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418)
제 444화
121화. 배신(2)
“큭, 젠장. 안 되겠어. 날 때려라, 단테.”
“그게 무슨?”
“기분 풀릴 때까지 내 턱을 돌리라는 뜻이다.”
진심인 듯 보였다. 베라딘이 턱을 빼고 있자 진과 단테가 서로를 바라보았다.
“빌어먹을 내 가문이랑 황실이 짜고 하이란을 엿 먹이고 있으니까. 나라도 분 풀릴 때까지 패면.”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베라딘. 단테가 조금이라도 진심을 담아서 때리면, 부상 정도로 안 끝나. 네 비루한 몸뚱어리가 견디겠냐?”
“젠장, 나도 알아.”
“아는 놈이 왜 헛소리를 지껄여?”
“미안해 죽겠는데 속은 답답하고 미치겠어서 뭐라도 말을 해야…… 이것도 결국 내가 편해지자고 하는 말이군.”
“말하는 모양새를 보니까 그냥 맞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공은 잘못이 없소.”
진과 단테의 말에 베라딘이 한숨을 내뱉었다.
“그렇게 말할 줄 알았다. 단테, 내가 도울 일이라면 뭐든 말해라……! 가문을 대신해서, 어떤 식으로든 사죄를 할 테니.”
어쩔 줄 모르는 얼굴로 눈치를 살피는 베라딘을 보니, 진과 단테도 마음이 편하지는 않았다.
만일 베라딘에게 죄가 있다면, 그건 지플로 태어나 제 아비에게 이용당하고 있다는 사실뿐이니까.
“사죄 같은 과한 단어를 쓸 필요 없소. 그대를 부른 것은, 따지고자 함이 아니라 오히려 벗으로서 부탁하기 위함이니. 지플 쪽도 시국이 평범치 않을 텐데, 찾아와준 것만으로도 내가 감사를 전해야 할 일이오.”
“으윽…… 단테, 이 인격자 같으니!”
베라딘이 과장스럽게 눈시울을 붉히며 단테를 끌어안자 진이 쯧 혀를 찼다.
어쨌거나 단테의 말대로 베라딘이 현시점에 가문 몰래 검황성을 찾은 것은 나름 위험을 감수한 일이었다.
지플은 계속 이번 사태에 책임이 없음을 강하게 주장하는 중이다. 행여 베라딘의 밀행이 드러날 경우 그 주장은 힘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눈물인지 가짜눈물인지 모를 액체를 실컷 셔츠에 비비자 그때서야 단테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걸렸다.
사건 이후 진도 단테가 미소 짓는 모습을 보는 건 처음이었다. 그만큼 하이란 내부의 상황이 좋지 않았다.
황실이 테러 세력과 추잡한 뒷거래를 한 것도 모자라, 내부에서도 배신자들이 속출한 것이다.
심지어 배신의 주축들은 단테의 형제들과 친척들이었다. 론 하이란에게 늘 ‘없는 사람’ 취급을 당해온.
그들은 본래 배신을 꿈꾼 적이 없었다. 괜히 단테를 건들다가 론에게 개죽음을 당하느니, 차라리 단테 이후 세대에 미약한 희망을 걸고 있었다.
론은 하이란을 그야말로 완벽하게 장악한 지 오래였고, 단테는 그 권력을 깔끔하게 이양 받고 있는 중이었으니까.
그러던 중 다시없을 기회가 찾아온 셈이었다. 단지 테러로 인해 막대한 피해만 입은 상황이라면 언제나처럼 배신 따윈 꿈도 꾸지 못했을 테지만, 황실이 그들의 뒷배를 자처해주었다.
여기까지도 괜찮았다. 론과 그의 하이란은 누군가의 도움 없이도 충분히 반역자들을 정리하고 일어설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테러로 인해 ‘하이란이 아닌 피해자’가 너무 많이 생긴 게 문제였다. 황족과 수많은 귀족들은 물론이고, 굵직한 군벌들에게 배상해야 할 사안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론 경은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리라 어느 정도는 예상하고 있었어. 그래서 만약을 대비해 날 우선적으로 치하한 것이고.’
진도 조금은 예상한 바였다.
다만 진이 전혀 상상하지 못한 이야기가 하나 더 있었다.
‘황실이 킨젤로, 지플과 모종의 거래를 하면서까지 하이란을 몰아붙이는 이유.’
그건 바로 하이란이 대대로 지켜온 한 ‘물건’을 얻으려는 목적 때문이었다.
정확히는 하이란이 아니라 ‘하이란의 가주’가 지켜온 물건이라고 표현해야 할 것이다.
애초에 물건의 존재 유무조차 오직 가주만이 알 수 있는 사안이니까.
그러나 론은 단테를 가주로 점찍은 순간부터 그 물건의 존재를 알렸고, 단테는 최근 오직 하이란의 가주에게만 그 비밀을 전승해야 한다는 금기를 깨뜨렸다.
진에게도 물건의 존재를 알린 것이다.
-……하얀 돌, 불길한 자갈, 끝을 가리키는 쐐기 등. 역대 가주들께선 그 돌을 여러 이름으로 부르셨소.
-이름이 그렇게나 많다는 건, 누구도 그 돌의 진짜 이름을 모른다는 뜻처럼 들리는데.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군. 맞는 말이오. 처음 내게 그 돌의 존재를 알리셨을 때, 조부께선 그것을 하이란 가주의 최대 숙적이라 표현하셨지.
-하이란 가주의 최대 숙적?
-가주에서 가주에게로만 전해지는 그 돌의 존재 의의는, 바로 베는 것에 있기 때문이오. 비로소 돌을 벤 가주야말로 하이란의 역사 가장 높은 곳에 이름을 새길 수 있는 것이지.
-황실이 단지 그게 전부인 물건을 그렇게까지 탐낼 이유는 없는 것 같은데.
-맞는 말이오.
-대충 알겠어. 그 돌은 세상 누구에게도 알려져선 안 될 만큼 위험한 물건일 거다. 그래서 처음 그 물건을 습득한 하이란의 가주는 그것을 베어 없애려 했고, 실패했을 테지. 이후 후대 가주들이 욕심을 품지 않도록 물건의 정체를 알리지 않은 채 파괴하라는 명령만 남긴 거고.
-내 짧은 설명만 듣고 그걸 다 유추했단 말이오? 충격적이군.
-지금껏 하이란의 역대 모든 가주들은 물론이고, 론 경조차 그 돌을 베지 못했다는 사실이 훨씬 더 충격적이다. 대체 어떻게 생겨 먹은 돌이야?
-나도 직접 본 적은 없소. 조부께서 보관하고 계시니까.
-어쨌거나 황실이 돌을 탐내는 건 하이란의 옛 가주들이 견제했던 그 위험성을 손아귀에 넣고 싶기 때문이겠지.
며칠 전 단테와 나눈 대화.
황실은 이런 기회가 오길 기다렸다는 듯 하이란으로부터 ‘돌’을 빼앗고자 난리를 치고 있었다. 아예 황실이 돌을 얻기 위해 테러를 사주했다고 해도 이상할 게 없어 보일 지경이었다.
단테가 진에게 돌에 대한 내용을 알린 건, 그것을 지키는 일에 진의 도움을 좀 받아도 나쁘지 않겠다는 결론이 났기 때문이었다.
당연히 단테의 의견이었으나 론은 생각보다 흔쾌히 동의했다.
자신은 심각한 내상을 입었고, 가문의 위상은 떨어졌으며, 배신자들이 나타났고, 검황성은 아직 복구 작업을 시작하지도 못한 데다 아군은 없다. 용기사들도 다시 황실로 복귀한 것이다.
이를테면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손주가 까딱하면 고립될 수 있는 상황, 론은 그깟 가문의 비밀 따위보다 손주의 안위가 우선인 인물이었다.
무엇보다 진은 돌을 탐내며 뒤통수를 칠 부류가 아니라는 확신도 있으니 말이다.
처억.
진이 단테에게 들러붙은 베라딘을 떼어냈다. 바동거리는 모양새가 꼭 어린애를 다루는 느낌이었다.
“베라딘 공.”
단테가 웃음기를 지우며 베라딘과 눈을 맞췄다.
진과 단테, 두 사람은 ‘돌’에 관한 내용을 아직 베라딘과 공유하지 않기로 한 상태였다. 베라딘의 정신이 온전하다고 확신할 수 없으니 당연한 일.
그러나 그 정보를 모르더라도 진과 단테를 돕는 일엔 문제가 없었다.
“응, 어서 말해. 단테. 내게 부탁할 게 뭐야?”
“지플이 하이란을 직접적으로 압박하도록 종용해주시오.”
“어…… 뭐?”
“지금 지플은 황실을 통해 하이란에 간접적인 압박만을 해오고 있소. 그게 아니라 지플이 전면에 나서서 하이란을 직접 공격하는 모양새를 만들어주라는 뜻이오.”
“대, 대체 왜? 야, 진. 이게 무슨 소리야?”
“왜 나한테 물어.”
“이런 계획을 단테가 생각했을 리 없잖아! 설명해줘, 왜 그래야 하는 건데?”
“하이란이 피아를 더욱 분명히 구분하기 위해.”
“뭐?”
“황실이 지플과 하이란 중 어느 곳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지 알아볼 필요가 있다는 거야. 너희가 한계까지 하이란을 몰아붙이는데도 황실이 태도를 바꾸지 않는다면, 하이란은 더 이상 제국의 일원일 필요가 없거든.”
정확히는 황실이 지플과 하이란, 그리고 ‘돌’ 중에서 무엇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확인하기 위한 수였다.
“무슨 말인지는 알겠는데. 그랬다가 황실이 지플을 선택해서, 하이란을 우리와 함께 끝장내버리려는 방향을 잡으면?”
“그건 네가 알아서 막아.”
“난 지플의 가주가 아니라 차기 가주인데? 그만한 권한이 있겠냐.”
“농담이고, 그때는 룬칸델이 하이란에 합세할 거다.”
“마찬가지로 너도 룬칸델의 가주가 아니라 차기 가주잖아.”
“난 그 정도 권한은 있어. 정확히는 하이란과 동맹이라는 수를 저지른 다음 가문이 발맞춰 따라오게 만들 자신이 있지.”
그 말과 태도가 멋있다는 듯 베라딘이 눈동자를 빛내다가 헛기침을 했다.
지금은 평소처럼 진을 찬양하며 놀 때가 아니었다.
“알겠는데, 변수가 너무 많지 않나? 그리고 황실이 설마 하이란을 버리고 지플을 택하겠어. 온 세상이 지켜보고 있는데.”
“그건 모르는 거지.”
“……본가가 나섰다간 하이란이 회복 불가능할 만큼 다칠 수도 있어.”
“하이란을 너무 무시하는 발언 아니냐. 단테를 앞에 두고.”
“흠, 흠흠. 난 괜찮소.”
“미안. 그래도 워낙 중요한 사안이니까…… 게다가 내가 정신이 온전하지 않은 상태라, 이 계획이 우리 가문에 가장 유리하게 흘러가도록 유도한다면?”
“그 경우는 정말 최악이긴 한데, 나름대로 안전장치가 있으니 걱정하지 마.”
“오? 안전장치라! 뭔데?”
“그걸 너한테 알려주면 되겠냐.”
진의 말에 베라딘이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하긴.”
“베라딘, 너는 정신 오락가락한 거 돌아올 때까지만 조심해. 우리도 널 조심할 테니까.”
고개를 끄덕이는 베라딘.
“적을 가려내고, 황실과 지플의 목표와 우선순위들을 한번 알아보자고. 가능하다면, 황실이 킨젤로, 지플과 무엇을 이용해 뒷거래를 했는지도.”
물밑으로 이런 작업을 진행하는 건 진과 단테, 베라딘.
내외적으로 중심을 잡고 하이란을 지탱하는 건 론과 그 기사들의 몫이었다.
“가문끼리 외부적으론 철저히 원수가 되더라도, 우린 우리 셋만 확실한 동맹이면 된다. 그럼 우리가 각자 가문의 패권을 잡았을 때 대외적인 관계도 되돌릴 수 있어.”
“맞는 말이오.”
“오오.”
세 사람이 그렇게 말한 순간, 한 기사가 지하실을 찾았다. 처음에 베라딘을 인솔해온 기사 중 하나였다.
“소가주님.”
“무슨 일인가?”
“그게…….”
기사는 슬쩍 베라딘의 눈치를 살피다 뒷말을 이었다.
“황제 폐하께서 진 경을 찾는다고 하십니다.”
“진을? 왜?”
“정확히는 알 수 없으나, 환관들 사이에 들리는 소문으로는…… 이번 일에 대한 포상을 내리시려고 하는 것 같다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