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419)
제 444화
121화. 배신(3)
“포상?”
“포상이라고?”
단테와 베라딘이 동시에 되물었다.
“예, 소가주님.”
“하이란 또한 폐하의 영토이니 그 수호에 대한 공을 치하하시려는 건가.”
“그런 모양입니다.”
단테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앞에서는 진을 치하하고, 뒤에서는 하이란을 압박하는 황제의 가증스러운 처사 때문이었다.
성품과 말씨가 본래 바른 데다 신하라는 위치 때문에 그 이상 불쾌감을 드러내지 않을 뿐, 단테로서는 속이 어지간히 상할 수밖에 없었다.
소식을 전한 기사 또한 참담한 심정을 억누르는 모양새.
“나쁜 새끼네, 아주. 단테가 얼마나 착한데, 그걸 몰라주고. 자식이.”
대뜸 베라딘이 그렇게 말하자 단테와 기사의 눈동자가 커졌다.
그들은 여태껏 단 한 번도 누군가 황제를 상말로 표현하는 걸 들어보지 못했다. 심지어 평소 황제에게 경칭을 붙이지 않기로 유명한 론조차 새끼 운운은 한 적이 없는 것이다.
“궁인들이 감히 천안天顔이라 부르는 그 상판을 직접 한 번 볼 때가 됐다고 생각은 했었어. 잘됐네.”
이어 진도 한 마디 덧붙이자 단테와 기사는 저도 모르게 주위를 살폈다. 듣는 귀가 없다는 건 분명하지만 반사적인 행동이었다.
이번 일을 제하더라도 진은 황제에게 좋은 감정을 갖고 있지 않았다. 특임대와 엮인 적도 몇 번 있었고, 얼마 전 완타라모 숲에선 친위대와 전투를 펼치기도 했으니.
게다가 티칸 자유도시를 우습게 여기는 것이나, 비밀리에 ‘마인’을 제작하고 있다는 사실까지, 좋은 시선을 둘 여지가 전혀 없었다.
“흠, 흠. 벗들이여. 그래도 제국의 지존이신 분이니…….”
“나나 진은 비먼트 사람도 아니고 말이야, 괜찮아. 괜찮아.”
결국 단테가 어색하게 미소를 지었다. 내심 두 사람의 말에 속이 시원하기는 했다.
“그대들이 있어서 다행이오.”
“크, 나도 그렇다. 단테!”
단테와 베라딘이 동시에 진을 쳐다보았다. 너도 그렇다고 말해, 그런 표정을 한 채.
진은 그들의 작은 열망을 가볍게 무시했지만 말이다.
“무슨 선물을 줄지 궁금하긴 하군. 지금 바로 가면 되는 건가?”
“그렇습니다, 진 경.”
기지개를 켜며 자리에서 일어서는 진.
“마침 오늘 다른 세력들도 검황성을 떠난다고 하니, 나도 황궁에 들렀다가 본가로 돌아가야겠어.”
“이렇게 갑자기?”
베라딘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말했다.
“갑자기가 아니지. 넌 방금 왔지만 난 보름가량이나 여기 있었다고. 우리 얘기도 대충 정리됐으니, 내 자리 찾아가는 게 맞지 않겠냐. 룬칸델 기수는 꽤 바쁜 몸이거든.”
단테도 베라딘 못잖게 아쉬웠으나 붙잡을 순 없었다.
애초에 진은 돌아가려면 언제든 돌아갈 수 있었다.
테러 현장에 있던 게 진이 아닌 다른 기수였다면, 하이란은 애초에 룬칸델더러 진상 조사가 끝날 때까지 남아달라는 부탁도 하지 않았을 터.
진은 순수하게 친구로서 단테를 돕기 위해 시간을 할애한 것이다. 이제 돌아가서 자신의 할 일을 할 때였다.
“그래도 나 방금 왔는데.”
“그래, 이제 돌아가서 본격적으로 지플이 하이란에 압박 넣도록 잘해봐. 너도 바쁜 몸이다.”
“섭섭하군…….”
기사를 따라 지하실을 나서기 직전, 진이 한 차례 벗들을 돌아보았다.
베라딘은 서운한 마음에 급격히 풀이 죽었고, 단테는 그런 베라딘의 등을 토닥이고 있었다.
“어떤 상황에서든, 우리 셋만 서로를 배신하지 않으면 되는 거다.”
고개를 끄덕이는 벗들을 보니 피식 웃음이 나왔다.
룬칸델이 아닌 평범한 가문에서 막내 대신 첫째로 태어났다면, 저런 동생들이 있지 않았을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몸조심해라, 진. 조만간 또 보자고. 그때는 술도 한 잔!”
“건투를 비오, 그대.”
기사를 따라 지하실을 빠져나오자 쨍쨍한 햇빛이 눈을 찔렀다.
구름 한 점 없이 시원하게 뻗은 하늘 아래, 반파되고 검게 그을린 검황성이 괴리감을 자아내고 있었다.
“론 경께 인사를 드려야겠는데, 어디에 계시는가?”
“모시겠습니다.”
론은 거의 다 허물어진 대전에 홀로 앉아있었다.
죄다 부서진 모습이지만, 묘하게도 대전에 있던 검황성의 성좌는 부서지지 않고 멀쩡한 모습.
진에겐 그것이 꼭 하이란의 상황을 상징하는 듯 보였다. 안팎으로 공격당하더라도, 론 하이란이라는 위대한 무인은 결국 저 성좌를 지켜낼 것만 같았다.
어쩌면, 론의 상태가 좋지 않다는 걸 알기 때문에 더욱 그렇게 생각하고 싶은 것인지도 몰랐다.
“황제가 널 불렀다지?”
인기척을 느낀 론이 입을 열자 기사가 자리를 비켰다.
“그렇습니다.”
“황족이란 작자들은 바쁜 사람을 오라 가라 하는 것에 큰 재주가 있는 법이지. 가서 뻔한 소리 들어주느라 욕보겠군.”
진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 론은 더 이상 진을 ‘손자를 홀린 악마 녀석’ 정도로만 인지하지 않았다.
테러 당시부터 진이 능력과 더불어 단테에 대한 신의와 애정을 함께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몸 상태는 어떠십니까?”
“좋지 않다.”
킨젤로를 상대하며 심각한 내상을 입은 건 사실이지만, 아직까지 회복이 시작되지 않을 정도의 치명상은 결코 아니었다.
그러나 론의 내상은 나아질 기미가 없었다.
오히려 시간이 흐를수록 조금씩 나빠지고 있는 상태였다. 10성 무인의 강체가 무색할 정도로.
“큰일입니다.”
단테는 론의 몸 상태를 알지 못했다. 이 사실을 알고 있는 것은 론의 최측근 다섯 정도와 진이 전부였다.
“큰일이지, 이 론 하이란이 손주를 보호하기 위해 네놈의 손을 빌려야 할 정도니.”
대수롭지 않다는 말투였다. 허세가 아니라, 이런 부상을 달고 있더라도 큰 문제는 없으리라는 자신감에서 비롯된.
하지만 론의 부상이 알려진 것보다 훨씬 심각하다는 사실이 드러나면, 지금의 하이란이 감당키 어려운 일들이 벌어지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 붉은 검기가 문제였던 것인지, 아니면 다른 요인이 있던 건지 모르겠군. 이렇게까지 다스릴 수 없는 내상을 입는 날이 온다면, 당연히 네 아비와 검을 섞는 날이리라 생각했건만…… 얼마 전까지 3류 테러 단체로 알려진 집단의 수장이라니, 기가 막히는 일이로고.”
“정체가 드러나지 않았을 뿐, 어마어마한 마족일 겁니다.”
“그렇겠지. 모든 힘을 드러낼 수 없는 상태가 분명해 보였는데도 그 정도였으니. 완전해졌을 땐, 분명 네 아비와 같은 반열에 있는 인물일 것이다.”
진은 론의 그런 평가를 아버지에 대한 모욕이라 생각지 않았다. 자신도 그렇게 느끼고 있었으니까.
후우.
론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내상 때문이 아니었다. 앞으로 그런 존재를 상대로 싸워야 할 손주를 생각하니 가슴이 갑갑해지는 것이다.
‘거대 세력의 2세대들이 서로 치열하게 경쟁하고, 끝내 단테가 그 정점에 서기를 기대해왔건만…… 그런 장밋빛 상상이나 할 때가 아니었군.’
그런 마족을 상대하려면 2세대들끼리 경쟁을 할 게 아니라 힘을 합쳐서 싸워도 모자랄 판이었다.
마족뿐만이 아니라 지플도 마찬가지고 말이다.
“베라딘 지플은 어떤 것 같더냐.”
-조부님. 마법이 인간의 정신과 기억을 뜻대로 조작할 수 있다면, 믿으실 수 있겠습니까?
연회장에서 손자가 했던 말.
론은 이후 정신 조작에 대해서도 계속 신경을 쓰고 있었다.
“겉보기엔 멀쩡해 보입니다. 정신이 조작된 상태인지 아닌지 당장은 확인할 길이 없습니다.”
“정체를 숨긴 마족, 정신 조작. 그런 것들만 생각해도 더럽고 어려운 시대로다. 내가 젊을 적엔 검 한 자루만으로 세상을 평정할 수 있었거늘.”
“단순하고 낭만이 있었군요.”
“그 낭만을 실현한 건 내가 아니라 네 아비지만 말이다.”
론이 어깨를 으쓱이며 뻥 뚫린 천장으로 하늘을 바라보았다. 깊게 파인 눈가 주름에서 씁쓸함이 묻어나는 것 같았다.
“피아 구분이 끝나고, 이쪽이 정리된 후엔 네 녀석이 룬칸델의 왕권을 더 수월하게 잡을 수 있도록 도와주마.”
론은 안 될 것을 되게 만들어준다고 말하지 않았다. 어차피 될 것을 더 편하게 얻도록 도와준다고 표현할 뿐.
이미 론은 진이 룬칸델 검귀들의 왕이 되리라는 것을 의심치 않고 있었다. 룬칸델의 다른 기수들이 이 강철 능구렁이 같은 녀석을 감당하는 모습은 도무지 그려지지가 않는 것이다.
“말씀만으로도 감사합니다, 론 경.”
“이만 가보아라.”
“예.”
“아, 그리고.”
진이 돌아보자 론이 씨익, 어쩐지 사악한 기운이 묻어나는 미소를 지었다.
“황제에게 전해라.”
“무어라 전하면 되겠습니까?”
“여러모로, 선택을 잘 하는 게 좋을 것이라고.”
“알겠습니다.”
* * *
비먼트의 수도에선 그 어디에 있더라도 고개를 돌려 황궁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누렇게 빛나는, 구름에 닿을 듯 치솟아있는 거대한 첨탑과 그 아래로 펼쳐진 궁궐들, 그것들을 둥글게 감싸고 있는 네 갈래의 강줄기와 그 사이로 뻗어있는 새하얗고 드넓은 포장도로.
제국인들은 그 비먼트 최대 건축물의 장엄한 모습을 자랑스러워하며 황궁이 아니라 천궁天宮이라고 부르는 걸 즐겼다.
세상에 존재하는 그 어떤 궁을 옆에 가져다 놔도 비먼트 황제궁에 비하면 초라한 지상의 돌무더기에 지나지 않을 테니까.
‘황궁이라, 회귀 전에 멀리서 보던 것과는 느낌이 완전히 다르군. 호화롭고 웅장하기가 비할 데 없다고 듣기는 했지만…….’
이 정도로 장엄한 규모를 자랑할 줄은 몰랐다.
게다가 대체 얼마나 많은 종들이 관리하고 있는 것인지, 너비가 족히 수백 걸음은 될 것 같은 흰 도로들엔 작은 이물질 하나 보이지 않았다.
다그닥, 다그닥…….
진을 태운 황실 마차가 부드럽게 멈추자 이 열로 늘어선 근위대들이 검례를 올렸다. 진은 자연스레 검례를 받았는데, 황제는 첨탑 고층에서 환관들과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자네들이 보기엔 어떤가, 진 룬칸델이 짐의 제안을 받아들일 것 같은가?”
환관들은 황제의 물음에 대답하지 않고 고개만 조아렸다.
“하긴, 그걸 미리 알 수 있다면 굳이 이렇게 만나볼 필요도 없을 터. 내가 자네들에게 괜한 질문을 했군.”
이번에도 환관들은 고개만 조아렸다.
사실 황제가 첨탑에 데려온 환관들은 모두 오래전 목소리 또한 잃은 자들로, 애초에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대신 자네들을 이용해 진 룬칸델이라는 인간의 기본적인 성향은 내 눈으로 미리 확인할 수 있을 테지.”
철컥-!
별안간 황제가 창을 활짝 열어젖히며 가장 가까이에서 고개를 조아리고 있던 환관의 목덜미를 붙잡았다.
그리곤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환관을 가볍게 들어 올려, 창밖으로 내던지는 모습을 보였다.
환관은 비명을 지르지 못했으나, 진은 그가 지상으로 추락하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