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512)
제 555화
141화. 추락(6)
* * *
지하 감옥, 최하층.
조슈아가 이곳에 갇히고 이틀이 흘렀다.
사지는 벽에 묶였고, 눈동자는 초점이 없다.
재갈을 물려놓은 입은 혀를 깨물 수도 없다.
‘이대로, 이대로 끝날 수는…….’
하지만 무얼 어떻게 해야 하나?
묶인 사지는 예비 기수를 모시는 유모들처럼 쇠침이 박혔고, 믿고 있던 기사들은 끝내 자신이 아니라 어머니의 사람이었다.
뮤와 앤처럼 가까이 여겼던 형제들은 자신을 구해낼 힘이 없으며, 원로회 역시 마찬가지였다.
가문 바깥에 키워둔 사냥개들에게 희망을 걸 수도 없다.
그들 따위가 이 지하 감옥을 뚫을 수 있을 리도 없고, 애초에 자신의 사냥개들은 타이뮨의 자식들처럼 끔찍하리만치 맹목적인 충심을 갖고 있지도 않았다.
사냥개들은 구심점을 잃고 무너질 것이다.
이제 자신이 추락했으니 왕좌에 가장 가까운 다른 기수들.
룬티아, 디푸스, 메리, 그리고 진. 그나마 그들이 직접 탄원하면 조금은 가능성이 있겠지만, 그거야말로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
설령 흑해에 있는 아버지가 이 사실을 알더라도, 어머니의 명령이 철회될 일은 없었다.
이대로 식음을 전폐하고 죽음을 맞이하는 것도 불가능했다.
룬칸델의 지하 감옥은 수감자를 죽이기 위해 존재하는 곳이 아니다.
대상이 인간이든, 용이든, 마족이든, 다른 무엇이든. 천수가 다하기 전까지 수감자를 철저한 고독 속에 유폐시키는 것이 목적이었다.
식사를 거부하면 강제로 섭취시키고, 자살은 시도조차 불가하다.
예언자도 이곳에서 자신을 빼낼 수는 없을 터.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그 어떤 것에 기댈 수도 없다.’
그나마 단 하나, 희망을 건다면.
‘어머니.’
바로 이 지옥에 자신을 밀어 넣은, 비정한 어머니가 직접 나서주는 것.
그것만이 다시 지상으로 올라갈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었다.
끼이이익…….
멀리서 최하층의 입구가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조슈아는 흐리멍덩한 눈빛을 고치며 닫힌 문을 바라보았다.
저 문이 열리면, 어머니가 들어오시리라 기대하면서.
조슈아가 있는 감옥의 문이 열린 건 한참 후였다.
“꼴이 이게 뭔가, 2기수…… 아, 이제는 기수가 아니로군.”
늙은 뱀 같은 목소리.
조르덴 룬칸델이었다.
그는 조슈아의 재갈을 빼내며 쯧, 혀를 찼다.
“추락한 기분이 어떤가?”
“흑검회장……!”
“그런 눈으로 보지 말게. 비웃으려고 온 것은 아니니.”
이어 조르덴은 벽에 묶인 조슈아의 사지를 풀어주었다.
“나도 감금되지만 않았을 뿐, 자네와 비슷한 처지다.”
“그게 무슨 소립니까.”
“손발을 모두 잃었단 말일세. 자네처럼 공개적으로 망신을 당하진 않았으나 자존심은 바닥까지 짓밟혔지. 가주 대행께.”
흑검회, 원로 중에서도 특히 강한 자들로 구성된 가문의 처단 부대.
조르덴은 더 이상 그들의 수장이 아니었다.
여전히 흑검회장이라는 지위는 갖고 있으나 지휘권은 완전히 로사에게 넘어간 것이다.
물론 본래 가문의 모든 병력은 가주와 가주 대행의 손아귀에 있는 셈이지만, 조르덴은 이제 그 어떤 상황에서도 흑검회를 개인적으로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추방자 사건 때문이었다.
“나도, 자네도. 12기수에게 당한 걸세.”
“저는.”
“자네가 여기 있는 게 12기수에게 패배한 결과가 아니라, 가주 대행 때문이라 말하고 싶은 건가?”
조슈아는 대답할 수 없었다.
“그만 인정하게. 우린 진 거야. 그것도 완벽하게.”
“……흑검회장께선 앞으로 어쩌실 계획입니까.”
“다행히 목은 아직 붙어있으니, 다음을 도모해야지. 당연한 걸 묻는군. 그리고…… 자네도 마찬가지 아닌가?”
“마찬가지라…… 제가 알기로, 흑검회장께선 이런 추락을 겪은 적이 없습니다. 아버지께 벌레만도 못한 취급을 받아 구차하게 살아남은 것? 끝내 가주가 되고자 하는 헛된 욕망으로 자신을 갉아먹은 것? 흑검회를 잃은 것? 그중 무엇 하나도 이 지하 감옥의 차가운 바닥에 빗댈 수는 없습니다.”
피식, 조르덴이 웃음을 흘렸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을 테지. 자네 같은 애들은 말이야.”
“큭, 비웃으러 온 게 아니라더니. 결국 더 밑바닥에 있는 패배자를 보며 자위나 할 요량이셨군.”
“아니, 나는 자네가 부러워서 왔다.”
“뭐라고?”
“곧 가주 대행께서 널 찾아올 것이다.”
조슈아의 눈동자가 커졌다.
이제야 조르덴이 방금까지 했던 말들의 의미를 알 것 같았다.
“지금 내게 이러는 것처럼, 자네 어머니께도 벌레만도 못한 모습을 보인다면, 그때는 정말 끝일지도 모른다네. 내가 미리 찾아온 것은, 행여 그런 일이 발생할까 노파심이 들었기 때문이지.”
“어머님이…… 어머님이 날 찾는다고 하셨습니까?”
“어머니, 어머니, 어머니. 자네는 정말 근본적으로 애새끼로군. 같은 성을 쓰는 것이 치욕적일 지경이야. 내게는 자네 같은 어머니가 없었어. 게다가 나의 경쟁자는 12기수가 아니라 기수 시론 룬칸델이었지. 한 번 추락하면, 다시는 지상으로 올라올 수 없는 세월을 보내왔다.”
조르덴의 입가에 씁쓸한 미소가 맺혔다.
“이제는 자네도 그 무게를 감당해야 될 때야. 내가 폐관 수련을 끝내고 다시 세상으로 나올 때…… 유약한 껍질을 벗어던진 자네를 볼 수 있으면 좋겠군.”
“폐관 수련? 이제 와서 그런 것으로 역전을 할 수 있으리라 믿으십니까?”
“무가를 지배하는 건 결국 누구라도 추종할 수밖에 없는 압도적인 무일세. 나 역시 자네 아버지가 드리운 그림자를 핑계로 너무 오래 그 사실을 외면했을 뿐.”
뒤돌아서는 조르덴.
“지옥을 연옥으로 바꾸는 건 자네의 몫이야. 이건 흑검회장으로서가 아니라, 당숙으로서 하는 말이다.”
조르덴이 지하 감옥을 빠져나갔다.
그리고 계단을 오르는 도중, 지하실로 내려서고 있는 로사와 마주쳤다.
“가주 대행.”
“지하 감옥의 망령들을 살펴보러 내려오신 것은 아닐 터. 조슈아를 만난 겁니까?”
“그렇소.”
“괜한 일을 하셨군요.”
“부모가 비정하니 혈육 중 누군가는 따뜻하게 대해주어야 하지 않겠소.”
“모든 걸 잃으니 자신감을 되찾으신 겁니까? 잘도 그런 건방진 소리를 하십니다.”
“잊고 있던 가문의 본질을 떠올렸을 뿐이오.”
“많은 이들이 진즉부터 잊지 않고 있었다면, 오늘의 룬칸델이 이토록 위태로웠을 일은 없었을 겁니다.”
“그러는 가주 대행께서도 무뎌지지 않으셨소.”
가소롭다는 듯, 로사는 씨익 미소를 지었다.
“힘없는 자의 말은 그저 푸념에 지나지 않습니다. 내 검과 몸은 고사하고, 기분에라도 흠집을 내고 싶다면. 증명하십시오. 당신의 그 저열한 검을 완성해보라는 말입니다. 그러라고 목은 남겨둔 것이니.”
로사가 조르덴을 지나쳐 최하층으로 들어서는 짧은 시간 동안.
조슈아는 방금 조르덴이 했던 말들과, 흑기사 제인이 죽기 전에 보여준 모습을 떠올리고 있었다.
-지금 내 모습이 부디 교훈이 되길 바라겠소.
제인의 유언과 흑검회장의 방문.
그것들이 한순간에 조슈아 룬칸델이라는 인물의 본질을 바꿀 수는 없었다.
그저 화두가 될 뿐.
로사가 들어서자 조슈아는 몸가짐을 고쳤다.
“오셨습니까, 가주 대행.”
푹!
로사는 돌연 그의 오른쪽 어깨에 광란의 칼날부터 쑤셔 넣었다.
“억……!”
살점이 갈리고 핏물이 치솟았다.
이어 가볍고 빠르게 휘두른 검이 조슈아의 왼쪽 어깨에 절상을 남겼다.
또다시 공포가 찾아왔다.
한 번도 극복해내지 못한, 부모에 대한 공포.
결코 자신을 놓지 않을 것만 같던 어머니의 무차별한 공격이 빚고 있는 새로운 공포.
“힘을 폐했다곤 하나, 고작 이런 검에도 반응하지 못한다는 말이냐? 상급 생도들조차 피할 수 있는 속도였다.”
“가, 가주 대행……!”
“그래, 이제 그래도 감히 날 어머니라고 부르지는 않는군. 그런데 그게 전부냐? 네 누이와 동생들, 너 따위완 비교할 수 없이 뛰어난 그 아이들이라면 피했을 것이다.”
재차 휘둘러진 광란이 이번엔 조슈아의 가슴팍을 베었다.
칼날이 파고든 깊이가 결코 얕지 않았다.
“커헉!”
“아니, 겨우 피하는 것에 그쳤을까? 룬티아, 디푸스, 메리, 진! 그 아이들은 네놈처럼 비명이나 지르는 게 아니라, 눈을 똑바로 뜨고 반격을 시도했을 것이다. 이유가 무엇이든, 누가 잘못을 했든, 일단 칼에 찔렸으니!”
스걱!
“그리고 루나였다면 광란을 빼앗아 역으로 내 목을 겨눴겠지. 그 아이라면 힘을 잃고도 능히 그럴 수 있지 않겠느냐? 그러니 시론과 내가 그토록 아쉬워하지 않았겠느냐?”
칼에 찔리고 베이는 것은 정말 아무것도 아닌, 끔찍한 고통이 조슈아를 유린하고 있었다.
차라리 불구덩이에 맨몸을 던져도 이보다 괴롭지는 않을 것 같았다.
비교와 열등감이 주는 아픔은 정말로 그조차 비할 바가 아니었다.
“크아아악! 대체 나더러 어쩌라는 겁니까!”
마구잡이로 달려드는 조슈아는 그대로 턱이 돌아갔고, 흉골이 파괴되었다.
그건 반격이 아니라 발악이었다.
“컥, 커헉.”
“어째서 네놈은 그렇게 할 수 없는 것이지? 예언의 아이라는 네놈은, 어째서 그렇게 하지 못했느냐는 말이다.”
그 말에 조슈아는 태어나 처음으로, 어머니를 탓했다.
“당신이…… 나를…… 이렇게 키웠습니다.”
“나는 너를 그렇게 키운 기억이 없다.”
“당신이 맞아, 당신이 나를 이렇게 키웠다고!”
“아니, 나는 너를 그렇게 키우지 않았다.”
“그리고 나를 이렇게 낳은 것도 당신이지 않은가? 루나, 룬티아, 디푸스, 메리, 진! 내게는 그들만큼의 재능을 물려주지 않지 않았나. 모두 당신의 작품이다……!”
“재능? 그래, 루나는 인정하마. 하지만 나머지 아이들이 정말 너보다 재능이 뛰어나 이곳에 널 처박았다고 생각하느냐? 넌 그저 그들만큼 투쟁하지 않았을 뿐이다. 그토록 많은 기회를 주었는데도…… 아. 이렇게 말하면 이제는 그 기회들이 독이었다고 할 테지?”
로사가 헛웃음을 내뱉었다.
조슈아는 앞으로 쓰러진 채 바들바들 몸을 떨고 있었다.
다시 일어서고 싶으나 광란에 사정없이 베이고 찔린 몸은 말을 듣지 않았다.
“그 또한 인정하겠다. 이제 보니 지난 수십 년 동안 내가 네게 준 기회들은 독이 맞는 것 같군. 설마 떠먹여주는 것으로 부족할 줄은 몰랐다. 대신 씹어주기까지 해야 하는 걸 미리 알았다면, 지금 네놈이 여기에 있지는 않았을지도 모르겠구나.”
“그게…… 무슨…… 소리.”
“그날 소타 사막에, 그 중요한 임무에…… 정말 내가 너희 기수들과 흑기사 두 사람만을 보냈을 것 같더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