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456)
제 444화
131화. 감이 좋은 사람들, 감이 좋지 않은 사람들(1)
1800년 1월 말. 여전히 티칸 자유도시는 흑왕산채의 장비들을 옮기고 설치하느라 정신없이 바쁜 상태였다.
룬칸델이 흑왕산채에 파견을 보낸 수호기사들은 처음엔 흑왕단원들의 자부심과 자존심을 마구 헤집는 요소였으나, 이제는 단원들도 편리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들이 비세 왕국에 떡하니 버티고 있으니 똥파리들이 꼬이지 못하는 것이다.
룬칸델이 없었다면 그에 상응하는 티칸의 전력들이 그 역할을 대신 해주어야 했다. 갑작스러운 흑왕산채의 붕괴로 뒤숭숭하게 흘러가는 국제 정세 속에서 그건 상당히 피곤한 역할이었다.
무엇보다도, 단원들은 비세 왕국에 주둔한 수호기사들의 지휘자가 바뀐 것이 흡족했다.
“흐음, 저 녀석들. 분명 억울한 패잔병 같은 얼굴을 하고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말이야. 막상 와보니, 다들 패배를 담담히 받아들인 분위기네. 아니, 그걸 넘어 뭔가 만족스러워하는 느낌까지 든다는 말이지?”
아삭!
메리가 사과를 베어 물며 말했다. 그 옆에 서 있는 남자는 당연히 디푸스 룬칸델이었다.
그들은 행여 다른 기수들이나 원로회(최근 진에게 거의 접혀버린 분위기지만)가 ‘막내의 전리품’을 조심스레 다루지 않는 불상사를 막고자 이곳을 찾아왔다.
아니나 다를까.
처음 찾아왔을 때만 해도 주둔 중이던 조슈아의 기사들은 흑왕단원들을 함부로 대하는 모습이었다.
흑왕단원들은 새로운 주군이 쓸데없는 분쟁에 휘말리지 않도록 그 불쾌한 태도를 꾹 참았고, 메리와 디푸스가 온 다음에서야 기분 좋게 일을 할 수가 있었다.
두 사람이 수호기사들의 군기를 잡아준 것이다. 그리고 그 행동은 단지 막내를 어여삐 여기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었다.
자극, 누군가 막내를 어설프게 건드렸다가 또 가문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는 불안감.
싸움에 ‘미쳤다’고 표현해도 부족함이 없는 메리조차, 최근의 룬칸델은 잠시 안정기를 가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뭐, 우리가 우산 노릇 해주러 온 첫날엔 다들 독이 바짝 올라 있긴 했지. 진이 아니라 2기수의 아랫것들에게.”
메리가 던진 사과를 받으며 디푸스가 말했다.
한동안 남매는 나무에 걸터앉아 사과를 수십 개나 해치우며 흑왕단원들이 일하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나도 한번 흑왕단 전체랑 진하게 붙어볼걸. 아쉽긴 아쉽네. 부럽다! 막내 녀석.”
흑왕단을 얻은 것보다 흑왕단과 결판을 냈다는 사실이 더욱 부러운 메리였다.
“엄밀히 말하면 막내 혼자 싸운 것은 아니지. 무라칸, 그분이 없었다면 이런 결과는 결코 나올 수 없었다.”
“또 모르는 일이야. 무라칸 님의 무력이 대단하단 건 이번에 밝혀졌지만, 2기수의 펜대들이 그분을 찬양하는 기사를 쓰는 모양새가 이상할 정도로 집요하거든. 꼭 흑왕단 사태에서 진의 무위와 활약은 완전히 배제하려는 것처럼.”
“무라칸 님을 지나치게 찬양하는 건, 진의 힘을 돋보이지 않게 하기 위함이다?”
“내 생각은 그래. 2기수도, 우리도, 그날 가문에 있던 다른 모두도. 두 눈으로 똑똑히 봤잖아? 가주 선언을 한 날, 녀석이 얼마나 어마어마했는지.”
마검 비기 업화와 명왕군림검, 검의 정원을 반파시킨 진의 모습을 떠올리니 소름과 전율이 돋았다.
“당시 녀석은 잘린 두 팔이 회복된 직후에 그런 무위를 보였어. 컨디션이 최고였을 가능성은 한없이 낮지. 어쩌면 최악에 가까웠을지도 모르고.”
“그건 너무 가지 않았냐. 최악의 컨디션으로 그 난리를 쳤다면 이미 가주는 막내의 몫이다.”
“하지만 상상이 되지 않아?”
“뭐가?”
“녀석이 혼자 흑왕산채를 박살 내는 모습. 그 어마어마한 마검과 명왕검을 펼치며 말이야…….”
마치 맛있는 음식이라도 떠올리는 듯, 그 모습을 상상하는 메리의 입속에 군침이 돌았다.
디푸스는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으나 사랑하는 동생의 말을 부정할 수는 없었다. 상상이 되는 것이다, 어렵지 않게.
홀로 검의 정원을 반파시킨 인물이 흑왕산채를 어쩌지 못하는 것이야말로 이상한 생각처럼 느껴졌다.
“무라칸 님이 대신 싸워줘서 나온 결과라면, 흑왕단이 저렇게 흡족한 듯 일을 하고 있을까? 마음 깊이 인정할 수 있는 주군을 만난 듯한 눈빛들이잖아. 수호룡 믿고 까부는 애송이한테? 그럴 리가 없지.”
“듣다 보니 일리는 있군.”
“게다가 며칠 잘 지켜본 결과, 흑왕산채에 있던 장비들 말이야. 중요한 것들은 이상할 정도로 멀쩡하거든. 나는 그것도 마냥 운이 아닐 것 같네?”
“……막내가 힘을 조절하면서 싸웠을 수도 있다는 말이냐? 중요 전리품들이 훼손되지 않도록?”
“응.”
솔직히 말이 되지 않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실제로…… 이상할 만큼. 최고로 비싸고 구하기 어려운 장비들 중엔 재활용이 불가할 만큼 손상된 장비가 하나도 없었다.
남매는 알 수 없지만.
그건 순전히 운의 영역이었다.
제피린이 난동을 부린 날, 운 좋게도 그녀의 공격은 흑왕단의 최고가 장비들을 모두 빗겨나갔다. 한술 더 떠 쉴 새 없이 일어난 산사태조차 그 장비들을 파괴하지 못했다.
그저 운으로 인해!
그 불가해한 수준의 운을 배제하고 있기에 메리가 펼치는 상상의 나래는 저 멀리까지 날아가고 있었다. 디푸스조차 설마, 설마, 긴가, 민가, 하는 마음이 들 정도였고 말이다.
또다시 남매 사이에 정적이 흐르는 와중, 흑왕단원들이 호탕하게 부르기 시작한 노동요가 산맥을 두들기고 있었다.
“어쨌거나.”
도가각, 메리가 마지막 남은 사과심을 이빨로 부수며 뒷말을 이었다.
“우리, 좀 강해져야겠다. 오라버니. 내 감이 그렇게 말하고 있네.”
“뭐?”
“막내 녀석과 싸우려면 말이야.”
맞서 싸우든, 옆에서 싸우든.
디푸스에겐 메리의 목소리에 꼭 그런 뒷말이 붙어있는 것처럼 들렸다.
“이유 없이도 늘 강해지고 싶어 목마르던 녀석이, 새삼스럽긴.”
“사랑하는 동생이자 숙적 중의 숙적, 서로가 서로에게 넘어야 할 산! 아. 이런 거 참 좋지 않나? 짜릿해.”
묘하게 서운한 마음이 들었으나 디푸스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돌아가거든 아픈 머리에 무슨 약이 필요한지 잘 알아보고, 네 뜻은 잘 알겠다.”
그러자 메리가 반짝 눈을 빛냈고, 디푸스는 이렇게 뒷말을 이었다.
“당분간 하고 싶은 거 다 해봐. 사고도 마음대로 치고, 수련도 마음대로 해. 뒷일은 내가 책임지고 감당해주마.”
“역시, 내 마음을 알아주는 건 우리 둘째 오라버니밖에 없지!”
“이럴 때만 우리 오라버니냐? 언제 인간 될까, 너는.”
“나중에 헛소리하기 없기다. 설마 위대한 룬칸델의 4기수가 한 입으로 두말을 하진 않겠지. 나 지금 바로 가볼 테니까, 여긴 오라버니가 알아서 감독해. 내 임무도 당분간 오라버니가 알아서 다 하고.”
“어, 야. 야, 메리! 야!”
디푸스가 잡을 새도 없이, 메리는 벌써 산맥 저 아래를 향해 미친 듯이 내달리는 모습이었다. 그녀의 질주에 나무들이 꺾이고 먼지구름이 일어날 지경이었다.
“하…… 저거, 옛날처럼 감당 안 될 사고를 치진 않겠지? 말을 좀 더 골라서 할 걸 그랬나.”
돌연 강렬한 불안감이 디푸스의 뒷골로 엄습하고 있었다.
* * *
독스 맥로란은 아직도 몸을 완벽하게 회복하지 못했다.
그러나 클로를 되찾고, 평소의 3할 수준으로 움직일 수 있는 단계에 이르자 독스는 즉시 티칸 자유도시를 떠났다. 이런 쪽지만을 남긴 채.
(날 구하기 위해 누메루스의 피, 그 신물까지 구해온 것은 잊지 않겠다. 인정하지, 네 노고가 아니었다면 나는 허무히 죽어 남은 생을 가문에 헌신하지 못했을 터.
그럼에도 흑기사로서는 네 명령을 수행할 수 없다.
대신 네 명령은 독스 맥로란으로서 수행하겠다. 끝나는 즉시 서신을 보낼 테니, 내가 약속을 어기고 도주한 게 아니라는 사실은 알아주면 좋겠군.)
놀랍게도.
독스는 ‘그 누구에게도’ 포착되지 않은 채 티칸을 빠져나갔다.
그 말은 즉, 반대도 가능하다는 이야기였다.
조슈아의 흑기사들이 그간 티칸에 잠입하지 않은 건,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시론의 명이 있었기 때문인 것이다.
‘은혜를 모르는 놈은 아니군. 선물을 주고 갈 줄은 몰랐는데 말이야.’
진은 독스가 몰래 떠남으로써 이런 사실을 은근히 알렸다는 것을 모르지 않았다.
“발카스 경.”
“말하시오, 주군.”
“장비들이 다 옮겨지면, 티칸의 경계 수준이 지금보다 얼마나 많이 향상될 수 있습니까?”
“그건 주군이 경계에 얼마나 많은 투자를 하느냐에 따라 다르오.”
“인력이든, 돈이든. 필요한 것은 모두 최대로 잡아주십시오.”
“내 마음도 그랬소. 흑기사가 떠나며 남긴 메시지를 정확히 보셨군. 덜 회복된 흑기사가 이렇게 빠져나갔으니, 완벽한 컨디션의 흑기사라면 말할 것도 없지.”
발카스는 진을 주군으로 받들기로 했으나, 한편으로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그를 시험하는 역할이기도 했다. 진보다 먼저, 또 오랫동안 성공적으로 큰 세력을 이끌었던 수장으로서 말이다. 진은 발카스의 그런 역할 선정이 매우 마음에 들었다.
“그래, 주군. 이제 다음은 무엇이오?”
갑자기 세가 불어났을 때, 지도자가 선택할 수 있는 왕도는 세력 규합과 서열 정리다.
발카스는 진이 그런 교과서적인 대답을 하지 않기를 바랐다.
“세력 규합과 서열 정리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쩝.”
“하지만 그건 내 할 일이 아니로군요. 규합. 아니, 정확히 말하면 분위기 정돈 정도는 저를 제외한 기존 티칸의 인원들이 최대한 도맡아 할 테지만, 서열 정리는 각자의 몫입니다. 나는 아무 개입도 하지 않을 겁니다.”
“아무 개입도 하지 않는다?”
“갑자기 식구가 된 만큼, 싸움은 불가피하지 않겠습니까? 내가 끼어들면 누군가의 편을 들 수밖에 없으니, 승자와 패자가 알아서들 서열을 잡도록 내버려두어야지요. 단, 서로를 죽이거나 불구로 만드는 건 금지입니다. 그것만큼은 내가 직접 목을 베겠습니다.”
발카스는 속으로 손뼉을 칠 수밖에 없었다.
‘라타 프로치, 그 젊은 미친개가 강아지가 된 게 이상하지 않을 지경이긴 하군. 십여 년 전, 3군 녀석들이 어린 제왕이라 부르던 꼬마는, 이제 이 발카스와 흑왕단을 부리는 거인이 되었어.’
문득 어젯밤 술자리에서 라타와 제트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발카스 경은 어쩌면 오히려 운이 좋은 겁니다. 난 주군에게 가장 아끼는 부하를 잃고, 하나뿐인 동생이 사로잡히고, 시비를 걸어 깨지고 나서야 그분의 가치를 발견했으니 말이죠.
-저는 뭐, 나으리 덕에…… 하핫, 문자 그대로 개고생을 했습니다요. 베라딘 지플을 연기할 때 어찌나 그럴싸하던지. 티칸에 처음 왔을 땐 완전히 거지가 됐었지요. 아킨 왕국에서 나름 윤택한 좀벌레로 살고 있었는데, 나리랑 엮이면서 비로소 가치 있는 인간이 될 수 있었습죠.
-반면 흑왕단은 산채와 명성만 잃지 않았습니까? 그마저도 산채는 중요 장비가 거의 다 남았고, 명성은…… 전 확신합니다. 주군이 세상의 왕좌에 올랐을 때, 흑왕단은 이전에 가지고 있던 것보다 수십 배는 빛나는 명성을 얻을 겁니다. 나도, 이 친구 제트도 마찬가지고.
발카스가 씨익 미소를 지었다.
“훌륭한 답변이었소, 주군. 그럼, 주군이 할 일은 무엇입니까?”
그러자 진은 잠시도 고민하지 않고 이렇게 답했다.
“대용병 아멜라.”
정답이었다.
“그녀를 포섭해야 합니다. 포섭이 불가능하다면, 확실하게 견제를 해두어야 하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