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430)
제 444화
124화. 위기의 원로들(5)
원로들은 조르덴의 그 말을 그리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저 가끔씩 조르덴이 일 없이 위엄을 드러내곤 할 때처럼 큰 의미 없이 한 말이라 생각한 것이다.
“하하, 감히 누가 우릴 도태시킨다는 말씀이십니까? 원로장님.”
“물론 그럴 일은 없지만, 뭐가 됐든 우린 모두 원로장님의 뜻을 받들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암, 그렇소! 원로장께서 바라신다면 당장 현역으로 복귀할 생각도 있…….”
원로들이 습관적으로 장단을 맞추자 조르덴의 눈빛이 싸늘해졌다. 진심이라곤 하나도 담기지 않은 공허한 대답들에 진절머리가 났다.
“그래? 다들 내 마음을 잘 알아주는군. 그대들이 굳이 현역으로 복귀할 필요까지는 없소. 다만, 방금 말했듯…… 우린 현 시간부로 2기수, 12기수와 전쟁을 시작할 것이오.”
그때부터, 원로들은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원로장님, 전쟁이라 하심은……?”
“말 그대로요. 2기수와 12기수 중, 우선 12기수의 세력을 정리하도록 하겠소.”
“어떻게 말씀이십니까?”
“티칸 자유도시.”
조르덴의 입에서 그 이름이 나오자 원로들의 표정이 굳었다.
“그곳은 12기수의 최중요 거점이며, 그 안의 사람들은 가장 의지하는 동료들이지.”
“티칸을 치시겠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렇소.”
“하, 하지만 원로장님. 혹 잊어버린 사실이 하나 있지 않으십니까?”
“티칸은 그 어떤 룬칸델도 함부로 침범할 수 없는 상태입니다, 원로장님.”
-속이다니요, 당치 않습니다. 다만 운이 좀 좋았을 뿐이죠. 실은 티칸에 도착하자마자 카시미르 경과 인연을 맺은 상태였으니까요.
-좋다, 어쨌거나 시험은 합격이다. 오늘부로 그 어떤 룬칸델도 너의 허락 없이는 티칸 땅을 밟을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이 설령 이 시론 룬칸델이라 할지라도.
-감사합니다, 아버지.
예비 기수 시절, 금기를 깨고 가문으로 잠시 복귀했던 진과 시론이 나눈 대화.
당시 진은 시론의 시험을 통과해 거점의 자유를 보장받을 수 있었고, 이후 진이 어떤 사고를 치더라도 룬칸델은 티칸을 직접적으로 공격한 적이 없었다. 예비 기수 끝 무렵 수배령이 떨어졌을 때에도 수호기사들이 티칸을 직접 찾아오진 못한 것이다.
가주의 명은 절대적이다. 시론은 그 명을 거둔 적이 없으니, 티칸은 여전히 진을 제외한 다른 룬칸델이 어쩔 수 없는 땅이었다.
“그 말이 맞소. 하지만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지. 룬칸델이 아닌 자들을 보내면 되는 일이오.”
원로들은 또 한 번 눈을 동그랗게 뜰 수밖에 없었다.
“원로장님, 그게 틀린 이야기는 아니나…… 사실, 말장난에 불과하지 않습니까? 가주께서 내리신 명은 룬칸델이 제3자에게 사주를 내려 티칸을 치는 것 또한 금하고 있을 것입니다.”
“맞습니다, 원로장님. 게다가 12기수를 치자고 함부로 외부 세력을 이용했다가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우린 모두 직접 보았습니다.”
원로들은 진이 죽은 원로들의 수급을 포대에 가득 담아온 순간을 떠올리자 어쩐지 공기가 추워지는 것 같았다.
“다들 12기수와 싸우는 게 부담스러운가 보군. 뭐, 그렇소. 내 명을 받은 자들이 티칸을 치는 건 가주의 명을 어기는 말장난에 불과하지. 하지만, 12기수는 그간 그 말장난으로 대체 우릴 몇 번이나 농락했는가?”
조르덴의 말이 맞았다.
예비 기수 시절에 진은 몇 번이나 룰을 어겼고, 그때마다 세 치 혀를 이용해 오히려 벌이 아닌 상을 얻어가곤 했던 것이다.
“우리도 그렇게 해야 하오. 이제 정면 승부로는 답이 없는 지경에 이르렀단 말이오. 난 분명히 말했소. 이제 안전한 싸움은 없다고. 두려운 자들은 빠져도 좋지만, 룬칸델 원로라는 감투는 내려놓아야 할 것이오.”
순간, 원로들은 대부분 젊은 시절의 조르덴을 떠올렸다. 흑검회를 이끌기 전에도 조르덴은 살수조를 꾸려 자신에게 반하는 이들을 제거하곤 했었다.
흑검회장이 된 초기에도 몇 년 동안이나 피의 숙청을 이어갔었고 말이다.
즉, 여기서 감투를 내려놓고 떠나겠다는 선택을 한다면. 그건 곧 흑검회의 칼날에 언젠가, 반드시 목이 떨어진다는 뜻이었다.
“12기수는…… 아직 주변인의 죽음을 많이 겪지 못한 걸로 알고 있소. 가문의 원로장으로서 그 고통을 일깨워주도록 하지.”
조르덴이 이어 말했다.
“……원로장님, 그럼. 어떤 이들을 티칸으로 보내실 생각이십니까?”
* * *
카스칼 제후국 동부의 어느 이름 없는 사막.
조르덴과 원로들이 티칸을 치려는 가운데, 진은 일부 동료들과 함께 도망친 귀신대의 원로들을 추적하고 있었다.
“설마 이런 외진 땅에 세이갈가가 비밀 요새를 차려놓았을 줄은 몰랐습니다. 도망친 원로들이 그들과 계속 내통하고 있었다는 사실도.”
라타가 진의 옆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진은 변장한 채 인근 마을의 식당에 앉아 차를 마시고 있었다.
세이갈가.
귀신대의 수장가문이었던 그들은 과거 스마리온 프로치에게 대부분 살해당해 몰락한 상태였다.
그러나 수백 년 동안 대대로 귀신대를 다스렸던 만큼, 세이갈가는 마지막 남은 저력을 이 황량하고 작은 사막에 감춰두었다.
칠색조와 귀신대는 정보력을 합치자 예상을 뛰어넘는 효율을 보여주었다. 혈맹이 되고, 채 사흘이 지나기도 전에 이 사막을 발견한 것이다.
“배신자들이 외부에 귀곡새성의 비밀을 흘린 사실도 확인되었습니까?”
라타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예. 하지만 비먼트와 지플, 킨젤로, 그리고 이외의 세력들. 정확히 어느 쪽에 정보를 줬는지는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그건 지금부터 알아보면 되겠군요. 요새에 남은 세이갈가의 규모는 얼마나 됩니까?”
“가신, 하인을 제외하면 전투 인원이 아주 많지는 않습니다. 다만 제 아비가 가주가 되기 전. 신성으로 알려졌던 록스, 락스 세이갈 형제와 굵직한 녀석들이 몇 있더군요. 원로들도 무딘 자들은 아닙니다.”
록스, 락스 세이갈. 진도 전쟁사를 다룬 서적들에서 몇 번쯤 본 적 있는 이름이었다. 스마리온이 없었다면 무난히 귀신대의 가주가 되었을 인물들.
비록 오랫동안 존재감이라곤 하나도 없이 숨어서 지냈다곤 하나, 검을 완전히 놓지만 않았다면 여전히 엄청난 실력자일 터였다.
“기다리고 계시면, 저와 부하들이 가서 처리하고 오도록 하겠습니다.”
“아니, 같이 갑니다. 아군 전력도 파악하고, 합도 맞춰볼 겸.”
페이가 대원들과 포위망을 짜고, 진과 라타, 그리고 각 조장들 일부가 요새를 치기로 했다.
“중요 자료가 있을지도 모르니 내부가 파괴되는 건 최대한 조심해주십시오. 가능하다면 빠르고 조용하게 제압합니다.”
“예, 주군.”
“그리고 혹 민간인이 있다면, 그들은 모두 구출 대상으로 분류해야 합니다. 거슬린다고 함부로 살해해선 안 된다는 말입니다.”
명문 무가나 황실, 귀족가와 달리. 용병들은 으레 그런 식으로 일을 처리했다. 의뢰 수행 중 민간인, 그중에서도 돈이 되지 않는 민간인이 발견된 경우에 귀찮은 일이 생기면 죽여서 처리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제 귀신대는 그냥 용병대가 아니었다. 진의 휘하로 들어왔으니 명가의 방식을 따를 필요가 있었다.
“명심하겠습니다.”
얼마 뒤 페이가 포위망 구축을 끝냈다고 신호를 보내자, 진과 라타, 조장들이 어둡게 물든 사막으로 스며들어 갔다.
세이갈가의 마지막 거점은 지하 요새였다.
그들은 이곳에서 마약과 각종 검은 상품들을 유통하며 부를 축적했고, 배신한 원로들과 함께 프로치 남매를 밀어내고 다시 귀신대를 장악할 꿈을 꾸고 있었다.
부드럽게 밟히는 모랫바닥 한가운데 발바닥으로 유난히 딱딱한 감각이 전해졌다. 지하 요새로 통하는 입구였다.
문을 확인하기 위해 모래를 쓸어내자마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구냐?”
비밀 요새인 만큼 외부엔 경계병을 배치하지 않았으나 항상 문 아래로는 사람이 있었다.
그가 재차 일행의 신원을 묻기 전에, 한 조장이 문 위로 독 발린 장침을 내리꽂았다.
푹! 작은 소음과 함께 문 너머에서부터 짧은 떨림이 전해졌고, 금방 멎었다.
문지기가 절명하는 떨림이었다. 이후 다른 조장은 귀신대만의 방법으로 특별하게 제조한 폭약을 이용해 소리 없이 자물쇠를 날려버렸다.
과연 세계 양대 용병대답게 그들은 잠입에도 특화된 모습을 보여주었다.
내부로 진입하자 드넓은 공간이 드러났다. 꼭 거대한 개미굴을 보는 기분이었고, 일행은 곧장 세이갈가의 잔당들과 마주칠 수 있었다.
“침……!”
입이다!
그중 단 한 사람도 내부에 위험을 전파하는 말을 끝맺지는 못했다. 모두 진과 귀신대의 검에 목이 떨어져 단말마의 비명조차 남기지 못한 것이다.
진은 딱 한 사람만 살려 그에게 잠시 말할 기회를 주었다.
“사, 살려주십시오. 저는 그, 그저 고용된 용병일 뿐입니다.”
“세이갈 형제는 어디에 있나.”
“중앙의 가장 안쪽 방에…… 제발.”
딱히 직접적인 원한은 없고, 순순히 세이갈 형제의 위치까지 알려주었으며, 차후에도 그리 위협이 될 인물도 아닌 데다, 정말 고용된 용병에 불과하지만.
진은 그를 살려주지 않았다.
되도록 쓸데없는 살상은 피하자는 주의지만, 진은 적진의 적병들에게까지 자비를 베풀 만큼 물렁한 인물이 아니었다.
푹! 진이 그의 숨통을 끊자 따라온 조장들이 속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민간인을 구해주자고 말하기에 혹 물렁한 모습을 보이면 어쩌나 싶었는데.’
‘설마 우리 대장이 그런 머저리에게 충성을 맹세하자고 했겠어. 앞으로도 걱정 없겠군.’
진이 칼날에 묻은 피를 털어내며 조장들에게 눈짓을 주었다.
“여기서부턴 흩어지도록 하겠습니다. 나와 라타는 세이갈 형제를 처리하러 갈 테니, 조장들은 나머지 공간을 수색하십시오.”
“알겠습니다.”
조장들이 흩어졌고, 진과 라타는 빠르고 은밀하게 세이갈 형제의 거처로 걸음을 옮겼다.
유난히 뛰어난 실력을 지닌 두 사람인 만큼, 가는 길에 마주친 이들은 대부분 둘을 인지하지도 못한 채 죽음을 맞이했다.
이윽고 마지막 방에 닿자, 두 사람은 무장한 채 서 있는 세이갈 형제를 마주할 수 있었다.
“라타 프로치, 네놈……!”
“여길 어떻게 알고 찾아온 것이냐?”
라타는 대답하지 않고 쌍검을 가볍게 돌렸다.
“좋아, 결국 이렇게 끝을 보게 되는군. 하지만 혼자 우릴 상대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나?”
“와라!”
그들은 라타의 옆에 선 남자, 진이 그보다 뛰어난 무인이라는 가정을 아예 배제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록스 세이갈은 라타의 움직임에만 온 신경을 집중하다가, 곧장 다리가 잘리는 수모를 겪어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