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561)
제 555화
147화. 흑해의 왕, 글리엑(6)
우우우우……!
흐로티로부터 스산하고 어두운 기운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수백 마리의 검은 뱀처럼 마신석의 기운이 론에게 감겨들고 있었다.
그 힘은 론의 살과 뼈와 피가 되었다.
벌어진 입에서 더운 숨이 뱉어졌고, 부서진 몸은 본래의 형태에 가깝게 복원되고 있었다.
론의 부활은 이전까지 마신석의 힘으로 되살아난 이들과는 분명 다른 형태를 띠었다. 그저 육체를 가지게 된 망령들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것이다.
마신석에 담긴 모든 신들이 그의 의지에 탄복한 결과였다.
희망의 신 누메루스가 사라진 이래, 신들은 한 인간이 그의 가호 없이 순수한 자신의 의지만으로 죽음을 극복하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들은 적도 없었다.
그만큼 충격적인 일이기에 신들은 마신석에 갇혀 몽롱한 와중에도, 글리엑에게 공포를 느끼는 와중에도 론이 일으킨 기적을 똑똑히 인식할 수 있었다.
마신석이라는 창살로도, 다른 어떤 장막과 속임수로도 가릴 수 없는 찬란한 기적이 이 어둡고 무서운 땅을 밝히고 있었다.
‘이토록 완벽에 가까운 부활은, 마신석이 완성되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여겼건만……! 론 하이란, 대체 나를 몇 번이나 놀라게 할 셈인가.’
경의를 넘어선 경외.
켈리악의 심장 박동이 빨라지고 있었다. 글리엑이 깨어나기 전, 자신이 마신석의 힘을 등에 업은 채 론을 내려다보았다는 사실이 치욕스러울 지경이었다.
글리엑조차 감명을 받은 듯했다.
죽은 자를 되살리는 신들의 힘 따위는 그에게 아무런 감흥을 주지 못했으나, 한 인간이 오롯이 홀로 이룬 기적은 지켜볼 가치가 있었다.
여유를 부리는 건 아니었다.
단지 형벌과도 같은 외롭고 긴 불멸 속에서, 저토록 빛나는 것을 볼 일이 또 있지는 않을 것 같을 뿐.
또한 글리엑은 기대하고 있었다.
론 하이란이라는 이름의 저 인간이, 어쩌면 자신들과 같은 존재가 될 수도 있으리라고. 키알과 다른 흑해의 왕들이 시론에게 그런 바람을 가졌던 것처럼 말이다.
안타깝게도 글리엑의 내면에 남은 단테의 의지는 론의 기적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흑해화가 시작된 이후, 희미한 촛불 같던 단테의 의지는 더욱 빠르게 지워지는 중이었다.
후우우…….
이윽고 마신석의 검은 기운이 완전히 스며들었고, 론은 한 차례 긴 숨을 내쉬며 눈을 떴다.
육신은 더 이상 투병에서 깨어났을 때처럼 쇠약하지 않았다.
새로이 닿은 무의 경지는 평생 처음 가져보는 강고한 힘을 선명히 느끼게 해주었으며, 패왕검을 펼친 대가로 잃은 뼈와 장기도 모두 제자리를 찾았다.
그렇게 육신이 완전히 돌아온 와중.
그대로인 것은, 오직 한 가지.
전부를 잃었다는 슬픔뿐이었다. 죽어서도 잊을 수 없어 그를 움직이게 만든 슬픔이 여전히 가슴을 찢고 할퀴고 조각내고 있었다.
“론 경.”
론이 진을 돌아보았다.
진은 차마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있었다. 마신석으로 그를 부활시킬 생각을 했고, 그것이 실행되는 걸 직접 목도했다는 죄책감에 숨이 막혔다.
론은 진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대신 그의 어깨를 부드럽게 토닥여주었다. 자신이 아는 그 어떤 말로도 진에게 감사와 위로를 전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서서히 글리엑을 향해 걷기 시작한 론은 켈리악 지플을 그냥 지나쳤다.
마신석은 이제 두려움에 떠는 소리를 내지 않았다.
이제는 글리엑을 이길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 아니라, 론 하이란이라는 인간에게 예를 갖추기 위함이었다.
켈리악도 말없이 그의 뒤를 따랐다. 탈라리스와 스탐, 흑기사들 역시 자연스럽게 론을 중심으로 대열을 이루었다.
켈리악이 이곳까지 오며 뚫은 길을 따라 옥타비아와 망령대를 비롯한 지플의 마법사들 또한 내부로 들어섰으며, 거의 동시에 로사와 룬칸델의 기사들도 전장에 합류했다.
성한 인물을 찾아보기 어려운 지플의 병력들과 달리 룬칸델은 전력 손실이 거의 없는 모습이었다.
모든 걸 제쳐두고 우선 진을 살리기 위해 뛰어든 켈리악과 달리, 로사는 홀로 가문의 모든 기사들을 보호하며 온 것이다.
‘켈리악이 론 하이란을 부활시킨 것인가. 아니, 그게 전부가 아니다.’
로사는 론이 일으킨 기적을 직접 보지 못했다.
그러나 알 수 있었다. 론이 단지 마신석의 힘을 통해 부활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그의 뒷모습에서 이루 말할 수 없이 순수하고 강인한 기운이 퍼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 기운이 의미하는 바는 명확했다.
‘계속 한계를 초월하고 있군…….’
계속되는 초월.
지금의 론은 아까의 론보다 강하다. 그저 흘러나오는 기운만으로도 온몸이 전율에 휩싸였다.
하나, 로사 역시 흑해의 왕에 대해 알고 있었다. 창성이 아니고는 결코 벨 수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과거, 그녀는 시론이 창성에 닿기 직전 지금의 론처럼 매 순간 벽을 뛰어넘는 모습을 본 적이 있었다.
그러나 시론조차 마지막 계단을 오르기까지는 상당히 긴 세월이 필요했었다.
로사는 론이 이 싸움에서 얼마나 더 많은 초월을 행하든, 끝내 창성에 다다르는 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도 조금이라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면, 자신도 모르는 새에 그것에 기대 판단력이 흐려질 수도 있다는 사실이 염려되었다.
흑기사와 흑검회 1진을 제외한 룬칸델의 모든 기사들은 바멀 연합이 있는 쪽으로 자리를 잡았다.
그들은 전투가 시작되면 신속하게 진의 동료들을 수습해 글리엑으로부터 탈출하라는 명령을 받은 상태였다.
그건 진을 위한 배려가 아니었다.
순전히 진을 배려할 생각이었다면 로사는 결코 그런 명령을 내리지 않았을 것이다.
로사가 진의 동료들을 구하는 건, 안 그래도 버거운 싸움에 변수를 늘리지 않기 위함이었다.
혹시라도 동료들이 사망하면 진이 어떻게 행동할지 알 수가 없는 것이다. 다른 때라면 힘으로라도 통제하겠지만 글리엑을 상대로는 그럴 여유가 없을 터였다.
로사 또한 탈라리스처럼,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하나뿐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었다.
‘시론이 이미 흑해 심부 너머까지 들어섰다면…… 비궁주의 눈두꺼비를 이용하더라도 최소 열흘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건 곧 열흘 이상 글리엑을 저지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이곳은 지금 세계 최후의 저지선과 같다.
글리엑이 여기 모인 기사와 마법사들을 뚫고 바깥으로 나가는 순간, 그날로 세상은 멸망의 위협에 놓이게 될 것이다.
바깥엔 흑해의 왕을 막을 수 있는 세력이 존재하지 않았다.
킨젤로가 남아 있기는 했다.
그러나 유일하게 하얀 돌의 정체를 알고 있었음에도 킨젤로가 이 자리에 없다는 것은, 애초에 그들이 원하던 상황이 바로 이 풍경이라는 의미였다.
‘순수하게 전투만으로는 결코 그렇게 오랜 시간을 버틸 수 없다.’
로사가 탈라리스와 눈을 맞췄다.
‘그러니 핵심은 저토록 강해진 론 하이란도, 마신석을 꺼낸 지플도, 우리 룬칸델도 아닌, 비궁주일 수밖에 없겠군…….’
비궁의 절대 봉인.
그것만이 시론이 도착할 시간을 벌어줄 수 있을 것이다. 로사와 켈리악, 비궁의 봉인 능력을 알고 있는 두 사람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문제는 비궁의 절대 봉인이 과연 열흘 이상의 시간을 벌어줄 수 있는가였다.
글리엑에게 맞서고 있는 이들에게 그의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이름을 말하라.]글리엑이 진을 제외한 다른 누군가에게 온전히 집중하는 모습을 보인 건 처음이었다.
“론 하이란. 네놈이 집어삼킨 아이의 조부이며, 네놈이 말살하고 있는 이 땅의 주인이자 네놈을 죽일 인간이다.”
[방금, 네 아이의 마지막 의지가 사라졌다.]론은 그 말에 동요하지 않았다. 이제 비운은 그의 내면에 어떠한 영향도 줄 수 없었다. 더는 슬퍼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의 마음에 자리 잡은 고통은 바다와 같다. 슬픔의 바다에 무엇이 더해져도 결과는 심해로 가라앉아 사라지는 것이며, 론 자신조차 그 크기와 깊이를 가늠하지 못했다.
“그런가.”
[죽음조차 너의 아픔을 지우지 못하였다. 그로부터 구원받을 길은, 오직 나와 같은 존재가 되는 것뿐이다.]라시드가 잿빛으로 물들었다. 론의 몸에 또 한 번 패왕검의 문양이 새겨지고 있었다.
불과 몇 분 전에 다시 얻은 목숨에 그는 미련이 없었다. 글리엑을 베어 없앤다 할지라도, 이후의 삶이 그에게 무슨 의미를 가질 수 있겠는가.
글리엑의 손 하나가 거대한 몸뚱어리를 삐져나와 론의 앞으로 내려섰다. 붙잡으라는 듯이.
[그러니 영겁의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내게 오라.]론은 대답 대신 라시드를 올려쳐 그 팔을 베어버렸다. 그러나 바닥으로 떨어진 팔은 그대로 흑해화된 땅에 흡수되어 다시 글리엑에게 환원되었다.
[너흰 언제나 한 치 앞을 보지 못하는군.]론을 향하던 글리엑의 관심이 일시에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글리엑은 다시 진에게 시선을 고정했고, 곧장 전투가 다시 재개되었다.
수백 자루의 검과 창은 이전보다 빠르고 정교하게 인간들을 압박했고, 론은 악귀처럼 괴성을 지르며 라시드를 내질렀다.
노도처럼 번지는 잿빛의 검기가 혼돈의 기운과 격돌하고 있었다.
그러나 글리엑은 론이 완벽한 상태로 펼친 패왕검조차 그다지 큰 위협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을 내린 눈치였다.
라시드가 자신의 몸 어느 곳을 베어도 거의 막지 않으며 진에게만 거의 모든 공격을 쏟아붓고 있었다.
다만 로사가 예견했듯.
글리엑은 론보다도 탈라리스를 더욱 견제했다.
현재의 세상에 운명을 거스를 수 있는 힘을 지닌 자가 존재한다는 걸, 그리고 인간들은 그를 이곳으로 불러들일 계획이라는 걸 꿰뚫어 보고 있기 때문이었다.
키알과 시론이 글리엑이 깨어난 순간을 인지했듯, 놈 또한 그들의 존재를 알아보고 있는 것이다.
흑해화가 이루어지며 정신이 깨어날수록 그들의 힘이 더욱 선명하게 느껴졌다.
글리엑은 자신의 형제와 싸우고 있을 반신이 이곳에 오는 것만 막으면, 그 무엇도 문제 될 게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설령 반신이 이곳에 오더라도 위협이 될 가능성은 매우 낮았다.
키알과 전투를 치른 직후의 그가 멀쩡할 수는 없기 때문이었다. 즉, 시론이 이곳에 오든 오지 못하든 글리엑이 탈라리스를 견제하는 건 아주 작은 가능성조차 배제하는 행동일 뿐이었다.
운명을 거스르는 힘이란 언제, 어떤 상황에서도 반드시 위험해질 수 있는 것이니까.
“비궁주. 봉인을 펼치면, 저것을 상대로 얼마나 버틸 수 있겠소?”
로사가 탈라리스의 앞으로 나서며 물었다.
“……사흘을 넘기기도 어렵소, 로사 룬칸델.”
대답을 들은 로사는 이를 악물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