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464)
제 444화
131화. 감이 좋은 사람들, 감이 좋지 않은 사람들(9)
간신히 검을 비틀었다.
궤도를 바꾸지 못했다면 검푸르게 빛나는 칼날은 단숨에 아멜라를 베고 불살랐을 터. 아멜라를 살렸다는 안도감이 들기는 했으나, 무라칸이 업화를 잘 감당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
“아, 이런 미친!”
과연 무라칸은 진의 수호룡이었다. 그는 진이 자신의 이름을 부른 게 전부인데도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 정확히 알아듣고 있었다.
후우웅!
무라칸이 아멜라 쪽으로 몸을 던지며 급히 본모습으로 변신했다.
[뱀 눈깔들 구했더니, 이젠 갑자기 이것까지 챙기라고 하냐, 어!]쾅!
일단 앞발을 휘둘러 아멜라를 프로치 남매가 있는 뒤쪽으로 쳐냈다. 몸이 공처럼 튕기며 뼈 부러지는 소리가 났으나 순식간에 재생이 되었다.
업화에 닿았다면 회복할 수 없었을 것이다.
프로치 남매 사이에 떨어진 순간, 그녀는 본능적으로 자신이 살아남을 수 있음을 깨달았다.
항복, 제발 멈춰주세요.
아멜라가 진에게 그렇게 말한 이유는 다름이 아니었다.
감.
겁에 질려 함부로 몸을 움직이거나 억지로 막아내려고 시도하는 것으로는 절대로 살아남을 수 없다는, 차라리 이렇게 살려달라고 빌면 왠지 진이 손을 내밀어줄 것 같다는 감.
그녀의 감은 정확히 적중한 셈이었다.
[크라아아아아-!]그리고 무라칸은 아랫배에 힘을 꽉 주고 미친 듯이 기합을 내지를 수밖에 없었다.
브라다만테를 타고 영기와 청화가 해일처럼 번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제 무라칸은 아멜라를 대신해 진의 업화를 감당해야 했다.
검푸른 기운이 탁기의 핵, 그들이 서 있는 공간을 한꺼번에 물들였다.
빛에 닿은 벌레들이 어딘가로 몸을 숨기듯, 근처를 휘감고 있던 탁기가 빠른 속도로 물러나고 있었다.
그건 그만큼 무라칸이 막아내야 할 업화가 거대하다는 의미였다.
무라칸의 호박색 눈동자가 영기로 검게 물들었다. 현재 무라칸이 펼칠 수 있는 최고 수준의 영기 해방에 검푸른 업화보다 짙은 영기가 장막을 형성했다.
업화는 너무나 손쉽게 그 장막을 찢어버렸다.
다만 장막은 찢어지면 즉시 새로이 펼쳐지며 밀려오는 업화를 계속 저지하는 형식이었다.
[아이, 멈춰라, 좀!]장막이 한 꺼풀씩 찢어질 때마다 업화의 불은 점점 더 무라칸과 가까워지고 있었다.
똥줄이 탄다.
꽤나 오랜만에 무라칸은 그런 다섯 글자를 떠올리고 있었다. 자신이 아무리 대단한 존재라곤 하나 전성기는 지났고, 완전히 회복하지 못한 몸으로 저런 걸 직격으로 맞았다간…….
절레절레, 절로 고개가 저어졌다. 최소 중상으로 인한 요양, 재수 없으면 미샤에게 치료라는 미명으로 괴롭힘을 당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드니 발톱 끝까지 꽈악 힘이 들어갔다.
어쩌면 가볍거나 적당한 부상 정도에 그치고, 딸기파이의 병간호를 받으며 하하호호 행복하고 즐거운 한때를 보낼 수도 있지 않을까? 꼬마 놈의 불길 정도에 내가 너무 쓸데없는 걱정을 하는 것은 아닐까?
그렇게 생각한 순간, 한층 더 사나워진 업화가 시야를 시퍼렇게 물들였다.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나왔다.
그럴 리가 없는 것이다. 사력을 다해 막지 않으면 위대한 흑룡 무라칸의 역사에 다시는 지울 수 없는 오점이 될 수도 있었다.
(흑룡 무라칸, 자신의 수호 대상이 펼친 검에 맞아 중상…… 그는 정녕 천 년 전 하늘의 패왕이었나?)
(켈리악 지플의 화룡 카둔의 증언, ‘놈은 사실 약하다’, 과연 진실은?)
(진 룬칸델, 솔더렛의 계약자로서 태만한 수호룡을 엄벌, 과연 룬칸델답게 위계질서를 잡다.)
(단 일검에 수호룡을 쓰러뜨린 12기수. 누가 누굴 수호한다는 말인가? 흑룡 무라칸을 비롯한 세상의 수많은 수호룡들, 경각심을 가져야…….)
순간적으로 머릿속에 그런 말도 안 되는 기사들이 세상을 적시는 미래가 떠올랐다.
삼천 년을 넘게 패왕으로 군림해온 인생, 그런 오명을 남길 수는 없었다. 차라리 죽으면 죽었지, 그렇게 창피하게는 살고 싶지 않았다.
영기의 장막은 이제 업화를 막아내지 못하고 있었다. 찢어진 장막 사이로 불덩이들이 쏟아졌고, 무라칸은 영기로 몸을 보호하며 그대로 받아낼 수밖에 없었다.
목이 찢어져라 악을 내질렀다. 불덩이가 비늘에 닿자마자 끔찍한 고통이 송곳처럼 뇌리 곳곳을 찌르고 긁는 듯했다.
[크오오오옷!]불덩이를 밀어내느라 검고 육중한 몸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악다문 이도 불안정하게 흔들렸고, 비늘 아래로 식은땀이 줄줄 흐르는 기분이었다.
힘을 쓰느라 구겨진 얼굴이 한층 더 기괴하게 일그러졌다.
한 번이라도 뒷걸음질을 치면 끝장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자신이 죽을 일은 없지만 아멜라는 뼈도 남지 않은 채 재가 될 터였다.
“무라칸……!”
진이 걱정스러운 마음에 다시 한 번 무라칸을 불렀다.
[말 걸지 마! 집중 끊기니까!]“어, 미안하다!”
진도 심대한 내상이 오지 않는 선에서 업화에 사용된 기운을 조금씩 되돌리고 있기는 했다.
하지만 기술 자체가 워낙 엄청나고 전력을 다해 펼쳤으니 이미 다 쏟아진 잔을 다시 기울이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몇 방울 정돈 수습할 수 있으나, 대부분은 벌써 빠져나간 것이다.
‘칵! 이만한 가치가 있는 인간이어야 할 거다, 아멜라인지 뭔지 하는 풀덩이 놈…… 자, 잠깐. 이거 무슨 소리야!?’
터걱!
가슴 저 깊은 곳에서부터 무언가 깨지는 것 같은 불안한 소리가 올라왔다.
심장 부근이었다. 그리고 무라칸은 이런 소리를 처음 들어보는 것이 아니었다.
‘시, 심장이……!’
테마르에게 당해 심장이 깨졌을 때에도 비슷한 소리가 났었다. 엄습하는 불안감에 비늘이 바짝 곤두섰다.
하지만 이상한 일이었다.
심장에 균열이 일어났다면 급속도로 힘이 약해져야 하는데, 오히려 마구 샘솟는 느낌이 오고 있는 것이다.
마치 마르지 않는 샘처럼, 또는 사막 한가운데 유전이 터진 것처럼!
업화를 막느라 아슬아슬하게 달리던 힘이 심장에서부터 용솟음을 치고 있었다. 심장에서 치솟아 온몸으로 퍼지는 영기가 주는 쾌감과 충만감에 찌르르, 뒷골이 당길 지경.
‘설마 옛 힘이…… 돌아오고 있는 건가! 이 몸의 힘이!’
심장 근처에서 부서진 것은 그가 그토록 혐오하는 누이, 미샤의 작품이었다.
과거 무라칸을 치료했을 때, 미샤는 그의 심장에 일종의 안전장치를 해두었었다. 수술에 성공했을 때, 그가 한 번 다친 심장으로 너무 많은 힘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말이다.
당시 미샤가 느끼기에 안전권은 4할이었다. 옛 힘의 4할 이상을 사용하면 회복되기 시작한 심장이 다시 망가질 수 있다고 판단을 내렸던 것이다.
그리고 이제 막, 무라칸은 5할로 향하는 안전장치 하나를 풀었다.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인간의 상처 회복에 빗대면 ‘실밥’ 일부가 제거된 것과 같은 맥락이었다.
또한 안전장치가 풀린 이유는 무라칸이 그만큼 위기를 느껴서 억지로 힘을 사용했기 때문이 아니라, 사실 그의 심장은 이미 미샤가 예상한 ‘5할 안전권’만큼 회복된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1할의 차이는 결코 작지 않다. 10성과 9성 사이의 벽이 하늘 같듯이.
크, 하하, 크핫핫하하핫-!
돌연 무라칸이 포효하듯 웃음을 터뜨렸다.
안 그래도 업화에 물러나던 탁기가 싹 걷혀 나갔고, 그들이 서 있던 핵은 유리가 깨지듯 균열이 일며 본래 가이파 군도의 색채를 찾아갔다.
말하자면 사방이 탁 트이고 하늘이 열렸다.
중앙 섬 한가운데 우뚝 서서 4대 세력을 겁박하고 있던 거대 부바르의 형상도 금방 사라질 듯 투명해지기 시작하는 모습.
애초에 거대 부바르는 아멜라가 진을 상대하던 시점부터 움직임을 거의 멈춰가고 있었지만 이젠 아예 사라지려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섬 전체를 무섭게 진동시키는 그 웃음소리에.
바깥에서 안간힘을 쓰고 있던 4대 세력은 심장이 덜컹 내려앉는 듯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 소리는!”
“6기수님, 가문 수호신, 무라칸 님의 목소리입니다!”
“설마, 막내가……!”
뷔고와 룬칸델의 기사들도 두 눈을 휘둥그렇게 떴고.
“흑룡 무라칸? 진 룬칸델도 여기 있었단 말인가!”
“조장님, 황실 마법사들 중 계약자들이 임무 중 흑룡을 마주치면 무조건 피하라고 했습니다!”
“얼마 전 흑왕단 사태 당시에도 지플의 화룡과 청룡들조차 겁을 먹고 도망갔다고 하였소……!”
비먼트의 대원들도 기겁을 했으며.
“와, 왕호님! 오, 오금이 저려서 서 있질 못하겠습니다!”
“이런 머저리 같은 적호 새끼들, 정신 안 차려? 왕호들! 우리 백랑족이 이런 것까지 신경을 써야…… 아, 왕호인 네놈들까지 떨고 있으면 어쩌자는 거냐!”
“너, 너희도 부, 분명, 떠, 떨 거다. 저, 저거 가까이 오면……! 며, 명왕족의 냄새도 난다고! 튀어야 해!”
킨젤로의 수인들, 특히 적호족들은 즉시 공포에 질려 극심한 공황에 빠지는 모습을 보였다.
적호족은 백랑족과 달리 전투력만 좋을 뿐 전사적인 느낌이 적다. 그건 종족 특성이기도 하지만, 적호족은 그만큼 두려움이나 위기에 백랑족보다 더욱 민감한 직감을 갖고 있었다.
“하, 흑룡? 그렇다면… 진… 룬칸델이 여기 있다는 것이군…….”
마지막으로 지플, 그중 미도르 엘너는 무라칸의 웃음소릴 듣자마자 붉어진 눈으로 까득 이를 갈았다.
진 룬칸델과 무라칸이 누구인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형님, 뮤론 지플의 원수였다.
“화룡 테오와 청룡 라라마쿠아조차 무라칸을 마주치고는 그냥 돌아왔었소. 퇴각해야 하오, 마탑주!”
“거대 형상이 사라진 것을 보아 대용병 아멜라는 이미 무라칸에게 당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7마탑주, 전 마탑주의 원수를 갚고 싶은 마음은 알지만 지금은 물러나야 합니다!”
화륵!
미도르가 마력으로 불길을 일으켰다.
“7마탑주!”
“고정하십시오!”
7마탑의 마법사들은 원로와 일반을 가릴 것 없이 미도르를 말리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딱 한 명, 그런 미도르를 보며 꺄하하 웃고 있는 여인이 있었다.
미도르 역시 분노가 머리끝까지 차오른 상태에서도 그녀의 눈치만을 살피고 있었다.
“……산드라 님께서 퇴각하라고 하시면 그리하도록 하겠습니다.”
“꺄핫핫! 하여간 서자 녀석, 훈련이 잘 되긴 했네. 이 상황에서 그래도 내 눈치는 살피고, 응? 기특해, 아주.”
그녀의 이름은 산드라 지플, 켈리악의 딸이었다.
산드라가 마저 웃으며 뒷말을 이으려는 찰나.
콰르르르륵-!
별안간 섬 전체를 흔드는 지진이 한층 더 강력해졌다.
무라칸이 몸으로 막고 있던 ‘업화’를 밀어내며 일어나는 현상이었다.
그리고 그는, 심장의 안전장치를 푼 것처럼 본의 아니게.
업화를 품은 채 하늘로 날아오르고 있었다.
게다가 업화는 무라칸의 영기와 다투고 섞이며 더 검게 변해버려서, 푸른 불꽃의 흔적이 많지 않았다.
[나는, 무라칸이다!]무라칸이 품고 있던 업화를 지상으로 내팽개치며 소리쳤다.
사람들은 그것이 애초에 진이 아니라 무라칸이 펼친 모종의 기술인 줄 착각할 수밖에 없었다.
“피해라……!”
“다시 왕호들, 아니! 최고전사들의 뒤로 물러나! 백랑들이 적호들을 챙겨라!”
“보호막, 보호막 쳐! 얼른!”
“젠장! 뭉쳐서 보호막!”
4대 세력들은 무라칸이 내던진 업화를 보고 식겁할 수밖에 없었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