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431)
제 444화
124화. 위기의 원로들(6)
스걱!
시그문드가 록스의 뼈와 살을 베며 예리한 소음을 일으켰다.
록스는 본래 이렇게까지 간단하게 당할 인물이 아니었으나, 라타 쪽으로만 신경을 곤두세운 결과는 참담했다.
뒤늦게 반응해 몸을 빼려 했지만 이미 잘려나간 다리의 절단면에서 피분수가 쏟아지고 있었다.
“크악……!”
다리를 잃은 시점에 싸움은 끝이 난 것이나 다름이 없다.
진은 여유롭게 록스의 반대쪽 다리까지 잘라낸 후, 간신히 넋을 붙잡고 있는 락스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이자가 죽지 않도록 처치를 해두십시오, 라타 경.”
“감히, 록스를!”
“감히? 내가 누구인지 알고 함부로 그따위 말을 지껄이는 것인가, 락스 세이갈.”
쩌엉-!
돌진한 진의 칼날이 락스의 이마로 떨어졌다. 락스는 그 일격에 어렵지 않게 반응했으나, 제 검신을 찍어 누르는 힘에 충격을 받고 있었다.
‘무슨 힘이!’
그저 한 합을 나눴을 뿐인데 손목이 덜그럭거리고 자세를 붙잡아주는 근육들이 모조리 찢어질 것 같았다.
대체 이자는 누구인가, 그런 의문이 락스의 뇌리를 스친 찰나.
프즈즛-!
푸르고 흐릿하게 빛나는 시그문드의 검신에서 뇌전이 번졌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뇌전이 상징하는 것은 페이텔의 계약자였으나, 이제는 아니었다.
진 룬칸델, 검에서 뿜어지는 뇌기는 이제 그를 상징하는 힘이었다.
“진 룬칸델……!”
“알아봤으면 얌전히 검을 받아라.”
명왕검 평식 벼락이 락스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락스는 나름대로 경지에 이른 무인인 만큼 처음 겪는 형태의 공격에도 탄력적인 대처를 보여주었다.
하지만 그게 전부였다.
애초에 순수한 검술 기량에서도 진은 락스를 한참 앞지르고 있었다. 본격적으로 공방이 시작되자마자 락스는 뒤로 밀려나기만 하는 그림이었다.
“원로들의 말대로, 정말 룬칸델의 개가 된 것이냐. 라타 프로치!”
라타는 록스의 다리를 거칠게 지혈하며 어깨를 으쓱였다.
“배신자들이 말을 잘못 전한 모양이로군, 락스. 비슷하긴 하지만 조금 달라. 룬칸델이 아니라, 진 룬칸델의 개가 되기로 한 것이지.”
“수치를 모르는 놈이로다.”
“수치? 용병 세계에선 지는 게 무엇보다 큰 수치다. 너희와 원로들은 잘못된 선택을 했고, 그 대가를 치르고 있을 뿐.”
락스가 눈을 부라리며 라타에게 달려들었으나, 진은 간단히 그 앞을 가로막았다.
카가강!
시그문드와 그의 칼이 맞부딪히며 불꽃이 튀었다.
이길 수 없는 건 물론이고, 빠져나가는 것조차 불가능하다. 락스 세이갈은 빠르게 그런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락스 세이갈. 우린 그저 적으로 만났을 뿐이고, 아직까진 달리 쌓인 감정이 없다. 그러니 내 질문 몇 가지에 대답만 해준다면 고통 없이 보내주겠다.”
“스마리온이라는, 난데없이 나타난 괴물 놈에게 왕좌를 빼앗긴 것도 원통하건만. 고작 룬칸델의 12기수 따위에게 이런 소릴 듣게 될 날이 올 줄은 몰랐군.”
“내 제안을 거부한다는 뜻으로 이해해도 되겠나?”
진이 묻는 사이, 다른 쪽으로 향했던 조장 일부가 세이갈 형제의 방으로 들어섰다.
“주군! 잡아왔습니다.”
조장들은 다른 방에서 배신한 원로들을 붙잡아왔다. 독에 중독시켜 겨우 말만 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한 채였다.
원로들을 내려다보는 라타의 눈동자가 형형한 살기로 빛났다.
“이 늙은 쥐새끼들…… 내 뜻을 거역하고 살 수 있을 것 같았나. 게다가 세이갈과 내통하며 붙어먹을 다른 세력까지 알아보고 있었다는 말이지.”
당연하게도 진에겐 귀신대 원로들의 배신이 감정적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하지만 라타에게 이들의 배신은 상당한 충격일 수밖에 없었다. 원로들은 세이갈가의 사람들이기도 했지만, 라타와도 오랜 시간 동고동락해온 것이다.
“네놈들 덕분에 혈맹을 맺자마자 주군께서 귀신대의 위험 요소를 감당하도록 만들어야 했다. 그러니 지금부터 내가 묻는 말에 성실히 답하도록 해라.”
라타가 록스를 원로들 옆에 앉히며 말을 이어갔다.
“첫째, 네놈들이 고른 세력은 어디인가. 둘째, 그들에게 나와 주군의 동맹과 귀곡새성의 비밀을 알렸는가. 대답이 성실하지 못하면 네놈들은 물론이고 죄 없는 혈육들, 친지들, 기르는 개까지 모두 살점을 하나하나 발라 죽일 것이다.”
결코 빈말이 아니었다. 라타는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위인인 것이다.
“푸흐하하…….”
잠시 정적이 흘렀고, 붙잡혀온 한 원로가 별안간 웃음을 터뜨렸다.
“라타 프로치! 혈육과 친지들을 죽이는 게 우리에게 엄청난 고통이 될 것 같은가?”
“뭐라?”
“그쪽은 어떻게 생각하나, 진 룬칸델. 그런 게 두려웠다면 우리가 귀곡새성을 떠났을 것 같나?”
원로들뿐만이 아니라 락스 세이갈도 입꼬리를 올리고 있었다.
“라타, 방금 전에 내게 그랬지. 나와 록스, 원로들은 잘못된 선택을 했고 대가를 치르고 있다고. 용병 세계에서 가장 수치스러운 건 지는 것이라고. 그래…… 그 말은 틀리지 않다.”
락스가 호흡을 고르며 한결 차분해진 목소리로 말했다.
묘하게 자신감이 넘치는 얼굴, 진은 어디선가 그런 종류의 표정을 본 적 있는 것 같았다.
“그런데, 잘못된 선택을 한 쪽이 과연 우리일까?”
“락스 세이갈, 무슨 개소리를 지껄이는 것이냐.”
“내가 생각하기에, 결국 마지막에 대가를 치르는 것은 우리가 아니라 네놈일 것이라는 뜻이다. 룬칸델? 틀린 건 너다, 라타.”
분명 절체절명의 상황일 텐데도 세이갈 형제와 원로들은 의기양양한 기색을 드러내고 있었다. 비굴하거나 구차한 모습 따윈 전혀 없는 것이다.
그 배경에 있는 것은 용기나 긍지가 아니다.
진은 직감적으로 그런 판단을 내렸다. 그리고 문득 떠오르는 한 사람이 있었다.
‘바르톤 비체나.’
룬칸델을 배신하고 지플의 편에 선 유일한 흑기사.
그자의 마지막 모습도 이런 식이었다.
-네놈들이 오늘 날 죽이더라도, 결코 변치 않을 진실이 있다. 첫째는 시론 경이 사라지면 룬칸델은 반드시 멸망한다는 것이고. 둘째는, 난 육신이 파괴되더라도 네놈들보다 오래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때가 되면, 너흰 결국 이 바르톤 비체나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을 터.
세이갈과 배신한 원로들은 그날의 바르톤과 똑같은 눈빛을 하고 있었다. 자신은 이미 죽음이 의미 없어진 세계에 들어섰다는, 그런 생각을 가진 자들만이 가질 수 있는 눈빛.
“지플이로군?”
진이 입을 열자 시선이 모여들었다.
“당신들은 지플에 붙었고, 정보를 흘렸어. 그리고 놈들에게 영생이나 초월적 힘을 약속받았을 것이다. 그러니 지금의 죽음 따윈 두렵지 않겠지.”
검을 고쳐 쥐며 락스를 쳐다보는 진.
“그런데 그거 아나? 예전에도 내게 그렇게 말했던 자가 있었어. 그에게, 난 나와 내 누이가 마신석을 부쉈던 일화를 들려주었지.”
‘마신석’이라는 단어가 나오자 세이갈 형제와 원로들이 흠칫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니…… 마신석을 너무 맹신하지는 않는 게 좋을 거야. 애초에 그게 그만큼 전능한 힘을 가진 돌이라면, 너희가 이 자리에서 죽는 것은 말이 되지 않거든. 라타 경.”
“예, 주군.”
“더 알아낼 정보도 없습니다. 다 죽이십시오.”
라타가 고개를 끄덕인 찰나, 락스가 진을 노려보았다.
“선물을 주지, 진 룬칸델.”
“필요 없…….”
지이이잉-!
별안간 락스의 온몸에 붉게 빛나는 문자들이 떠올랐다. 붙잡혀 있는 록스와 원로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진과 라타는, 바로 얼마 전에 그 붉은 문자와 매우 흡사한 무언가를 본 적이 있었다.
‘스마리온을 가두고 있는 그 봉인과 똑같다……!’
대대로 귀신대의 원로회에게만 전해진, 술자의 생명을 재료로 사용하는 봉인.
세이갈의 잔당들은 마지막으로 그 봉인을 펼치려고 하고 있었다. 록스와 락스는 이미 오래전 라타를 배신한 원로들에게 이 봉인을 전수받은 것이다.
“네 아비와 같은 신세가 되겠구나, 라타!”
“이 미친놈들이……! 스스로 식솔들까지 다 죽일 셈이냐?”
라타의 물음에 락스가 킬킬 웃음소리를 흘렸다.
“그딴 것들까지 챙길 이유가 있겠나, 내게. 차후 귀신대를 되찾고 다시 얻으면 그만이다.”
말하자면 세이갈의 잔당들은 자폭을 시도하고 있었다.
요새에 남은 혈육과 식솔이 아무런 가치가 없다고 말하는 것이 진심인지, 아니면 자신들은 타격이 없다며 허세를 부리는 것인지 알 수는 없었다.
다만 놈들이 정말로 요새 전체를 봉인할 생각이라는 건 명확했다.
붉게 물든 잔당들의 몸이 금방이라도 터질 듯 부푸는 모습이 이어졌다.
“정말 잘못된 선택을 한 것이 누구인지, 지옥에서 잘 생각해보아라!”
크하하카하아아, 아아, 으, 윽……!
길게 이어지던 락스의 웃음소리가 급격히 잦아들었다.
사방에 붉은 봉인이 그려졌고, 세이갈 잔당들의 몸이 통째로 비틀어지고 끊어지며 그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스마리온을 가둔 것과 똑같은 봉인이 일행을 가두려고 하는 것이다. 마치 어느 거인의 손아귀가 쥐어지듯, 붉은 기운들이 좁혀지고 있었다.
라타와 조장들은 반사적으로 봉인에 검을 휘둘렀다.
칼날이 닿기는 했으나, 물처럼 베인 자리가 금세 본래대로 돌아가는 모습이었다.
“주군! 저와 조장들이 길을 내어보겠습니다. 주군이라도 빠져나가십시오.”
혈맹이 되고 채 며칠이 지나지도 않았건만, 라타는 단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그렇게 말했다.
“봉인이 회복되기 전에, 계속 베어버리면 주군이 빠져나갈 틈 정도는 생길 수도 있습니다.”
라타가 말하는 사이 진도 봉인의 특성을 확인해보고 있었다. 오러로 베면 라타 무리가 그랬던 것처럼 곧장 되돌아왔고, 뇌기를 사용하면 확실히 복구가 더뎠다.
뇌기만으로도 절기나 투신기를 연속으로 펼치면 다 같이 빠져나갈 수 있을 것 같았으나, 굳이 그럴 필요가 없었다.
‘과거 뮤론 지플이 연 지옥문을 벨 때도 느꼈지만, 이런 건 확실히 영기가 가장 잘 통하는군.’
브라다만테에 영기를 둘러 휘두르자 봉인이 종잇장처럼 잘려나가고 있었다.
심지어 앞선 모습들과 달리 복구조차 극도로 느렸다.
“라타 경. 굳이 다 같이 목숨 걸 필요는 없을 것 같군요. 내가 길을 열 테니, 나갑시다.”
그 말에 라타와 조장들은 또 한 번 깨달을 수 있었다.
앞으로 열릴 새로운 시대에서, 가장 먼저 최고의 줄을 붙잡은 건 분명 자신들이라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