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516)
제 555화
142화. 협상들(3)
* * *
티칸은 여전히 공사가 한창이었다. 흑왕산채에 있던 그 거대한 장비들이 모조리 개조되며 새로 안착되고 있으니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아직 공사가 끝나지 않았음에도 티칸은 옛 흑왕산채의 방위력 8할 이상을 보유하게 되었다.
순수하게 흑왕산채에서 가져온 장비의 방위력만을 따져서 8할이었다. 기존에 상주 중이던 진의 동료들과 새로이 혈맹이 된(그들은 부하라 생각하지만) 이들의 전력까지 생각하면, 티칸은 양대 세력 제외 단일 규모 역대 최강의 도시나 다름이 없었다.
현존하는 중, 소규모 국가 중에서도 티칸을 넘볼 수 있는 곳은 존재치 않았다. 귀신대와 흑왕단이 합류한 시점부터, 티칸은 제5세력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는 땅이 된 것이다.
“어흐흑, 국가 선포가 코앞이군요…….”
그래서인지 티칸의 주인이자 칠색조의 수장이며 철저한 신비주의자라는 오해를 사고 있는 이 남자, 귀검 카시미르 알프리온은 요즘 들어 부쩍 눈물이 많아졌다.
이루 말할 수 없이 감개무량한 마음과, 40대에 접어들며 유난히도 섬세해진 감수성, 드디어 오랜 염원이 곧 마침표를 찍고 새로운 시작에 들어서리라는 확신, 동료들에 대한 고마움. 카시미르가 행복의 눈물을 흘리는 이유였다.
“아이고, 우리 카시미르 경 또 우시네.”
“유리아, 네 아빠 손수건 좀 가져다줘라. 진 공자도 있는데 저게 무슨 추태야?”
“왜 울엉, 카시미르 아재.”
제트와 알리사, 아멜라가 말했다.
실로 오랜만에 모든 동료들이 모여 식사를 하는 중이었다. (무라칸의 집요함 덕에) 함께 산책을 나간 딸기파이, 아니. 길리를 제외하면 전원이 식탁에 앉아 있었다.
“국가 선포를 하기엔 아직 부족합니다.”
진이 말했다.
그 역시 감개무량한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번 임무를 다녀온 후, 당연하게도 진의 마음속에는 또 한 번 조급함이 들어섰다.
“맞습니다, 주군 말대로 아직 부족합니다. 지플과 킨젤로가 빠른 시일 내에 이곳을 건드릴 가능성은 낮지만, 기회가 될 때마다 압박을 시도할 겁니다.”
라타가 말하자 발카스도 고개를 끄덕였다.
“요새 방어 장비를 설치하는 속도가 생각보다 더디오, 주군.”
“장비들이 흑왕산채가 있던 산맥에 특화되어 있었기 때문이라 들었습니다, 발카스 경.”
“맞소. 티칸과의 호환도 썩 나쁘지는 않으나 완벽하지는 않지. 그리고 흑왕산채에 있을 때부터 느낀 것이지만, 우리 장비들은 개선될 여지도 많소. 실제로 아멜라 덕분에 이미 굉장히 많은 개선이 이루어지기도 했고.”
아멜라.
가이파 군도에서 보여주었듯, 그녀는 혼돈의 힘을 이용하는 전쟁의 달인이다.
가이파 군도에서는 부바르의 혼돈과 융합되어 평소보다 더 강한 힘을 보여주었으나, 그게 아니어도 그녀는 세계 최고의 전쟁 장비 운용자였다.
발카스가 단순 무력이 아닌 ‘전쟁’이라면, 그녀 한 사람이 흑왕단 전체보다 낫다고 평가할 정도니 말이다.
“아직 장비가 다 설치되지 않았는데도 8할 수준의 위력을 내는 건 그 이유지. 그런데 아멜라가 장비를 강화하는 걸 가만히 지켜보니, 알겠더군. 아직도 더 좋아질 수 있소. 옛 흑왕단의 배 이상 위력을 낼 수 있다는 뜻이오.”
“그게 가능합니까?”
“가능행, 주군!”
아멜라가 덤불 옷 바깥으로 손을 빼내 흔들며 말했다.
진은 그녀가 다소 어색한 느낌이었다. 가이파 군도에서는 내내 죽일 듯이 싸웠고, 요나의 검증이 끝난 후엔 아멜라가 기절했기 때문에 대화 한 마디 못 나누고 소타 사막에 다녀온 것이다.
반면 아멜라는 발카스와 라타를 따라 진을 주군이라 부르며 몹시 친근하게 행동했다. 그건 그녀의 혼돈이 요나에게 굴복되었고, 본질적으로 다소 붙임성 좋은 아이의 자아를 갖고 있기 때문이었다. 진과 무라칸을 조금 무서워하던 것도 다 사라진 것 같았다.
“발카스 아재의 장비들은 대부분이 현대 마법 공학의 산물이라궁. 그런뎅 일부는 유물, 흔히들 마스터피스라고 부르는 거양. 주군의 투구처럼 말이징. 발카스 아재는 바보라성 잘 몰랐던 것 같지망. 우리 귀염둥이들동.”
진을 만나기 전, 아멜라는 평생 용병이자 탐험가로서 혼돈과 함께 세상을 유랑했다. 그 덕에 유물과 아티팩트에 대해서 그녀보다 해박한 사람은 세상에 그리 많지 않았다.
“허허, 동년배에게 아재 소릴 듣다니.”
“제길, 귀염둥이라고 부르지 마라……!”
덤불에 가려진 아멜라의 외모는 자신과 동년배는커녕 엔야보다도 어려 보이니, 발카스는 어쩐지 상처를 받는 기분이었다. ‘귀염둥이’에 격하게 반응한 것은 라타와 페이였다.
“마스터피스?”
“마족 아니면 옛 지플. 그런 애들이 만든 물건일 거양. 대표적으로 발카스 아재가 흑왕대포 1호라고 부르는 물건인뎅, 내가 생각할 때 그건 마력흡입분사형 전천후 가속파쇄포라고 불러야 어울리는 물건이거등. 발카스 아재는 그걸 몰라서 일반 포로 사용하고 있었지망.”
“마력흡입…… 뭐요? 허미, 우리 아멜라 님 그런 어려운 말도 쓸 줄 아시네. 나으리는 알아들으셨습니까?”
“마력흡입분사형 전천후 가속파쇄포……?”
늘 아카데미 비평서들을 끼고 살았던 진은 그런 식의 긴 정식 명칭에 익숙한 편이었다.
“크, 역시 나으리.”
“온전한 기능을 다 찾으면 현존하는 최강의 포가 될 거라궁. 음…… 비교 대상이, 어디 보장, 코젝! 코젝의 마력투입분사형 전천후 파쇄포보다도 강력할 것 같은뎅.”
미묘하게 다른 이름만 비교해도 전자가 더 강할 것 같기는 했다. 다만 아멜라의 말이 정말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 말이 사실이라면, 어떻게 저 물건이 흑왕산채에 있던 거냐? 흑왕단이 독립적으로 존재하던 시절엔, 장비 보수를 위해 지플이나 황실의 공학자들과도 종종 교류가 있었단 말이다. 그것들이 마력…… 어쩌고 하는 포를 보고도 가만히 내버려뒀을 리가 없어.”
“귀염둥이는 역시 질문도 귀엽당. 걔네들이 흑왕단에 최고급 인력을 보내줬겠엉? 매번 어중이떠중이 떨이 같은 애들만 보냈으니까 몰라본 건 아닐깡? 조금만 머리를 써도 알 수 있는 문제란 말이양.”
“저게 진짜.”
“어어, 귀염둥이가 아멜라 팬당!”
“오오, 아무튼 뭔진 몰라도 엄청난 대포라는 말이죠? 아멜라 님이 복구할 수 있는 거예요?”
엔야의 질문에 아멜라가 고개를 저었다. 라타에게 붙잡힌 탓에 목이 거의 돌지 않아 그냥 덤불만 흔들리는 모양새였다.
“아닝, 윽, 그건, 아악, 내가, 못행. 아아, 뼈, 뼈, 맞았엉! 잠깐망! 능력, 부족행. 그리고 복구할 수 있는 인력이 세상에 있을지도 모르겠엉.”
“주군, 아멜라의 말이 사실이든 아니든. 제대로 된 마법 공학자를 영입할 필요가 있는 것 같기는 하오. 흑왕대포 1호가 아니더라도 개선할 장비는 많고, 무엇보다도. 소타 사막에서 얻은 그 기계 장치에 대한 실마리도 찾아야 하지 않소.”
앞으로 있을 전쟁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물건.
예언자는 로사에게 진이 얻은 기계를 그렇게 표현했다.
‘어머니도 예언자에게 그 물건의 정확한 용처는 듣지 못했다. 들었다면 내게도 알렸겠지, 반드시 가문에 이익이 되는 일이니.’
물론 예언자의 말이 거짓일 수도 있었다. 그 역시 사실은 기계의 용도를 모를 수도 있다.
하지만 괜히 설계도와 함께 있지는 않았을 터, 반드시 그 이유를 알아봐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히스터의 기록 마법과 더불어 천재 마법 공학자의 도움이 필요했다.
“제트.”
“예, 나리!”
“아리아에게 연락이 오면 즉시 알려라.”
발레리아와는 작년에 완타라모 숲을 나와 요나와 시간을 보낸 이후 아직 한 번도 만남을 갖지 못했다.
그녀는 완타라모 숲에서 얻은 비먼트 마인의 시체를 차후 황실을 압박할 증거로 갖고 있다.
그리고 진이 검황성에서 얻은 킨젤로 단장의 철과 진이 준 기록 장치들을 분석하는 중이고, 히스터의 마법을 복원해가며 테마르의 무덤까지 추적하는 중이었다.
아직 연락이 없는 건 아무런 성과가 없기 때문이거나, 어떤 위험에 노출되어 있기 때문이거나. 둘 중 하나일 터.
‘그도 아니라면 다음 전승지에 들어선 것이거나.’
발레리아와 더불어 미샤도 계속 연락이 안 되고 있으니 조금은 불안한 마음이 드는 진이었다.
“물론입니다요. 어휴,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 너무 걱정하지는 마십시오. 연락은 상당히 뜸합니다만, 그 야무진 아가씨한테 별일이야 있겠습니까?”
“그러면 좋겠군. 야, 무라칸. 미샤 님을…….”
“나리, 무라칸 님은 길리와 산책을 나가셨잖…… 아, 저기 오시는군요! 응? 그런데 웬 거대 두꺼비를…… 탈라리스 경의 눈두꺼비 모트를 타고 계시는뎁쇼?”
식탁에 앉아 있던 비궁 7검, 류와 히텐이 벌떡 일어서며 예를 차렸다.
“궁주를 뵙습니다!”
“궁주를 뵙습니다!”
눈두꺼비 모트엔 무라칸과 길리뿐만이 아니라 그 주인들도 함께 탑승하고 있었다.
그 옆엔 왜인지 쿠잔과 베리스, 율리안이 무슨 수행원이라도 되는 듯 서서 멍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으흥, 사위. 오랜만이야!”
“오셨습니까, 탈라리스 님, 시리스 님.”
“어쩜 우리 사위는 이런 자리가 있을 때 이 장모를 한 번도 부르지 않는 걸까?”
“혹시 루카스 맨프랜에게 초대장을 받지 못하셨습니까?”
“아아, 엇갈렸나 보군. 또 서운할 뻔했지 뭐야? 하하하…… 하! 기가 막혀서. 오는 길에 이 잘생긴 흑룡 오빠한테 듣자 하니 어떤 이상한 것이 우리 사위한테 들러붙었다던데.”
산드라 지플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 말에 시리스는 이제 어머니에게 따질 힘도 없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사위도 마음이 있는 것은 아닐 테지? 적대 가문의 영애에게?”
“어머니, 비록 지플이라고는 하나 진에게 큰 도움을 준 인물입니다.”
“으흥, 얘는 또 딱딱하게 구네. 농담도 못 하니?”
“가벼운 의지가 아니었을 겁니다.”
시리스는 물론, 당연하게도, 절대로! 산드라 지플을 의식하지 않았다.
하지만 친구인 자신도 비궁을 배신하면서까지 진을 돕지는 못할 것 같건만, 산드라는 그랬다는 사실에 왠지 묘한 기분이 들었다.
‘예전의 나였다면 그렇게 멍청하고 어리석을 수가 있냐며 코웃음만 쳤을 텐데. 진을 만나고 나도 조금 변하긴 한 모양이지.’
탈라리스가 어깨를 으쓱였다.
“흥, 나도 고맙게 생각하거든. 그렇다고 사람들 보는 앞에서 이렇게 어미한테 면박을 주고. 이 어미가 그래도 비궁주인데.”
“그건 죄송합니다, 어머니.”
“으흐흥, 방금도 농담이었지롱. 쫄기는!”
“아, 진짜.”
“하여간 우리 딸은 놀리는 맛이 있단 말이지. 아무튼, 다들 반갑네. 3대 용병이 다 모여서 하하호호 밥 먹는 것도 직접 보니까 조금은 신기하기도 하고. 역시 내가 사위로 점찍은 남자의 매력이란…… 그래, 다들 무슨 얘기 하고 있었어?”
“마력흡입분사형 전천후 가속…….”
진이 거기까지 대답한 순간.
별안간 티칸 전체에 경보음이 울리기 시작했다. 흑왕단이 설치한 장비들이 경보음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왜애애애애앵-!
난데없이 상공에 발견된 미확인 물체 때문에 시작된 경보음이었다. 그리고 경보음을 일으킨 주인공은, 얼마 전 소타 사막에서 진 일행을 호위한 인물.
제피린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