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463)
제 444화
131화. 감이 좋은 사람들, 감이 좋지 않은 사람들(8)
영기를 머금은 시커먼 검기들이 빽빽한 포화를 가르며 아멜라에게 쏘아졌다.
하나도 빠짐없이 급소를 노리고 날아든 검기였다. 찢어진 포화 사이로 희번덕이는 진의 안광에도 단단하고 진한 살의가 깃들어 있었다.
즉, 진심이었다. 진은 아멜라를 죽이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마치 어둡고 독한 덩어리 같은 것으로 실체화될 듯 선명한 살의에 아멜라는 흠칫, 등골이 서늘해졌다.
카가각-!
서로 눈동자를 깜빡이자 진과 아멜라는 서로의 무기를 맞댄 채 힘을 겨루고 있었다. 브라다만테와 탁기로 형성된 대포의 포신이 부딪히며 불쾌한 마찰음을 일으켰다.
‘일단 요나 누님처럼 영기를 보고 이성을 잃지는 않는 것 같군. 혼돈의 종류나 크기가 다르기 때문인 건가? 아니면 다른 무언가가 있는 건가.’
이유가 무엇인지 확실하게 알 수는 없으나, 당장의 싸움에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이성을 잃었다면 더 편했을 것이다. 제 실력을 모두 발휘하지 못했을 테니까.
포신과 맞닿은 칼날을 떼어 내고 다시 휘두르려고 했으나, 진은 무언가 단단한 것이 브라다만테를 콱 움켜쥐는 걸 느꼈다.
가시였다. 난데없이 고슴도치처럼 포신을 뒤덮은 가시들이 답답하게 뒤엉켜 브라다만테를 붙잡고 있었다.
힘으로 뜯어내느라 잠시 틈이 생겼다. 아멜라는 당연하게도 놓치지 않고 진의 머리에 폭탄을 터뜨렸다. 탁기로 순식간에 빚어낸 폭탄을 말이다.
굉음에 고막이 터질 듯했다. 하지만 뮬타의 룬과 갑옷이 막아 준 덕에 실제적인 피해는 전혀 없었다.
그사이 무라칸은 라타와 페이를 챙기려고 했으나, 뛰는 도중 갑자기 발밑에서 무언가 낯설고 위험한 감각이 느껴져 빠르게 몸을 빼냈다.
한순간만 더 늦게 몸을 빼냈어도 상당한 수준의 부상을 입었을 것이다. 무라칸이 발을 뗀 자리에서도 폭발이 일어나고 있었다.
“하, 나. 해괴하네. 뭔 땅 밑에서 폭탄이 터져?”
무라칸은 둥글게 파인 땅을 보며 혀를 찼다. 이런 식의 공격은 발카스에게 미리 전해 들은 바에 상응하는 형식이었다.
아멜라만이 사용하는 방법들이 있었다. 발아래에서 터지는 폭탄, 시간 차를 두고 쏘아지는 화살들, 각종 함정과 기묘한 장치들.
원래대로라면 미리 준비해야 하고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테지만, 무한한 탁기가 메꿔 주고 있었다.
그녀의 뜻을 따라 사방에 쉴 새 없이 무기와 함정들이 형성되고 있었다. 포와 폭탄들, 거대한 단두대, 가시 그물, 연발 십자궁 등.
아마 진과 무라칸 콤비가 아니라 다른 누군가였다면. 10성 미만의 다른 무인이나 마법사였다면 속수무책으로 당했을 것이다. 유명 기사단이나 마법대 전체가 왔어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상성이 나빠도 너무 나빴다.
저주가 전혀 통하지 않으니 빈틈을 만들 수 없고, 그녀가 다루는 화기와 무기들은 대량살상엔 적합하나 초일류 이상 무인, 마법사들의 방어벽을 무너뜨리기엔 어울리지 않았다.
물론.
탁기의 무한한 힘이 있으므로 상성 따윈 사실 아무래도 상관이 없었다. 어느 한쪽이 죽을 때까지 싸움이 이어지기만 한다면 무조건 아멜라의 승리였다. 상대는 언젠가 지칠 수밖에 없으니까.
쓰악!
브라다만테가 날카롭게 사선을 그었다. 쏟아지는 포화와 작동된 함정들 속에서도 진은 회피와 영기 갑옷으로 버티며 아멜라와의 거리를 계속 좁혀 가고 있었다.
‘내 공격에 반응하는 모양새가, 내가 아는 최고 수준의 기사들에 비할 바는 아니로군.’
서로 완전히 노출된 상태로 사전 준비조차 없이 싸울 때, 무한한 힘이 없다면 원래도 아멜라는 진을 이길 수 없었다.
‘무한한 힘과 초재생만 아니면 아주 어려운 상대는 아니겠어.’
진이 믿고 있는 것은 테스의 불꽃이었다.
뮤론의 지옥문을 벨 때도, 제피린의 아공간을 벨 때도. 청화는 이미 증명한 바가 있었다. 이 탁기의 핵 같은 공간이 아멜라에게 무한한 힘을 제공하는 원천이라면, 그 또한 다르지 않게 해결할 수 있을 터.
중압으로 해결이 안 된다면, 섬을 통째로 박살 내는 한이 있더라도. 혹은 군도 전체를 지도상에서 지워 버리게 되더라도. 진은 아멜라와 반드시 결단을 낼 마음이었다.
다만 이상한 점이 한 가지 있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멍청하게 싸우는 거지?’
멍청하게 싸운다, 진이 그렇게 표현한 이유는 다름이 아니었다.
아멜라가 계속 진의 공격을 ‘피하거나 막고’ 있기 때문이었다. 마치 초재생 능력이 없는 것처럼 말이다.
살을 주고 뼈를 취한다. 아멜라가 방금까지 보여 준 수준의 초재생 능력이라면 매 순간 그 격언을 적용할 수 있었다.
일부러 공격을 허용해 주며 빈틈을 만들거나, 상대를 방심하게 하거나, 툭하면 자폭을 시도하거나.
초재생 능력을 가졌다면, 진은 당연히 그런 식으로 싸울 터였다. 아멜라처럼 이를 악문 채 급급하게 검은 칼날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초재생과 관계없이 단지 고통 그 자체가 싫기 때문일까? 그렇게 생각하기엔, 스스로 왼쪽 팔목을 잘라내어 초재생을 증명해 준 게 설명되지 않는다.
‘설마.’
뮬타의 룬 속, 진의 눈동자가 가늘어졌다.
슬쩍 무라칸 쪽을 살펴보니, 탁기가 계속 폭탄과 방어막을 형성하고 있었다. 무라칸은 프로치 남매가 다칠까 봐 함부로 뚫지 않고 있었으나, 탁기 사이로 시커먼 영기들이 도드라지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그렇게 영기가 드러날 때마다 아멜라의 호흡이 미세하게 달라지는 게 느껴졌다. 두려움을 간신히 억누르는 듯이.
속일 수 없다.
허접한 무인들이라면 모를까, 진 같은 인물을 상대로 두려움은 속일 수도, 감출 수도 없는 약점이 될 수밖에 없었다.
“영기에 당한 상처는 회복할 수 없는 모양이지, 아멜라 경.”
덤불 옷 후드 속에서 아멜라의 두 눈동자가 휘둥그렇게 커졌다.
‘그, 그걸 어떻게 알았지!?’
하마터면 소리 내어 대답할 뻔했으나 다음 순간 헛숨을 삼키느라 그러지 못했다. 매섭게 내질러진 브라다만테가 어깨를 스치고 지나간 것이다.
피싯-! 어깨 쪽 위장복이 한 덩이 떨어지며 낙엽과 나뭇가지가 부서졌다. 그 사이로 선명하고 붉은 핏방울이 튀었다.
아멜라가 그 찌르기에 제대로 반응하지 못한 것이다. 그래도 위장복이 탁기로 고쳐지는 건 순식간이었으나, 진은 낙엽과 나뭇가지가 형성되기 직전을 놓치지 않았다.
‘어깨는 재생되지 않았다.’
어깨보다 위장복이 먼저 재생되는 건 분명 자연스럽지 않은 순서였다.
때문에 진은 확신할 수 있었다. 영기는 혼돈, 적어도 아멜라가 가진 혼돈의 능력 일부는 무마시킬 수 있다고.
“말 많던 분이 조용해진 걸 보니 맞는 것 같군.”
화르륵-!
칼날을 감싼 영기 위로 서슬 퍼런 불꽃이 휘감겼다.
“너무 고통스럽지는 않게 보내 드리겠소.”
영기와 청화가 점점 더 짙어지고 있었다.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자신에게 겨눠진 칼끝을 보며, 아멜라는 이런 직감을 느껴야만 했다.
‘이대로라면, 난 반드시 죽는다!’
지금껏 수많은 전장을 누벼 온 그녀였다. 대용병, 전장의 화신, 가이파 군도의 악몽 등. 아멜라를 따라다니는 칭호들은 그가 어떠한 삶을 살아왔는지를 대변하고 있었다.
숨 막힐 듯 치열한 전쟁도 있었고, 놀이터처럼 편안한 전장도 있었다. 그녀는 전쟁을 즐겼으나, 단 한 번도 지금만큼 강렬한 죽음의 위협을 느껴 본 적은 없었다.
많은 칭호들이 그렇듯, 아멜라가 얻은 이름들은 그 이면을 전혀 표현하지 않았다.
가령 그토록 많은 전쟁을 겪으면서도 그녀가 세상사에 지독할 정도로 관심을 두지 않은 이유, 오죽하면 그 몇 년 동안 세상을 가장 뜨겁게 달군 진 룬칸델이라는 이름조차 모르고 살았던 이유.
혼돈.
아멜라는 평생 자신의 내면에서 번지는 혼돈의 목소리에만 귀를 기울여왔다.
혼돈은 그녀를 보편의 삶에 스며들지 못하게 했고, 타인과 외부 세계에 관심을 두지 못하게 만들었다. 프로치 남매는 ‘혼돈의 냄새’가 배어 있으니 예외일 뿐.
전장의 삶과 죽음 속에서 그녀에게 외로움이 무엇인지를 알려준 사람은 없으며, 또한 전쟁터에서 그녀를 가르치고 이끌어 줄 만큼 강한 사람을 만나는 건 무척이나 힘든 일이었다.
설령 마주친다 한들, 서로를 죽이고자 악을 쓰는 공간에서 그런 유대가 형성될 일도 없고 말이다.
혼돈의 힘은 그녀가 마땅히 느껴야 할 수많은 감정을 탁하게 가려 버렸다.
이를테면, 아멜라는 자기만의 세상 속에 홀로 방치된 어린애라고 할 수 있었다. 혼돈의 힘 덕에 자연스레 대용병이 되었으나, 그녀는 사실 짐승과 다른 바가 많지 않았다.
‘무서워……! 죽고 싶지 않아!’
누군가는 아멜라가 살고 싶다고 생각하는 걸 우습게 생각할 것이다.
아멜라는 전장에서 셀 수 없이 많은 사람을 죽였고, 본인을 귀찮게 하는 이들을 살려 둔 적이 거의 없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건 과연 태어나자마자 우물에 버려진 어느 불쌍한 갓난애의 의지일까, 혼돈의 의지일까.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은, 지금껏 그 누구도 아멜라를 이끌어 준 일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영기와 청화는 이제 포화 속에서 도드라지는 것이 아니라, 아예 포화를 밀어내 버리며 거대해지고 있었다.
“꼬마! 뱀 눈깔들 구했다, 이제 마음 편히 아주 박살을 내 버리자고!”
아멜라가 겁에 질려 집중력을 잃은 사이 무라칸은 프로치 남매를 되찾을 수 있었다.
더 이상 힘을 조절할 필요가 없었다.
“이런 검이라면, 그대가 평생 쌓아 온 위명에도 모자람이 없는 최후일 테지.”
사방에 퍼진 푸른 불꽃과 영기가 순식간에 진에게로 모여들었다.
곧 진은 검푸른 청화 그 자체가 되었다.
사라 룬칸델의 마검 비기, 업화. 진은 마치 심판관처럼 불타오르는 눈동자로 아멜라를 내려다보았다.
청화가 덤불 후드에 가려진 그녀의 얼굴을 밝히고 있었다.
아멜라는 발카스와 동년배라고는 믿을 수 없이 어린 얼굴이었다.
왜인지 마음이 편치 않았다.
죽고 죽여야만 하는 세계에 익숙해진 건 아주 오래전인데도.
‘좋은 인연이었다면 좋았을 것을.’
이내 잡념을 지우고, 검을 휘둘러 업화를 전개하려는 찰나.
[하, 항복!]돌연 아멜라가 마구잡이로 두 손을 내뻗고, 흔들며 그렇게 소리를 쳤다.
[항복! 잘못했어요, 제발 멈춰 주세요……!]심지어 아멜라는 주저앉아 미친 듯이 고개를 젓기도 했다.
‘무슨……!’
아멜라의 돌발 행동에 순간 오만가지 생각이 뇌리를 찔렀다.
‘상황을 모면하기 위한 함정일 것인가, 진심인가. 후자라고 해도, 살려 주는 게 옳은 건가? 아멜라는 이미 킨젤로에 소속되기로 했는데?’
이미 반쯤 펼쳐진 업화를 억지로 거뒀다간 오히려 자신이 심대한 내상에 빠질 수 있었다.
하지만 진은 결단을 내렸다.
일단은 살려 주고 이야기를 들어 보자고. 다만, 업화를 멈출 수는 없었다.
“무라칸!”
검푸르게 물든 브라다만테가 아멜라를 향해 떨어졌고, 진은 이를 악물며 수호룡의 이름을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