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447)
제 444화
128화. 제피린(4)
후우우웁!
마기를 들이마시는 제피린의 목대가 불길하게 부풀었다.
무라칸과 더불어 샤쿠가 그녀의 반대쪽 눈알에 벼락을 떨궜으나 숨결이 모이는 속도를 늦추지는 못했다.
그저 한 호흡 들이마신 것에 불과하나 그 속에 담긴 것은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힘, 무라칸과 발카스도 흠칫 놀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진은 제피린의 숨결이 정확히 자신에게 조준되고 있음에도 평정을 유지할 수 있었다.
확신이 있기 때문이었다.
‘제피린은 날 죽이지 않는다.’
혹은, 못한다.
마신석이든, 다른 끔찍한 무언가를 만들기 위해서든. 진이 가진 솔더렛의 힘은 가장 핵심적인 요소였다.
예비 기수 시절 추론해냈듯, 지플과 킨젤로는 모두 신의 계약을 옮길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지만.
진은 그 수단이 자신에게 아주 간단히 통용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쉽게 가능하다면 지플과 킨젤로, 조슈아 셋 모두 자신을 죽이는 일에 더욱 적극적이어야 했다.
지금 제피린이 이만한 힘을 갖고도 싸움에 진지하지 않은 것 또한 같은 선상의 이야기였다.
‘우릴 몰살하는 게 목적이라면, 훨씬 더 강력하게 힘을 드러냈을 것이다.’
제피린이 한 호흡에 모은 숨결의 위력은 분명 충격적인 수준이지만, 그녀가 보여준 초월적인 무위를 생각하면 이상할 것도 없었다.
또한 일행이 감당하지 못할 수준도 아니었다. 이를테면 제피린은 진을 죽이지 않기 위해 힘을 억지로 조절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콰아아-!
제피린이 거대한 주둥이를 벌리자 폭풍이 시작된 듯 아공간의 바람이 마기와 함께 미친 듯이 출렁였다.
그녀가 토한 숨결에서 마구잡이로 번진 인력과 척력에서 비롯된 풍압, 그 사이로 보랏빛 광선 형태의 숨결이 진을 향해 떨어지고 있었다.
[쳇, 짜증나는군!]무라칸이 급히 하강하며 제피린의 숨결을 가로막는 모습이 이어졌다. 숨결은 지상에 닿기 전, 무라칸의 날개와 함께 펼쳐진 영기 장막에 먼저 닿았다.
마기는 영기 장막 속으로 대부분 빨려 들어가고 있으나, 그렇지 못한 파편과 다른 광선들은 샤쿠와 발카스가 쳐내야 했다.
용과 사람들의 기운에 아공간 전체가 위태롭게 흔들리고 있었다.
평범한 무인들은 이 전장의 압력을 견뎌내는 것조차 어려울 것이다. 힘과 힘이 부딪힐 때마다 귀와 골이 멍멍해지고 온몸이 짜릿짜릿한 감각이 솟구쳤다.
일행이 잘 막아냈기 때문인지 제피린은 보다 강한 마기를 담아 두 번째 숨결을 쏘았다.
그녀는 무라칸보다도 오랜 세월을 살아왔으나, 대부분의 이들이 그렇듯 이러한 싸움을 해본 적이 없었다.
죽이고, 철저히 짓밟고, 흔적도 없이 파괴하고.
그런 전투라면 어려울 게 없지만 샤쿠와 발카스는 죽이고, 무라칸은 죽지 않을 만큼만 공격하며 진은 생포해야 하는 상황은 제피린의 입장에서 상당히 짜증나는 일이었다.
게다가 썩어도 준치다.
무라칸의 저항은 제피린의 예상을 한참 벗어나고 있었다. 힘을 일부 되찾은 듯 보인다는 이야기는 들었으나, 이 정도일 줄은 알지 못했다.
또한 제피린도 느끼고 있었다.
‘이 교활한…… 내가 당신을 죽이지 않으리라고 확신하고 있군요, 진 룬칸델.’
진을 휘감고 있는 청화의 불꽃이 소름 끼치도록 불쾌했다.
심지어 이대로라면 그 불꽃은 곧 아공간 일부를 찢어낼 터.
문득 오늘이 아니라 다른 날 더 좋은 기회를 엿보는 게 더 나았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소 충동적으로 일을 저지른 것일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왜 주인이 당신을 눈여겨보고 있는지 알 것 같기는 하네요.’
크자작! 프스스슷……!
두 번째 숨결이 영기 장막과 충돌하며 상쇄되었다.
간신히 방어에만 급급한 듯 보이지만, 무라칸은 슬슬 반격을 준비하고 있었다.
[적당히 쏜 것 같은데, 위력이 꽤 괜찮기는 하구나.] [칭찬이 그다지 달갑지 않네요, 하하.] [그래, 그렇겠지. 그리고 이것도 달갑지 않을 것이다.]무라칸이 말을 끝맺자마자 빛에 따라 그림자가 움직이듯, 거대한 장막이 나뉘어 세 개의 덩어리가 되었다.
하나는 계속 방어를 위해 무라칸의 뒤편에 있었고, 나머지 둘은 제피린의 좌우에 자리를 잡았다.
영기라는 힘의 특성상, 제피린은 장막이 자신의 좌우에 펼쳐진 사실을 알아채지 못했다. 영기는 다른 힘과 달리 아무리 그 힘이 거대해도 읽는 게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었다.
무라칸의 몇 배를 뛰어넘는 거대한 몸체도 좌우의 영기 장막을 확인하지 못한 것에 한몫 일조를 했다.
힘의 흐름을 느낄 수 없다면 오직 시야로 확인을 하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제피린의 시야각은 한정되어 있는 데다, 여전히 보랏빛 연기에 가려져 있는 몸뚱어리는 척 보기에도 그녀 자신조차 한눈에 담을 수 없을 것 같았다.
[또 무슨 허세를 부리시는…… 아!]제피린이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눈치챈 것은, 무라칸이 그녀의 좌우에 펼친 영기 장막에서 ‘마기’가 빠져나오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장막으로 흡수한 숨결을 그녀에게 되돌려주려는 것이다.
영기, 즉 그림자.
그 힘은 단지 오러나 마력보다 2성 이상 높은 효율을 갖고 있는 것만이 아니었다. 평범한 힘은 결코 흉내 낼 수 없는 특수성 또한 지니고 있었다.
그림자가 비춰지는 것처럼 무언가를 흉내 내거나 복사하는 것.
무라칸이 장막으로 제피린의 숨결을 되돌려주고 있는 건 바로 그런 원리였다.
‘이런 건 그 말종의 방식이라 쓰기 싫었는데 말이지.’
무라칸이 선호하는 방식은 아니었다. 과거의 그는 영기의 이런 특성을 잡기로 취급해도 좋을 만큼 강한 힘을 갖고 있었으니 사용할 필요가 없었다.
반면 미샤는 진과의 첫 만남에서부터 보여주었듯, 영기의 무궁무진한 확장성을 다루는 일에 능했다.
‘그 망할 녀석한테 괴롭힘 당할 때 강제로 익힌 것을 이렇게 써먹는 날이 올 줄은 몰랐군. 4할이라도 힘을 되찾지 못했다면 이조차 어림없었겠지만.’
흥! 무라칸이 머릿속에 떠오른 미샤의 흉측한 몰골을 지우며 콧소리를 내었다.
치이이잉!
좌우에 펼쳐진 장막이 날카로운 소음을 일으키며 마기를 쏘았다.
그 마기는 영기가 더해져 제피린이 토한 숨결보다 강대한 힘을 품고 있었다. 제피린의 거대한 몸뚱어리로 마기를 피하는 건 무리였다.
[하! 어디서 이런 못된 걸 배우셨는지……!]보호막을 펼칠 틈이 없었다.
태산 같은 몸집은 전투에 있어 대부분 유리한 역할을 해냈으나, 이런 예상치 못한 공격에 있어선 대응이 불편할 수밖에 없었다.
마기가 제피린의 몸통을 후려치자 마치 성채가 무너지는 듯 묵직한 굉음이 일었다. 뚝뚝 비늘이 부서졌고 그 안에 감춰진 살과 뼈가 뒤틀리는 소리가 머리털을 곤두서게 만들었다.
기아아악……!
결코 들을 수 없을 것 같던 비명이 이어졌다.
[자기 숨결에 당하는 건 아마 처음일 거야, 어? 그렇지?]무라칸이 웃음기 가득한 사악한 목소리로 말했고, 제피린은 한동안 고통에 몸부림을 쳐댔다.
반사적으로 꼬리를 휘두르고 사방으로 숨결을 토하고, 미친 듯이 마기를 분출해 허공을 독샘처럼 물들이기도 했다.
무라칸과 샤쿠는 제피린의 난동을 피하며 잔뜩 감각을 끌어올렸다. 제피린의 단순 몸부림에도 잘못 걸리면 그들은 모두 치명상을 입을 수 있었다.
아슬아슬하게 마기와 휘둘러진 꼬리, 몸통 사이를 도약, 비행하는 두 사람은 모두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지금이야말로 이번 전투에서 자신들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혹은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고.
흑기사만 보호하고 있던 발카스도 이 순간은 놓칠 수 없기에 잠시 전장으로 몸을 던졌다.
세 사람은 혈안이 되어 벌어진 상처를 찾았다. 제피린이 회복하기 전에 마기에 당한 상처를 통해 어떻게든 추가적인 피해를 입혀야 했다.
샤쿠는 괴성을 지르며 벼락을 떨궜고 발카스는 혼신의 힘을 담아 정권을 내질렀다.
비늘이 터진 자리에 벼락과 정권이 떨어진 다음 순간, 일행의 눈앞에 펼쳐진 것은 일평생 전장의 피를 뒤집어써온 그들조차 당황할 만큼 끔찍한 피분수였다.
푸하아악-!
제피린의 터진 살점 사이로 폭포 같은 핏줄기가 쏟아졌다. 그 피는 흑기사를 혼수상태에 빠뜨린 독기를 고스란히 품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무라칸은 독기를 뚫고 발카스와 샤쿠가 터뜨린 상처로 날아들었다.
몸뚱어리의 중간 마디쯤 되는, 인간에 빗대면 복부라고 할 수 있는 위치였다. 말하자면 누가 보더라도 급소였다.
무라칸은 흡사 동굴처럼 보일 만큼 파인 상처 속으로, 모든 힘을 끌어올린 숨결을 토해냈다.
이윽고 무광의 검은 선은 제피린의 몸통을 관통했다.
허리가 끊어졌다고 표현해도 좋을 것이다. 일행 모두가 제피린의 등골이 무라칸의 숨결에 부러지는 것을 직감하고 있었다.
후욱, 후우, 후……!
무라칸이 가쁜 호흡을 내뱉으며 허공에 자리를 잡았다. 발카스와 샤쿠도 그 아래에 서서 숨을 골랐다.
놀랍도록 시끄럽던 전장이 일순 일행의 거친 숨소리가 들릴 만큼 고요해졌다.
극히 짧은 고요였다. 몸통이 뒤로 꺾인 채 미동이 없던 제피린이 흐읍, 숨을 토하며 고개를 든 것이다.
[……와아, 이건 정말 놀라운데요?]사방에 퍼진 마기가 모여들어 휑하게 뚫린 복부를 채우고 있었다. 재생 속도가 너무 빨라 어찌 손을 쓸 도리도 없었다.
[이렇게 아파본 게 대체 얼마 만인지도 모르겠다구요.]전혀 타격을 입지 않은 것은 아니다.
무라칸은 그렇게 확신했다. 그건 전성기의 자신에게도 불가능한 일이니까. 다만 피해를 입었어도 제피린이 전투를 속행하기에 문제가 있는 수준은 아니라는 판단도 함께였다.
‘제대로 지독한 놈이 걸렸군.’
그나마 다행이라면.
아공간을 베기 위한 진의 정신 집중이 이제 막 끝났다는 사실이었다.
예상치 못한 타격과 고통에 정신이 팔렸었다. 영기와 함께 브라다만테에서 활활 타오르고 있는 청화를 본, 제피린의 눈동자가 어두워졌다.
스아악!
브라다만테의 칼날이 어두운 아공간에 푸르고 날카로운 궤적을 그렸다.
그러자 마치 차원문이 열리듯, 아공간이 벌어지며 인세의 모습이 드러났다.
그 너머로 보인 풍경은 일행이 있던 응접실이었고, 집기 하나 부서지지 않은 채 멀쩡한 상태였다.
그리고 다음 순간.
일행은 기대하지 않고 있던, 제피린의 약점 한 가지를 발견할 수 있었다.
‘내가 아공간을 베자마자, 놈의 몸집이 작아지고 있다……!’
직감적으로 알아챌 수 있었다.
제피린은, 이 아공간 속에서만 본모습으로 변신할 수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