트만 상대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아군 진영 전체를 보호하며 싸우고 있는 것이다.
단지 ‘강하다’는 형용사만으론 서술할 수 없는 위대한 무위.
그렇기에 분명 전황이 좋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진은 검황성이 오늘 끝장나는 미래를 그리지 않았다.
‘킨젤로, 저 개자식들도 하이란을 멸망시킬 계획까진 아닐 거다. 그랬다면 처음부터 비슈켈 일당이 검황성에 고립되는 그림을 만들지 않았겠지.’
또한 함포를 쏘고 있다는 건 놈들이 비슈켈 일당을 이미 확보했다는 것으로, 곧 퇴각할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였다.
보호막을 두들기는 충격파가 가시고 있었다.
“슈리, 단테를 치유사들에게 보내. 치료원도 무너진 것 같으니, 전장 후방에 가장 뛰어나 보이는 치유사들에게로.”
[먀냐!]진이 슈리의 등에 단테를 묶으며 말했다. 단테는 슈리를 붙잡을 힘도 남지 않은 상태였다.
슈리가 걸음을 옮기기 직전, 진이 단테의 어깨를 꽉 붙잡았다.
“내 싸움은 네 싸움이고, 네 싸움은 내 싸움이다. 오늘은 네 몫까지 내가 싸운다. 저 쓰레기 같은 놈들 절대 그냥 돌려보내지 않을 테니, 몸 추스르고 있어.”
단테는 붉은 눈동자를 깜빡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슈리가 외벽을 뛰어내려 이동하기 시작하자 진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후폭풍이 끝나기 무섭게, 론과 베락트의 검이 맞부딪히고 있었다.
“내 제안에 따라 자리를 옮겼다면 좋았을 것을, 시체가 산을 이루겠구나, 론 하이란!”
론은 대답하지 않고 라시드를 휘두를 뿐이었다.
그러나 힘에 벅차 대답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명예라곤 한 줌도 모르는 짐승 따위완 할 말이 없다는 분위기였다.
두 사람의 싸움은 비등비등한 모양새로 흘러가고 있었다. 아마 함선 그르닐이 없었다면, 론이 어느 정도는 우위를 점했을 것 같았다.
-당신은 큰 이득을 보게 될 거예요, 진.
문득 사태가 시작되었을 때, 마르지엘라가 보여준 입모양이 떠올랐다.
반파된 검황성을 보고 있으니 속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치솟았다.
검황성은 친구의 집이었다. 또한 언젠가 자신과 함께 지플에 맞서 싸울 전우가 될 사람들이기도 했다.
‘이득이라고? 네놈들이 다시는 이따위 짓을 못 할 만큼 큰 손해를 보게 해주마…….’
스으으으…….
브라다만테로 영기가 모여들고 있었다. 괴한을 상대할 때 아껴둔 최후의 수단을 펼치기 위한 영기였다.
영검 특수식
검은빛 부르기
영기에 휩싸인 검이 허공을 갈랐다.
그러자 검이 지나간 궤적을 따라 공간이 시커멓게 물드는 모습이 이어졌다. 그 영기가 형성한 것은, 옛 명왕족의 세계로 이어지는 하나의 검은 문.
검은빛 부르기를 통해 어떤 형제가 나올지는 예측할 수 없다.
하나 일반 전사가 소환된다 할지라도 전황을 뒤집는 것에 큰 도움이 될 터, 진은 정신을 집중하며 특수식을 끝마쳤다.
그리고 영기가 흩어지며 검은 문 속에서 형제가 모습을 드러냈을 때.
진은 회심의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문을 빠져나온 것은, 사투왕 린파였다.
“오랜… 만, 진 형제. 당첨됐어… 내가.”
금언 수련을 끝마친 후 얼마 되지 않았기에 다소 말투가 어눌했으나, 그 몇 마디 안 되는 말 속엔.
일순 전장 모두가 충격을 받아 외성벽을 우러러볼 만큼 깊고 강대한 기운이 담겨 있었다.
‘저자는 또 누구란 말인가!’
‘설마, 새로운 적인가……!’
‘아니, 진 룬칸델과 함께 있다. 아군인 듯 보이는군.’
‘그렇다 할지라도, 갑자기 어디서 나타난 거지?’
무인들이 반사적으로 눈짓과 의견을 주고받는 사이, 린파가 등에 멘 대검을 뽑아들었다.
후우웅-!
그저 검을 뽑은 것임에도 묵직한 검풍이 사방으로 나부끼고 있었다.
“불러내서 미안합니다, 린파 형제.”
“아니… 난 좋아. 저들이… 적인가?”
린파가 대검으로 함선 그르닐과 베락트를 가리켰다.
“무엇을 원하나… 진 형제.”
“적들의 말살.”
단호한 대답에 린파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
함선 그르닐이 다시 함포를 장전하고 있었다. 론은 함포를 막기 위해 힘을 끌어올렸고, 베락트는 린파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저게…… 단장이 말했던, 명왕족인가?’
태어나서 처음 느끼는 기묘한 감정이 베락트의 머릿속을 어지럽히고 있었다.
칼을 대보지도 않았다. 당연히 명왕족과 싸워본 적도 없었고, 그 힘이 대단했다고 전해 듣기만 했을 뿐. 직접적으로 체험한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럼에도 구토감이 치솟을 정도로, 온몸의 털이 쭈뼛 일어설 정도로, 자신이 아니라 다른 백랑족 전사들이었다면 분명 다리에 힘이 풀렸으리라 확신이 들 정도로.
끔찍한 위기감이 온몸을 짓누르고 있는 것이다. 론 하이란을 상대하면서도 일말의 두려움조차 느끼지 않았던 베락트였다.
‘하, 지랄……! 난 베락트 시드리커다, 백랑족 최강의 전사란 말이다. 저깟 것이 강해 봐야 얼마나 강하겠나.’
캬아아아!
베락트가 포효를 내지르며 마음을 다잡았다. 이제 그의 마음속을 가득 채운 건, 두려움이 아니라 린파를 향한 분노였다.
“나는… 위대한… 명왕족 네 번째 투왕… 린파.”
함포가 조준을 끝마치고 있었고, 전장의 모든 이들이 지옥 같은 후폭풍에 대비하고 있었다.
그러나 린파는 그 함포에 담긴 어마어마한 뇌기를 눈으로 목도하고도 차분한 목소리로 할 말을 이어갔다.
“형제의 부름을 받아… 이곳에 왔으니. 내 할 일은 그의… 검이 되는 것. 적들은…….”
유언을 남기도록.
번쩍-!
린파가 말을 끝맺자마자, 함포가 뇌전을 뿜어 지상을 시퍼렇게 물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