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428)
제 444화
124화. 위기의 원로들(3)
* * *
햇빛 한 점조차 통과하지 못할 것 같은 시커먼 숲, 이곳은 예로부터 귀신이 나온다거나 마귀가 나온다는 소문이 잦은 곳이었다.
[먀!]진은 슈리를 타고 그 복잡하고 어두컴컴한 숲길을 달리고 있었다. 다른 동료는 없었다.
차라리 미로가 낫다고 생각될 만큼 길이 복잡한 탓에, 슈리가 아니었다면 혼자 이곳에 찾아온 것을 후회할지도 몰랐겠다는 생각이 스쳐 갔다.
-도련님, 이 유모는 무라칸 님과 함께 가기를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공자, 괜찮겠습니까? 혼자 갔다가 행여 그가 나쁜 마음을 먹으면, 퇴로를 확보하기가 쉽지 않을 겁니다.
-꼭 혼자 가셔야 하는 이유가 있는 겁니까?
길을 떠나기 전, 동료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아 진을 걱정했었다.
아직 이 땅의 주인을 완전히 신뢰할 수는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브우우, 부으우우-.
숲이 깊어질수록 사방에서 들리는 음울하고 불길한 귀곡성이 짙어졌다.
‘귀곡새성이라. 기가 막히게 잘 어울리는 이름이군.’
실제로 와보는 것은 처음이었으나 늘 그렇듯, 슈리가 능숙하게 길을 찾아 헤매지 않고 도착할 수 있었다.
검고 거대하다.
숲 끝자락에 난데없이 솟아있는 성채를 마주했을 때 곧장 떠오른 감상은 그랬다.
자욱이 깔린 안개도 귀곡새성이 뿜고 있는 묘한 귀기를 덮지 못하고 있었다.
그저 앞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숨이 갑갑해지는 마기가 뿜어지는 것이다.
새삼 이 어마무시한 성의 주인이 라타 프로치고, 자신이 사실상 그를 꺾었다는 사실이 신기하게 다가왔다.
슈리를 적옥으로 돌려보내고 한동안 성문이 열리기를 기다렸다.
얼마 지나자 문이 열렸는데, 빗장을 풀고 두꺼운 철문을 열어젖힌 사람이 누구인지는 보이지 않았다.
애초에 사람이 연 것이 맞나 싶었다.
바람이나 유령이 열고 지나간 것 같았고, 곧장 시야에 들어오는 것은 평범한 성내의 풍경이 아니라 또 다른 어둠.
그 속으로 나아가는 건 천 길 낭떠러지를 뛰어내리는 일과 다르지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진은 허리춤의 칼자루에 닿은 손아귀에 새로 힘을 주지도 않고, 성큼성큼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이었다.
더 크게, 겹겹이 이어지는 귀곡성과 스산한 바람 때문에 악몽의 한 풍경을 지나는 기분이 드는 찰나.
돌연 어두운 공터가 펼쳐졌다.
“12기수, 오느라 고생 많았소.”
라타 프로치의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방금까지 전투를 치르고 온 건지, 아니면 귀곡새성 지하에 가둬둔 이들을 고문하다 온 것인지. 라타에게선 진하고 비릿한 피 냄새가 났다.
“피 냄새가 진동하는군요.”
“우리가 하는 일이 썩 유쾌한 종류는 아니다 보니. 경도 익숙하지 않소?”
“그냥 해본 말입니다.”
가까이 다가오자 라타가 들고 있는 횃불에 그의 얼굴이 번들거렸다.
“설마 혼자 올 줄은 몰랐소.”
라타는 진이 귀곡새성을 혼자 찾았다는 사실에 진심으로 놀라워하고 있었다.
라타뿐만이 아니라 다른 모든 귀신대원들이 같은 마음이었다.
적어도 라타가 귀신대장이 된 이후엔, 아니. 그 이전에 스마리온 프로치가 귀신대를 이끌던 때에도.
단신으로 귀곡새성을 찾아온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룬칸델과 지플의 지도층들이 비밀회담을 펼칠 때도 항상 일정 이상의 전투력을 낼 수 있는 인원이 대동 된 것이다.
당연한 일이었다.
나름대로 중립을 지켜왔다고는 하나, 귀신대는 결코 적지 않은 영향력을 가진 세력이었다.
특히 본진인 귀곡새성에서 그들은 분명 중립세력 중에도 최상위권에 속하는 힘을 갖고 있었다.
비먼트조차 자신들의 영토에 위치해있음에도 귀곡새성을 치는 대신 자치권을 인정해줄 지경이니 말이다.
“귀신대도 내 의뢰를 수행하기 위해 위험을 짊어졌으니, 나도 이 정도 신뢰는 보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 말에 라타가 감명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진은 그 반응이 왠지 민망했지만 드러내진 않았다.
“역시, 멋지군. 좋소. 이제 계약서를 쓰도록 하지.”
원로들의 수급을 보내며, 라타는 곧장 귀곡새성을 방문해주라는 연락을 남겼다.
동맹을 위한 한 장의 계약서를 쓰자는 이유였다.
라타가 내민 종이는 진이 그간 받아본 계약서 중 가장 심플한 문장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또한, 예상치 못한 내용이었다.
(라타 프로치와 그의 귀신대는 진 룬칸델을 주군으로 모실 것이며, 이는 남아있는 귀신대의 전원이 완벽하게 동의한 사안임.)
그건 계약서가 아니라 충성 서약에 더 가까웠다.
“이건 단순 동맹이 아닌 군주와 부하 간의 혈맹을 맺기 위한 종이요.”
“……이게 무슨?”
진은 우선 귀신대와 동맹을 맺고, 앞으로 차차 끈끈한 유대를 형성해야 한다고 판단하고 있었다.
설마 이렇게 나오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것이다.
“혹시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오?”
“아니, 그건 아닙니다만. 조금 당황스럽긴 합니다.”
“이 몸은 검황성에서 경에게 존경을 품었고, 그 다음엔 룬칸델보다 진 룬칸델이 두렵다는 생각을 가졌소. 그러니 원로들을 죽였지.”
검의 정원에서 진을 만난 날, 라타는 그를 주군으로 모시기로 결정을 내렸다.
그게 ‘새로운 시대’에 귀신대가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는 확신과 함께.
“그리고 나는 또한 귀신대 내에선 절대자나 다름이 없소. 나의 뜻은 곧 모든 귀신의 뜻이란 의미로, 귀신대는 경의 가장 중요한 세력이 될 것이오.”
세상엔 수많은 지도자들이 있으나, 부하들로부터 절대적인 지지를 받는 이들은 결코 많지 않았다.
라타는 그중에서도 뛰어나 부하들과 한 몸이나 다름이 없는 인물이었다.
진이 품속에서 단검을 꺼냈다.
손바닥을 그어 종이 위에 혈판을 새기자, 라타도 똑같이 제 피를 종이에 새겼다.
“받아들이겠습니다, 라타 경.”
“따라오십시오, 주군.”
라타를 따라 내성 중앙 홀로 들어서자, 도열한 귀신대원들이 눈에 들어왔다.
족히 수천 명은 될 용병들이 검은 살수복을 입고 부동자세를 유지하고 있었다.
이내 라타가 비어있는 그들의 선두에 서서 진을 마주 보았고, 검례를 올렸다.
나머지 귀신대원들도 일제히 검을 치켜드는 모습.
진이 귀신대의 새로운 주인이 된 순간이었다.
또한, 귀신대가 처음으로 중립을 완전히 벗어난 순간이기도 했다.
“대원들은 차차 소개를 시켜드리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진이 다시 종이에 적힌 문장을 바라보았다.
‘남아있는 귀신대의 전원이 완벽하게 동의’했다는 대목이 눈에 들어왔다.
“도열한 이들을 보니 평소 귀신대의 규모와 큰 차이가 없는 것 같은데, 나와 혈맹이 되겠다는 걸 반대한 이들이 많았습니까?”
“제 아버지를 모시던 자들 중 일부가 반대했죠. 말하자면, 원로들입니다.”
“경이나 나나 원로들과 그다지 사이가 좋지 않군요. 그들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모두 귀곡새성을 떠났습니다.”
“그들이 알고 있는 특별한 비밀이나, 귀신대의 약점이 될 만한 요소가 있습니까?”
라타가 그 말에 흠칫하는 모습을 보였다.
“바로 그것을 생각하실 줄은 몰랐습니다. 예, 있습니다. 그리고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아직 그들을 처리하지 못했습니다. 추적하는 중입니다.”
“이미 며칠은 지났을 테니, 다른 세력에게 투항해 보호를 요청했을 가능성이 높겠군요.”
“시작부터 허술한 모습을 보여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혹시 모르니 저도 사람을 써서 도주한 원로들을 찾아보도록 하죠. 그들이 알고 있는 귀곡새성의 약점과 비밀이 무엇인지 알려주십시오.”
“귀곡새성 지하 최하부에 한 괴물이 봉인되어 있는 것.”
“……괴물?”
진이 의문을 표하자 라타가 쓴웃음을 지으며 설명을 이어갔다.
“현재로선 도저히 어쩔 수 없는 수준의 괴물입니다. 지하에 갇혀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수십 년이 지났는데도 살아있으며, 매년 그것을 막고 있는 봉인은 옅어지고 있습니다.”
“꼭 어느 옛날이야기에 나올 법한 괴물이로군요.”
“갑작스러운 내용일 텐데 별로 당황하지 않으시는군요.”
“봉인된 내단 마물을 상대해본 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진은 귀곡새성 지하에 봉인된 것이 내단 마물이리라 예상했다.
“얼마나 강하기에 경과 귀신대원들조차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말씀하십니까?”
“가늠조차 안 됩니다. 설명하기가 어렵군요…… 한 번 같이 가서 살펴보시겠습니까?”
라타를 따라 지하로 향하는 계단을 걸었다. 깊고, 긴 계단을 내려갈수록 진은 음울하고 악독한 기운이 온몸을 짓누르는 감각을 느낄 수 있었다.
‘귀곡새성 전체에 짙게 밴 귀기의 근원이 이것이었나.’
단지 성의 음침한 분위기에서 숨이 갑갑해지는 귀기가 퍼지는 것이 아니었다.
“다 왔습니다.”
최하층에 다다르자 거대한 철문과 그 위에 새겨진 붉은 봉인이 보였다.
처음 보는 종류의 봉인이었으나, 진은 그 봉인에 인간이 재료로 사용되었다는 사실을 직감할 수 있었다.
그만큼 어마어마한 억제력을 가진 봉인이라는 것도.
“이건…….”
“역대 귀신대장들조차 알 수 없이, 원로들에게만 내려오던 봉인이라더군요. 이 봉인은 이번에 도주한 자들을 제외한 다른 원로들이 만든 것입니다. 자신들을 재료로 사용해서.”
봉인에 가까이 다가서자 귀기가 온몸을 무겁게 짓누르는 것이 느껴졌다.
“이 봉인이 매년 약해지고 있다는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그 대답에 진은 라타가 이토록 빠르게 혈맹이 되자고 제안한 이유를 깨달을 수 있었다.
‘저 봉인 너머의 괴물이 풀려나기라도 하면, 귀신대는 성을 버리지 않는 한 살아남을 수 없다.’
물론 봉인이 당장 풀릴 가능성은 낮고, 라타가 꼭 그 이유만으로 혈맹을 제안한 건 아니었으나 결코 작은 문제는 아니었다.
“제가 주군께 이곳을 가장 먼저 보여드린 건, 이게 현재 귀신대의 가장 크고 유일한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이 봉인이 귀신대의 존립을 위협한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겁니다.”
이제 혈맹이 되었으니 이 문제도 함께 의논하고 해결할 필요가 있었다.
혈맹이 된 직후 약점을 보여주는 행동이지만 진은 라타가 얄밉거나 우습게 느껴지지 않았다.
애초에 라타는 룬칸델이나 지플, 황실, 킨젤로가 아니라 바로 자신을 선택한 것이기 때문이었다.
라타가 진 룬칸델이 아니라 룬칸델이나 지플에 붙었다면, 적어도 이 봉인을 해결하는 것만큼은 더욱 수월할 가능성이 높았다.
“확실히… 봉인 바깥으로 풍기는 기운만으로도 그렇게 느껴지기는 합니다. 대체 저 안에 들어있는 게 무슨 마물입니까?”
진의 물음에 라타가 고개를 저었다.
“마물이 아닙니다, 주군.”
“마물이 아니다?”
“저 안에 봉인되어 있는 것은, 제 아비였던 존재입니다.”
스마리온 프로치.
귀곡새성 최하층에 봉인된 괴물은, 바로 전대 귀신대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