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421)
제 444화
122화. 황제(2)
‘……자신감 좀 보게.’
입술 사이로 소리 없는 웃음이 새어나왔다.
포상을 빌미로 뭔가 동맹 비슷한 것을 제안하리라고 예상은 하고 있었다.
황실이 하이란의 뒤통수를 치고 있다는 걸 온 세상이 다 알고 있는 마당에, 포상을 내리겠다며 자신을 따로 불러냈으니 뻔한 일이었다.
“룬칸델을 집어삼키고, 나아가 지플에 대항할 수 있는 힘이라.”
“어떻소, 구미가 당기는 이야기이지 않은가?”
진이 잠시간 황제의 빛나는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그래도 제국의 황제라고, 꽤 단단한 눈빛이군.’
눈동자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읽기가 쉽지 않았다.
“알고 계십니까?”
“무엇을 말이오?”
“얼마 전, 검의 정원에서 내 능력을 증명해 보인 날. 그날 나는 가주가 되겠다고 선언했었습니다.”
“모를 리 있겠소? 그날 그대가 보인 위엄에 호사가들은 마검 회귀와 가주 선언이라는 이름을 붙였지. 한동안 비먼트 전역 또한 음유시인들이 부르는 그대의 노래로 가득하였소. 짐 역시 그 노래가 즐거워 황실 악단에게 연주를 명했었고.”
“그런 일이 있었다니 부끄럽군요. 어쨌든, 내가 모두가 보는 앞에서 선언한 이유는 다름이 아닙니다. 이미…….”
내게는 가주가 될 수 있는 힘이 있다는 뜻이죠.
진이 뒷말을 잇자 황제가 부드럽게 눈동자를 끔뻑였다.
“짐은 원로회는 물론, 집행기사와 흑기사들까지 대부분 2기수의 손에 벌써 넘어갔다고 들었는데 말이야. 반면 그대의 세력은 다소 미약하지 않은가?”
그 말에 진은 또 한 번 웃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외부인들에겐 내 모습이 그리 보이는군요.”
미약하다.
분명 그랬던 시절이 있었다. 진이 폭풍성에 있던 시절, 아군이라곤 길리 한 사람밖에 없을 때.
하지만 폭풍성 비밀 지하의 유리관에서 무라칸을 깨운 이후, 진의 세력은 절대적 기준에서 단 한 번도 미약했던 적이 없었다.
힘을 다소 잃은 상태였다곤 하나, 무라칸은 회복의 기회만 있다면 언제든 최강의 반열에 오를 수 있는 존재였으니 말이다.
무라칸에 이어 루나, 티칸 자유도시의 동료들, 비궁, 라프라로사의 명왕족, 성국, 미샤, 솔더렛의 안배들, 작은 수인들, 완타라모 숲, 론과 단테의 하이란.
게다가 룬칸델 내에도 요나와 일부 원로들, 가주 선언 이후 진에게 호의를 드러낸 기사들, 정신이 멀쩡한 상태의 베라딘 등. 이들 외에도 잠정적 아군이라 할 수 있는 세력 또한 상당했다.
현재 진의 세력은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수준이며, 앞으로의 확장성 또한 대단한 것이다.
그런데 미약하다는 소리를 들으니 우스운 마음을 감출 길이 없었다.
“그대가 대외적인 이미지를 워낙 잘 형성해둔 덕이지. 그대가 감추고 있는 힘이 거대하다는 것은 알고 있소.”
“그 말처럼 황제께 도움을 받아야 할 만큼 궁하지 않습니다.”
“하나, 룬칸델 2기수의 힘은 몰라도…… 짐은 그대가 지플의 힘을 잘 알고 있는 줄 알았는데 말이오.”
“세상에 그들이 가진 힘을 모르는 사람도 있습니까?”
“빙산의 일각만으로도 온 세상을 압도하고 있는 게 그들이지. 짐은 그대가 지플의 수면 아래를 엿본 적이 있느냐를 물어본 것이오. 있다면…….”
황제가 잠시 말을 멈추었다.
그리곤 부르르, 몸을 떨었는데 자신이 얼핏 엿본 적 있는 지플의 ‘진짜 힘’을 떠올렸기 때문이었다. 전율인지, 공포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떨림.
“그대는 그 누굴 만나더라도 궁하지 않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오.”
“황제께선 지플이 두려운 모양이로군요.”
“경은 그들이 두렵지 않소?”
“방금 전에 날 조금 알 것 같다고 하셨으면서, 쓸데없는 이야길 하십니다.”
“룬칸델의 초대 가주, 테마르 룬칸델.”
황제가 돌연 그 이름을 꺼냈다. 진은 담담한 표정을 잃지 않았다.
-누굽니까? 테마르의 무덤을 찾고 있는 다른 세력들은.
-누구일 것 같아요?
-지플.
-정답!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랍니다.
-비먼트 황실도 룬칸델 초대 가주의 무덤을 찾고 있답니다. 당신의 동선은 그들에게 한 번 노출된 적이 있고요.
얼마 전, 베락트가 로사를 찾아왔을 때 마르지엘라와 나눈 대화.
룬칸델과 지플 외의 세력이 테마르의 무덤을 찾고 있다는 사실은 그때 처음 알았다. 심지어 비먼트가 원하는 것은 테마르의 시신이라는 것도.
‘테마르에 관한 이야기를 먼저 꺼낼 줄은 몰랐는데.’
진은 황제와 눈을 맞추며 다음 말을 기다렸다.
“기록에 남아있기로, 그자는 역사상 그 누구보다도 강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더군. 당대의 그 어떤 존재조차 감히 테마르 룬칸델을 어쩔 수는 없었다고…….”
“그건 어디에 남아있는 기록입니까?”
“그런 그조차 지플이라는 벽을 넘어서지 못했건만, 그대가 홀로 그 거악을 상대할 수 있겠소?”
“어디서 확인한 기록인지 물었습니다.”
“그건 그대가 내 사람이 된다면 보여주도록 하지.”
예고 없이 화산이 폭발하듯, 돌연 진에게서 강대한 기운이 뿜어졌다. 딛고 있던 바닥에 균열이 일었고, 순간적으로 무거워진 공기가 아래로 내려앉았다.
이곳이 황제의 어전이라 할지라도 그따위 말을 듣고도 분노를 참을 이유는 없었다.
테마르는 룬칸델의 선조이며, 룬칸델조차 갖지 못한 기록을 감히 비먼트 따위가 운운할 수 없는 것이다.
내금위와 친위대들이 움직이려는 찰나 황제가 손을 들어 그들을 제지했다. 진도 그 이상 기운을 방출하지 않았다.
“황제께서 검들을 제지하셨으니, 방금 내게 저지른 결례는 이것으로 없던 셈 치겠습니다.”
진이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완타라모 숲에서 마주친 비먼트의 ‘마인’들이 떠올라 가슴 속에 뜨거운 것이 치밀었다.
비먼트는 테마르의 시신을 이용해 마인을 완성시키려 하고 있다.
완타라모 숲에서부터 진은 비먼트에 그런 심증을 품은 상태였다.
그 심증은 오늘 황제와의 만남으로 확신에 더 가까워졌고, 확실해지면. 황가를 멸해도 시원찮을 일이었다.
“그리고 딱 한 번만 경고하겠습니다, 황제. 행여 황제께서 초대 가주의 육신을 얻어 조악한 인형 따위를 만든다면…… 수천 년 비먼트의 역사는 모두 물거품이 될 거요.”
“후후, 그대와의 대화는 마치 외줄을 타는 것 같은 짜릿함이 있어.”
“황제께선 언제, 어느 때에, 어느 곳에서든. 룬칸델 초대 가주의 무덤에 관한 단서를 찾은 경우 반드시 룬칸델에 보고하도록 해야 할 겁니다.”
황제는 진이 어떻게 말해도 분노하거나 불쾌감을 표출하지 않았다.
“그건 그대가 검귀들의 왕이 된 다음에 한 번 생각해보도록 하지.”
가볍게 말하는 듯 보였으나 의도가 묻어났다.
너는 아마 내 도움 없이 가주가 될 수 없을 거다, 황제는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어쨌거나, 지금 당장은 짐이 그대와 아군이 될 수 없는 분위기로군. 하지만 이를 어쩐다, 나는 이미 그대에게 포상을 내리기로 했으니…….”
거기까지 말한 황제가 무언가 떠오른 듯, 손뼉을 쳤다.
“하이란. 좋아, 그 가문을 그대가 통째로 가져보는 것은 어떠한가? 애초에 하이란을 구한 것에 대한 상을 내리겠다고 부른 것이니 말이오.”
“하이란을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는 것처럼 말씀하시는군요.”
“당연하오. 비먼트에선 짐이 할 수 없는 것이 없소.”
“가문을 취한다는 것은, 충성심이 우선되어야 합니다. 황제께서 내게 무형의 통치권을 하사한다 할지라도, 론 경과 단테가 내게 충성 맹세를? 산천초목이 웃을 일입니다.”
“간단한 것을 어렵게 생각하는군. 정말 방법이 없다 생각하오?”
“단테를 인질로 잡아 론 경을 압박하는 것?”
“그것도 나쁘진 않으나, 다른 몇 가지 수가 더 있지.”
“테러가 벌어졌을 당시, 난 하이란의 피해가 최소화되도록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런 내가 황실처럼 하이란의 뒤통수를 칠 것 같습니까?”
“왜지?”
지금껏 대화가 이어지는 동안, 황제가 이토록 격하게 감정을 드러내는 것은 처음이었다.
황제는 의아해하고 있었다. 진이 하이란을 보호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는 얼굴.
“그대가 검황성에서 활약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몹시 궁금하기는 했소. 룬칸델의 입장에서 정말 많은 실리를 취할 수 있는 테러인데, 어째서 그대가 하이란을 보호했는지 마땅한 이유가 떠오르질 않더군. 무엇이오?”
“친구를 돕는 일에 거창한 이유는 필요하지 않습니다.”
“……뭐라, 친구?”
황제가 벌떡 몸을 일으켰다.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이렇게 소리치기도 했다.
“고작 그딴 이유로 그만한 이득을 포기하겠다는 말이오!?”
더할 나위 없이 실망스럽다는 말투, 진은 그의 격한 반응에 어깨를 으쓱일 뿐이었다.
“문제가 됩니까?”
이내 다시 자리에 앉은 황제가 한숨을 내뱉었다.
“그대와 대화를 나누는 동안 느낀 감동과 전율이 차갑게 식어버리는군. 그렇게 물렁한 소리를 내뱉을 줄이야…….”
“흥미가 떨어지십니까?”
“그런 식이라면, 그대는 앞으로의 싸움에서 살아남기 어려울 것이오.”
“나는 늘 그런 식으로 살아남아 왔습니다.”
이제 황제의 눈동자엔 황당함마저 묻어났으나, 곧 황제는 다시 평온한 얼굴이 되어 고개를 저었다.
“여봐라.”
“예, 폐하!”
“진 룬칸델 경에게 금관을 내려라.”
그 말에 진은 짧게 묵례를 올리고 뒤돌아섰다.
“진 경.”
알현실을 나서려 걸음을 옮기기 시작하자, 황제는 진을 불러 이렇게 말했다.
“오늘로 그대와 짐은 아군이 될 가능성이 사라진 것이나 다름이 없소. 반드시 그 사실을 인지하고, 다음에 날 마주칠 땐…… 보다 예를 갖추도록 하시오.”
진과 대화를 나눠본 결과, 황제는 지금처럼 선을 밟고 있는 게 아니라 어느 한쪽에 반드시 소속되어야 할 때.
룬칸델과 힘을 합칠 필요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때가 올 때까지 진이 아닌 다른 룬칸델에게서 새로운 가능성을 볼 수 없다면, 절대로 그럴 필요가 없다고.
그러니 오늘 이후 이만큼 대접을 해주는 일은 없으리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아, 그러고 보니 저도 잊은 말이 있습니다. 론 경이 황제께 전해달라고 하더군요. 여러모로 선택을 잘 하시는 게 좋을 것이라고.”
황제는 대답하지 않았고, 진은 알현실을 나서며 뒷말을 마저 끝맺었다.
“말하자면 그건, 줄을 잘 서라는 이야기일 겁니다. 후회하는 일 없도록.”
진이 알현실을 빠져나간 후, 황제는 한동안 그 뒷모습이 있던 자리를 빤히 쳐다보고만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