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514)
제 555화
142화. 협상들(1)
백야의 탑.
삭막한 사막 한가운데에서도 늘 은은한 빛을 내뿜던 백야의 탑은 소타 사막 사태로 인해 그 마력을 잃고 처참한 모습이었다.
거대한 구멍이 뚫린 옥상에는 세 명의 노인과 인간으로 변한 용 하나가 서 있었다.
켈리악과 카둔, 옥타비아와 헤도. 그들은 켈리악이 마력으로 빚은 의자에 앉아 소타 사막을 바라보았다.
사막엔 아직 전투의 흔적이 가득했다.
지하 건조장이 폭발한 탓에 사막 한가운데는 통째로 지반이 내려앉아 흉측하고 거대한 골을 형성했고, 불어오는 모래바람엔 불씨와 열기가 스며 있다.
사막 곳곳에 종양처럼 솟아 있는 불길과 뇌기는 며칠째 진압 중인데도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으며, 전사한 용과 파괴된 양산함의 잔해들이 사방에 가득했다.
12마리의 용이 죽었고 43척의 양산함이 파괴되었으며, 8명의 망령대와 250명에 달하는 마법사들이 사망했다.
그리고 양산함 설계도 일부와 ‘기계’를 빼앗겼다.
“500년 전 성국수호전 이후, 가문이 이렇게까지 타격을 입은 건 처음 있는 일이로군.”
켈리악이 나지막이 말하자 카둔이 코웃음을 쳤다.
“그땐 이거랑 비교할 수도 없었지.”
별일 아니라는 듯 말하고 있으나 그들 중 가장 심란한 건 카둔이었다.
다시 모습을 드러낸 마계의 공작 가문과, 옛 힘을 상당히 되찾은 것 같은 무라칸. 그 두 가지 요소가 카둔을 답답하게 만들었다.
그로서는 여러모로 악몽이 되살아나는 기분이었다.
물론 무라칸은 아직 전성기 시절의 무위 5할만을 되찾은 것에 불과하나, 헤도의 보고를 들은 이들은 착각을 하고 있었다.
흑왕단 사태부터 시작된 무라칸의 무위에 대한 세상의 오해는 이런 식으로 계속 커지는 중이다.
“자네가 있었는데도 룬칸델이 도망에 성공한 걸 보니, 카둔이 무라칸을 괜히 두려워하는 것은 아닌 모양이군.”
“아니, 내가 언제 겁을 먹었다고.”
“저번에 그랬잖아. 흑왕단 사태 직후였나.”
“그걸 이렇게 사람들 있는 곳에서 말하냐?”
“……기수들과 무라칸뿐만이 아니라, 킨젤로와 그들의 마족도 문제였습니다. 정황상 그 비앙카 칼리고라는 마족이 헤도 경에게 상처를 입힌 것 같더군요.”
옥타비아의 추가적인 설명에 켈리악과 카둔이 고개를 끄덕였다.
“비앙카 칼리고는 아이나스 칼리고와 달리, 1급 초인 수준의 무력을 보여줬습니다. 그나마 헤도 경이 있었으니 피해가 이 정도로 끝났다고 생각됩니다.”
“맞아, 헤도가 없었다면 여긴 흔적도 없이 사라졌을 거다, 켈리악. 그리고 네 딸은 죽었거나 적들의 실험체, 포로로 사로잡혔겠지.”
“마탑의 모든 병력을 미리 대피시킨 그 아이의 판단력도 훌륭했어요. 모두 거기 있었다면 몰살이었을 겁니다. 그 때문에 제 부하들은 헤도 경의 미움을 조금 산 것 같지만…….”
“네 딸은 가끔 이상한 직감으로 뛰어난 판단을 내리곤 하지. 산드라가 너와 유일하게 닮은 점이다.”
헤도는 이번에도 아무 말 없이 먼 사막에 시선을 두었다.
산드라를 모시기 시작하며 평생 하지 않던 거짓말을 입에 달게 되기는 했지만, 이번처럼 중대한 경우는 처음이었다.
“바라는 게 있다면 말해보시오, 헤도 경.”
“금고를 지키지 못한 책임을 묻지 않으시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그건 경의 잘못이 아니오. 그러지 말고 말해보시오.”
“……휴가나 며칠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아가씨도 포함해서 말입니다.”
켈리악은 빙긋 미소를 지었다. 헤도는 모든 것을 꿰뚫고 있는 듯한 그의 눈빛을 마주하는 게 부담스러웠다.
“그러도록 하지. 열흘, 즉시 출발해도 좋소.”
“그럼 다녀와서 뵙겠습니다, 가주.”
헤도는 켈리악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즉시 그 자리를 떠났다.
그건 어디까지나 자꾸 거짓말을 하는 것이 미치도록 불편하기 때문이었으나, 나머지 일행은 그의 우람한 뒷모습을 보며 감탄을 자아냈다.
“저는 헤도 경의 저런 당당한 모습이 좋더군요.”
“저 인간은 분명 지플의 보물이다, 켈리악. 잘 붙잡아야 해, 다른 마음 먹지 않도록.”
“그래, 그래야지. 그나저나…….”
켈리악의 시선이 로민 숲과 중앙 경계선의 사이에 닿았다.
전투의 마지막에 조슈아가 화산을 펼친 곳, 아직 그 공간엔 복구 인력이 제대로 접근하지도 못하고 있었다.
“그 힘, 분명 혼돈의 것이었지? 옥타비아.”
“그렇습니다, 가주.”
“룬칸델과 혼돈이라…… 침투로도 그렇고, 그가 마지막에 보여준 힘도 그렇고. 이것으로 심증이 확실해졌어. 재앙의 예언자는 룬칸델과 함께하고 있다.”
재앙의 예언자.
솔더렛이 자취를 감춘 후부터, 지플은 줄곧 그녀를 추적하고 있었다.
지플이 아는 한, 솔더렛이 마지막으로 인간과 소통을 한 건 그들의 옛 가주 리올 지플이 마지막이었다.
그 이후에도 계약자가 존재한 적은 있으나 솔더렛과 소통을 했다는 건 기록된 바가 전혀 없는 일이다.
그렇기에 지플은 솔더렛이 힘을 잃었다고 판단했었다. 혹은 맹약을 지키지 않고자 자신을 봉인했다고 여겼었다.
진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또한 재앙의 예언자가 룬칸델에 있다는 정황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그랬다.
“그리고 조슈아 룬칸델이 예언자의 힘을 이토록 대놓고 사용했다는 건, 시론이 흑해 5왕의 구역에 도달했다는 증거가 될 수 있다.”
“예, 가주. 시론 룬칸델은 절대로 그 불안정한 상태의 힘을 사용하도록 허락하지 않았을 겁니다. 그래도 의외이긴 하군요, 그가 예언자의 존재를 몰랐을 리는 없는데…… 지금껏 묵인했다는 게 증명된 셈이니. 그조차 다른 방법은 없다고 생각했던 걸까요?”
“아니, 그건 아닐 거다. 자기 자신 외에 다른 것에 기댈 만큼 나약한 인간일 리 없잖나, 그 괴물이.”
“그러면 왜……?”
“글쎄, 어쩌면 자식과 권속들이 재앙의 예언조차 룬칸델의 가치, 투쟁으로 극복해내는 모습을 기대했을 수도 있겠지.”
“자신의 시간이 다하고, 우리가 옛 힘을 되찾으면 룬칸델은 반드시 멸망한다는 걸 모르지 않을 텐데. 그 와중에 그런 선택을 했을까요? 전 분명 예언에 기대하는 바가 있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우리와 달라. 구시대적인 사람이거든.”
돌연 켈리악의 모습이 젊어지기 시작했다.
주름진 얼굴과 손등이 깨끗하게 펴졌고, 거친 머릿결은 윤기를 되찾았다. 순식간에 장난기 가득한 소년의 얼굴이 된 그가 켈리악 지플이라는 사실은 누구도 알아보지 못할 터.
“어쨌거나 시론이 흑해 5왕의 구역에 들어섰다는 심증만으로는 전면전을 시작할 수 없다. 게다가 이번 일로 새로이 확인된 바, 적들의 저력은 우리의 예상을 뛰어넘는다.”
룬칸델과 킨젤로.
이번 일로 지플은 그들의 힘을 다시 확인하게 되었다. 재앙의 예언자와 악마룡, 마계 공작가의 힘 등등.
심지어 그조차 전부가 아닐 것이다.
“천 년을 세계제일가로 군림해오며 얻은 오만의 대가인가, 뼈가 조금 아프긴 하군. 힘을 확인하고자 일부러 끌어들였는데도 제일 큰 피해를 본 게 우리라니.”
“흥, 그것 봐라. 내가 한가하게 아무것도 안 보이는 수정구나 볼 때가 아니라고 누누이 말했지. 설계도와 기계까지 털렸으니 놈들은 더 강해질 거다.”
“그래서 앞으로는 조금 조심하려고. 모든 계획의 속도를 올려야겠어.”
마신석의 완성, 시론의 흑해 5왕 구역 진입 여부, 룬칸델이 가진 예언의 정확한 내용을 확인하는 일과 재해석 시도, 옛 문명의 복원, 솔더렛의 진의 파악, 테마르의 무덤 추적 등.
이 모든 일들의 가속과 실현을 위해서는 반드시 한 사람이 필요했다.
“히스터가의 마지막 생존자를 찾는 일에 더 많은 인력과 자원을 투입한다.”
“그럴 인력이 남아 있나, 지금? 저거 언제 다 복구할 건데.”
“네가 더 열심히 찾으라는 이야기야, 카둔.”
“아, 속 터져!”
“나도 조금 움직여야겠고…….”
“정말이냐!? 이제 수정구 보면서 허송세월 안 할 거야?”
“그래.”
발레리아 히스터.
그녀는 모든 거대 세력들의 열쇠였다. 승리로 향하는 열쇠, 패배를 미루는 열쇠, 새로운 기회를 얻는 열쇠.
“어쩌면, 로사 룬칸델과 다시 협상 테이블에 앉아야 할지도 모르겠어. 이번에 히스터의 일로 다시 만난다면 그때보다 훨씬 밑지는 장사가 될 수밖에 없겠지만 말이야.”
* * *
킨젤로 본회.
비슈켈과 베락트를 비롯한 고위 간부들은 대부분 심란한 얼굴로 굳게 닫힌 단장실과, 뒤편에 정박시킨 함선 그르닐을 번갈아 바라보고 있었다.
검황성 사태 이후로 단장은 한 번도 제대로 깨어난 적이 없다. 그런데 이번에 또 제피린과 함선 그르닐이 그의 힘을 사용했으니, 단장의 상태는 계속 나빠지는 중이었다.
끼익, 쿵! 쿠드드드드……!
반파된 그르닐은 가만히 세워두고만 있어도 혼자 부품을 떨궈내며 비명을 질렀다. 그게 간부들의 심경을 한층 더 복잡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말이야, 거기서 우리 부단장이! 날 아주 적절하게 미끼로 쓰더라고. 저렇게 똘똘한 인간은 정말 처음 본다니까?”
“크하하핫, 비슈켈 님이 냉혈한처럼 보여도 사람이 참 괜찮다니까요. 이렇게 매번 고구마 크로켓도 사주시고.”
“어어, 맛있네 이거. 나도 앞으로 매일 부탁해야지. 아무튼, 부단장이 거기서 날 미끼로 쓰는 작전을 펼치지 않았다면. 난 아마 잡혔을 거야. 인간 놈들, 생각보다 세더라…… 으으. 그래도 우리 언니에 비하면 하루살이 같은 놈들이지만.”
“비슈켈 님을 위해 건배하시죠!”
“좋다, 부바르! 고구마 크로켓 건배다!”
딱 두 사람, 부바르와 아이나스만이 신나서 떠들어대고 있었다.
아이나스는 자신은 미끼로 사용된 적이 없으며, 비슈켈은 단지 그녀를 구하는 일에 함선의 힘을 사용하는 게 아까워 버렸을 뿐이라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
그게 결과적으로 아이나스를 구한 건 사실이었다.
제피린의 신호탄을 따라 함선 그르닐과 비앙카가 이동하고, 지플이 그들을 추격하는 와중에 조슈아가 화산을 터뜨려 아이나스는 전장의 모두에게서 빠르게 잊힌 것이다.
두 사람이 으헤헤 크히히 웃으며 떠드는 소리에, 비슈켈은 정말로 머리카락이 빠지고 있었다.
손바닥에 잡힌 한 줌의 머리칼을 보니 당장 그들의 목을 베는 충동을 억누르기가 어려울 지경이었다.
“불쌍한 부단장 좀 그만 괴롭히세요, 이 마귀 놈들아.”
제피린이 부바르와 아이나스의 머리를 쥐어박았다.
“맞아요, 오라버니가 아무리 좋아도 뭐든 적당해야 한답니다. 그리고 단장님은 이번 일뿐만이 아니라 부바르 씨를 회복시키느라 저기 누워 계시는 거잖아요. 오늘은 조금 조용히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마르지엘라도 제피린 옆에 서며 말했다.
“아무래도 두 분은 저쪽에 가서 찌그러져 계시면 좋을 것 같군요. 진 룬칸델에게 농락당한 것도 열 받아 죽겠는데, 인질로 잡으려던 조슈아 룬칸델까지 자폭을 해버렸거든요…… 아시겠어요? 제 기분. 아주아주 나쁘다고요?”
제피린의 말에 부바르와 아이나스는 삐질 식은땀을 흘리며 어디론가 종종걸음으로 사라지는 모습이었다.
“그…… 미안. 대공. 내 동생…… 그래도 착해.”
“알아요, 알아, 비앙카 공녀님.”
“미안, 미안.”
비앙카는 아이나스를 대신해 연신 고개를 숙이며 동생을 따라 총총 사라졌다.
제피린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저들이 정녕 마족의 미래를 짊어질 자들인가, 고찰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이제 어쩌실 건가요? 제피린 님.”
마르지엘라가 묻자 제피린이 이를 악물었다.
“진 룬칸델, 그 망할 인간과 협상을 해야겠죠. 이번에도 날 갖고 논다면, 그때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죽여버리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