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562)
제 555화
147화. 흑해의 왕, 글리엑(7)
사흘.
그 시간 안에 시론이 이곳에 도착하는 건 결코 불가능한 일이었다. 사실 애초에 열흘이 아니라 몇 달이라 할지라도 부족했다.
시론의 원정대는 이미 한참 전에 왕들의 영역에 들어섰고, 세상에 그곳으로 향하는 길을 아는 건 오직 그들뿐이다.
설령 길을 안다 한들 모트의 차원 이동 능력으로도 단기간에 왕들의 영역에 도달할 수는 없었다.
‘킨젤로…… 놈들은 대체 무엇을 원하는 것이지?’
킨젤로, 유일하게 하얀 돌의 정체를 알고 있던 세력.
문득 로사의 머릿속에 그런 의문이 떠올랐다. 세계를 멸망의 위험에 몰아넣으면서 그들이 취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당연히 멸망 그 자체는 아닐 터였다. 킨젤로가 3류 테러단체라는 오명을 벗고 제4세력으로 부상한 것은 불과 얼마 전이다.
그들은 저력이 밝혀진 후에도 이전과 같은 방식으로 단원을 모집하고 세를 불리는 중이다.
다만 밑바닥 낭인들부터 진짜배기 실력자들까지, 그들의 세력과 힘에 현혹된 이들은 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몰려들고 있었다.
‘놈들의 수뇌부는 이번 일로 세상이 끝장나지 않는다는 걸 확신하고 있다. 하나 시론이 있기 때문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아. 그가 흑해를 떠나지 않고 있는 걸 모르지 않을 테니.’
창성의 기운이 아니고는 흑해의 왕을 죽일 수 없다.
이곳에 모인 이들도 아는 사실을, 하얀 돌의 정체를 인지하고 있던 킨젤로가 모르지는 않았을 터.
‘킨젤로는 아마 글리엑을 막을 수단이나 다른 무언가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놈들이 원하는 것은 명확했다.
룬칸델과 지플.
세계를 양분하고 있는 두 거대 가문의 세력 축소, 혹은 멸문.
따라서 킨젤로가 이번 전투에 참전한다면, 그 시점은 반드시 양대 가문이 몰살 직전에 놓인 다음일 것이다.
‘그 개자식들에게 아주 제대로 물렸군.’
이 모든 추측이 옳다는 가정하에.
킨젤로의 계획에 조금이라도 덜 놀아날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 즉시 퇴각하는 것이었다.
마침 흑기사와 흑검회 1진을 제외한 룬칸델의 기사들이 진의 동료들을 수습해 탈출을 시도하는 모습이 보였다.
‘하지만 퇴각한 이후에는?’
룬칸델과 지플, 비궁, 그리고 론.
그들 중 하나라도 이탈하는 순간, 전장의 구도는 빠르게 무너질 수밖에 없다.
켈리악 또한 후퇴할 것이며, 탈라리스는 비궁의 사명 때문에, 론은 복수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남을 테지만 반드시 전사할 것이다.
세계 최강의 무인과 마법사들이 합심해도 어쩌지 못하는 괴물이, 그대로 세상 밖에 풀려난 후 벌어질 일은 그다지 많은 상상력을 요하지 않는다.
그때부터는 거대 세력들이 다시 힘을 합칠 수도 없을뿐더러, 글리엑은 아무런 방해도 없이 온전한 본래의 힘을 되찾는다.
흑해화가 어디까지 진행될 것인지는 가늠조차 되지 않았다.
검황성의 영토와 제국을 넘어 룬칸델과 지플의 땅까지 흑해로 변하지 말라는 법은 없었다. 현재 전장에서 싸우고 있는 이들에겐 흑해화를 멈출 방도가 존재하지 않으니까.
따라서 퇴각은 결국 사태를 유예시키는 것에 불과하며, 예상되는 대가는 결코 작지 않았다.
‘이리 예상치 못한 순간에 가문의 운명이 걸릴 줄이야.’
진이 검황성에 오지 않았더라도 킨젤로의 덫을 피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지플이 하얀 돌에 집착하는 사실을 확인한 순간, 룬칸델에겐 어차피 이곳에 온다는 선택지밖에 남지 않았을 테니.
말하자면 처음부터 외통수였다.
‘전장에 막내가 있는 건 차라리 다행인 일이다. 1차전 마지막에 보여준 그 특별하고 거대한 힘이 다시 발현될 수만 있다면, 변수가 될지도 모르지.’
솔더렛과 클람의 의지를 통해 발현된 대마검, 신의 힘.
로사는 두 눈으로 그 힘을 똑똑히 보았었다. 단순 위력은 분명 시론의 검보다 떨어졌으나, 당시 진이 사용한 마검엔 분명 운명을 거스르는 위엄이 묻어 있었다. 한순간이지만 격 자체는 창성과 같았던 것이다.
‘하지만 막내가 그 힘을 또 사용할 수 있었다면, 진즉에 꺼냈을 터.’
패를 아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그즈즈즉! 카강-!
바멀 연합을 수습한 룬칸델의 기사들이 퇴로를 가로막은 혼돈의 기운을 뚫고 있었다.
막 그들에게 합류하려는 또 다른 자식들이 로사의 눈에 들어왔다.
뮤와 앤.
‘예언자’를 만났으리라 추정되는 딸들. 그녀들은 룬칸델이 참전하기 전 막사에 있던 때와 마찬가지로 지금도 무표정한 얼굴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녀들에게 예언자가 이 사태를 예견하고 있었는지를 물어볼까 고민하던 찰나.
뮤와 앤이 먼저 로사의 곁으로 다가와 나직이 속삭였다.
“가주 대행.”
“말하라.”
“2기수를 복권해주십시오. 그리하면 예언자께서 힘을 보태줄 것입니다.”
로사의 눈동자가 커졌다. 다른 이들은 아무도 뮤와 앤의 목소리를 듣지 못했다.
피식.
이내 로사는 미소를 지으며 딸들을 바라보았다.
“그래, 날 실망시키지 않으면 네년들이 아니지.”
뮤와 앤을 내려다보는 로사의 시선이 어두워졌다. 그녀들은 고개를 숙였으나 예전과 달리 두려움이나 치욕에 찬 얼굴은 아니었다.
“썩 꺼져라. 내가 가문으로 돌아갔을 때, 12기수의 동료가 한 사람이라도 사망한 상태라면 너희는 즉시 참형될 것이다.”
로사는 더 들을 가치도 없다는 듯 단칼에 뮤와 앤의 제안을 거절했다.
오히려 두 사람이 예언자의 의중을 대놓고 말해준 덕에 생각이 정리되는 기분이었다.
‘예언자가 그저 조슈아를 회생시키기 위해 거짓을 늘어놓는 것이라면 받아들여도 의미가 없고, 정말로 흑해의 왕을 막을 방법을 갖고 있다면 어차피 가문은 멸망하지 않는다. 그자는 예언의 실현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니.’
뮤와 앤이 고개를 숙이며 물러났다.
‘룬칸델의 8기수와 9기수? 저들이 이 판국에 로사 룬칸델에게 무언가를 말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단 말인가?’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던 켈리악이 생각했다.
‘예언자. 조슈아가 추락하고 8기수와 9기수가 그의 전령이 된 모양이군.’
그 역시 로사와 거의 똑같은 흐름의 사고를 하는 중이었다. 킨젤로의 목적과 이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 말이다.
그리고 켈리악의 결론은 로사와 같았다. 그가 생각하기에도 퇴각은 무의미한 일이었다.
‘론의 초월 때문에 마신석이 이전보다 안정적으로 변하기는 했으나, 완성되지 않은 채로는 어차피 흑해의 왕을 해할 수 없다. 시간을 버는 동안 카둔과 헤도가 참전하고, 베라딘을 희생시킨다고 가정해도 가능성은 희박하다.’
여기서 진이 글리엑에게 흡수되기라도 하는 날에는, 두 번 다시 마신석을 완성할 수 없게 된다.
그렇기에 켈리악으로서는 전장의 그 누구보다도 속이 타들어 갈 수밖에 없었다.
전장은 혼란 그 자체였다.
생각하는 와중에도 쉴 새 없이 글리엑의 공격이 인간들을 압박하고 있었다.
흑해화는 점점 가속되었으며, 글리엑은 론의 검에 수십, 수백 번을 베이고도 물러서는 기색이 없었다.
진은 무라칸과 함께 바멀 연합을 데리고 탈출하는 기사들의 후방을 맡고 있었다.
켈리악의 시선이 그에게 닿았다. 순간적으로, 지플이 최대의 이득을 볼 수 있는 그림이 떠오른 것이다.
‘아무래도 진 룬칸델을 확보해서 전장을 벗어나야겠군.’
진은 확연히 지쳤다. 지친 진을 순식간에 제압하는 건, 켈리악에게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진을 확보해서 탈출한 후 마신석을 완성하면, 추후 흑해의 왕을 제거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그뿐인가.
룬칸델은 괴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을 것이며, 론과 비궁주는 사망하고 킨젤로의 계획은 틀어지게 된다.
반면 지플은 아무리 큰 피해를 입었다 할지라도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마신석만 완성된다면 말이다.
어쩌면 오히려 글리엑이 깨어난 것은 지플에 최대의 기회가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켈리악이 진을 당장 제압하고 확보하는 건 무리였다.
룬칸델과 탈라리스, 그리고 론 하이란이 두 눈을 시퍼렇게 뜨고 버티고 있기 때문이었다. 켈리악이 진을 사로잡으려 들면, 그들이 가만히 있을 리는 없는 것이다.
‘당분간 글리엑을 함께 저지하되, 론이 끝장나고 로사와 탈라리스가 지쳤을 때. 진 룬칸델을 제압한다. 그 과정이 결코 부드러울 수는 없을 테지.’
상황이 어렵다고는 하나 진은 분명 자신의 계획을 알아볼 것이며, 절대로 그냥 당할 위인이 아니었다. 로사와 탈라리스는 물론이고, 복수귀가 된 론마저도 이 정도는 얼마든지 예측할 터였다.
‘로사 룬칸델은 따로 믿는 구석이 있는 것인가? 8기수와 9기수의 제안을 거부한 모양새다. 그렇다면 이제 진 룬칸델이 내게 제안을 할 차례로군.’
룬칸델의 기사들이 퇴로를 열었다.
“무운을 빌겠습니다!”
“무운을!”
결국 기사들이 바멀 연합을 데리고 탈출에 성공한 것이다.
기사들이 빠져나가자마자 퇴로가 다시 막혔다. 인간들을 가두고 있는 혼돈의 벽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두꺼워지고 있었다.
론과 탈라리스는 복수와 사명을 위해 뒷일을 생각지 않고 전투에 임했고, 켈리악과 로사는 각 가문의 생존과 이익을 계산하는 중이다.
진의 고민은 그 사이에 있었다.
최우선 순위인 동료들은 전장을 탈출했으니, 이제 남은 것은 자신과 가문, 그리고 론과 탈라리스가 생존하는 일이었다.
진은 론을, 정확히는 ‘하이란’을 아직 놓지 않고 있었다. 글리엑이 단테의 마지막 의식까지 집어삼켰다는 말을 했고, 론은 다시 패왕검을 펼쳤음에도.
하이란을 포기하는 순간, 자신이 이 전장에 온 의미가 모조리 사라지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그는 최후의 최후까지도 하이란을 포기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아버지는 올 수 없다.’
진은 탈라리스의 사흘이라는 대답을 들은 순간 로사가 이를 악무는 모습을 보았다.
‘그리고 지금 상황에서, 내가 켈리악이라면…… 어떻게든 날 확보해서 탈출할 것이다. 지플이 고를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은 오직 그것뿐이니.’
하지만 그 계획을 예상하고 있어도 당장 막을 수 있는 방도를 떠올리기는 어려웠다.
지금의 형세는 모두가 서로의 목줄을 쥐고 있는 것과 같고, 그중 가장 유리한 것은 켈리악이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진으로서는, 도박수를 던져볼 수밖에 없었다.
우선 켈리악이 다른 마음을 품지 않도록 말이다.
“켈리악 경.”
진이 켈리악에게 다가가며 그와 눈을 맞췄다.
“흑해의 왕에게 근본적인 타격을 입히기 위해서는, 창성의 힘이 필요하다는 건 경도 알고 있을 겁니다. 그러나 사흘 안에 내 아버지가 오시는 것은 불가하며, 경은…… 아마 기회를 봐서 날 확보해 전장을 떠나고 싶을 테죠.”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건가, 진 룬칸델.”
“사흘. 탈라리스 님이 놈을 봉인할 수 있는 그 시간 동안, 킨젤로와 협상을 진행합시다. 그러니 경은 탈라리스 님이 봉인을 펼칠 수 있도록 전력을 다해 도와주십시오.”
켈리악이 미간을 좁혔다.
진은 그가 무어라 대답하려는 찰나 이렇게 뒷말을 이었다.
“내 제안에 응하지 않으면, 나는 지금 당장 저 앞으로 뛰어들어 글리엑의 칼을 피하지 않고 죽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