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442)
제 444화
127화. 흑왕단으로(4)
쿵!
도끼검의 굵은 자루가 제피린의 뒤통수를 후려쳤다. 누가 친 것이 아니라, 본인이 무르카에게 몸을 숙이다 벌어진 일이었다.
“윽!”
뒤통수를 부여잡는 제피린을 보며 무르카는 답답한 마음에 제 가슴을 주먹으로 퍽퍽 내리치고야 말았다.
대체 어디서 이런 게 굴러들어와 3군의 기강을 흐리고 있는지 알 길이 없을 정도였다.
“죄송해요, 대장님!”
“죄송하면 용병 생활 끝…….”
“앗, 진 룬칸델 경이잖아요!?”
제피린이 눈동자를 반짝이며 진을 쳐다보았다.
진과 무라칸은 이 다소 바보처럼 보이는 젊은 여인이 악마룡일 수도 있다는 사실이 묘하게 느껴졌다.
다만 무라칸은 그녀에게서 풍겨지는 냄새를 유심히 맡아보고 있었다.
-무라칸, 넌 용이란 놈이 어쩜 이렇게 둔하냐? 아, 하긴. 원래 무신경한 놈이기는 하지, 네놈이.
-너한테 그런 소릴 들을 정돈 아니거든.
-그 인간에게서 뭔가 냄새가 나지는 않던?
검황성 연회장에서 무라칸과 퀴칸텔이 나눈 대화.
제피린에게선 인간의 감각 기관으로는 알아볼 수 없는, 진하고 끔찍한 용의 피 냄새가 났다. 그것도 여러 종의 피가 뒤섞였을 때 나는 냄새가.
하아악!
돌연 무라칸이 위협하는 소리를 내며 털을 곤두세웠다.
연회장에서 알아보지 못한 그 냄새를 맡은 것이다. 때문에 무라칸은 날카롭게 세운 발톱으로 당장이라도 제피린의 얼굴을 긁을 기세였다.
“엇!”
제피린은 화들짝 놀라며 뒷걸음질을 쳤다. 무르카는 그 모습이 무라칸이 그녀의 행동이 불쾌하다고 티를 내는 것이라 이해했다.
“……정말 죄송합니다, 진 경. 무라칸 님. 단장님은 아직 앞선 손님과 용무를 보고 있으니, 차례가 되면 곧장 부하들이 말씀을 드릴 겁니다.”
무르카가 끓어오르는 분노를 최대한 억누르며 말했다. 이내 그는 제피린을 데리고 어디론가 사라졌고, 휑한 응접실 복도엔 근무 중인 용병들과 진, 무라칸만이 남았다.
“방금 왜 그랬어? 저번에 퀴칸텔 님이 말한 냄새를 맡은 거냐?”
“냐아아옹!”
“변신해서 사람 말을 해.”
펑!
“그래, 그 냄새였다. 퀴칸텔 녀석이 알려주지 않았다면 이번에도 향수 냄새 때문에 눈치채지 못했을 것 같군.”
“네가 보기엔 어때.”
“그 여자가 악마룡일 것 같냐고?”
“응.”
“글쎄, 퀴칸텔 말처럼 무기에서 나는 냄새일 수도 있긴 하니까.”
제피린이 악마룡이라면, 지금까지 있던 두 번의 만남은 모두 우연이 아닐 수도 있었다.
그 경우 제피린이 의도적으로 접근할 일은 론텔기우스의 마도서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 찰나.
‘1기수를 만나고 싶다, 그 말이 과연 그냥 하는 말일까?’
무르카에 의하면, 제피린이 제대로 사용할 수도 없는 도끼검을 갖고 다니는 이유는 루나에 대한 동경 때문이었다.
그녀가 순수한 인간이라면 그저 조금 별나다고 생각하면 그만이지만, 불현듯 루나가 ‘오르갈의 펜던트’를 어떻게 구했는지가 떠올랐다.
‘누님은 과거 한 마족을 베고 그 펜던트를 얻었다고 했었어.’
마족을 베고 얻은 펜던트, 마족을 죽이고 얻은 마도서, 그리고 악마룡.
그저 우연의 산물이라기엔, 딱딱 맞아떨어지는 퍼즐 같은 구석이 있었다. 진이 이러한 내용을 말하자, 무라칸은 고개를 끄덕이며 이렇게 답했다.
“그냥 흑왕단장하고 볼일 끝낸 다음에 직접 물어보자. 너 악마룡이냐고. 그때는 연회장이어서 못 물어봤다지만, 찝찝해서 안 되겠다.”
“그래, 그게 낫겠군. 곧이곧대로 알려줄 리는 없지만.”
“걱정 마라, 다 확인하는 방법이 있다. 무튼 녀석이 악마룡으로 밝혀지면 네 형과 론텔기우스의 관계도 알아볼 수 있을 거다. 알고 있는 모든 것을 불 때까지 족치면 말이지.”
“우리보다 강할 가능성도 있잖아?”
“이 무라칸보다 강한 용이 세상 어디…… 후, 그래. 아직 힘을 다 되찾지 못했으니 그럴 수도 있겠군. 그럼 튀어야지, 뭐.”
어깨를 으쓱이는 진.
“그나저나 저 안에 있는 놈, 룬칸델인 것 같던데. 제피린이 1기수를 만나고 싶네 어쩌네 한 것을 보니.”
“상위 기수 중 한 사람이거나, 그들의 대행자겠지. 2기수 쪽일 것 같군.”
원로회와 갈등이 생긴 만큼, 조슈아는 부족한 전력을 보수할 세력이 필요할 터였다. 차기 가주로서 중립 세력을 포섭, 규합하는 모습을 보여줄 필요도 있고.
‘하지만 흑왕단은 오랜 기간 중립을 지켜온 세력인 만큼, 어지간한 대가로는 절대 포섭할 수 없다.’
지금 흑왕단장과 만나고 있는 이가 누구든, 단순 의뢰가 아닌 ‘포섭’을 위해 찾아온 것이라면 그만한 패를 쥐고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었다.
산채 하인들이 간단한 다과와 차를 내어왔다. 두 사람은 그걸 오독오독 깨어먹으며 조용히 차례가 다가오기를 기다렸다.
흑왕단장의 응접실 문이 열린 것은, 새벽 세 시에 다다른 무렵이었다.
“내일 아침에 다시 뵙겠습니다, 흑왕단장.”
“알겠소.”
흑왕단장과 손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야기를 보아하니 내일 마저 이야기를 이어가려는 모양이었다.
응접실 바깥으로 나온 인물은 로브와 후드로 온몸을 가리고 있었는데, 진은 한눈에 그가 조슈아나 다른 상위 기수가 아니라 그들의 대행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 역시 진과 무라칸을 알아보았다. 그리고 말없이 두 사람을 지나치려 했으나, 진이 먼저 그에게 말을 붙였다.
“이봐.”
로브가 멈춰서 진을 돌아보았다.
“너, 그때 그놈이지?”
그때 그놈.
검황성 연회장에서 마주친, 단테를 납치하려던 괴한 흑기사. 진은 로브가 바로 그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헷갈렸는데, 가까이 지나가니까 확실히 알겠군. 클로 사용자들은 걸을 때 티가 조금 나거든. 특유의 몸짓이 있다고 해야 하나?”
클로는 흔히 사용되는 무기가 아니지만, 진은 줄곧 길리와 함께 지냈으니 그 특성을 잘 알고 있었다.
“2기수가 꽤나 중대한 건을 맡기려고 하나 봐? 흑기사를 보낸 걸 보면. 안에서 무슨 이야기들이 오갔는지 이야기 좀 해줘. 나도 지금 흑왕단장을 만나야 하거든.”
“……여전히 잘 이죽거리는군. 옆에 흑룡이 계시니 겁나는 게 없는 모양이지.”
“글쎄, 첫 만남에 무라칸이 없을 때도 별다르지 않았던 것 같은데. 그때 끝까지 갔으면 과연 네가 지금 살아서 이곳을 찾을 수 있었을까?”
로브는 대답하지 않고 뒤돌아섰다. 진을 상대하다 까딱하면 무라칸과도 잘못 엮일 수 있다는 판단이었다.
“흑기사들에게 전해. 나는 언제나 열려있다고.”
“검은 투구들이 네 검이 될 일은 없을 것이다.”
“너도 잘 새겨듣고 말이야.”
로브가 떠나자 근무 중인 용병들이 흑왕단장의 응접실로 들어서라는 신호를 보냈다.
“들어오십시오.”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무라칸.”
“뭔데?”
“흑왕단장이 네 기대만큼 예의 바르지 않더라도 눈깔 착하게 뜨라느니, 턱을 돌려주겠다느니 그런 소리는 하면 안 된다.”
“……내가 바보냐?”
“그냥 걱정이 돼서.”
“쳇.”
그리 넓지 않은 복도 끝에 이런 공간이 펼쳐진다는 게 신기할 만큼, 응접실은 드넓은 위용을 자랑했다.
커다란 유리들이 인상적인 천장에서 새벽 달빛과 별빛이 쏟아졌다. 용병이라는 어두운 직업과 어울리지 않는 몽환적인 광경.
그 아래 흑왕단장 ‘발카스 크란’은 책상에 앉아 두 사람을 맞이했다.
가이파 군도의 대용병 아멜라, 흑왕단장 발카스 크란, 귀신대장 라타 프로치. 세계 3대 용병 중 아멜라와 더불어 수위를 다투는 인물.
‘확실히, 라타에 비하면 훨씬 박력 넘치는 느낌이로군.’
발카스에 대한 첫인상, 그는 앉아 있는데도 진보다 키가 큰 것처럼 보였다.
진은 그에 대해 세인들보다 뛰어나게 많은 것을 알지 못했다. 말하자면 그가 단장이 되기 전 어떤 전설적인 전공들을 올렸고, 얼마나 대단한 무위를 쌓았는지, 대략적으로 어떤 성격을 갖고 있는지. 그 정도만 알고 있었다.
전생에서도, 현생에서도 마주칠 일이 없기 때문이었다. 대외적으로 알려진 정보가 많은 인물도 아니고 말이다.
-발카스 크란. 흐응, 그거 생각보다 낭만적인 놈이긴 한데.
-네?
-제 식구를 엄청나게 아낀다고 해야 하나? 세계 최고의 용병대이면서 흑왕단 녀석들이 대체로 화기애애한 건 바로 그런 이유지.
-그렇군요.
-식구를 제외한 나머지 인간은 돈 주는 의뢰자, 혹은 살아있는 고깃덩이로만 취급한다는 게 문제지만 말이야.
흑왕산채를 찾기 전, 탈라리스가 발카스를 평한 말이 떠올랐다.
‘제피린이 그렇게 실수를 저지르는데도 혼이 나는 정도로 끝나는 것도 부하를 아끼는 마음 때문인가?’
아니면, 발카스 역시 제피린을 의심해 웬만하면 지켜보라는 명령을 내렸기 때문일까.
후자일 것 같았다. 아무리 부하를 아낀다 한들, 흑왕단은 군기가 강하고 날카롭기로 유명한 집단이기도 한 것이다.
발카스가 손을 들며 입을 열었다.
“어서 오시오, 룬칸델의 12기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발카스 경. 환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환대랄 것까지야. 옆에 계신 분은, 위대한 흑룡이신가?”
다소 불경한 말투에도 무라칸은 잠자코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히 발카스는 그 이상의 무례를 저지르지 않았다.
“부하들이 그대 이야기를 참 많이 하더군. 어린 그대를 호위했던 기억이 3군 녀석들에게 꽤나 즐거운 추억으로 남은 모양이야.”
“그렇습니까?”
“그리고 꼭 내 부하들이 아니더라도 룬칸델 12기수는 지금 세상에서 가장 뜨거운 인물이 아닌가. 어디서든 이야기가 돌 수밖에 없지. 나도 궁금한 마음에 한 번쯤은 만나보고 싶었다네.”
진과 발카스. 미소를 짓는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쳤다.
왠지 모르게, 진은 그가 자신이 무슨 의뢰를 맡기기 위해 찾아왔는지를 꿰뚫어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그 느낌은 몇 초도 지나지 않아 사실이 되었다.
“그대가 날 찾은 건, 아마 티칸 자유도시를 보호해달라는 의뢰를 맡기기 위해서일 것이다. 내 말이 틀린가?”
내심 당황스러웠으나 진은 내색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미리 의뢰 내용을 적은 편지를 드렸다고 착각이 될 지경이로군요. 그렇습니다, 발카스 경.”
진에게 ‘티칸 보호 수단’이 필요하다는 건, 세상의 권력자들 대부분이 어느 정도는 인지하고 있는 사안이었다.
발카스 역시 모를 수가 없는 것이다.
무엇보다 발카스는 방금 전 조슈아의 대행자가 다녀갔으므로 그 문제를 더욱 의식하던 상황이었다.
“안타깝지만 그 의뢰는 받기 어려울 것 같군.”
“조건을 들어보지도 않으셨잖습니까?”
“그건 그렇다만, 한발 늦었다는 뜻이네.”
조슈아는 흑왕단을 포섭하기 위해 사람을 보낸 것이 아니었다.
흑왕단이 진의 의뢰를 ‘받지 않도록’ 종용하기 위해 사람을 보낸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