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470)
제 444화
132화. 몰살, 그리고 이상한…….(5)
미도르 엘너가 꺼낸 것은 주먹보다 조금 작은 정육면체처럼 보였다.
물건을 바라보는 미도르의 얼굴에 한껏 기대감이 드러나고 있었다. 정육면체에는 귀기가 서린 듯한 푸른빛이 감돌았다.
‘드디어 뮤론 형님의 복수를 할 수 있다……!’
뮤론 지플.
비명에 간 형제의 생전을 떠올리니 가슴 속에서 울컥 무언가가 치밀었다.
미도르는 그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뮤론을 죽인 룬칸델이 버젓이 승승장구하며 살아가고 있는데도 지플이 그간 마땅한 복수를 행하지 않고 있던 사실을 말이다.
화악, 딸각……!
미도르가 정육면체에 마력을 주입하자 푸른빛이 한층 짙어졌다. 시커먼 영기 송곳의 폭풍 아래에서도 일순 도드라질 정도로 밝은 빛이었다.
‘저 푸른빛은 뭐야?’
진도 저 멀리에 있는 정육면체의 푸른빛을 확인하고 있었다.
‘마법은 아닌 것 같은데, 아티팩트?’
검은 송곳들 때문에 자세히 보이지는 않았다. 그러나 얼핏 보기에도 자신이 모르는 종류의 아티팩트임이 분명했다.
영 좋지 않은 느낌도 함께였다. 이 판국에 갑자기 자기 혼자 금방이라도 킬킬 웃음을 터뜨릴 듯한 음흉한 표정도 불쾌했다.
‘숨겨둔 한 방’이 있는 놈들이 그걸 선보이기 전에 보이곤 하는 표정.
무라칸 역시 미도르의 모습에 미간을 좁히고 있었다.
[어느 시대에나, 죽음을 굳이 앞당기려는 우매한 이들이 있기 마련이지.]“푸흐흐, 크흐하하하하!”
미도르가 돌연 몸을 뒤로 젖히며 웃음을 터뜨렸다. 그의 손아귀에 있던 정육면체는 각 면이 개방된 채 허공에 떠 있었다.
“룬칸델 12기수 진 룬칸델, 그리고 흑룡 무라칸! 이날만을 기다려왔다. 네놈들의 더러운 피로 뮤론 형님의 넋을 달래줄 수 있는 날만을……!”
콰아아아-!
무라칸이 미도르와 지플의 마법사들이 있는 쪽으로 냅다 숨결을 쏘았다.
상당한 감정과 분노가 담긴 숨결이었다. 백랑족 최고 전사 하나를 발목만 남긴 채 소멸시킨 것보다 강한 위력이라는 뜻.
게다가 숨결이 지나는 궤적 사이에 뿌려지고 있던 영기 송곳들까지 더해져, 산맥을 조금 축소시킨 듯한 규모가 되었다.
이곳에 단신으로 그 숨결을 온전히 막아낼 수 있는 사람은 무라칸 본인과 진 한 사람이 전부였다.
그 숨결이 지플의 진영을 덮친 찰나의 순간, 미도르와 살아남은 마법사들은 두 눈을 휘둥그렇게 뜬 채 호들갑을 떨 수밖에 없었다.
“아, 아직 개방이!”
“막아야……!”
다급하게 소리친 원로들은 말을 끝맺지도 못한 채 숨결에 휩쓸려 검은 입자가 되었다.
이어 다른 마법사들이 온 힘을 쥐어짜내 보호막을 펼쳤으나,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무라칸의 숨결은 그야말로 무자비하게 지플의 저지선을 유린하고 있었다.
마치 가파른 언덕을 굴러 수십 채의 집을 박살내고야 움직임을 멈춘 전쟁 마차처럼.
무라칸이 가볍게 내뱉은 숨결은 서른여 명의 원로를 가루로 만든 후 미도르 바로 앞에 형성된 보호막까지 깨부순 다음에야 진행을 멈추었다.
크하하, 웃어 재끼던 흥분감 가득한 표정은 이제 남지 않았다.
미도르는 그저 온몸의 모공이 송연해진 채 두 눈을 껌뻑이고 있었다. 정육면체를 발동시키며 가졌던 자신감이 벌써 한풀 꺾여버린 것이다.
‘……정녕 이게 아무런 전조도, 준비도 없이 쏜 숨결이란 말인가?’
아무래도 계산을 잘못한 것 같다는 직감이 칼처럼 미도르의 가슴을 찔렀다.
검은 송곳들이 떨어지기 시작했을 때도 사실 조금은 느끼고 있었다.
과연 오늘이 복수를 실행하기에 정말 적합한 순간인지를.
다시 계산을 하기엔 이미 돌이킬 수가 없었다. 심지어 무라칸은 숨결에 살아남은 미도르의 모습에 더욱 분노하고 있었다. 자존심에 상처가 난 것이다.
[막아? 어, 막아? 미쳐 가지고, 정신이 없지, 아주? 하, 나. 이 새끼 이거. 짜증 나네.]때문에 무라칸은 다소 멘트를 벗어나는 평소의 말투가 나와버렸지만, 적들은 오히려 그래서 더 두렵게 느꼈다. 어딘가 어긋난 듯 변덕이 들끓는 강자는 언제나 무서운 법이었다.
후우웁!
이번엔 무라칸이 한 차례 깊게 호흡을 들이마셨다. 숨결을 토하기 위해 제대로 힘을 끌어올린 것이다.
소리 없이 쏟아지던 영기 송곳이 일시에 잦아들었다. 송곳 폭풍에 사용되고 있던 영기까지 숨결에 더한 결과였다.
영기 송곳이 멈춘 지상은 마법 포격의 시험장처럼 황량한 모습이었다. 평평한 땅은 단 하나도 남지 않았고, 신체 일부만 남은 시체들이 먼지처럼 바닥을 굴렀다.
비먼트의 대원들은 간신히 넋을 붙잡은 채 대열을 정비했고, 킨젤로의 수인들은 완전히 정신을 잃은 채 아무렇게나 대소변을 지리며 울음을 터뜨리고 있었다.
지플 쪽엔 이제 미도르와 원로들 몇 사람만이 겨우 남아 몸을 떨었다.
그리고 진의 앞쪽엔 산드라 지플이 인간의 형태를 찾아가며 스스로를 재생하는 모습.
키리릭, 키리릿, 톱니바퀴 도는 소리는 전보다 현저히 느려진 느낌이었다.
‘이것만 보면 진짜 시간의 권능보다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 지경이로군.’
시간의 권능이 대단한 건 사실이나 진이 알기로, 확정적 죽음에 달하는 피해를 당했을 때에도 이런 수준의 회복을 하는 건 불가능했다. 퀴칸텔조차 살점 단위로 분해된 몸을 되돌릴 수는 없는 것이다.
‘마신석과 생체 골렘의 힘. 그 두 가지가 함께 사용되고 있는 것은 확실해 보이는데. 지플이 만약 산드라 같은 존재를 계속 만들 수 있다면…….’
문득 전생의 기억 한 가지가 떠올랐다.
거울, 마력의 샘.
전생에서 지플은 그 콜론의 신물을 얻은 뒤 쉴 새 없이 7성 마법사를 찍어냈다. 양산 마법사라 불린 그들은 이후 지플의 독주를 더욱 공고히 하는 데 쓰였고.
산드라가 보여주고 있는 재생력은 전생의 양산 마법사 따위에 비할 게 아니었다.
내 회귀로 인한 변화일까?
자신이 회귀하여 지플을 자극한 것이 놈들의 연구 방향이나 성과에 어떤 지대한 영향을 미친 것은 아닐까? 그래서 오히려 룬칸델은 그때보다 지금 더 불리해진 것은 아닐까?
불현듯 그런 생각이 들었으나, 이내 진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지금 생각해보면 양산 마법사만으로는 지플이 그렇게까지 독주할 수 없었다. 마력만 7성이 된 이들이 몇 명이 있다 할지라도, 제대로 된 9, 10성들을 감당할 수는 없어.’
그때의 양산 마법사는 지금의 산드라 지플과 같은 ‘병기’를 만들기 위한 시험작이나 재료에 불과했을 것이다.
‘당시 양산 마법사는 대외적으로 지플이 독주하는 것을 선전하는 도구였고, 실제로는 산드라 지플 같은 이들이 대량으로 만들어져 언론에 노출되지 않은 전투를 벌이고 있었을 것이다.’
진의 이번 생에서 그들은 거울을 얻지 못했으니, 생체 골렘 연구는 전생보다 훨씬 늦어졌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렇게 가정해도 지플의 생체 골렘은 벌써 이런 수준에 다다른 상태였다. 온몸이 수십 번이나 분해돼도 다시 돌아오는.
‘심지어 오늘 내가 보게 될 지플의 비밀은, 이게 전부가 아닐 것 같군…….’
시퍼렇게 빛나는 정육면체.
과연 저게 무엇이기에 미도르가 이토록 자신감 넘치는 모습을 보이는지 강렬한 궁금증이 일었다.
비록 숨결 한 방에 그 기세가 한풀 꺾인 느낌이 나긴 하지만 말이다.
“이…… 기…… 운, 서자 새, 끼. 그, 만…….”
얼굴이 일부 돌아온 산드라가 가장 먼저 꺼낸 말이었다.
미도르는 그 말을 똑똑히 듣고 있었다. 영기 송곳이 멈추며 생긴 적막에 가까운 이들은 서로 숨소리까지 들을 수 있을 정도였으니까.
그러나 미도르는 산드라의 명령을 못 들은 체하며 두려움을 다잡았다.
바로 이렇게 생각하면서 말이다.
‘그래, 이길 수 있다. 두려워 말자. 오늘은 분명 순금 잔에 원수들의 피를 담아 마실 수 있는 날이니.’
형님과 함께라면.
그러지 못할 이유가 없다.
미도르가 무릎을 꿇으며 공손한 자태로 두 손을 치켜들었다. 신을 부르는 신자라도 된 것처럼.
그건 정육면체의 ‘완전한 개방’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미도르만의 의식이었다. 실로 오랜만에 만나는 형님을 환영하고, 존경을 표하기 위한 의식.
화오오오오……!
완전히 벌어진 육면에서 물처럼 빛이 번졌다. 정육면체에서 흘러나온 빛이 파도처럼 허공 사방을 넘실대고 있었다.
어둡고 음울한 푸른 빛줄기들은 공간을 도화지 삼아 그림을 그리는 듯했다.
지플을 제외하면, 무려 삼천 년을 살아온 무라칸은 물론이고.
이곳에 있는 모든 이들이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이상한 풍경이었다.
‘빛들이 뭔가를 형성하고 있…… 하, 이런 미친.’
잠시 정육면체의 빛이 진행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진은, 황당한 마음에 올라온 욕지거리를 억눌러야만 했다.
빛이 가장 먼저 형성한 것은, 한 사람의 인간.
뮤론 지플이었다.
“형님, 어서 오십시오……!”
미도르가 고개를 들어 반짝반짝 빛나는 눈으로 뮤론을 올려다보았다.
어느새 뮤론은 질감과 무게감이 느껴지는, 말하자면 빛이 아니라 물질로 이루어진 형태가 되어 있었다.
다만 콜론에서 만난 당시와는 달리 온전히 살아 있는 사람의 모습은 아니었다.
피부는 오래된 시체처럼 검푸른 색이었고, 곳곳이 벗겨져 뼈나 이빨, 내장 같은 것이 드러나 있었다. 눈동자는 어둡고 멍해 그저 시신이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다.
또한 정육면체의 빛이 형성한 것은 뮤론이 전부가 아니었다.
배.
지플의 결전병기, 하늘의 재앙을 상징하는 함선.
코젝과 흡사한 형상의 비행 함선도 뮤론의 뒤편에 형성하고 있었다.
그 시퍼런 배는 오히려 코젝보다 거대해서 겉모습만으로는 보다 대단한 위용을 내뿜었다.
함선 속에는 수많은, 빛이 형성한 마법사들이 탑승하고 있는 상태였다.
말하자면 난데없이 섬 한가운데 지플의 함선과 군대가 형성된 것이다.
그 충격적인 광경에 이성을 붙잡고 있는 이들은 모두가 할 말을 잊고야 말았다.
진조차 말문이 막힌 채 눈동자를 끔뻑일 지경.
마침내 뮤론이 입을 열어 인자하면서도 위엄이 묻어나는 목소리로 말하자 미도르는 감격에 겨워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이었다.
이제 형님과 함께 원수를 갚고, 아버지께 인정 받는 길로 나아갈 수 있다……!
그런 확신에서 시작된 전율에 온몸이 미친 듯이 떨리고 있었다. 잠시라도 형님과 형님의 배, 군대가 가진 힘을 의심한 자신이 멍청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리고 오랜만이로군, 진 룬칸…….] [아이, 대체 뭔가 해서 좀 지켜봤더니 뭐 이딴 게 또 튀어나왔어. 어? 재수 없게!]그때였다.
무라칸이 모아둔 숨결을 터뜨린 것은.
콰아아아아앗-!
방금까지 쏟아지던 검은 송곳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밀도 높은 영기가 뮤론과 그의 군대에게로 쇄도하고 있었다.
미도르도, 뮤론도.
그 숨결이 함선을 부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한 차례 방어한 후, 진 일행이 벌벌 떨 만한 대사와 공격을 이어갈 계획만 갖고 있었다.
하지만 다음 순간, 막 빛이 형성한 거대 함선은 너무나 쉽게.
마치 횃불에 삭은 한지가 태워지듯이 간단하게, 무라칸의 숨결에 중앙이 관통되어 완파되는 모습을 보이고 말았다.
쿠드드득, 카드득, 키기기기긱!
펑, 쾅! 그그그극! 팅! 태탱!
뮤론과 미도르는 함선이 부서지는 소리에 제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형제에겐 도무지 현실감이 없어 마냥 이상하게만 들리는 소리였다.
[뭣도 아닌 새끼들이 무게만 더럽게 잡고 앉았어, 하여간. 뒤지려고.]무라칸은 헹, 코웃음을 칠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