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518)
제 555화
142화. 협상들(5)
* * *
킨젤로 본회.
소타 사막의 쓰라린 손실도 모자라, 또 한 번 단장이 갑작스러운 각혈을 했으니 분위기가 좋지 않았다. 부바르와 아이나스만이 킬킬거리며 놀고 있었다.
“하, 제피린 님. 또 힘을 사용하시다니…….”
“단장이 제대로 의식이라도 찾아야 제피린 님을 통제하기라도 할 텐데, 또 기력에 손실이 났어. 자꾸 이런 일이 반복되는군. 이번엔 나라도 한소리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부단장.”
비슈켈과 베락트가 답답한 듯 말하자 조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 자기가 마계 대공이면 대공이지. 이건 좀 너무하지 않습니까? 피를 한 움큼이나 뱉으셨다고요!”
“넌 끼어들지 말고 닥쳐라, 조. 정말이지 매번 내가 이렇게 닥치라는 말을 직접 해줘야 그 주둥이를 가만히 내버려둘 수 있는 거냐? 다시는 말을 못 하게 턱을 부숴줄까?”
“으음, 제피린 님도 어쩔 수 없으셨을 거예요. 우리 중 누구보다도 단장님의 회복을 염원하는 건 분명 제피린 님이지 않겠어요? 진 경의 무라칸 씨랑 비슷한 신세이니, 답답하기도 하실 거고요.”
“흠, 그건 그렇지. 마르지엘라.”
조는 이럴 때마다 황당한 마음을 감추기가 어려웠다. 방금 마르지엘라가 했던 말을 자기가 토씨 하나 안 틀리고 똑같이 했다면, 베락트는 어디 주제넘는 소릴 하냐며 죽일 듯 달려들었을 테니 말이다.
‘쯧, 속 좁고 개 같고 더럽고 냄새나는 차별주의자 수인 놈!’
조가 그렇게 생각한 순간, 마르지엘라가 고개를 돌려 그와 눈을 맞췄다.
‘그런 나쁜 생각은 안 돼요, 조 님!’
그리곤 이렇게 입모양을 보여주었고, 조는 머리털이 바짝 선 채 헛기침을 내뱉었다.
드륵!
문이 열렸다. 들어선 것은 제피린이었다.
“오셨습니까, 제피린 님!”
앉아 있던 이들이 일제히 일어서서 예의를 차렸다.
“어, 대공…… 왔다. 이런 걸…… 호…… 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
제피린은 일어선 이들에게 귀찮다는 듯 휘휘 손을 저어 앉으라는 표시를 해주었다.
“라고 하지, 언니! 제피린 대공, 왔어요? 다들 대공 얘기 하고 있었다고요.”
“제 얘기를 했다고요? 무슨?”
“아, 무슨 얘기를 하고 있었냐면. 다들 제피린 대공이.”
“멋지다는 이야길 하고 있었습니다. 적지를 혼자 찾아가는 건 저희 같은 아랫것들에겐 부담스러운 일이지 않겠습니까. 다녀오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제피린 님.”
비슈켈이 황급히 아이나스의 말을 자르며 화제를 돌렸다. 제피린이 몹시 저기압이라는 사실을 알아본 것이다.
한소리를 하겠다던 베락트도 제피린의 분위기와 ‘얼굴’을 보고는 한숨만 내쉬었다.
‘젠장, 대전사인 내가 눈치나 보는 신세라니. 턱은 또 왜 저렇게 된 거야……? 설마 맞고 온 건가?’
제피린의 턱은 몹시 부어 있었다.
“으하하, 그런데 대공! 어디서 이런 혹을 달고 온 거야? 터뜨리면 이야기 같은 게 나오나?”
반면 아이나스는 한 번 제지를 당했는데도 눈치 없이 그녀의 부은 턱에 손을 얹으며 킬킬 웃어대는 모습이었다.
물론 그 거대한 혹은 탈라리스에게 맞아 생긴 것이었다.
“어, 아아, 아이나스…… 그, 그러면 안 돼. 대, 대공이 화, 화낼…… 수도 있어.”
“히히, 이렇게 큰 혹은 처음 봐! 언니! 언니도 좀 만져봐.”
“아…… 안 된다니…… 안…… 안 된다고, 이 미친 것아! 죽어, 죽어 그냥! 대공한테 무슨 짓이야, 죽어! 죽어엇!”
퍼버버벅!
돌연 비앙카가 돌변하며 주먹과 육두문자를 속사포로 내뱉었다. 아이나스는 깨갱대며 줄행랑을 쳤으나 비앙카는 어느새 손에 몽둥이를 형성한 채 그녀를 쫓았다.
마르지엘라가 휠체어를 굴려 제피린에게 다가갔다.
“음, 어떻게 되었나요? 제피린 님.”
“……회담을 하기로 했어요, 마르지엘라. 날짜는 진 경이 통보할 거고, 우린 회담장에서 물건들을 분석할 수 있는데 그때 알아낸 정보는 모두 공유해야 합니다. 그 빌어먹을 진 룬칸델 경과 말이죠.”
“와아, 그 정도면 대단한 수확이네요!”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나요?”
“그럼요, 우리 중 다른 사람이 갔으면 아무것도 못 받았을걸요?”
그사이 간부들 사이를 빙빙 돌던 칼리고 자매, 비앙카는 다소 이성을 되찾았다.
“어…… 내가…… 무슨 짓을. 미안…… 아팠지, 아이나스.”
“어, 으응. 아니야. 괜찮아…… 어? 근데 이게 무슨 냄새지. 대공, 거기서 뭐 먹고 왔어요? 대공한테 엄청 맛있는 냄새가 나는데.”
이번엔 비앙카도 제피린의 근처에서 코를 킁킁댔다.
구타가 끝난 후, 제피린은 티칸에서 식사를 하고 돌아온 상태였다. 그런 상황에 식사를 거절하는 건 왠지 마계 대공의 품위에 어긋나는 일 같았던지라 어쩔 수가 없었다.
‘하…… 그 쿠키는 짜증나게 왜 엄청나게 맛있고 난리였던 걸까요, 그 딸기파이도…….’
제피린이 품속에서 챙겨온 리트라 쿠키를 꺼내주자 칼리고 자매는 즉시 한 입씩 베어 물고는 방방 뛰며 기쁨을 표현했다.
말하자면, 개판이었다.
비슈켈은 대체 어쩌다 킨젤로가 이 모양이 되었는지 가슴에 서리가 내려앉은 듯 씁쓸하고 서러운 기분이 될 수밖에 없었다.
“우울한 제피린 님을 위해 제가 재밌는 이야기 하나 해드릴까요?”
차르르륵, 마르지엘라가 휠체어를 굴리며 말했다.
“뭔가요?”
“어쩌면 조만간 진 경한테 조금 슬픈 일이 생길지도 모른답니다, 제피린 님.”
“슬픈 일……?”
마르지엘라는 싱긋 미소를 지었다.
* * *
“흐미, 많이도 먹고 갔네요. 뭔 애들 주려고 남겨놨던 쿠키까지 다 쓸어갔네.”
“그래도 딸기파이는 내가 지켰다, 제트. 식탁에서 먹은 건 딸기파이 때문에 어쩔 수 없었지만, 딸기파이만큼은 안 되지. 암.”
“그럼요, 무라칸 님이 최고십니다요!”
만찬이 끝나고 일행은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하거나 담배를 피웠다.
탈라리스는 소타 사막에서 있던 모든 일을 다 전해 듣고 설계도와 기계를 살펴보고 있었다.
“흐응, 설계도는 제대로 된 해석 전문 마법사들이 있어야겠네. 이 암호 마법은 아마 지플이 새로 만든 신형일 거다. 기계는…… 그 예언자라는 놈이 이게 전투의 판도를 바꿀 물건이라고 했다고?”
“예, 탈라리스 님.”
“차라리 마력흡입 어쩌고 하는 흑왕단의 대포 이야기라면 모를까, 이런 작은 물건이 대체 어떻게 쓰인다는 건지 감이 안 오네?”
현재까지 만난 진의 동료와 조력자들은 모두 같은 반응이었다.
“저도 그랬습니다. 그런데 계속 고민하다 보니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가이파 군도에서 지플이 사용한 정육면체, 소환 장치와 뭔가 관련이 있지 않을까 하는…….”
“아리아 아울하트라는 히스터의 마지막 생존자와 미샤 님이 관건이겠구나. 기록 마법으로 설계도의 암호를 해제하는 건 가능할지 잘 모르겠는데, 기계의 제작자 정도는 확실히 알아낼 수 있지 않겠느냐?”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암호 해제는 킨젤로가 다 해주면 좋기는 하겠다만…… 흑룡 미샤, 그분도 뭔가 도움이 되어줄 것 같구나.”
“미샤 님은 연락이 안 되고 있습니다. 1년이 되었군요. 이제는 조금 걱정도 됩니다.”
진이 미샤를 마지막으로 만난 건 작년 이맘때였다. 테마르의 두 번째 무덤을 다녀온 후 기록 장치에 대해 묻고자 찾아갔던 것이다.
당시 진은 미샤에게 ‘아리아 아울하트가 마미트에 있다’는 정보를 전달받아 자연스레 발레리아와 재회할 수 있었다.
“1년이라, 그 정도면 용에겐 별것 아닌 시간일 테니 걱정은 안 해도 될 거다, 사위. 같이 싸워본 바 어디 잡힐 것 같은 존재도 아니었고 말이다. 나도 나름 전우로서 미샤 님과 술 한 잔 기울이고 싶군.”
“그래, 꼬마. 비궁주 말이 맞다. 그 망종은 때 되면 알아서 나타날 테니까 아예 신경을 꺼버리자고. 응? 으, 얼굴 떠올렸더니 소름 끼친다. 그리고 그것도 만능은 아니야. 암호 해석 같은 음습한 거 잘하기는 하는데, 실패할 때도 많다고.”
“으흥, 잘생긴 오빠는 누이가 엄청 무서운 모양이지?”
“헹, 무섭겠냐?”
“아, 그럼 사실은 걱정하는 쪽이구나?”
“그 마귀를 나만큼 알면 걱정이라는 행위가 얼마나 무의미한지 깨달을 수 있다. 마음먹고 숨으면 신들도 못 찾던 걸 인간 따위가 뭐라고 찾겠냐?”
“마신석은 여러 신의 능력을 합친 거니까 또 모르지? 오빠는 조금 솔직해질 필요가 있겠는걸.”
“시끄러워. 아무튼 미샤가 아니라 하루라도 빨리 천재 마법 공학자를 찾는 쪽이 더 도움이 될 거라고 본다, 나는. 흑왕단 장비들 개선하는 것도, 그 정체불명의 기계를 알아보는 것도.”
“마법 공학자도 필요하고, 미샤 님도 만나야 해. 여쭐 게 많다고.”
마법 공학자의 필요성을 떠올린 후, 진은 열심히 전생의 기억을 뒤져보고 있었다.
그가 알고 있는 진짜배기 천재 마법 공학자들 중, 현시점까지 지플이나 황실에 소속되지 않은 인물이 누가 있는지를 떠올리기 위해서였다.
‘라모스 필? 아, 그는 내가 예비 기수일 때 이미 황실 아카데미 소속이었지. 호퍼 뉴먼? 아니야. 사일러 가문은…… 1700년대 초까지만 존재한 가문이었던가?’
마법 공학은 진의 마법에 대한 관심사 중 가장 순위가 낮은 축에 속했었다.
그러다 보니 기억나는 인물도 아주 많지는 않았고, 그마저 대부분 죽었거나 이미 소속이 있는 이들이었다.
“천재 마법 공학자라, 흐으응…… 내 애인이었던 애들 중에도 그런 샌님이 몇 명 있기는 했었는데. 한 번 연락해줄까? 사위.”
“네 애인? 썩 신뢰가 가지 않는데, 비궁주. 그리고 그런 비리비리한 애들도 취향이었냐?”
“그렇게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탈라리스 님. 아직 소속이 없는 마법 공학자들은 일단 전부 만나볼 생각입니다.”
“좋아, 대신 조건이 있다. 장모님이라고 부르면 해줄게.”
“그럼요, 장모님. 당연히 장모님이라 불러야죠. 장모님이 지금껏 저한테 해주신 게 얼만큼인데.”
“진, 이제 너까지!”
시리스가 흠칫하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크흥, 역시! 오늘 내 농담에 제대로 반응해준 건 우리 사위 하나뿐이군! 죄다 정색만 하고 말이야. 아하하!”
탈라리스와 진은 키득키득 웃음을 터뜨렸다.
‘어머니와 진은 이게 그렇게 웃긴가? 그런데 왠지 나도 웃음이 나기는 하네. 단란하고 친근한 분위기 때문인가.’
시리스는 미소가 지어지려는 걸 꾹 참았다.
“오, 사위. 저것 좀 봐. 조금만 더 하면 쟤도 웃겠다. 사위, 그거 아나? 쟤는 어릴 때 자기 자신을 얼음 공주라고 지칭했어.”
“얼음 공주…… 아니, 얼음 공주라니요, 시리스 님. 몇 살 때 이야기입니까?”
“하아? 넌 얼음 공주냐? 우리 꼬마는 흑태자인데. 들어 봤냐? 룬칸델의 흑, 태, 자.”
“흑태자? 구려. 그것보다는 얼음 공주가 나은 것 같군, 진.”
피식, 결국 시리스는 웃음을 터뜨리며 킬킬대고 있는 이들에게 그렇게 답해주었다. 좋네, 라고 생각하며 말이다.
한참 웃고 떠든 뒤, 탈라리스가 머리칼을 정리하며 몸을 일으켰다.
“아하하, 사위 덕에 실컷 웃었네.”
“가십니까? 탈라리스 님.”
“그래, 가야지.”
“배웅 준비하겠습니다.”
“사위도 같이 가야 한단다.”
“비궁 말씀이십니까?”
“그래. 정확히는, 비궁 수련장에.”
“비궁 수련장은 왜…….”
“네 누이, 메리 룬칸델에게 시론이 직접 쓴 비기 비전서를 전수 받았다며. 이 장모님이 직접 속성 완성에 도움을 좀 주마. 내 웃음에 대한 대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