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510)
제 555화
141화. 추락(4)
* * *
루나의 왕좌 포기, 진의 가주 선언, 그리고 조슈아의 몰락. 현세대의 특히 굵직한 사건들 중, 이번 일은 단연코 가문에 가장 큰 충격을 주었다.
그 누구도 조슈아가 이렇게 몰락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그는 루나가 왕좌를 포기한 후 언제나 차기 가주였으며, 그 뒷배경엔 로사의 강력한 지지와 편애가 있었다.
그런데 로사가 직접 조슈아를 끝장낸 것이다. 그것도 모두가 보는 앞에서 자존심을 짓밟고, 명예를 실추시키는 악독한 방법으로.
“하, 통쾌하기는 한데. 아무래도 찝찝하단 말이지. 그렇게 쉽게 갈 인간이 아닌데…… 뭐, 제 뜻이 무엇이었든 결과적으로 중요 임무를 방해했고 흑기사 둘을 잃은 대가라고 생각하면 말이 안 될 것도 없나.”
퐁, 꼴꼴…….
술잔을 채우며 말하는 디푸스의 눈동자가 멍했다. 어린 시절부터 조슈아가 추락하는 날만을 고대해왔건만, 막상 이런 식의 결말을 확인하니 온 혈관에 피 대신 불쾌한 허망감이 흐르는 기분이었다.
일반인은 한 모금도 못 마실 독주를 연거푸 들이부어도 쓰린 속이 달래지지 않았다.
조슈아에게 사실은 증오뿐만이 아닌 애정도 함께 품고 있었다, 그런 미적지근한 마음이 아니었다.
숙적을 제 손으로 직접 처리하지 못했다는 아쉬움, 아직까지도 상위 기수로서 지켜온 자신의 권위와 투쟁심보다 어머니의 말 한마디가 비교할 수 없이 무겁다는 사실에 대한 무력감.
그런 것들이 디푸스를 괴롭게 만들고 있었다.
“그나저나 막내, 너도 너무했다. 놈이 복제였다는 걸 알았다면 귀띔이라도 좀 해주지 그랬냐? 아니, 아니다…… 지금껏 몰라본 내가 멍청한 거겠지. 네놈이 소타 사막 막사에서 함께 놈을 죽이자고 그 사악한 혓바닥을 놀릴 때부터 뭔가 있을 것 같기는 했어.”
“아까부터 혼자 말하고 혼자 답하고. 주정뱅이가 따로 없군요, 형님. 메리 누님이 계셨다면 한 소리 들으셨을 겁니다.”
“그 녀석은 날 이해했을 거다. 너도 수십 년을 노린 먹잇감을 빼앗겨 봐, 속이 뒤집어지나 안 뒤집어지나.”
그 말에 진은 조용히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전생 28년, 현생 20년, 도합 48년. 반백에 가까운 세월을 겪은 동안, 진의 가장 큰 적은 두 번 변했다.
전생에선 자신의 가문 룬칸델이 최대의 적에 가까웠고, 현생에선 여러 사건을 겪으며 룬칸델로서 지플에 맞서게 되었다.
하지만 적과 원수는 또 다른 개념이다. 진이 개인적으로 가장 큰 원한을 품고 있는 상대는, 저주의 내막을 알게 된 이후 단 한 번도 변함이 없었다.
‘조슈아 룬칸델…….’
그러니 진도 사냥감을 빼앗긴 셈이고, 속이 썩지 않을 리 없다. 오히려 디푸스보다도 더 허무한 마음을 간신히 억누르고 있었다.
그 이유는 다름이 아니었다.
“이대로 끝이 아닐 것 같습니다.”
“차라리 그쪽이 기분은 덜 더럽겠다만, 이번엔 확실히 끝장이 났어. 그럴 리도 없지만, 어머니가 용서해준다고 될 일도 아니다. 아까 그 말 더듬고 다리 떠는 모습을 보고도 누가 조슈아를 다시 따르겠냐? 다른 무가에서도 있을 수 없는 일인데, 여긴 룬칸델이다.”
진도 디푸스가 내민 술을 받아 대여섯 잔을 연달아 목으로 털어 넣었다.
“생각해보면, 조금 이상하지 않습니까?”
“뭐가?”
“어머니가 조슈아를 정식으로 가문 재판에 회부하고, 임무에 대한 진상 규명을 명했으면, 놈은 이렇게 허무하게 추락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막말로 놈이 처음부터 정보를 공유했다 한들, 헤도라는 변수가 있던 이상 흑기사 둘을 모두 살리는 건 불가능했을 수도 있습니다.”
백야의 탑지기, 헤도.
임무 보고를 한 이후 진과 디푸스는 아직 로사와 원로회로부터 그에 대한 정보를 듣지 못하고 있었다.
로사와 원로회들도 그를 모르기 때문인지,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후자일 가능성이 훨씬 높다고만 짐작할 뿐.
“그렇게 했다면 어머니는 역으로 나나 형님을 추락시킬 수도 있었습니다. 최고 책임자는 조슈아지만 우리 또한 기수로서 책임이 있고, 놈은 복제라고 할지라도 어쨌건 마지막엔 가문을 위해 화산을 펼쳤지 않습니까.”
“그 가정이라면 우리가 산드라 지플의 도움을 받은 것도 조슈아가 이상하게 엮어서 널 배신자로 몰아갈 수도 있기는 하지. 너와 베라딘 지플의 관계도 있고.”
“우리도 생각할 수 있는 걸 어머니가 몰랐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아니, 반드시 알고 계실 겁니다. 그리고 어머니의 목표는 늘 조슈아를 가주로 만드는 것이었는데, 지금은 그와 전혀 반대되는 결정을 내리셨군요.”
“끝내 어머니도 인정을 하신 것일 테지. 그놈은 가주의 재목이 아니라는 걸. 왜 이제야 깨달으셨는지는 모르겠지만. 빌어먹을, 잔뜩 쫄아서 기사들까지 끌고 와서는 그런 등신 같은 모습을 보이다니…… 나였다면 그 자리에서 목을 베어버렸을 거다.”
디푸스가 신경질적으로 계속 술잔을 비우는 사이, 진은 로사가 왜 자신들이 아닌 조슈아를 공격했는지를 고민했다.
끝장.
디푸스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어제 조슈아의 초라한 모습을 본 이들은 그 누구라도 다시는 그를 인정하고 따를 수 없을 것이다.
불현듯.
진의 머릿속에 한 가지 새로운 가정이 떠올랐다.
“예언자.”
“뭐?”
“예언자의 권능과 흑마법에 의해…… 조슈아의 정신이 조작되었다면?”
“그럴 리가 있겠냐. 어제 말 더듬던 조슈아는 어린 시절 한창 아버지와 큰누님에게 짓밟히던 모습 그 자체였다. 조슈아의 본질이었다고.”
“저도 알고 있습니다. 진짜로 예언자가 조슈아의 정신을 조작했으리라 생각하진 않아요. 하지만, 어머니가 차후 그렇게 주장하며 조슈아를 다시 복권시킨다면…… 어떨 것 같습니까?”
탁, 디푸스가 술잔을 내려두었다.
예언자, 그는 알 수 없는 힘을 이용해 이번 임무에 결정적인 도움을 주었고, 그 외에도 지금껏 조슈아와 그가 맡은 가문의 임무를 도와왔다.
또한 조슈아의 복제를 만들었다.
아직 예언자의 본격적인 정체는 밝혀지지 않았으나, 그가 해온 일들과 존재 자체는 이제 룬칸델의 모두가 알게 되었다.
누군가는 법도를 벗어났다며 예언자를 몰아내야 한다고 주장할 테고, 누군가는 적들에게 맞서기 위해 필요한 존재라 말할 것이며, 누군가는 중립을 지키며 침묵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 모두가 한 가지 사실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 조슈아의 예언자는 가히 신적인 권능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알겠다. 그럼 세 번째는 무엇이냐? 2기수를 죽이는 방법은 둘째치더라도, 대체 목적이 뭐야? 2기수의 죽음이 가문에 어떤 이익을 가져다주지?
-시험지를 채점 받는 기분이군요, 둘째 형님. 가문에 어떤 이익이 따르냐고요? 편애의 썩은 고리를 잘라내고, 가문을 정화할 기회입니다. 조슈아를 죽여도 예언자는 어차피 어머니께 귀속되어 있을 테니, 그자의 능력을 어떻게 할지는 그때 정하면 됩니다.
소타 사막에서 진과 디푸스가 나눈 대화.
로사뿐만이 아니라 디푸스 역시 예언자의 힘은 가문을 위해 사용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초대 가주의 유산을 찾기 위해서도, 적들을 도륙하기 위해서도.
그 생각은 이번 임무에서 보고 겪은 일들을 통해 더욱 확고해졌다.
백 척이 넘는 비행 함대와 헤도, 흑기사 몬을 불구로 만든 정체불명의 마족까지. 적들이 숨기고 있는 힘은 분명 일부만 드러났을 텐데도 기수들의 상상을 한참 뛰어넘었다.
“어머니는 결코 예언자의 힘을 포기하지 않을 겁니다. 이번에 조슈아를 끌어내린 건…… 어쩌면 예언자를 향한 경고일 수도 있습니다. 어머니와 예언자의 사이가 조슈아만큼 가깝지 않다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죠.”
“그러니까 네 말은, 어머니는 예언자를 속박하며 차후 그에게 모든 것을 뒤집어씌우고 조슈아를 복권시킬 생각이시다, 이거냐?”
“그뿐만이 아니라 어머니는 조슈아를 추락시킴으로써 당신의 권위를 다시 한 번 세우셨습니다. 이번 일로 추방자 사건 때문에 난 흠집은 사라질 테죠. 본인이 그토록 지지하던 2기수를 직접 꺾는 강단을 보였으니. 내막이 어떻든, 가문의 일원들은 앞으로 어머니를 더욱 두려워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당신의 힘을 한계까지 드높인 후, 조슈아를 다시 지상으로 끌어올려 모든 권력을 이양시킨다…… 죄와 명분은 모두 예언자가 짊어지고.”
잠시 정적이 감돌았다.
두 사람은 더 이상 술잔을 채우지 않았다.
“……그건 가능성이 없지는 않군. 아니, 꽤 높아. 복권되는 시점의 조슈아가 이전과 전혀 다른, 누구라도 놈이 그간 부족한 모습을 보였던 건 예언자의 정신 조작 때문이었다고 생각할 만큼 강인해진 모습을 보여줄 수만 있다면.”
만약 그 시점의 조슈아가 의구심을 갖는 자들은 모두 가차 없이 숙청할 수 있을 권력을 로사에게 넘겨받고, 본인의 무력도 명실상부 기수 최강이 된다면.
조슈아의 복권은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었다.
“한 가지가 더 있습니다.”
“더 있다고?”
“예언자가 조슈아의 복제를 어떻게 만드는지 아십니까?”
-그 여자가 어떻게 조슈아를 복제하는지도 알고 있나?
-아주 많은 인간이 필요하다는 것만 알고 있다.
-……뭐?
-휴페스터의 사형수들을 이용하는 것 같더군. 예언자에게 그들을 보내면, 새 몸이 만들어지는데…… 경은 주로 그 몸을 나 같은 이들을 다루는 일에 사용했다. 자신의 예비 계약자들을 강화시키다, 폭주했을 때 직접 제압하는 용도로.
청새 군도에서 최초로 조슈아의 복제를 죽이고, 진은 율리안에게 예언자가 인간을 재료로 한다는 사실을 듣게 되었다.
이후 우연히 엠마에게 ‘리칼튼’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상한 사형 집행을 전해 듣고 관련 사항을 추적하는 중이었다. 흑왕단 사태가 끝난 직후엔 흑기사 독스를 그곳에 보냈고 말이다.
“인간이 재료로 사용됩니다. 아주 많은 수의 인간이. 예비 기수 시절 놈의 직속 사냥개를 붙잡아 얻은 정보죠.”
“하. 그게 사실이라면 놈은 더 큰 죗값을 치러야…….”
“하지만 조슈아는 이미 지하 감옥에 갇혔으니. 더는 파낼 수가 없습니다. 적어도 공식적으로는 말이죠. 누가 감히 어머니가 직접 끌어내린 조슈아를 더 짓밟아야 된다고 주장하겠습니까? 제게 증인이 있다곤 하나, 아직 확실한 증거는 없습니다. 저조차 함부로 주장할 수 없죠.”
디푸스는 서늘한 바람이 등허리를 지나가는 듯했다.
독주에 무뎌진 감각이 날카롭게 곤두섰고, 뒷목에는 소름이 돋았다.
‘막내의 말대로라면…… 조슈아의 추락은, 단지 어머니의 성공적인 계략일 뿐이다……!’
물론 이 모든 건 가정에 불과했다.
하지만 아들로서, 로사 룬칸델이라는 인간을 아는 두 사람은…… 그 가정이 사실에 매우 가까우리라는 것을 직감하고 있었다.
“그러니 술로 쓰린 속이나 달래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싸움은 이제 시작일 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