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511)
제 555화
141화. 추락(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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톡톡톡톡톡톡톡톡…….
앤은 쉴 새 없이 검지로 테이블을 두드리고 있었다. 때때로 손톱을 물어뜯기도 하며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
“젠장, 젠장, 젠장……!”
맞은편에 앉은 뮤 역시 심란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그들 자매는 조슈아 한 사람만을 바라보며 이 가문에서 살아남고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느 한 시절에도 두각을 드러낸 적이 없는 것이다. 예비 기수였던 때에도, 기수가 된 다음에도, 지금도.
특히 15세, 중급반 생도였던 진과 서열 전쟁을 벌였다가 패배한 이후부터는 줄곧 내리막이었다.
시론과 로사는 단 한 번도 그들에게 관심을 준 적이 없다.
한 번씩 나름 성과라고 불러도 좋을 일을 해내도 칭찬하지 않았고, 실수를 저질러도 혹독히 혼내지 않았다.
뮤와 앤은 공기였다. 순혈로서 ‘아주 뛰어난’ 모습을 보이지 못한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공기는 필요하기라도 하지…… 큭큭.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그저 뛰어난 형제들을 빛내기 위한 깔개. 돌아보면 우린 늘 그런 처지였네.”
“갑자기 무슨 소리야 언니. 지금 그딴 감상에 빠질 때야? 큰오라버니가 끝장나게 생겼다고!”
“생긴 게 아니라 이미 끝났어. 따라서 우리도 끝났지. 이제 우린 목 비틀리기 직전의 닭이나 다름이 없어.”
“하! 어머니가 이렇게 쉽게 큰오라버니를 포기할 리 없어. 분명 뭔가 생각이 있으실 거야. 뭔가, 분명, 생각이…….”
안타깝게도 뮤와 앤은 진이 통찰해낸 것을 볼 수 있는 혜안이 없었다.
자매는 어두운 얼굴을 한 채 말없이, 오래전 루나에게 뺨을 맞은 날을 떠올리고 있었다.
-내가 그간 지켜본 바, 막내는 그다지 자비로운 아이가 아니야. 두 사람은 앞으로 조심하는 게 좋겠어.
-……아직도 비웃을 게 남았나요? 언니.
-아니, 이건 진심으로 너희가 걱정되어서 하는 말이다. 언젠가부터 계속 엇나가는 느낌이지만, 너희 둘도 내 동생이니까 말이야.
막내는 그다지 자비로운 아이가 아니야.
루나에게 그 말을 들었을 때만 해도 뮤, 앤 자매는 진이 조슈아를 절대로 꺾을 수 없으리라 확신했다.
그래도 조금은 조심했다면 좋았을 것이다. 자매는 언제나 진에게 필요 이상의 적의를 드러냈고, 결과는 매번 좋지 않았으며, 지금은 특히 최악이었다.
“……막내에게 가서 빌어볼까?”
“앤.”
“혹시 모르잖아. 우리가 큰오라버니한테 했던 것처럼, 오른팔이 되어줄 테니 받아달라고 하면.”
“우린 오른팔이 아니었어. 우리가 큰오라버니에게 어떤 이득을 줬지? 사고 치면 큰오라버니가 덮어주기 바빴을 뿐이지. 큰오라버니가 우릴 거둬준 건 그저 불쌍해 보여서라고. 어쩌면 매번 짓밟히는 우리 둘한테서 자기 모습을 봤을 수도 있겠지.”
“망할, 언니는 그럼 이대로 가만히 앉아 죽을 날만 기다리자는 거야?”
공석이 된 차기 가주 자리를 취할 수 있는 형제는 그리 많지 않다. 룬티아, 디푸스, 메리, 진. 이렇게 네 사람이 전부고, 자매는 그중 진이 가장 가능성이 높다고 여겼다.
가주 선언을 본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그리고 진이 가주가 되면, 반드시 자신들은 숙청당할 터였다.
진이 아니라 다른 형제가 왕좌에 올라도 마찬가지였다. 진은 능력과 초대 가주의 유산 때문에라도 제거되지 않고 요직을 꿰찰 테니, 숙청은 피할 길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새로운 우산을 찾아봐야지.”
“그래! 언니, 그래야지! 이렇게 죽을 수는 없다고.”
“우선 어머니가 큰오라버니를 버린 이유를 알아내야 해. 어쩌면…… 큰언니 때문일 수도 있지 않을까?”
앤의 눈동자가 커졌다.
“큰언니?”
“아버지가 이번 흑해행에 괜히 큰언니를 데려갔겠어? 그곳에서 뭔갈 보여주며 큰언니의 마음을 돌리려고 하신 것일 수도 있지 않을까 싶은데. 어머니는 그걸 아니까 조슈아 오라버니를 버린 거고. 분하지만, 여전히 큰언니는 최고의 기수지.”
“언니 말대로 가주가 되겠다는 입장만 표명한다면 그 누구도 반대할 수 없는 사람은, 큰언니 하나뿐이야. 만일 큰언니가 왕좌에 오른다면…… 우리도 살아남을 수 있기는 하겠네.”
절망은 때로 사람을 아둔한 상상의 세계로 안내한다. 자매는 그럴 리가 없다는 현실을 밀어내며 괜한 소리를 하고 있었다.
“아니면, 지금 룬티아 언니가 초대 가주의 유산을 찾고 있잖아? 제대로 성과가 나온다면, 어머니가 큰오라버니를 대신해 룬티아 언니를 밀어줄지도 몰라. 큰언니보다 가능성은 룬티아 언니 쪽이 높겠지.”
“며칠 있다가, 어머니를 한 번 찾아가 보는 것도…….”
거기까지 말한 순간, 돌연 테이블 뒤쪽에서 누군가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아하하하…….”
스릉!
동시에 자매가 검을 뽑으며 자세를 취했다.
자매가 있던 곳은 뮤의 방이다. 좌절감에 젖은 상태였다곤 하나, 그들 역시 룬칸델의 기수였다. 누군가 이렇게 가까이 접근할 때까지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는 사실에 소름이 돋았다.
‘기척은 전혀 없었는데?’
‘이 목소리는……!’
놀랍게도 그 웃음은 자매가 잘 아는 인물의 목소리였다.
“더는 못 들어주겠네요! 아가씨들. 세상에, 정말로 조슈아가 끝났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장난스럽게 빛나는 눈동자, 검은 머리칼, 여리여리한 체형.
“일리나……?”
일리나 룬칸델.
아무런 기척 없이 누군가 침입한 것도 놀랍건만, 그게 일리나라는 사실은 더욱 충격적이었다.
그녀는 조슈아의 아내다.
“너, 언제부터 거기에.”
“이렇게 멍청하고 무능한데 어떻게 기수 정복을 입고 있나 몰라? 내가 알던 룬칸델은 이러지 않았는데.”
일리나는 지금껏 단 한 번도 자매에게 이토록 무례하게 군 적이 없었다.
룬칸델의 기수들은 해당 세대의 가주가 정해지기 전까지, 서열 전쟁이 끝날 때까지 거의 결혼을 하지 않는다.
반려와 자식이 숙청당하고 암살당할 위험이 너무 높기 때문이었다.
또한 새로운 가주가 탄생하면, 살아남은 형제들은 가문의 명령에 따라 정략결혼을 하는 게 일반이었다.
다만 조슈아는 이미 오래전부터 차기 가주였기에 일리나와 결혼했다.
다들 조슈아가 이름난 무가의 자제도 아니고, 출신도 불분명한 데다 별다른 능력도 없는 일리나와 결혼한 이유는 단지 충동이나 한때의 열정이라고 생각했다.
그걸 증명이라도 하듯 결혼식은 매우 조촐하게 이루어졌으며, 혼인은 외부에 공개되지도 않았다.
일리나는 결혼 후 그림자처럼 조용히 지냈다. 암투에 끼어들거나 욕심을 부린 적은 없었다. 조슈아 역시 신혼 이후 그녀의 거처를 거의 찾지 않았다.
그렇기에 가문의 일원들은 조슈아가 가주가 된 후 새 배필을 찾으면 일리나는 자연스레 사라질 것이라 여겼다.
지금 난데없이 나타난 그녀를 보고 있는 자매 또한 그랬다.
그저 조슈아의 아내라는 입지만 있을 뿐, 개인적인 권력이라곤 눈곱만큼도 없는 올케. 그런 올케가 자신들을 비웃고 있었다.
단칼에 죽여도 문제 될 게 없다. 조슈아가 지하 감옥에 갇혔으니 일리나 역시 추락 혹은 추방의 과정을 밟게 될 테니까.
그런데 어째서인지.
검을 쥔 손이 움직이질 않았다. 자매는 직감적으로 깨달은 것이다. 일리나는 자신들이 알던 것처럼 별 볼 일 없는 인물이 아니었다고.
또한 지금 검을 내지르면, 쓰러지는 쪽은 어제까지 무지렁이에 불과했던 일리나가 아니라 바로 자신들일 것이라고 말이다.
“너…… 뭐야?”
“뭐긴요, 아가씨들 올케지.”
“그걸 몰라서 묻는 게 아니잖나!”
“하여간 시끄럽게 짖어대는 것밖엔 재주가 없군요? 우리 고아가 아가씨들을 아끼는 이유가 바로 그 무능함 때문이긴 하지만.”
저벅, 저벅, 서서히 한 걸음씩 다가오는 일리나.
“무, 물러서.”
“꺼져……!”
뮤와 앤은 그녀의 그림자가 점점 커지는 걸 보곤 무의식적으로 뒷걸음질을 쳤다.
일리나의 발아래 놓인 그림자는, 그녀의 여리여리한 체형과 전혀 다른 무언가를 그리고 있었다.
꼭 악마나 괴물, 혹은 그보다 끔찍한 어떤 존재. 그림자의 변화를 확인한 자매의 숨소리가 급격히 거칠어졌다.
대항할 수 없는 어둠이 밀려오는 것 같았다.
결국 일리나가 코앞에 다가올 때까지, 자매는 검을 휘두르지 못했다. 벌벌 떨며 식은땀을 흘릴 뿐이었다.
“사, 살려…… 살려주세요…….”
넋이 나간 채 생명을 구걸하고 있다, 룬칸델의 기수가.
그저 마주한 것만으로 완전히 굴복한 것이다.
아무리 무능하다 할지라도, 그건 어디까지나 룬칸델의 차기 가주를 논하기에 부족한 것일 뿐.
그녀들 또한 지금껏 수많은 수라장을 헤쳐온 검귀들의 기수였다. 그간 숱한 강적을 만났고, 그때마다 생사를 넘었다.
명백히 자신들보다 강한 적을 상대할 때에도 자매는 기가 죽은 적이 없었다.
루나에게 뺨을 맞을 때도, 메리에게 매번 구타를 당할 때도, 기회가 있을 때마다 진에게 싸움을 걸 때도 그랬듯이.
그러나 시론의 진노를 겪어본 적 없는 자매로서는, 세상에 이보다 더한 공포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확신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일리나는 자매를 보며 부드럽게 미소를 지었다.
“겁먹을 것 없어요, 아가씨들. 해하지 않을 테니.”
후우우웅……!
일리나의 거대한 그림자가 위로 치솟아 그녀를 감싸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올려다보는 자매는 웃으며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절망의 순간, 신이 내민 구원의 손길을 맞잡은 것처럼.
“하, 하하……!”
[나는 재앙의 예언자.]그림자를 빠져나온 일리나는 이전과 전혀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녀의 몸이라고 해야 할 어둠이 드넓은 방을 가득 채웠고, 그 가운데 단추처럼 솟은 얼굴은 금방이라도 터질 듯 부풀어 기괴한 형상이었다.
[고아들은 내 손을 잡으라.]뮤와 앤은 무릎을 꿇고 일리나를 향해 떨리는 손을 뻗었다. 차가우면서도 따뜻한, 형용할 수 없는 무언가가 그 손을 맞잡는 게 느껴졌다.
[내가 너희들의 부모가 되어주겠다. 원한다고 말하라.]“원합니다…….”
그러자 자매의 그림자가 깨진 유리처럼 조각났다.
그중 가장 큰 덩어리 하나가 일리나의 품속으로 흡수되었다.
[그간 서러운 고아로서 품어온 절망은, 너희를 더욱 가치 있게 만들어줄 것이다…….]이윽고 일리나의 몸집이 다시 작아졌다.
자매들이 기억하는 모습으로 돌아온 그녀의 발아래엔 평범해 보이는 그림자가 있었다. 자매는 여전히 무릎을 꿇은 채였다.
“우리의 고아, 조슈아를 구하는 역할은. 아가씨들이 맡는 거예요. 잘 해낼 수 있겠죠?”
자매는 이전까지 한 번도 가져본 적 없는 믿음으로,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