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469)
제 444화
132화. 몰살, 그리고 이상한…….(4)
후우우웅……!
마치 투명한 물통에 검은 물감이 풀린 듯, 무라칸에게서 빠져나온 영기가 하늘을 물들이기 시작했다.
속도가 무척 빨랐다. 순식간에 달빛 한 점 없는 밤이 된 듯 어두워진 가운데, 무라칸의 호박색 눈동자가 끔뻑이는 모습이 도드라졌다.
꼭 사신의 눈동자처럼 보였다. 어둡게 물든 하늘 아래에서 무라칸을 올려다보는 이들에게는.
-내가 다 쓸어버리라고 말하면, 그때부터는 100번대 이후 모든 멘트들을 알아서 조화롭게 사용해.
-100번대 이후 멘트? 그건 전부 다 죽음이나 파괴에 관한 내용이잖아.
-그렇지. 그런 멘트들을 적절히 사용하면서 가능하면 정말로 다 죽이라는 이야기야. 각 진영당 그다지 비중 없는 인물들 다섯 정도씩만 남겨두고.
-헹, 꼬마. 착각하고 있는 것 같은데 말이다, 그런 건 따로 정하거나 알려주지 않아도 잘할 수 있다. 오히려 네 멘트들은 쓸데없이 무게만 잡는 허섭스레기들이 사용하는 것 같다고. 나 같은 진짜배기들은 조금 더 담백하게 겁을 주지.
-아는데, 허풍이 필요하니까 한 말이야.
-뭣, 허풍?
-네가 진짜 전성기 때만큼 강하진 않잖아, 아직. 힘을 다 찾기 전까지는 최대한 있어 보이게 허세를 부려보자고. 흑왕단 사태 이후 네 위명이 하늘을 뚫을 기세인 건 알지?
-쳇, 마음에 안 드는군. 아무튼 네놈 말을 따르긴 하마. 나는 무라칸, 필멸자가 겪을 수 있는 최악의 악몽, 너희는 다신 꿈꿀 수 없는 망자가 되리, 같은 손발 오그라드는 멘트는 대체 어떻게 고른 건지.
-그게 107번이었나? 왜, 나쁘지 않은 것 같은데. 아무튼, 적들 죽일 때는 되도록 최대한 있어 보이는 기술들을 사용해. 비효율적인데 멋있고 웅장한 거.
-알았다, 알았어.
멘트를 짤 때 나눈 대화.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했으나, 사실 무라칸은 흑왕단 사태 이후 자신의 위세가 부쩍 상승한 사실에 은근한 만족감을 느끼고 있었다.
물론 전성기의 위엄에 비하면 새 발의 피, 발톱의 때만도 못하지만 잘 모르는 인간들이 자신을 평범한 용처럼 취급하는 기분이 들 때면, (사실 그런 적도 거의 없지만) 초라해진 듯한 기분이 도저히 풀리질 않았던 것이다.
말하자면, 그 만족감을 한 단계 더 올릴 기회가 왔다.
[나는 무라칸.]칠흑 같은 하늘 곳곳에 소용돌이가 형성되고 있었다.
한순간에 수백 개의 소용돌이가 만들어졌고, 모든 소용돌이의 가운데에선 시커멓고 거대한 송곳이 빠져나오고 있었다.
무라칸의 의지를 따라 지상을 난자할 검은 송곳들이었다.
[필멸자가 겪을 수 있는 최악의 악몽.]장엄하면서도 스산한 목소리가 군도 전체를 무겁게 짓눌렀다. 영기의 장막을 타고 사방으로 메아리치기도 했는데, 그 음울한 진동에 섬의 짐승과 벌레들이 허겁지겁 몸을 숨겼다.
새들은 섬 바깥을 향해 비행했고, 들짐승들과 벌레들은 깊은 굴로 파고들었다.
5할의 힘을 되찾고 나니.
미물들의 그 모든 움직임이 하나하나 다 전해지는 듯했다.
새떼가 비상하며 날개를 오므렸다 펴는 소리, 삵들이 은신처를 여느라 앞발로 흙바닥을 휘젓는 감각, 더 깊은 숲으로 파고드는 벌레들의 달리기와 비행.
무라칸은 하늘에 뜬 채 그 모든 것을 느끼고 있었다.
음미하고 있었다.
천 년 전엔 종종 음악을 대신해, 혹은 춘화집을 대신해 감상했던 감각들이었다. 5할을 되찾기 전까지는 까맣게 잊고 있던 것.
그래서 한동안 가만히 기다려주었다.
미물들이 충분히 몸을 피할 수 있도록 말이다. 어쩔 수 없이 피하지 못한 미물들의 위치를 확인하기도 했다. 학살이 시작되면 되도록 죽지 않게 신경을 써주기 위해서였다.
미물들의 움직임이 그토록 선명하게 다가오는데.
바로 아래 깔려 있는 인간들의 공포가 느껴지지 않을 수는 없었다.
‘단지 힘을 전개하고 있을 뿐인데, 이런 위압감이란 말인가……! 황실의 용들이 괜히 두려워한 것이 아니었다.’
‘분명 심장을 다쳤다고 하던데, 이게 정말 다친 상태의 힘인가? 모두 회복한 건가?’
‘무섭다, 무서워, 살려줘!’
황실과 지플, 킨젤로의 수인들이 각각 생각했다.
그들의 심장박동과 떨림이 듣기 좋은 선율처럼 느껴졌다.
‘그래, 바로 이런 기분이었다. 모든 것을 내 뜻대로 죽이고 살릴 수 있다는 기분!’
무려 천 년 만에 느끼는 짜릿한 감각에 꼬리가 빳빳해지고 부르르 가슴팍이 떨렸다.
여전히 세계 최고 수준의 강자들을 상대로는 이런 기분을 음미할 수 없을 테지만, 당장은 자신이 이 군도의 신이나 다름이 없었다.
진의 적들 모두가 입도 뻥긋하지 못한 채 극도로 긴장한 와중.
딱 한 사람, 산드라 지플만이 계속해서 악을 지르고 있었다.
“미도르 엘너, 이 배은망덕한 서자 새끼야! 미리 경고하는데, 내 허락 없이 마탑주 지팡이 발동만 시켜봐. 응? 직접 회칼로 목을 썰어서 드락카 광장 한가운데에 효시를 해줄 테니까.”
그녀는 자신의 팔이 잘려 봉인된 것에 전혀 관심이 없는 눈치였다.
절단면은 다소 회복이 된 상태로, 시간의 권능이 아닌 일반적인 치유 마법으로 지혈만 시켜둔 상태였다.
계속 미도르에게 저주를 쏟는 것뿐만이 아니었다. 진에겐 한없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들개 먹이로 줘도 아깝지 않을 서자 때문에 우리 데이트에 다소 문제가 있었네요. 얼굴만큼 잘생긴 마음으로 너그럽게 이해해줄 거죠?”
아무래도 이 인간하고는 엮이지 않는 게 좋겠다.
그런 본능적인 신호가 진의 뇌리를 마구 울리고 있었다.
등허리가 서늘해지는 걸 넘어 처음 겪는 종류의 이상한 공포감 같은 것이 온몸에 소름을 돋게 할 지경이었다.
“그나저나 어디까지 이야기했었죠?”
“그, 음. 마신석.”
“아, 맞아요. 마신석. 우리가 그거 킨젤로 없이 만드느라고 얼마나 고생을…….”
“산드라 님! 아니, 이 미친 인간아! 적당히 좀 해……!”
미도르의 다급한 외침에 산드라가 또 한 번 난리를 치려는 찰나, 무라칸은 미물들이 이제 모두 떠났거나 자리를 잡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너희는 다시는 꿈꿀 수 없는 망자가 되리.]107번 멘트를 마무리 짓는 무라칸.
이어 그는 흡족한 눈빛으로 지상을 훑었다. 송곳들이 떨어질 위치를 잡은 것이다.
영기의 소용돌이에서부터 검고 날카로운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각 소용돌이는 하나의 거대한 송곳과 그 근처에 형성된 수백 개의 작은 송곳들을 쉴 새 없이 토해내고 있었다.
멀리서 보면 난데없이 메뚜기떼가 군도를 덮친 것처럼 보였다.
더 무서운 것은 그 송곳들이 아무런 소리도 없이 낙하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무음’은 그림자, 영기라는 힘의 가장 우월한 속성 중 하나였다.
“마, 막아!”
“빌어먹을, 산드라 님을 구해라!”
“크어어억!”
그토록 많은 송곳이 쏟아지고 있는데도 들리는 건 오직 비명과 무언가가 파괴되는 소음이 전부였다.
보통 이 정도 규모의 마법이나 기술을 사용할 땐 아군 피해도 어느 정도는 감수를 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영기의 송곳들은 룬칸델의 기사들이 서 있는 쪽엔 단 하나도 떨어지지 않고 있었다.
한 뼘 이내의 거리를 유지하며 떨어지고 있었다. 마치 룬칸델의 진영에만 우산이 씌워진 것 같았다.
자연스럽게.
룬칸델들의 시선은 진과 무라칸을 향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진에게 향하고 있었다. 송곳을 퍼붓는 무라칸보다도, 어떤 면에선 그저 무감한 얼굴로 서서 살해되는 적들을 감상하는 진이 더욱 살벌하게 다가왔다.
룬칸델들로서는 상하 관계를 슬쩍 엿본 듯한 느낌이 들었다.
‘막내가 저런 식으로 명령해도 불쾌한 기색 하나 없이 행동해? 수호룡과 계약자의 관계가 보통 전자 쪽이 어느 정도 밑진다고는 하지만, 이건 완전히 주인과 부하가 아닌가!’
단지 찌르고 관통하는 걸 넘어, 무라칸의 송곳은 말 그대로 적들을 ‘갈아버리고’ 있었다.
자신에게 소속된 수호기사와 집행기사들을 모두 합쳐도, 무라칸 하나를 따라갈 수 있을까?
절대로 그럴 수 없다는 확신이 들었다.
‘내 수호기사들은 비교 대상조차 될 수 없고, 어쩌면 큰형님의 세력조차도…….’
무라칸을 감당할 수 없을지 모른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당연하게도 그건 잘못된 생각이었다. 제아무리 무라칸이 5할 힘을 되찾았다곤 하나, 조슈아에겐 흑기사가 있고 가문 최고의 집행기사들과 최대의 수호기사들이 있었다.
무라칸 혼자 그들을 다 상대할 수 있다면 진은 내일 당장 가주가 될 것이다.
뷔고는 실로 오랜만에 보는 압도적인 무력과 연출에 한껏 주눅이 들어 착각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착각은, 그가 복귀한 후 검의 정원에 돌게 되는 한 줄기의 큰 소문이 될 터였다.
산드라도 갈기갈기 찢기고 있었다.
“으, 우, 생각, 큭, 해봐요, 나랑, 결혼.”
놀랍게도, 그리고 지금까지 계속 그래왔듯이. 그녀는 계속 몸을 초재생시키며 진에게 시선을 고정하는 모습이었다.
“크아악!”
“컥!”
그녀를 구하러 달려온 원로들은 보호막을 치다가 단말마의 비명을 남겼다. 미도르의 명이 있으니 구하기는 해야 하지만, 사실 원로들의 힘으론 역부족이었다.
미도르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순혈이 눈앞에서 찢기고 있는데,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차후 무슨 문제가 될지 모르니 명령을 내린 것뿐.
또한 명분을 만들 필요도 있었다.
산드라를 구하기 위해 이렇게까지 많은 희생이 있었으나, 끝내 그녀는 작전 지휘를 수행할 수 없는 상태를 벗어날 수 없었다고.
따라서 자신이 대신 전권을 잡고 지휘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이다.
“7마탑주, 이 정도면 되었소. 이제 마탑주께서 지휘를 하여도 가주께서도, 원로회에서도 이해하실 것이오……!”
“이대로면 몰살이오, 산드라 아가씨의 재생도 무한한 것은 아니잖소. 아가씨를 살리기 위해서라도…… 그 방법을 사용해야 하오!”
한 원로가 보호막을 뚫고 들어온 송곳을 쳐다보며 말했다.
미도르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입술을 질끈 깨물며 고개를 끄덕였다.
-거대 형상이 사라진 것을 보아 대용병 아멜라는 이미 무라칸에게 당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7마탑주, 전 마탑주의 원수를 갚고 싶은 마음은 알지만 지금은 물러나야 합니다!
-7마탑주!
-고정하십시오!
그 방법.
바로 그것이 미도르 엘너가 처음부터 무라칸과 진이 얼떨결에 합작한 업화를 보고도 물러나지 않으려던 근거였다.
“후우.”
미도르가 한 차례 숨을 골랐다. 드디어 복수를 할 수 있다는, 흥분감에 거칠어진 호흡을 가리기 위해서였다.
차라리 잘되었다. 행여라도 산드라가 그냥 물러나자고 했으면 원수를 눈앞에 두고 꼼짝없이 빠져야만 했을 테니까.
“알겠습니다.”
미도르가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내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