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517)
제 555화
142화. 협상들(4)
제피린은 소설 속에 흔히 묘사되는 조인鳥人 같은 형상이었다. 전체적인 형상은 사람인데, 얼굴을 제외한 전신이 검은 깃털로 뒤덮였고 팔에는 날개가 달려 있었다.
그리고 매우 빠르게 비행했다. 점처럼 보이더니 순식간에 모습을 알아볼 수 있을 만큼 가까워진 것이다.
“흐응, 저 인간 까마귀는 뭐야? 우리 사위가 나를 위해 준비한 깜짝 분장 쇼인가?”
“제피린이라는 악마룡입니다. 제게 볼일이 있어 찾아온 것 같군요.”
“또 여자란 말이지? 하여간 인기 좋아, 우리 사위.”
당연하게도 제피린은 그다지 호의적인 눈치가 아니었다.
소타 사막에서 진에게 농락을 당한 것도 모자라 조슈아를 인질로 잡으려던 계획도 실패로 돌아가고, 막판에 치른 전투와 화산의 피해 때문에 단장의 힘을 또 무리하게 끌어다 썼으니 뿔이 날 대로 난 상태였다.
‘어쩐지 한기가 느껴지는 것 같군.’
다른 때였다면 어느 정도는 긴장이 되었겠지만, 진은 양옆으로 고개를 돌려 차분히 동료들의 면면을 살폈다.
저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왔다.
“저, 저거. 제피린. 제피린 아니야!?”
“제피린이라고? 이 빌어먹을……!”
“우리가 얼마나 잘해줬는데!”
외부 경계를 서고 있던 흑왕단원들의 눈이 칼처럼 날카로워졌다.
“단장님의 원수다, 흑왕대포 1호 장전 준비해!”
“전 흑왕대포 1호를 포함한 모든 포문을 열어라, 단장님의 원수를 갚는다!”
“단장님의 희생은 헛되지 않았습니다!”
흑왕단원들은 마치 발카스가 그때 죽은 것처럼 말하고 있었다. 분노를 고취시키기 위함인지, 일단 누군가 원수라는 표현을 사용해 묘한 흐름이 형성된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포들이 조준되었다.
중앙 망루의 흑왕단원들이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저 망할 것을 쏴 죽일 준비가 모두 완료되었으니, 당장 명령을 내려달라는 의미였다.
“음, 주군. 결정을 내리시오.”
“방위력 시험이나 한 번 해보죠.”
발카스가 손을 치켜들자 망루의 단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철컥! 키이이잉, 철크덕-!
동시에 티칸 외벽 곳곳에서 흑왕단이 설치한 방어 장비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마치 정교하게 맞물린 톱니바퀴들이 회전하듯 일사불란한 변화였다.
외벽 곳곳에 총안銃眼이 열리며 포신이 드러났고, 인근 암초들에 설치된 아티팩트들은 일제히 대공 보호막을 펼쳤다.
제압과 압박을 위한 갈고리 포도 사방에서 쏟아져 나왔다. 그물을 쏘는 아티팩트도 있었고, 단원들이 몇 명씩 붙어서 시위를 당기는 거대한 활도 마흔이 넘었다.
그밖에도 수많은 방어 장비들이 제피린에게 조준되었다.
‘요새화가 시작되었다고 듣기는 했는데, 이 정도였나요? 하, 게다가 저를 공손히 맞이해도 모자랄 판에 이런 대우라니…… 어이가 없군요, 진 경!’
사격 개시!
대장들이 소리치자 순식간에 하늘이 포탄과 화염, 화살, 갈고리, 그물 같은 것으로 붉게 물들었다.
일반적인 수준의 용이라면 이미 그 시점에 죽음을 맞이했을 것이나, 제피린은 요리조리 잘 피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나름 살벌하긴 하군요.’
제피린은 우선 그 대목에서 첫 번째로 충격을 받았다.
평소라면 그저 가소로운 마음에 코웃음을 쳤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단장의 힘을 끌어다 쓸 수 없는 상황이었다.
“흑왕대포 발사!”
“발사!”
사각이 만들어졌다는 판단이 되자마자 흑왕대포 1호가 불을 뿜었다.
퍼엉-!
막혀 있는 무언가가 뚫리는 듯 묵직하면서도 시원한 폭음은, 포가 이미 제피린의 뺨과 어깨를 스치고 지나간 다음에 울려 퍼졌다.
‘어, 방금…… 뭐야?’
힘을 잃은 지금 상태로 정타를 허용했다면, 사망 혹은 그에 준하는 피해를 입었을 것이다.
그 직감은 너무나 확실한지라, 제피린은 도저히 피할 수 없는 각으로 날아든 다음 흑왕대포 1호를 막을 수밖에 없었다.
단장의 힘을 끌어와서(쿨럭-! 그 시각 누워 있는 단장은 피를 토했고 킨젤로엔 비상이 걸렸다) 말이다.
“상당히 훌륭한데요?”
흑왕단 사태 당시엔 전투가 거의 아공간에서 펼쳐졌고, 단원들이 모두 대피를 하느라 사용하지 못했으나.
흑왕대포 1호의 위력은 엄청난 수준이었다.
“우리 흑왕단의 자랑이었소.”
“이만하면 대략적인 성능은 알겠군요. 이제 제피린이 이쪽으로 착지하도록 유도해주세요.”
발카스가 진의 명령을 전하자 사격의 형태가 제압과 유도로 바뀌었다.
이후 제피린은 약 5분가량을 하늘에서 구르다 다소 만신창이가 된 모습으로 저택 앞마당에 착지하는 모습이었다.
“헉, 헉…… 이, 이…… 진 룬칸델! 개자식, 또 나를 능멸해? 나와의 약조를 잊은 것이냐, 나와라. 사지를 모조리 찢어버리겠다!”
일단 열 받아 미칠 것 같은 마음에 냅다 그렇게 소리를 치기는 했으나.
그녀 앞에는 진의 모든 동료들이 함께하고 있었다.
“흐응, 누구 사지를 찢겠다고?”
“제피린, 흑왕산채를 그 지경으로 만들어놓고 잘도 여길 찾아왔군.”
“눈깔 예쁘게 떠라, 몸가짐 바르게 하고.”
탈라리스와 발카스, 라타가 동시에 말했다.
특히 탈라리스는, 제피린이 그 말에 무어라 대답하기도 전에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 제피린의 턱에 주먹을 내질렀다.
쩌엉, 빠각-!
만빙의 힘으로 물든 주먹과 악마룡의 턱이 부딪히는 소리는, 누구나 들으면 이런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는 느낌이었다.
죽지 않았을까? 라고 말이다. 그 주먹에 제피린은 두 번째 충격을 받았다.
“퀙!”
충격파와 권풍이 회오리처럼 번졌고, 이어 퍼진 냉기가 순식간에 제피린의 팔다리를 얼려 사슬처럼 붙잡았다.
“아니. 컥!”
“아니긴 뭐가 아니라는 거지?”
“후! 비궁주, 내가 누군지 모르는 모양인, 억! 아악!”
“으흥, 일단 연해질 때까지 조금 맞아야겠구나.”
퍼버버벅!
다른 동료들이 더 손을 쓸 것도 없이, 탈라리스는 압도적이면서도 호쾌한 타격으로 제피린을 두들겨댔다.
그렇게 문자 그대로 무자비한 구타가 이어지길 5분, 제피린은 결국 잔뜩 부은 얼굴로 이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이, 이게…… 아닌데…….’
당연히 그녀가 기대한 것은 이런 그림이 아니었다.
아무리 단장의 힘을 쓰지 못한다 할지라도(한 번 또 써버렸지만) 제피린의 무위는 결코 얕지 않다.
다만 티칸의 방어 장비에 당황해서 무리하게 단장의 힘을 조금 끌어다 썼고, 다소 지친 채로 지상에 내려온 상태인 데다 상대가 상대였다.
또한 제피린은 진이 양심이 있다면, 나름 신사적으로 자신을 맞이할 줄 알았다. 소타 사막에서의 약속도 있으니까.
“아, 뭔가 했더니…… 제피린, 당신이었군. 미리 연락을 주고 찾아왔다면 정중하게 맞이했을 텐데. 테러범인 줄 알았잖아. 아, 테러범이 맞긴 한가? 킨젤로니까.”
진이 모른 척하며 말하자 제피린의 눈이 보랏빛 마기로 물들며 독기로 차올랐다.
“진, 룬칸델, 네놈!”
“아니지, 그렇게 함부로 말할 때가 아니지. 자꾸 멍청하게 굴어봤자 좋을 일은 없지 않겠어?”
제피린이 흥분을 가라앉히며 진의 일행을 살폈다.
“……진 경, 오랜만이군요.”
결국 그녀는 오래전, 온전한 힘을 갖고 있던 시절이라면 몰라도 지금은 까불다가 큰일이 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말았다.
“그렇게 오랜만은 아니야, 소타 사막의 전우. 너도 그 사막을 무사히 빠져나갔던 모양이군?”
이 악마 새끼…….
목까지 차오르는 육두문자를 간신히 억누르며 제피린은 미소를 지었다.
“그럼요, 제가 힘을 제대로 쓸 수 없는 상황이라곤 하나 그깟 게 대수겠어요?”
“어째 힘을 제대로 쓸 수만 있다면 네깟 놈들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뜻처럼 들리는데.”
“그렇지 않답니다. 이상하게 곡해하시는군요.”
“저번부터 궁금했던 건데, 대체 뭘 믿고 자꾸 혼자 움직이는 거냐? 게다가 여긴 내 본거지다. 초대장도 없이 이따위로 찾아오면 안 된다는 뜻이지.”
제피린이 홀로 움직이는 걸 선호하는 건 다름이 아니었다.
마계의 대공으로서 쓸데없이 우르르 몰려다니는 건…… 품위가 떨어지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말하기엔 영 민망한 상황인지라 대답하지 않았다. 용, 마족, 그런 반 불멸에 가까운 존재들은 대부분 그런 이상한 구식 문화와 사상을 가진 경향이 있었다.
“그냥 죽이려다가 그래도 너와 약속한 바가 있으니 살려준 것이다. 그러니 두 번 다시 이런 무례한 경우는 없었으면 좋겠군.”
“후, 알았으니까…… 이제 이것 좀 풀어주고 말로 하시죠?”
“싫은데.”
탈라리스가 단칼에 거절하자 제피린은 나지막이 이렇게 답했다.
“비궁주, 이 이상 장난을 쳐서 좋을 건 별로 없답니다. 전대 비궁주들이 나에 대해 남긴 기록이 있을 텐데요…….”
그러자 탈라리스는 가볍게 웃음을 터뜨렸다.
“흐응, 오늘은 농담을 무겁게 받아들이는 애들만 가득하네. 악마룡 제피린, 아주 짧은 기록이 남아있긴 하더군.”
“대부분 사라졌나 보군요. 비궁하고는 재미있는 일화가 꽤 많았는데. 나와는 결코 척을 지지 말라는 내용이 없던가요?”
있었다. 비궁에 남아있는 제피린에 대한 기록은 단 한 줄이었다.
마주치면 피하라.
‘봉인, 말살 지정 대상도 아니고, 현재는 무력도 그냥 그런 수준인 것 같다만. 그런 기록이 남은 건 이유가 있을 테지.’
프스스스…….
제피린을 묶은 얼음이 허공으로 흩어졌다.
“그런 내용은 못 봤고, 이런 식으로 내 사위를 또 위협하면 그땐 농담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만 알아두어라. 너도, 네 본거지도.”
비궁주, 탈라리스 엔도르마가 진과 매우 우호적이라는 사실은 세상 모두가 아는 내용이었다. 이미 호사가들은 진과 시리스의 혼인이 확정된 사안인 줄 알고 있을 정도니까.
하지만 ‘비궁의 비밀’을 아는 이들은, 그들이 절대적인 중립을 지킨다는 걸 알고 있었다. 세상의 이상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선 때로 어떤 세력과도 손을 잡을 필요가 있으니까.
‘중립을 벗어날 수 있다는 걸 암시하면서까지 제게 경고를 하다니…… 비궁도 옛날 같지 않나 보군요.’
제피린으로서는 새로운 정보였다.
“흥, 참고는 하도록 하죠. 아무튼, 진 경. 나와 약조한 바를 지키도록 하세요.”
찾아올 때만 해도 제피린은 매우 호기로운 마음이었으나, 이제는 분하고 불안했다.
-맞아요, 룬칸델에게 그 물건들은 사실 돼지 목에 진주 목걸이죠. 다음 협상에서는 이렇게 호구처럼 당할 일이 없을 겁니다. 그러니 오늘의 작은 승리를 즐기도록 하세요, 진 경.
저 간악한 놈이 입을 싹 씻어버리면 이번에도 호구처럼 아무런 소득 없이, 두들겨 맞고만 돌아가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러도록 하지.”
의외로 진은 순순히 제피린의 요구에 응하는 모습이었다.
“설계도와 기계를 우리에게 넘기겠다는 이야기인가요?”
“그건 너무 갔어. 킨젤로와 정식으로 회담을 한 번 하겠다. 그때 설계도와 기계를 너희가 해독할 기회를 줄게. 해독은 양 세력이 모두 보는 앞에서 진행되며, 전부 우리 측에 공유되어야 한다.”
“하! 또 날강도 같은 소리를 지껄이시는군요.”
“착각하고 있는데, 제피린. 그날 사막의 승자는 나였다. 물건은 내 손에 있으니, 지플과 너희 킨젤로는 패자들이라고. 내가 이런 아량이라도 베풀어주는 걸 감사하게 생각해라. 싫다면…… 맨손으로 그냥 돌아가든지. 목을 놓고 가는 것도 나쁘지 않겠군.”
“온 마족이 당신을 저주하는 날이 올 겁니다, 진 경.”
진은 싱긋 웃으며 이렇게 답해주었다.
“괜찮아, 면역이거든. 회담 날짜는 내가 정해서 통보하겠다. 볼일 끝난 것 같은데, 어쩔 건가? 식사 중이었으니 요리나 좀 맛보고 가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