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46)
제 44화
19화. 연회(2)
주인이 오자 손님들이 검의 정원으로 들어서기 시작했다.
비먼트 제국을 비롯한 각 왕국의 사절단, 비먼트 친위대, 특임대, 용왕기사단, 이블리아노가, 투코가, 켄가, 흑왕단, 귀신대 등등…….
하나같이 굵직한 가문, 명성이 자자한 인물들이다. 그들이 하나둘씩 들어서니, 건물에 불과한 검의 정원이 마치 왕과 같은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만 같았다.
룬칸델의 본가에 손님으로 오려거든, 최소한 명예와 실력을 모두 갖추고 있으라고 말하는 듯 말이다.
정원에 꽂힌 수천 자루의 검. 그리고 검 사이를 지나치는 수많은 발걸음들.
그것만으로도 비먼트 황제 즉위식만큼이나 호화롭고 찬란한 풍경이다. 오늘 룬칸델을 찾은 천 명 가까운 손님이 곧 룬칸델의 권위와 힘을 상징했다.
가문 수호기사는 물론, 하인들마저 그 권위에 도취되어 늠름한 표정을 짓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어느 가문의 수호기사인지, 어느 가문의 하인인지가 이들에겐 곧 계급을 뜻하기 때문이었다.
지플을 제외하면 룬칸델에 대적할 가문은 단 하나도 없다. 그리고 오늘 연회에 지플은 따로 방문 요청 공문을 보내지 않았으니, 룬칸델 권속들의 콧대는 하늘을 찌를 수밖에.
진은 이 모든 풍경을 시론과 함께 지켜보고 있었다. 발코니에서 중정을 내려다보는 시론은 간간히 손님들을 향해 손을 흔들었고, 진은 목례를 했다.
“연회는 처음이겠구나.”
“예, 아버지.”
다른 가문의 연회는 전생에서 마법 스승 덕분에 몇 차례 경험해 봤으나, 룬칸델 본가에서 주최하는 연회는 전생까지 통틀어 이번이 처음이었다.
회귀 전엔 어쩌다 가문에서 연회가 열려도 연회장에 들어서지 못하고 죄인처럼 숨어있어야 했다. 스물다섯에 겨우 1성에 오른 순혈 막내는 수치 그 자체였으니까.
‘그런데 지금은 아버지와 함께… 연회의 주인공이 되었군. 한 번 죽고 난 다음에서야.’
뿌듯하면서도 씁쓸한 기분이다. 감정을 면적으로 본다면, 뿌듯함보다 씁쓸함이 훨씬 큰 부분을 차지했다.
그러나 진은 내색하지 않고 아버지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너도 알겠지만, 우리 가문은 연회를 여는 일이 극히 드물다.”
“예.”
“정말로 축하해야 할 일이 있을 때만 연회를 열기 때문이지. 네가 이룬 성취가 그만큼 대단하다는 의미다.”
“감사합니다, 아버지.”
시론이 가볍게 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진은 소스라치게 놀랐지만 이번에도 내색하지 않았다.
“손님이 몇 명이나 될 것 같으냐?”
“어림잡아 천 명은 될 것 같습니다.”
“그래, 나도 딱 그 정도라고 보고받았다. 마지막으로 7년 전에 연회를 열었을 때에 비해 약 이백 명 정도의 손님이 늘어난 것이지. 그게 무엇을 뜻하는지 아느냐?”
대답을 고민할 필요가 없다.
“마지막 연회 이후 7년 동안. 우리 가문의 권세가 더 강해졌다는 의미입니다.”
시론이 만족스러운 듯 미소를 지었다.
“정확하다. 천 명쯤 모이는 연회는 다른 가문에서도 종종 있는 일이지만… 여기 모인 천 명은, 하나하나가 걸출한 자들이지. 어중이떠중이나 쓰레기 같은 놈들은 단 하나도 없다는 거다.”
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시론의 말대로 오늘 검의 정원을 찾은 천 명은, 그야말로 세상의 별들이다. 전 세계 수십억 인류의 선두에 서서 달리는 천 명의 인간들.
그들 사이에서도 정점에 서 있는 자가 바로 시론 룬칸델이다.
“7년 동안 내가 한 일이라곤 그저 흑해에서 마물을 죽이며 수련한 것밖에 없다. 그런데도 가문의 위세가 계속 오르고 있는 건, 내가 현 시대의 유일한 창성기사라는 이유다.”
진이 공손히 다음 말을 기다리자 시론이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그 말은 즉… 내가 사라진다면, 여기 모인 이들 대부분이 룬칸델로부터 등을 돌릴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지.”
진 또한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아버지, 시론 룬칸델이 없었다면 룬칸델은 이 정도의 권세를 갖지 못했을 것이다. 지플과 더불어 세계 양대 가문이라지만, 시론이 빠지면 두 가문의 전력은 현격이 벌어지게 된다.
세계는 그야말로 지플의 독주 체제로 흘러갈 것이다. 두 가문 사이에서 균형추 역할을 하는 비먼트 제국 역시 지플의 편에 설 확률이 높았다.
‘막내 녀석은 어떤 대답을 할지 궁금하군.’
시론은 그간 이와 비슷한 흐름의 대화를 여러 자식들과 나눠 보았다.
내가 없으면 사람들은 룬칸델로부터 등을 돌린다.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라는 요지의 말을 하면, 자식들의 대답은 대부분 한결같았다.
그럴 일은 없습니다, 아버지. 혹은 아버지께서 어찌 사라지신다는 말입니까! 그것도 아니라면, 주제를 모르고 자신이 다음 창성기사가 되겠다며 뜬구름을 잡는 경우도 있었다.
“아버지.”
한참 대답하지 않은 진이 나지막이 시론을 불렀다.
“말해라, 아들아.”
“만일 아버지가 계시지 않을 때, 저들이 정말 룬칸델로부터 등을 돌린다면… 그래서 지플이 본격적으로 룬칸델을 압박하고, 이내 가문이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면.”
잠시 말을 멈춘 진이 시론과 눈을 맞췄다.
“저는 가문을 떠날 겁니다.”
대답을 들은 시론의 눈동자에 순식간에 핏발이 선다.
“뭐라? 떠난다고 했느냐?”
“예. 정말 아버지가 없다는 이유만으로 룬칸델이 무너진다면, 그건 결국 아버지 다음 대 가주의 무능함이 원인이겠죠. 저는 무능한 가주 밑에서 개죽음을 당할 생각은 없습니다.”
어처구니가 없을 만큼 충격적인 대답. 막내의 당돌한 태도에 순간 노기가 일었지만, 그보다 호기심이 더 컸다.
“계속 말해봐라.”
진이 한 차례 길게 호흡을 내뱉었다.
“우리 가문이 쥐고 있는 저들의 약점이 도대체 몇 개 입니까?”
“약점?”
“예. 당장 저기 보이는 베른 공작. 베른가의 수장인 그는 황제를 속여 제국의 보물을 빼돌리고도 멀쩡히 연회에 참석했군요. 우리 가문에 빚을 진 덕입니다.”
“그리고 중정 왼쪽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 자는 란츠 클레버. 맞습니까? 초상화로만 봐서 헷갈리는군요. 어쨌거나 클레버가 최고의 무인인 란츠는 우리에게 의뢰해 지플의 마법사를 셋이나 죽인 적이 있고요.”
“저쪽, 샬롯 헤럴드 양은 도박 중독이 심해 몰래 가보家寶를 팔아넘겼다가, 우리에게 의뢰해서 되찾았죠. 아직까지 헤럴드가는 의뢰 대금을 갚지 못하고 있고요.”
“그리고 그 샬롯 양 뒤편에 있는 여인은 벨라도 제후諸侯의 정부로군요. 본래 비먼트 황가의 서녀였으나, 천재 마법사라는 이유로 순혈에게 견제당해 추방당했죠. 벨라도 제후는 몇 년째 우리에게 그녀의 신변 보호를 요청한 상태고요.”
“또 저 사람은…….”
“그만.”
시론이 부드럽게 손을 내저었다.
“가문 의뢰 계약서를 살펴본 모양이로군. 본래 기수에게만 허락된 일인데. 루나가 보여준 것이냐? 나무라지 않을 테니 솔직하게 말해라.”
“아뇨. 아까 뷔고 형님께 빼앗은 검을 돌려주며 부탁했습니다. 제겐 필요 없는 검이었거든요.”
“크하하, 갈수록 태산이구나.”
“제가 한 번 훑어본 것만으로도 검이 아닌 룬칸델의 무기가 이만큼이나 나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만 열람할 수 있는 기밀 계약서엔 더 많은 무기가 있겠죠.”
“그래서, 내가 없어도 그런 비밀들을 이용해 가문을 지킬 수 있다, 이 말이냐?”
“다음 가주의 협상 능력 여하에 달려 있겠죠. 아버지의 경우는 최강이니 협상할 필요가 없으나, 창성기사가 아닌 가주가 룬칸델을 이끈다면 이야기가 다르니까요.”
시론이 찬찬히 고개를 끄덕이며 씨익 웃었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막내야. 약점은 우리만 쥐고 있는 게 아니야. 지플도 우리 못지않게 저들의 약점을 많이 쥐고 있을 것이다.”
“그렇겠죠. 하지만 지플은 함부로 약점을 휘두를 수 있는 명분이 없습니다.”
“명분이 없다. 왜지?”
“악당 역할은 룬칸델의 몫이니까요. 아무튼, 이렇게 많은 무기가 있는데도 다음 가주가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다면, 저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날 겁니다. 그리고 복수를 준비하겠죠. 언제까지라도.”
콜론 유적지에서 금지 마법 실험을 행하건, 차후 미래에 마력의 샘을 얻어 7성 마법사를 도장처럼 찍어내건, 뒤에서 어떤 더러운 짓을 하고 있건.
대외적으로 지플은 정의의 상징과도 같은 가문이다. 룬칸델처럼 함부로 악당 짓을 할 수 없는 것이다.
“하하, 복수라… 그래, 복수도 결국 살아 있어야 할 수 있는 것이지. 네 생각은 잘 알겠다. 나쁘지는 않구나.”
진이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예상보다 아버지의 평가가 박해 아쉬운 마음이 일었다.
‘뭐, 이 정도면 선방이지. 아버지야 원래 평가가 짠 사람이니까.’
나쁘지는 않다.
그렇게 표현했으나 시론은 내심 흡족한 기분이었다. 그가 생각하기에, 막내는 현실적이면서도 효과적인 방안을 대답한 것이다.
다른 형제들이라고 해서 진과 같은 생각을 해 보지 않은 것은 아니다.
다만 그들은 시론 앞에서 ‘룬칸델이 망한다’는 가정을 감히 꺼내 놓을 용기가 없었고, 진은 담백하고 자신 있게 소신을 밝혔다.
분수를 모르는 소리를 늘어놓지도 않았으며, 계산적이라기보다 냉철함에 더 가까운 태도. 시론이 높게 평가한 것은 바로 그런 부분이었다.
‘말년에야 이 아이를 얻은 게 아쉽구나. 루나의 재능, 메리의 야성, 디푸스의 투쟁심을 한데 모아 놓은 것 같은 녀석이건만.’
짧으면 10년, 길면 15년.
시론은 자신이 가주 자리를 지킬 수 있는 기간이 그 정도이리라 예상하고 있었다.
과연 막내가 그 안에 후계 구도를 뒤집을 수 있을지 지켜보는 맛이 있으리라.
“손님들이 거의 찾아온 모양이군. 슬슬 들어가자.”
어두운 밤하늘 아래, 검의 정원 대문 너머로 수많은 불빛이 일렁였다. 연회 손님들을 따라온 시중들이 바깥쪽 평야에 꾸린 야영지에서 뻗어 나오는 불빛이었다.
그들은 천막에 앉아 사흘을 내리 이어지는 연회를 지루하게 기다려야 할 것이다.
“예, 아버지.”
“아. 그리고 연회가 끝나면, 네게 긴히 이를 것이 있으니 부름이 있을 때까지 대기하고 있어라.”
예비 기수 자격!
그것에 대한 이야기다. 이미 전에 숙부에게 한 번 들어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진짜로 아버지의 입을 통해 듣는 것은 느낌이 전혀 달랐다.
‘연회가 끝나면 당분간 가문을 떠나게 되겠군.’
기수가 되기 전에 필요한 것은 명예.
진은 연회 이후 바로 그 명예를 얻기 위해 세상을 유랑하게 될 것이다.
그 기간 동안엔 가문으로부터 어떤 제약도 받지 않기 때문에, 검술은 물론이고 마법과 영기도 마음껏 훈련할 수 있었다.
회귀 전의 기억을 기반으로 온갖 기연이나 신물을 찾아다닐 수도 있을 것이다.
‘사흘간의 연회가 꽤 길게 느껴지겠어.’
발코니를 나서 중앙 홀로 향하자, 거대한 샹들리에의 환한 빛이 시론과 진의 얼굴을 물들였다.
그리고 시론이 2층에서 손님들에게 인사를 시작하려는 찰나, 1등 집사 셋이 분주한 걸음으로 그를 찾았다.
“가주님. 방문 요청 공문을 보내지 않은 손님들이 찾아왔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공문을 보내지 않은 손님.
지플을 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