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420)
제 444화
122화. 황제(1)
추락하는 환관의 입장에선, 진이 황궁을 적진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사실이 다행이었다.
감각을 끌어올리고 있던 것이다. 덕분에 진은 첨탑 저 높은 곳에서부터 무언가 평범하지 않은 움직임이 있었다는 걸 인지할 수 있었다.
‘사람?’
첨탑이 아무리 높아도 추락은 순식간이다.
대체 추락하는 인간은 누구인지, 전후 사정은 무엇인지 고민할 겨를 따윈 없었다.
반사적으로 몸이 움직였다.
콰직-!
부풀어 오른 허벅지에서 힘이 분출되자 새하얀 포장도로가 움푹 파이며 균열을 일으켰고, 진의 몸은 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허공으로 튕겨 나갔다.
예비 동작이 없었음에도 근처의 근위대들이 가로막기엔 너무 빠른 속도였다. 근위대들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날아오른 진의 뒷모습만 바라보았다.
그리고 황제는 첨탑에 가까워지는 진을 보며 씨익, 이를 드러냈다.
‘아슬아슬하지만, 받을 수 있다.’
그렇게 확신한 찰나, 진의 귓가에 익숙하고 날카로운 쇳소리들이 들려왔다.
검이 칼집을 빠져나오는 소리, 얼핏 듣기에도 수십 자루였다.
이곳은 황제궁.
달리 말하면 세상에서 가장 삼엄한 경계를 유지하는 공간. 보이는 곳에도, 보이지 않는 곳에도. 궁내라면 그 어디라도 황제를 지키는 검들이 있었다.
진이 도착한 시점부터 궁 곳곳에 숨어있던 금위禁衞들도 신경을 곤두세운 상태였다.
추락하는 사람을 구하려는 것이라 할지라도, 이곳이 황제궁인 이상 금위들로서는 진을 제압해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궁에서 벌어지는 모든 움직임은 보편적이고 상식적이어야만 했다. ‘갑작스러운 도약’ 같은 건 황제의 안위를 위협하는 행위에 해당했다.
샤아악-!
도약한 금위들의 검이 진에게로 쇄도해왔다. 진은 검을 뽑지 않고 허공에서 몸만 회전시켜 공격을 피했다.
하지만 진이 아무리 뛰어나다 한들, 금위들의 공격을 맨몸으로 모두 흘려낼 수는 없었다. 지상이라면 모를까, 다급한 마음으로 허공에 붕 뜬 상태라면 더더욱.
몇 개의 칼날이 진의 몸을 스치고 지나갔다. 한 번에 상처가 여럿 난 탓에 핏방울이 요란하게 튀었으나 죄다 경미한 절상에 불과했다.
그만큼의 부상을 허용했으니 틈 또한 생겼다. 진은 금위들의 칼날 사이를 빠져나와 떨어지기 직전의 환관을 받아낼 수 있었다.
“괜찮소?”
동시에 뒤따라 낙하한 금위들의 검이 진에게 사방으로 겨눠졌다.
“멈추시오!”
“이곳은 황궁이오, 진 룬칸델.”
진은 대답하지 않고 자신이 구한 사람의 상태를 살펴보았다.
‘환관이었군.’
복장을 보고 알 수 있었다. 환관의 목에 도드라진 흉터도 눈에 들어왔고, 목소리를 내지 못하도록 일부러 낸 상처라는 걸 바로 알아보았다.
이 시간에 이런 환관이 황궁 첨탑에서 떨어질 일은 두 가지뿐이었다.
자살, 혹은 황명.
그 외의 가능성은 다 지나치게 희박했다.
사람이 죽는다는 마음에 반사적으로 움직이긴 했으나.
진은 뛰어오른 순간부터 후자일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했다. 황제가 투신 명령을 내린 것이라고. 누군가의 자살과 자신의 방문이 겹치는 건 너무 공교로운 일이니 말이다.
환관을 일으켜주고 첨탑 위를 올려다보았다. 황제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고, 천천히 닫히는 첨탑 창문의 움직임이 꼭 누군가의 입꼬리가 올라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황제가 환관을 투신시킨 이유야 뻔했다. 자신이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살펴보려는 의도.
‘건방지군.’
진이 어깨를 으쓱이며 금위들을 살폈다.
“치워라, 황제의 인사를 받아준 것일 뿐이니.”
그 말에 금위들의 눈동자에 살의가 깃들었으나, 저 멀리서 헐레벌떡 한 무리의 시종들이 달려오며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금위들은 멈추어라!”
“폐하의 손님이시다, 어찌 이런 무례를 보이는가!”
황제는 진을 최고 귀빈 자격으로 초대하며 그에 걸맞은 수행원들도 배치해주었다. 그들도 진과 황제의 돌발행동에 당황하긴 했으나, 금위들과 달리 황제의 속뜻을 즉시 알아보고 대처하는 모습이었다.
“시종장 바르캄입니다. 금위들을 대신해 무례에 사죄드리겠습니다.”
진은 잠시 바르캄과 눈을 맞추다 이렇게 말했다.
“속 편한 자리로군.”
황좌란. 그 뒷말이 빠졌으나 바르캄과 시종들은 말뜻을 알아듣고 속으로 민망한 마음을 감출 수밖에 없었다.
상대가 먼저 무례했으니 굳이 예의를 갖추지 않기로 했다. 룬칸델의 바깥에 룬칸델 기수보다 격이 높은 사람은 없으니까.
“폐하께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바르캄과 시종들을 따라 한 시간가량 궁내를 걸었다.
궁내는 외부의 웅장함에서 예견된 화려의 극치를 보여주었다. 지플과 룬칸델에 이어 세계 세 번째 권력을 가진 집단인 데다, 대륙 유일의 제국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사치.
이윽고 용전龍殿에 이르자 내금위들과 친위대들이 진을 가로막았다.
“무기를 반납하시오.”
“싫다.”
“그게 무슨…… 소리요?”
“무기를 소지한 채 황제를 마주하겠다는 뜻이지.”
“하?”
“어차피 황제 바로 옆엔 궁내 최고의 무인들이 붙어있을 것 아닌가? 정 안 되겠다면 그냥 돌아가겠다.”
현 황제의 즉위 이후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내금위와 친위대들이 어찌 대처할지 고민하는 사이, 용전 안쪽에서 환관의 가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그냥, 들라 하십니다!”
알현실 입구를 가리고 있던 얇고 빛나는 천이 걷어졌고, 어디선가 나타난 수십 명의 궁인들이 바닥에 알록달록하고 손바닥만 한 천 조각들을 긴 융단처럼 까는 모습이 이어졌다.
걸음을 옮기자 궁인들은 진이 지나친 자리의 천 조각들을 회수하고, 아직 닿지 않은 바닥에 새로 천 조각을 깔았다.
천 조각이 끝나는 지점에 다다르자 궁인들이 양옆의 어둠 속으로 물러났고, 고개를 들어도 마냥 높게만 느껴지는 황좌가 보였다.
본래라면 그 자리에 선 이들은 신분을 막론하고 큰절을 올려야 하나, 룬칸델과 지플에겐 해당되지 않는 이야기였다.
‘아미르 비먼트…….’
진은 잠시 황제의 이름을 떠올리며 그에 대해 생각했다.
카시미르의 친형이며 진의 전생에선 본래 뮬타의 룬의 주인이 된 인물이자, 생체 실험을 장려하는 인간.
‘전생에선 그저 룬칸델과 지플 사이에서 줄타기를 잘하는 인물 정도로만 생각했지. 실제로 대부분의 세인들은 현 황제를 그렇게 평하고 있고.’
황제의 외적인 첫인상은 줄타기를 잘할 것 같은 상과는 거리가 멀었다. 시원하게 뻗은 코, 짙은 눈썹, 위엄으로 형형하게 빛나는 눈동자. 꼭 수많은 전쟁 속에서 깨달음을 얻은 장군처럼 보였다.
진이 멀뚱히 자신을 올려다보고만 있자 황제가 먼저 입을 열었다.
“오느라 고생 많았소, 진 룬칸델 경.”
“황제께서도 거친 환영식을 끝내고 다시 그 자리로 돌아오느라 고생이 많으셨겠습니다.”
도발적인 언행에 황제가 미소를 지었다.
“불쾌했는가?”
“그렇습니다.”
“듣던 대로 불같은 사람이로다. 짐은 그저 그대가 궁금했을 뿐이오.”
“내 성격이 궁금해서 환관을 투신시켰다는 뜻입니까?”
“그렇지. 뜨겁긴 하지만, 짐이 생각하던 것보다 그대는 좀 물렁하더군. 어찌 한 치 앞만을 보는 것이오?”
황제가 고개를 갸웃하며 말을 이어갔다.
“그대가 구한 환관은 중죄인이오. 감히 궁인을 탐한 적이 있어, 몇 해 전 목소리를 거두고 비참한 삶을 살아 웃음거리가 되도록 짐이 직접 종용하였지.”
“그렇습니까?”
“어찌 그런 병 걸린 들개만도 못한 인간을 구하기 위해 선량한 근위대들을 위험에 빠뜨렸소?”
철컥, 철그렁!
알현실 양옆의 어둠에서 철창이 열리고, 쇠사슬이 끌리는 소리가 났다.
어둠 속에서부터 처음 진에게 검례를 올렸던 근위대들이 걸어 나왔다. 진이 알현실까지 오는 내내 모진 매질을 당해 피떡이 된 채로.
황제가 미소를 지으며 계속 이야기를 이어갔다.
“이들은 경의 돌발행동을 막지 못한 탓에 매질을 당했고, 파면되었으며 지금껏 근위대로서 근무하며 받아 간 녹봉을 모두 반납하게 생겼소. 내게 위협이 될 요소를 막지 못한 것에 비하면 작은 벌이긴 하나, 이들에겐 더할 나위 없는 비극이지.”
진은 근위대들을 보며 미동하지 않았다.
“즉, 경은 쓰레기를 구하려다 이들과 이들의 가정을 몰락시킨 셈이오. 심지어 이곳은 황궁, 짐의 땅이니…… 그대의 행동은 처음부터 심대한 결례였소. 이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든, 그대에겐 막을 권리가 없어. 그대는 짐의 집행을 저지한 것이오.”
황제가 힘주어 말하자 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구구절절 재미있는 말씀을 하시는군요.”
“지금이라도 짐에게 용서를 구하시오.”
“그리고 한 가지 착각하시는 게 있습니다.”
“착각이라?”
“내가 결례인 줄을 모르고 환관을 구하려 했을 것 같습니까?”
황제의 눈동자가 가늘어졌다.
“황제께서 늘어놓은 궤변에 동의하지도 않지만, 애초에 나는 그런 걸 계산하지 않고 움직였습니다. 날 시험하는 느낌이 강하게 들기에, 그저 기분대로 행동했을 뿐.”
“크하하하…….”
“감히 비먼트의 황제가 룬칸델의 기수를 시험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황제의 웃음이 멎었다.
그러나 불쾌감을 드러내며 웃음기를 지운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황제는 흥미진진하다는 듯 눈동자를 빛내고 있었다.
“이곳엔 그대를 죽일 수 있는 검이 많소. 짐이 그 검을 휘둘러 그대를 죽인다 할지라도 룬칸델은 크게 보복하지 않을 것이오. 모난 돌을 짐이 대신 빼준 셈이니. 명분도 가득하고 말이오.”
아주 틀린 말은 아니었다.
황제가 진을 죽인다면, 조슈아와 그의 세력들은 얼마든지 적당한 선에서 사건을 덮어줄 수 있었다. 진의 시신만 그대로 돌려준다면 말이다.
“살면서 종종 이런 상황을 겪어보았는데…… 그때마다 내가 하는 말이 있습니다.”
“무엇인가?”
“해보십시오, 자신이 있다면.”
크!
돌연 황제가 자리에서 일어나 감탄을 내뱉었다.
“과연, 얼마 전 검의 정원을 깨부순 그대가 이곳이 어려울 리 없지. 짐은 그대의 배짱에 찬사를 보낼 수밖에 없도다!”
상기된 얼굴로 짝짝 손뼉까지 치는 모양새가 진심으로 즐거운 것 같았다.
“근위대들을 풀어주고, 복직시킨 다음 금관을 내려라.”
내금위들이 근위대들을 데려가자 황제가 또 한 번 미소를 지었다.
“짐은 이제 그대에 대해 조금 알 것 같소.”
“나는 황제에 대해 아직 잘 모르겠군요.”
진과 황제의 시선이 부딪혔다.
“차차 알아 가면 좋을 것이오. 오늘 짐은 그대에게 포상을 내리고자 불렀으니, 좋은 관계로 발전할 수 있지 않겠소?”
“내게 무엇을 주시겠습니까?”
“힘.”
황제가 진을 내려다보며 뒷말을 이었다.
“그대가 룬칸델을 집어삼키고, 나아가 지플에 대항할 수 있는 힘을 주겠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