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479)
제 444화
134화. 선상의 결투(2)
메리, 메리, 메리!
안 그래도 한껏 무르익은 분위기는 이제 문자 그대로 광란의 도가니가 되었다.
거주민들은 검투장의 관객으로 변했고, 이런 싸움을 이토록 가까이에서 목격하는 건 분명 인생에 두 번은 없을 행운이었다.
‘크으, 이거다. 바로 이런 기분이었다……!’
해적왕이자 사략왕, 코스모스는 실로 오랜만에 온몸이 전율과 환희로 물드는 것을 경험하고 있었다.
3년 전 나침반 탈취 작전에서 진을 도운 이후, 코스모스는 단 한 번도 각축장을 개최하지 못했다. 늘 수배자 신분으로 이리저리 바다의 어두운 공간들을 유랑하기만 한 것이다.
‘생각해보면 진 그레이와 폴 믹의 경기가 내 각축장 인생 최고의 명경기였지. 오늘을 기점으로, 앞으로는 룬칸델의 지원을 받아 제대로 된 무투 대회를 운영할 수 있으면 좋겠군!’
진은 엄지로 목을 긋는 메리의 도발보다,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이 촉촉하고 빛나는 눈동자로 자신을 올려다보고 있는 코스모스를 의식하고 있었다.
‘뭐지? 부담스러울 정도로 감개무량한 얼굴인데.’
코스모스가 자연스럽게 눈가를 훔치며 다시 입을 열었다.
“즈아아아아! 메리, 광풍의 메리였습니다! 그럼, 그! 상대는-!”
미리 약속이라도 한 듯이 코스모스가 진을 소개하려고 하니 객석의 소요가 일시에 잦아들었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이어진 갑판들이 반짝반짝 빛을 발했고, 간부로 보이는 부하들이 돛대 사이의 줄을 타고 이동하며 진 쪽으로 대포 같은 것을 쏘았다.
펑! 펑!
대포가 쏜 것은 굵은 밧줄이었다. 끝에는 갈고리가 달렸고 줄에는 두꺼운 천과 비단이 묶인 수십 개의 밧줄들은, 한 갈래로 이어지며 티칸과 함선을 잇는 다리를 만들고 있었다.
이번엔 관객들뿐만이 아니라 진과 동료들, 메리조차 코스모스의 엄청난 연출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전부터 느낀 건데, 도대체 이런 능력을 가지고 왜 해적질이나 하고 있었는지 모를 인간이야.’
진이 발치에 이어진 밧줄 길을 내려다보았다.
“충격의 예비 기수였고, 대마법사 키다드 홀 살해자이자 희대의 뇌검객 바멀! 솔더렛과 흑룡 무라칸의 계약자! 성국 반켈라의 구원자이며 마검사 룬칸델, 어쩌면 룬칸델의 다음 가주가 될 수도 있는 막내, 12기수이자…… 1796년도 코스모스 각축장의 우승자!”
뭔가 이상한 게 하나 끼어있지 않냐고 따지고 싶었으나 그럴 분위기가 아니었다.
진 룬칸델! 진 룬칸델!
난간에서 한두 사람이 진의 이름을 외치자 코스모스가 쉿, 검지로 입술을 가렸다.
그리고 뜸을 들이며 말을 이어갔다.
“……최근 항간에 떠도는 소문에 의하면, 또 선술집 호사가들의 이야기와 각종 비평 협회와 기사 연맹과 무인 동맹의 최신 회의에 의하면. 최근 그는 이런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더군요.”
아직 진에게는 ‘대표적인’ 이명이 없었다.
그림자의 계약자, 마검사, 영웅 등. 수많은 수식어가 있긴 하지만, 딱 떠오르는 칭호는 없는 것이다.
“……소개합니다! 어둡고 날카로운 검은 별, 룬칸델의 괴수! 휴페스터의…… 흑, 태, 자!”
진은 그 대목에서 저도 모르게 헛기침을 했고, 무라칸은 진과 동료들을 번갈아 가리키며 ‘흑태자래, 흑태자! 크하하핫, 흑태잣!’이라고 말하며 미친 듯이 웃음을 흘렸다. 다행히 그 웃음소리는 이어지는 북소리에 묻혔지만 말이다.
사실, 지금까지 진을 흑태자라고 부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건 진이 실제 황족이나 왕족이 아니기 때문도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조슈아의 존재 때문이었다.
태자란 다음 군주가 될 사람을 칭하는 단어다.
차기 가주인 조슈아가 있는데 진에게 그런 이명을 붙일 만큼 용감한 사람은 휴페스터에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런 의미에서 코스모스는 아주 용감한 축에 속하는 인물이었고, 그는 직감하고 있었다. 자신이 처음 붙인 흑태자라는 별명은 앞으로 전 세계를 아우르는, 진을 상징하는 명사가 되리라고.
“지이이이인-, 룬칸데에에엘!”
소개가 끝나자마자 메리보다 두 배, 아니. 세 배는 큰 함성이 티칸 앞바다를 우렁차게 진동시켰다.
티칸은 진의 근거지였고, 코스모스의 소개말이 워낙 화려했으니 반응에 차이가 나는 건 당연한 현상이었다.
그래서 메리는 모두가 동생이 휘황찬란한 밧줄 비단길을 천천히 내려서는 모습에 넋이 나갔을 때, 코스모스의 귀를 마구 잡아당겼다.
“너 이 새끼, 대체 누굴 모시는 거야? 왜 나보다 막내 녀석 소개가 몇 배는 요란한 건데?”
“어윽, 악, 귀, 제 귀, 귀, 귀 좀! 후아! 아니, 대선장님! 그걸 제 탓을 하시면 어떻게 합니까!?”
“뭐? 이게 미쳤…….”
“저 비단길은 원래 대선장님을 위해 준비했던 물건이라고요. 그런데 그냥 대선장님이 비단길을 쏘기도 전에 폴짝 뛰어내려서 어쩔 수 없이 동생분에게 사용한 겁니다.”
“흠.”
“그리고 동생분 잘 되는 게 그렇게 싫으십니까? 여기까지 오는 동안엔 내내, 귀에 딱지가 앉도록 동생 자랑만 하시더니!”
“물론 우리 막내 녀석이 잘 되는 건 좋은데 묘하게 기분이.”
“후후, 그래도 걱정 마십시오. 승리하시기만 하면, 이 코스모스가 더 성대한 축포를 터뜨려드릴 테니. 무운을 빌겠습니다, 대선장님!”
이윽고 진이 비단길을 걸어 갑판으로 내려섰다.
뜨거운 환호가 계속되었으나, 진과 메리가 서로를 가만히 쳐다보고 있으니 점점 기류가 무거워지고 있었다.
관객들은 긴장감을 즐기며 마른침을 삼켰고, 남매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나저나 요나, 그 쥐콩만 한 녀석은 간 건가? 야, 미물!”
“예, 무라칸 님.”
“넌 누가 이길 것 같냐? 하나 걸어, 내기나 하게. 금화 천 개다.”
“금화 천 개는 내기로 하기엔 좀 크지 않습니까?”
“이천 개. 생각해보니 좀 살 게 있다.”
“룰이 없다면 진 공자를 골랐을 겁니다. 하지만 이 상황은…… 글쎄요. 확실한 건, 누가 이기든 파장이 엄청날 것 같군요. 보는 눈이 한둘이 아니니.”
“현세대 순혈 룬칸델들끼리의 싸움은 외부에 공개된 적이 거의 없죠. 이건 대중에게 명백히 우열을 알리는 싸움이 될 텐데, 패배하는 쪽은 생각보다 잃을 게 많을 수도 있습니다.”
알리사가 설명을 덧붙이자 발카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특히 메리 룬칸델이 잃을 게 많겠지. 그녀는 7기수지만 사실상 최상위 기수에 가까운 대우를 받고 있고, 백경 이후 시론 경이 가장 관심을 많이 드러낸 기수라는 평이 많았으니.”
그건 제대로 된 무인이라면 모두가 아는 이야기였다.
실제로 시론은 메리에게 상당히 관심을 보였었다.
룬칸델의 비기 몇 가지를 ‘직접’ 전수할 정도로.
“그리고 귀검, 자네. 두 사람의 싸움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모르겠다고 말했나?”
“그렇습니다, 발카스 경.”
“메리 룬칸델의 검을 직접 본 적이 없나 보군. 그러니 그런 소리를 하지.”
“발카스 경이야말로 공자의 검을 못 보신 것 아닙니까?”
“나라면 무조건 메리 룬칸델에게 걸겠네. 주군이 마검사가 아니라 순수 검사로 대결한다면, 고민할 필요가 없지. 절대로.”
“좋아, 그럼 너희 둘은 메리한테 걸어. 난 꼬마한테 건다.”
사르륵, 차륵!
내기가 오가는 사이, 메리가 허공에 사슬검을 돌리며 먼저 입을 열었다.
“네 보금자리는 아직 공사가 한창이구나, 막내. 흑왕산채가 통째로 티칸으로 옮겨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어. 그런데 네 전리품들, 나랑 디푸스 오라버니가 똥파리들 꼬이지 않게 지켜준 건 아냐?”
“몰랐습니다, 누님.”
“나도 흑왕단하고 한 번쯤은 진하게 싸워보고 싶었는데 말이야. 이 자식, 언제 그렇게 커버린 거냐. 혼자서 흑왕단을 박살 낼 정도로.”
혼자서라뇨?
반문하려는 찰나 메리가 자랑스러운 얼굴로 뒷말을 이었다.
“작년까지만 해도 지플 마법사들한테 애먹는 걸 나랑 오라버니가 구해줬었는데. 검의 정원에서처럼, 흑왕산채에서도 명왕검과 마검으로 그런 거지? 사실, 이 누나가 조금 전에 말했던 목표는 말이다. 바로 네놈을 아득히 뛰어넘는 것이다.”
다소 오해가 있는 듯했으나 메리는 도무지 진에게 말할 기회를 주지 않았다.
큰 뜻을 처음으로 펼치기 시작한 어린애처럼, 혼자 감격에 차서 떠들고 있는 것이다.
‘어쩐지 처음부터 나를 대할 때 뭔가 엄청난 각오가 찬 것 같은 눈빛이셨는데, 그런 오해가 있던 건가.’
주먹을 불끈 쥐는 메리.
“막내야.”
“예, 누님.”
“비록 큰 기술은 이번 결투에서 대부분 봉인하기로 했으나, 이 누나는 최선을 다할 것이란다. 그러니 너도 어설프게 하지 마라. 제대로 하지 않으면 즉시 티칸을 통째로 무너뜨릴 것이야.”
제가 누님을 상대로 어떻게 어영부영 싸웁니까? 애초에 불가능한 일입니다.
진은 그렇게 대답하는 대신, 다른 말을 고르기로 했다.
이왕 피할 수 없는 싸움이 되었으니, 언제나처럼 진이 가장 잘 하는 수단을 쓰려는 것이다.
상대를 도발하고 흔들어서 빈틈을 만드는 행위, 그건 진이 싸움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요소 중 하나였다.
“알겠습니다, 누님. 그런데 저를 그리 평가하고 있다면, 싸움을 시작하기에 앞서…… 누님부터 한 가지 고쳐야 할 점이 있지 않습니까?”
메리의 눈썹이 한 차례 씰룩였다.
“그게 무엇이냐?”
지금까지의 대화는 두 사람이 가까이에서 낮은 목소리로 말했기에 군중들에게 전해지지 않았다.
하지만 다음 순간 진은 일대에 있는 모두가 똑똑히 들을 수 있도록 이렇게 소리를 질렀다.
“안대를 빼!”
쩌렁쩌렁한 외침이 티칸의 벽면을 타고 메아리를 쳤다.
“……요, 누님.”
무라칸은 또 한 번 박장대소하며 메리의 속을 긁었고, 군중들은 웃어도 되는 것인지 안 되는 것인지 헷갈려 그냥 가만히 있는 모습.
“예전에 조르덴 당숙이 네 두 팔을 왜 잘랐는지 조금은 이해가 되려고 하는구나…….”
고오오오-!
문자 그대로 순식간에, 메리의 사슬검 ‘독사’로 빛나는 오러가 모여들었다.
이토록 빠르게 형성되었다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밀도 높은 오러였다.
‘이건……!’
그리고 진은 자세를 보자마자 그녀가 첫 일격으로 무엇을 펼치려는지를 즉시 알아보았다.
반면 메리는 씨익, 미소를 지으며 저번 이후 더욱 갈고 닦은 비기를 펼쳐 보이고 있었다.
룬칸델 제5비기
광속 찌르기
메리가 펼친 것은, 과거 오즈도크를 토벌할 때 사용한 바로 그 검이었다.
‘아니, 미친! 함대를 파괴할 만큼 강한 기술은 봉인하고 싸우자며……!’
룬칸델의 기수가 이토록 빨리 말을 번복하는 것이냐고, 거짓말을 하는 것이냐고 따져볼 수도 없었다.
이미 메리의 독사는 진을 향해 쇄도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