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539)
제 555화
145화. 전조(9)
* * *
킨젤로 본회.
아그작, 제피린이 쿠키를 베어 물었다. 생긴 건 리트라 쿠키와 흡사했지만, 맛은…… 차마 필설로 형용하기 어려울 만큼 끔찍했다. 인두로 혀를 고문해도 이보다는 나을 것 같았다.
‘잘도 이런 끔찍한 과자를 만들었네, 칼리고의 공녀님들.’
옆에선 쿠키를 직접 만든 칼리고 자매가 눈동자를 빛내며 평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제피린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어색하게 미소를 지어주었고, 자매는 그것만으로도 영광이라는 듯 펄쩍 뛰며 기쁨을 드러냈다.
“역시! 우리 쿠키가 놈들의 쿠키를 이겼어, 언니!”
“맛있게…… 먹어줘서…… 고, 고마워…… 대공.”
그저 뛰는 정도를 넘어 부바르와 합세해 회의실을 운동장처럼 뛰어다니며 이상한 노래를 부르기도 했는데, 당연하게도 그런 모습은 암울한 간부들의 마음을 더욱 심란하게 만들었다.
‘마족이라는 것들이 온 뒤로는 본회가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군……. 대공 때문에 뭐라고 할 수도 없고.’
‘베락트도 분명 저것들이 꼴 보기 싫은 눈치인데. 한소리 거들면 또 내 입을 찢네 어쩌네 하겠지? 지 마음 알아주고 하는 얘기인 줄도 모르고!’
‘부바르와…… 여자 부바르…… 둘 다…… 너무 역겹다. 여자 부바르 쪽은 그래도 가끔은 웃긴 구석이라도 있지만, 아니. 젠장! 내가 무슨 생각을? 둘 다 못 참아줄 족속들이다. 비앙카 님은 어찌 저런 것들과 어울린단 말인가?’
베락트와 조, 비슈켈이 속으로 혀를 찼고, 제피린은 멍하게 창밖을 바라보았다.
“제피린 님.”
마르지엘라가 휠체어를 끌어 제피린의 옆으로 다가왔다.
“마르지엘라 양.”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세요? 꼭 상사병이라도 걸리신 것처럼 보인다구요. 눈빛에서 애잔함이 묻어나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혹시, 마계에 숨겨둔 애인이라도……? 어머, 너무 낭만적이에요.”
이상한 일이었다.
제피린은 이성적일 때 누구에게나 높임말을 사용하며 친절한 듯한 모습을 보이지만, 조금이라도 선을 넘는 이들에겐 그야말로 가차 없는 인물이었다.
특히 마족이나 용족, 그중에서도 특히 우월한 이들이 아닌 이들에게는 더욱 그랬다. 최소 마계 공작가의 수장이나 차기 수장쯤은 되어야 그녀에게 조심스레 농을 던지는 게 가능했다. 아이나스 같은 바보를 제외한다면 말이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제피린은 마르지엘라의 농담들에 한 번도 기분이 불쾌했던 적이 없었다.
‘하긴, 당신에게 깃든 존재를 생각하면 그다지 신기한 일은 아니겠군요.’
제피린이 마르지엘라를 일으켜 자신의 옆에 앉혔다.
“상사병은 아니지만 비슷한 구석이 있죠, 계속 생각하고 있다는 점에서. 사랑이 아니라 원한이긴 하지만…… 아무튼, 저번에 마르지엘라 양이 말한 슬픈 일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답니다.”
-우울한 제피린 님을 위해 제가 재밌는 이야기 하나 해드릴까요?
-뭔가요?
-어쩌면 조만간 진 경한테 슬픈 일이 생길지도 모른답니다, 제피린 님.
-슬픈 일……?
“진 경을 생각하고 있었군요.”
“마르지엘라 양이 말한 슬픈 일이 설마 그 돌에 대한 이야기일 줄은 몰랐거든요.”
“앗, 혹시 미리 말씀 안 드려서 섭섭하신 건 아니죠?”
“아니라면 거짓말이겠지만, 저 안에 누워서 약골처럼 피나 컥컥 토해대는 내 주인에게 뭔가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겠죠.”
“음, 하지만! 단장님이 피를 토하게 만든 건 제피린 님인걸요.”
마르지엘라가 그 이야길 꺼내자 회의실에 있던 다른 간부들이 쫑긋 귀를 세우며 눈치를 살폈다.
최근 단장의 건강 상태는 킨젤로의 가장 큰 문제였다. 한창 좋아지던 도중 계속해서 문제가 발생했기 때문이었다.
작년에 검황성 테러 당시 힘을 사용한 건 단장 본인의 의지였으나 그 이후의 문제들, 말하자면 흑왕단 사태와 소타 사막, 이번 티칸 방문에서 벌어진 사고는 모두 제피린의 책임이었다.
그러나 아무도 감히 제피린을 추궁하거나 나무라지 못하고 있었다. 비슈켈이 지플의 첩자 활동을 한 번 부탁한 게 그녀가 받은 징계의 전부였다.
‘오오, 역시 부단장의 동생! 가려운 곳을 시원하게 긁어주는군! 흠, 제피린 님이 설마 마르지엘라를 겁박하진 않겠지?’
‘아무리 마르지엘라라고 해도, 이렇게 죽창으로 찌르듯 말하면…… 괜찮을까? 비앙카 님한테 들은 마계 시절 이야기 몇 개만 떠올려도, 제피린 님은 베락트보다도 지랄 같은 구석이 있던데.’
‘마르지엘라! 잘했다! 아니지, 어쩌자고 그런 말을!’
베락트와 조, 비슈켈의 걱정이 무색할 만큼 제피린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제 잘못이 크죠. 최대한 조심하려고 했는데, 당신도 알다시피…… 진 룬칸델. 그 악마 같은 인간이 워낙 답이 없잖아요?”
“그럼요, 저도 잘 알죠. 정말이지 보통내기가 아니잖아요? 우리가 그간 진 경한테 골탕 먹은 걸 생각하면…….”
“백 번을 찢어 죽여도 시원치 않아요.”
“물론 지당하신 말씀이지만! 전 아직도 사실 진 경이 우리 사람이 되는 걸 바라고 있어요.”
“전 오래 사는 동안 그런 부류를 종종 보아왔어요. 신념이 다른 이들과는 절대로 야합하지 않을 인간이지.”
“꼭 진 경을 인정하는 듯이 말씀하시네요.”
제피린은 대답하지 않고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우리 킨젤로는 늘 열려 있으니 언젠가는 기회가 올지도 몰라요. 그전에 제피린 님과 베락트 아저씨의 인내심이 먼저 바닥날 것 같기는 하지만.”
“당신은 조금 이상한 구석이 있군요, 마르지엘라.”
“하하, 그런 이야기 가끔 들어요.”
“진 룬칸델, 그가 정말 우리 편이 되길 바랐다면. 우선 그에게 돌의 정체를 알리고, 그가 이번 일에 최대한 관여하지 않도록 종용했어야 합니다.”
“저도 그 생각을 안 해본 건 아니에요. 하지만 돌의 정체를 미리 알렸다 한들, 예정된 운명을 막을 수는 없지 않겠어요?”
예정된 운명.
마르지엘라가 그렇게 표현한 것은, 단테 하이란의 죽음을 의미했다.
“당신 친구는 반드시 죽을 거고, 하얀 돌은 위험한 물건이니 절대로 가면 안 된다. 그렇게 말려도 들을 사람도 아니고 말이죠, 진 경이. 제피린 님 말씀대로, 진 경은 그런 부류잖아요.”
이어진 마르지엘라의 말에 제피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크히히힛, 바보들! 그 돌은 폭탄이라는 것도 모르…… 웁, 웁!”
부바르가 끼어들자 비슈켈이 재빠르게 그의 입을 틀어막았다. 그의 역겨운 목소리가 제피린의 기분을 더 상하게 만들지 않게 하려는 의도였다.
비슈켈이 보기에, 하얀 돌은 부바르 따위가 함부로 입에 담아서도 안 되는 물건이었다.
“……어쨌거나, 앞으론 주인의 힘을 사용하는 일에 더 조심하도록 할게요. 일단은 과자나 먹으면서(칼리고 자매가 안 보는 사이, 제피린은 그녀들이 만들어준 쿠키를 창밖으로 던져버렸다) 불구경을 하도록 하죠. 부디, 사건이 끝난 후 진 경이 이성적으로 회담 날짜를 고르기를 바라야겠군요.”
* * *
1800년 4월 4일.
검황성에 있는 이들은 모두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결코 감당할 수 없는 거대한 적이 검황성으로 다가오고 있고, 단테를 감싼 하얀 돌의 봉인은 어제보다도 더욱 짙은 혼돈의 빛깔을 드러내고 있었다.
검황성에 모인 기사들은 여전히 단테를 두고 떠날 기색이 없었다.
바멀 연합의 힘을 믿고 있기 때문이 아니었다. 1차전의 대승에서 어떤 희망을 얻었기 때문도 아니었다. 진이 또 그 기적 같은 신위를 펼칠 수 있다고 믿기 때문도 아니었다.
지플의 진짜 본대가 찾아오면 바멀 연합과 자신들만으로는 어쩔 수 없다는 걸, 기사들은 잘 알고 있었다.
하이란의 기사들이 떠나지 않는 건 충의와 신념, 그리고 효율의 문제였다.
“떠나야 한다면, 그건 우리가 아니라 진 경이어야 하오.”
슈라스 헬터가 말했다. 1차전에서 입은 내상 때문에 혈색이 좋지 않았다. 진은 그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눈을 맞췄다.
“진 경과 바멀 연합은 우릴 위해 충분히 싸워주었소. 이 감사한 마음은 차마 말로 표현할 수가 없을 지경이지……. 하지만 진 경, 이대로라면 그대와 그대의 사람들까지 지플의 화마에 휩쓸리게 될 것이오.”
“슈라스 경, 나는 룬칸델입니다. 룬칸델과 지플은 원래 서로를 죽이는 게 일입니다.”
“그게 진 경이 이 땅에서 죽어도 되는 이유는 아닐 것이오. 진 경. 경에게는 다음이 있지 않소? 여기서 우리와 함께 싸우다 죽을 것이 아니라, 훗날을 도모하는 것이 옳지 않겠소? 자정이 지나 새벽이 되면, 적들이 당도할 것이오.”
“나는 이 땅에서 죽을 일이 없습니다, 슈라스 경. 그리고 훗날을 도모하는 게 옳다는 이야기는…… 하이란의 기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니, 다르오. 우리에겐 다음이 없소. 그대는 우릴 대피시키고, 바멀 연합이나 룬칸델에 편입시켜 안전을 도모해줄 계획도 있을 테지. 하지만 그렇게 하면 우린 평생 하이란을 버리고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에 짓눌릴 것이오.”
진이 말을 고르는 사이, 슈라스가 단테의 봉인에 시선을 두며 뒷말을 이었다.
“진 경. 냉정하게 말해서, 우리는 가치가 없는 이들이오. 무력, 지혜, 재력, 제국 내에서의 영향력. 모두 보잘것없이 작은 수준이지. 이 전쟁에서 하이란을 위해 모인 기사들 대부분의 역할은 새 발의 피와 같소.”
“아, 거. 너는 말을 왜 그렇게 하냐? 어? 너희들 덕분에 피난민들도 목숨을 건졌고, 단테도 어? 용기를 얻었고, 그리고 이런 전쟁에서 숫자가 적으면 모양새가 안 나. 멋있었잖아, 너희들. 왜 자길 깎아내려?”
“흑룡께서 그리 말씀해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군요. 하지만 그 모든 걸 따져도 우린 이 전쟁에 있으나 마나 한 존재들입니다.”
“아오, 그래서 죽어도 상관없으니 가만히 앉아서 죽겠다고?”
“우린 오히려 이 땅에서 죽어야 적들에게 타격을 줄 수 있습니다. 신의를 지키겠다고 마지막까지 남아 싸운 하찮은 기사들을 짓밟는 지플과 제국…… 적들은 우릴 죽임으로써 명예를 잃게 될 것입니다. 진 경, 경은 누구보다도 그들의 명예를 자주 떨궈본 사람이 아니오?”
“난 적들의 명예를 떨구겠다고 목숨을 버린 적은 없습니다.”
“버린 적은 없으나 매번 걸었을 것이오. 우리 또한 목숨을 걸 뿐이지. 그들의 명예를 실추시키기 위해. 이것이야말로 우리 같은 평범한 기사들이 거대 세력을 향해 뻗을 수 있는 가장 유의미한 반격이오.”
슈라스의 표현대로 냉정하게 보면, 그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진 역시 스스로도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이 하이란을 위해 모인 기사들을 살리려는 건, 단지 그들의 죽음을 보고 싶지 않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계속 그렇게 나오시면 강제로라도 살릴 것입니다.”
“경.”
슈라스가 진의 손을 붙잡으며 고개를 숙였다.
“진 경…… 우리를 존중해주시오. 같은 무인으로서, 함께 싸운 전우로서.”
“내게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습니까, 슈라스 경. 경들이 죽는 걸 내게 지켜보라는 뜻이나 다름이 없는 이야기입니다.”
“그대 말고는 어디에도 우릴 존중해달라고 말할 곳이 없어서 그렇소. 미안하오, 은혜를 이렇게 저버리는 못난 인간들뿐이로군.”
슈라스는 한참 진의 손을 붙잡고 있다가 돌아서서 터벅터벅 대전을 나갔다.
“무라칸.”
“어.”
“오늘 자정이 지나기 전에, 발카스 경, 프로치 남매와 함께 하이란 직계를 제외한 모든 기사들을 기절시켜서 티칸으로 후송시켜.”
“전부 다?”
전부 다, 그렇게 대답하려는 순간.
퀴칸텔이 진의 어깨를 붙잡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퀴칸텔 님.”
“저 슈라스라는 인간, 말은 저렇게 해도…… 밤새 하이란을 위해 모인 모든 가문들을 찾아다니며 설득하더군. 자신들이 버티는 건 네게 너무 가혹한 짓이라며, 자신을 비롯한 노기사들만 남고 나머지는 떠나서 짐을 덜어주라고 말이다.”
“후우.”
“살아남고 싶어서가 아니라, 그게 너를 위한 판단임을 알기에 하는 행동처럼 보였다. 그리고 나까지 그의 고통스러운 속내가 느껴지더군.”
“아무리 그래도 너무 많은 목숨이 걸렸어. 우리 꼬마더러 자기들이 죽는 걸 그냥 방치하라는 게 말이냐 방구냐.”
“……또한 기사들은 아직 론에 대한 희망을 놓지 않았다. 혹여라도 론이 깨어났을 때, 자신들이 없는 모습을 상상하는 게 죽음보다도 끔찍한 모양이더구나.”
기사들이 죽음을 각오한 채 성을 떠나지 않는 건 분명 진에게 괴로운 일이다.
하지만 기사들에겐 존재 의의가 걸린 문제였다.
“그렇기에 나는 존중해주는 게 어떨까 싶구나. 진, 너에게도 괴로운 일이지만. 저들에겐 자신의 존재 의의 그 자체가 걸린 일이다.”
진은 한참 동안 슈라스가 나간 문에서 시선을 뗄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