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480)
제 444화
134화. 선상의 결투(3)
번쩍!
눈부신 빛이 먼저 시야를 가렸다.
극의에 다다른 광속 찌르기를 ‘보고’ 반응할 수 있는 무인은 세상에 단 한 사람도 존재하지 않는다.
반응이 아닌 예측, 혹은 그조차 뛰어넘는 어떤 깨달음을 얻지 않고서는 결코 피할 수 없는 것이다.
다행히도 메리의 제5비기는 아직 극점에 닿지 못했다. 또한 준비 동작 없이 너무 빠르게 펼쳤기에 진은 방심하고 있었음에도 몸을 움직일 수 있었다.
왼쪽으로 몸을 던졌다.
광속 찌르기의 타격 범위는 한 점에 국한되지 않았다. 점으로 시작해 부채꼴로 퍼지다 다시 점으로 수렴하는 형태.
따라서 진은 사슬검 독사의 궤도를 한참 벗어났는데도 검기가 뺨과 목 근처를 스치고 지나가는 걸 느껴야만 했다.
모골이 오싹해졌다.
‘티칸은 괜찮은 건가!’
뜨겁게 흐르는 핏물이 옷깃을 적시는 감각과 함께, 진은 어떻게 대처할지 머릿속으로 빠르게 계산을 끝냈다.
‘돌아보면 늦어, 반격부터 한다.’
광속 찌르기의 진행 방향이 아슬아슬하게 티칸을 벗어난다는 판단이었다.
설마 누이가 아버지의 명령을 어겨가면서까지, 또한 자신과 철천지원수가 되는 것을 각오하면서까지 광속 찌르기를 펼치지는 않았을 테니까.
쇄액-!
낮게 몸을 낮춘 진이 화살처럼 몸을 튕기며 검을 내질렀다. 먼저 고른 검은 봉뢰검 시그문드, 창백하고 날카로운 뇌기가 메리의 이마로 뻗어지고 있었다.
그녀는 어렵지 않게 동생의 찌르기를 막아냈다. 그리곤 아주 만족스럽다는 듯 크하하, 웃음을 터뜨렸다.
이어지는 남매의 공방은 두 줄기의 빛이 난반사되며 얽히듯 빠르고 어지러운 형세였다.
번쩍이며 흩어지고 다시 붙는 검광의 움직임을 관객들은 따라갈 수조차 없었다.
“우오옷! 메리 경이 첫 수부터 엄청난 걸 보여주는군요! 히익! 저게 뭔가요, 저게 뭡니까! 티칸 위 하늘에, 구멍이, 났습니다아-!”
코스모스는 진행뿐만이 아니라 경기 해설도 함께 겸하기로 한 모양이었다.
관객들은 그의 손가락을 따라 하늘을 쳐다보았고, 과연 구름에 거대한 구멍이 뚫린 모습을 보곤 저마다 탄식을 내뱉었다.
인간이 단 한 번 검을 내질러 이런 현상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사실은 눈으로 보고도 믿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이것이 룬칸델인가……!
모두 그렇게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메리가 펼친 신기에 가까운 찌르기는 물론이고, 그 와중에 그걸 피하며 반격까지 해낸 진 역시 마냥 괴물처럼 보였다.
군중들뿐만이 아니라 진의 동료들도 메리의 실력에 전율하며 혀를 내두르고 있었다.
“제자리에서 저런 찌르기를. 아니, 저걸 찌르기라고 할 수는 있는 건가? 발카스 님이 왜 메리 경에게 돈을 걸라고 했는지 알 것 같군요.”
카시미르의 말에 발카스가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코스모스가 멀쩡히 지껄이는 걸 보니 역시 티칸엔 아무런 타격이 없었다.’
진은 곧장 반격한 게 완벽한 대처였다는 사실에 속으로 가슴을 쓸어내렸다.
만일 조금이라도 망설였거나, 티칸을 먼저 확인하려고 했으면 자세가 무너진 채 후속타를 감당해야 했을 것이다.
“칫, 이번에도 역시 아버지처럼은 되지 않네. 꽤 연마했는데 말이지.”
쩝, 입맛을 다시며 말하는 누이의 모습에 급격히 분노가 끓어올랐으나 간신히 억누르며 눈을 맞췄다.
“절 죽이려고 작정을 하고 오셨나 보군요. 머리가 사라질 뻔했습니다.”
“안 죽었잖아. 너라면 당연히 반응할 줄 알았지, 흐흐.”
“……큰 기술은 피하자고 먼저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후후, 내가? 언제?”
“아니, 분명.”
“정말 그렇게 생각한다면 내가 했던 말을 잘 떠올려봐, 동생아.”
-룰은 간단해. 너와 나는 함대 위에서 싸운다. 단, 함대를 지나치게 파손하는 파괴력 높은 기술은 모두 금지다.
-비록 큰 기술은 이번 결투에서 대부분 봉인하기로 했으나, 이 누나는 최선을 다할 것이란다.
함대를 지나치게 파손하는 파괴력 높은 기술은 모두 금지, 큰 기술은 대부분 봉인이지만 최선을 다할 것…….
그건 바꿔 말하면, 함대를 파괴하지만 않으면 어떤 기술이든 펼쳐도 상관이 없다는 뜻이었다.
‘말장난이었다, 이 말인가.’
까득!
절로 이가 갈렸다.
생각해보니 메리와의 첫 결투도 그랬다.
그때도 메리는 혼자만 은광갑을 입고 사방에 최상급 마력 폭탄을 깔아둔 채 대결을 진행했던 것이다.
평소 그런 말장난이나 얕은 수에 당하는 일은 거의 없건만, 이상하게 진은 메리와 겨룰 때면 늘 이런 식으로 한 방 맞는 그림에 빠지곤 했다.
“어떤 의미인지 잘 알았습니다.”
“그래? 이제라도 알아서 너무 다행이구나. 어서 다시 덤벼, 덤벼! 그런데, 왜 투구는 발동시키지 않은 거냐?”
잔뜩 상기된 목소리로 말하며, 메리가 칼끝으로 진의 머리를 가리켰다.
“아, 뮬타의 룬 말씀이십니까?”
“그런 이름인가? 어쨌든 그 검은 투구. 그걸 썼으면 그렇게 다치지 않았을 것 같은데 말이지.”
“그건 누님이 안대를 한 것과 같은 이유입니다.”
진의 대답에 멈칫하는 메리.
그녀는 눈을 잃어서 안대를 찬 것이 아니다. 진이 마검 비기나 명왕군림검을 사용하지 못한다면 자신에게 이 정도는 핸디캡이 있어도 괜찮지 않을까, 그런 마음이었다.
메리는 진이 자신보다 명백히 우위에 있다고 여겼으나 적어도 순수 검술만큼은 본인이 앞선다는 믿음이 있었다.
“호오, 그래?”
“잘 생각해보십시오, 누님. 누님과 저는 첫 번째 대결에서도 비등비등한 모양새였거든요. 그때도 저는 누님이 죽을까 봐 겁이 나서 힘을 아꼈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그런 아티팩트까지 써야 하겠습니까?”
“그런 말은 이 누나가 안대를 벗지 않으면 안 될 상황을 만든 다음에 해도 늦지 않겠어, 동생!”
말을 끝맺기 무섭게 다시 거리가 좁혀졌다. 깜빡, 눈을 감았다 뜨니 독사는 이미 코앞까지 날아들어 시야를 가리고 있었다.
찌르기라고 판단해 쳐내려고 검을 올리자 차르륵, 사슬검이 풀어지며 경로가 바뀌었다.
뱀처럼, 채찍처럼 움직이는 사슬검은 한 사람의 공격이라 믿을 수 없을 만큼 사방에서 날아들고 있었다.
관객들의 눈엔 진이 사슬검의 궤적과 잔상 속에 완전히 갇혀버린 듯 보일 정도였다. 우지끈! 두 사람이 보법을 밟을 때마다 갑판이 파이며 나무 파편이 튀었다.
사슬검의 압력이 점점 더 무거워지고 있었다.
메리의 온몸이 오러로 물들기 시작한 결과였다. 제7결전기의 변형, 자폭기가 아니라 일종의 육체 강화라고 해야 할 기술.
룬칸델 제7결전기
화산 – 메리 룬칸델
메리가 화산에 이름을 붙인 건, 다름 아닌 시론이 직접 허락해준 일이었다.
진은 딱 한 번 메리가 자신의 화산을 펼치는 걸 본 적이 있었다. 그때와 지금은 형태가 조금 달랐지만 말이다.
‘망령대로부터 나와 작은 수인들을 구해줬을 때 펼친 화산의 변형이다. 그때보다 진보한 건지, 느낌이 전혀 달라.’
새삼 감사한 마음을 가지며 그때를 돌아볼 틈 따윈 없었다.
또한 그토록 강력한 검을 펼치면, 함대가 다 부서질 텐데 괜찮겠느냐고 물어볼 필요도 없었다.
커헉-!
화산이 펼쳐진 후 검을 섞자마자, 진은 핏덩이를 토하며 뒷걸음질을 쳤다.
기묘한 검이었다.
화산을 펼친 메리의 검격은 10성 무인의 진심 어린 일격이라 해도 손색이 없을 지경이건만, 어째서인지 진을 제외한 다른 사물에 전혀 피해를 입히지 않고 있었다.
‘……충격이, 외부로 전혀 빠져나가지 않는다고?’
화산을 펼친 메리의 독사는 오직 진에게만 충격을 주었다.
진이 핏물을 토할 만큼 강한 힘으로 내리찍어도 갑판엔 작은 균열조차 생기지 않는 것이다.
그렇기에 외부에서 보면 남매는 장난을 치는 듯 보였다. 그저 평범한 공방이 오가고 있는데, 진만 검이 닿을 때마다 몸을 비틀거나 피를 토하고 있으니 그럴 수밖에.
본래 자연 법칙에 따라 외부로 빠져나가야 할 충격이 고스란히 몸속만 휘젓고 있으니, 진으로서는 당최 받아들이기 어려운 현상이었다.
“아, 이게 무슨 일인가요! 가벼운 공격처럼 보이는데, 진 경이 마구 피를 토하고 있습니다! 위기입니다, 진 경!”
관중들과 마찬가지로 티칸의 동료들 또한 대부분 그 광경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귀검이라 불리는 카시미르조차 처음 보는 종류의 검인 것이다.
“오호, 과연. 발카스, 네 녀석 평가가 영 틀린 것은 아니구나. 메리 룬칸델이 벌써 저런 경지에 올랐을 줄이야. 저 녀석, 생각보다 섬세한 구석이 있나 보군? 내 시대에도 저걸 구사했던 인간은 그리 많지 않았는데.”
무라칸은 삼천 년을 넘게 살아온 데다, 룬칸델의 최전성기를 함께했던 만큼 그게 어떤 경지인지를 바로 알아보았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겁니까?”
“그게, 야, 퀴칸텔. 저거 뭐라고 부르더라? 하도 오랜만에 봐서 기억이 안 나네.”
“테마르는 심열心熱이라고 불렀지. 검사보다는 주로 격투가들이 쓰던 방식이고.”
“아, 맞아. 심열검, 그런 이름이었다. 저건 외부 충격은 전혀 없이, 오직 내상만 유발하는 검이다. 평범해 보이는 공격에 꼬마 녀석이 고통스러워하는 이유지.”
쿡, 쿡, 쿠국!
검이 맞닿을 때마다 수십 개의 송곳이 장기를 헤집는 끔찍한 고통이 찾아왔다. 곤두선 머리카락 사이에 식은땀이 가득했다.
우선 거리를 벌려야 한다.
그 당연한 대처를 진이 모를 리 없었다. 다만 메리를 밀어낼 만큼 강력한 기술을 사용할 수 없고, 공간이 한정적이니 쉽지 않았다.
‘……누님이 화산을 유지하며 계속 이런 검을 펼칠 수는 없을 거다. 애초에 화산의 변형은 그 자체로 몸에 엄청난 부담을 주는 기술이기도 하고.’
하지만 그것만 믿고 시간을 끄는 건 도박이며, 불가능한 일이었다. 섬광포를 비롯한 마법들 역시 이미 메리에게 정보가 있으니 시간을 벌어줄 수 없었다.
따라서 단숨에 끝내야 했다.
그리고 진은, 사실 처음부터 그럴 계획이었다. 광속 찌르기와 심열검이라는 변수에 조금 당황했을 뿐.
이런 한정된 조건 속에서의 전투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걸 알고도 명왕검을 ‘먼저’ 고른 건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프즈즉…… 파짓!
명왕검에서 퍼진 뇌기가 진의 온몸을 빠르게 물들이자 메리가 입을 열었다.
“검의 정원에서 보여준 그 기술이냐? 그건 분명 실격패를 당할 텐데 말이다. 아니면, 승패와 상관없이 이 누나를 죽이고 싶은 건가?”
진이 고개를 끄덕이자 메리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