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563)
제 555화
147화. 흑해의 왕, 글리엑(8)
-진 룬칸델을 확보하라, 그가 혼돈에 먹혀서는 안 된다!
글리엑이 깨어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켈리악은 그렇게 목이 터지도록 다급한 목소리를 냈었다.
그리고 진은 그 대목에서 깨달을 수 있었다.
‘마신석을 통한 부활이라는 수단이 있음에도, 글리엑이 깨어난 순간 켈리악은 전에 없이 당황한 기색을 드러냈다.’
그게 의미하는 바는 단 하나였다.
다른 형태의 죽음은 어떨지 몰라도, 자신이 글리엑에 의해 목숨을 잃으면 마신석의 완성엔 치명적인 차질이 생긴다는 것.
‘그러니 켈리악이 가장 경계하는 것은 글리엑에 의해 내가 죽거나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또한 글리엑의 원념으로부터 느껴지는 바가 있기도 했다.
놈은 단지 자신을 ‘죽이려는’ 것에 그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단테를 집어삼켰듯이, 글리엑은 자신 또한 흡수하려 하고 있었다.
“내가 글리엑에게 당하면, 지플은 마신석을 완성할 수 없습니다.”
진이 쐐기를 박았다.
켈리악은 그 말을 부정하지 않았다.
진에게 단서를 제공한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이었고, 그건 명백한 실책이었다.
“내가 보기에, 자네는 내가 제안을 거부하더라도 결코 그 말을 실행하지 않아. 정확히는 못 한다고 해야겠군.”
“그렇습니까?”
“자네는 지나치게 인간적이며, 짊어진 것이 많아. 자네를 살리기 위해 목숨을 건 사람이 몇이고, 자네가 하이란을 구하기 위해 한 행동들은 또 어떤가? 그런데 고작 내 뻔한 계획을 막기 위해 목숨을 버리는 건,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지. 허세가 지나쳐.”
이번엔 켈리악이 진의 대답을 끊으며 뒷말을 이었다. 로사에게 시선을 두며.
“하지만 자네의 어머니는 아니지.”
로사는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었다.
“내가 그 제안을 거부하는 순간, 자네 어머니는 한순간도 지체하지 않고 자네를 글리엑의 아가리로 처넣을 것이다. 안 그런가? 로사 룬칸델.”
로사가 서늘한 미소를 지었다.
정확하고 옳다.
로사는 진의 판단을 그렇게 평가했다. 만일 진이 다른 소리를 했다면, 그녀가 직접 켈리악에게 같은 제안을 했을 터였다.
헛짓을 하려는 순간, 진의 목숨은 없다고 말이다.
그리고 그건 켈리악의 말대로 결코 허세나 도박수가 아닌, 진짜 협박이었다.
그녀 또한 켈리악이 진이 혼돈에 ‘먹혀서는 안 된다’고 말한 것을 통해 그의 약점을 읽었으며, 그가 앞으로 어떻게 나올지도 염두에 둔 상태였다.
그렇기에 아직 본격적으로 힘을 사용하지 않고 있는 중이고 말이다.
“잘 알고 있군, 켈리악 지플. 그러니 마신석의 완성을 계속 희망하고 싶다면 허튼수작을 부리지 않는 게 좋을 것이오.”
진이 켈리악에게 던진 제안은 로사가 뮤와 앤의 의견을 대번에 거절한 또 다른 이유였다.
아직 그녀에겐 진을 포로로 삼아 켈리악의 목줄을 흔들 수 있는 수단이 남아 있던 것이다.
“약점이 있다는 건 피곤한 일이로군.”
“우린 천 년을 그렇게 살았으니 너무 억울해할 필요는 없을 것 같군.”
켈리악이 어깨를 으쓱였다.
“제안을 받아들이지. 임시 동맹이오.”
“12기수, 킨젤로와는 어떤 협상을 진행하자는 것이냐?”
전방에서는 론과 탈라리스, 기사와 마법사들이 글리엑을 공격하고 있었다.
탈라리스는 아직 본격적으로 비궁의 절대 봉인식을 시작하지 못하는 중이었다.
진이 로사와 눈을 맞췄다.
“정황상 놈들은 처음부터 하얀 돌의 정체를 알았으며, 글리엑을 제지할 수단 또한 보유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창성의 힘이든, 다른 무엇이든. 그리고 놈들이 원하는 바는 여기 모인 모두가 서로와, 또 글리엑과 치고받으며 돌이킬 수 없는 타격을 입는 결과 같군요.”
진이 뒤를 가리켰다.
룬칸델의 기사들이 바멀 연합을 구출해서 탈출한 쪽이었다.
“지금이라도 나서서 글리엑을 해결하라고 할 겁니다. 그 개자식들이 이 전투에 참가하지 않으면 우린 즉시 여길 탈출해서 놈들의 본거지로 갑니다.”
킨젤로가 글리엑을 해결하라는 조건에 응하지 않으면, 세계 최후의 저지선을 포기하더라도 킨젤로를 친다.
진이 말하는 바는 그것이었다.
‘와서 함께 막든지, 다 같이 죽든지 고르라는 것인가. 초강수로군.’
킨젤로는 세계의 멸망이 아닌 세력들의 축소를 원한다.
그들이 흑해의 왕을 막을 수 있는 수단으로 창성의 힘을 갖고 있든, 아니면 다른 방편을 보유하고 있든.
당장 지금 글리엑과 싸우고 있는 이들 전체와 전쟁을 벌여 이길 수 있는 정도는 아닐 것이다.
지금껏 진이 확인한 킨젤로의 최강 전력은 단장과 제피린이었다.
그러나 단장은 온전치 못하며 그의 힘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제피린 또한 제대로 된 전력을 펼치지 못하는 상태다.
물론 그들을 제외하더라도 함선 그르닐과 베락트, 수인 전사들, 명인이라는 생체 골렘과 더불어 소타 사막에서 새로이 모습을 드러낸 마족들이 있기는 했다.
그중에는 비앙카 칼리고 같은 1급 초인 수준의 무력을 보여준 이들도 있었다.
그밖에도 아직 밝혀지지 않은 전력이 더 있을 테지만, 당장 룬칸델과 지플의 합공을 막을 수 있는 수준은 결코 아닐 것이다.
그랬다면 세계의 패권은 이미 옛적에 킨젤로의 손에 넘어가고도 남았을 테니까.
로사는 진의 계획이 무척이나 흡족했다.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켈리악에게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을 건 것도, 킨젤로에게 가문과 세계가 멸망하더라도 너희만큼은 반드시 끝장낼 것이니 당장 나서라고 종용하는 것도.
모두 로사의 생각과도 완벽하게 일치하고 있었다.
“대충 정리가 되었군.”
로사의 검이 광휘로 물들었다. 활화산처럼 폭발하기 시작한 그녀의 기운이 전장에 또 다른 소용돌이를 형성하고 있었다.
그우우우……! 켈리악의 흐로티도 음울한 공명음을 일으키며 기운을 발산하기 시작했다.
로사는 홀로 가문의 기사들을 지키며 길을 열었음에도, 켈리악은 오랜 시간 전투를 치렀음에도 전혀 지친 기색이 없었다.
만일 글리엑이 흑해의 왕이 아니라, 순수하게 그와 똑같은 수준의 무위를 가진 마물에 불과했다면.
놈을 살해하는 일에 창성의 격이 필요하지 않았다면.
이들은 결코 세계를 담보로 킨젤로와 협상을 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이제 그들이 할 일은 하나뿐이었다. 탈라리스가 비궁의 절대 봉인을 펼칠 수 있도록 돕고, 킨젤로와 협상할 인원을 정하는 것.
다만 봉인식이 끝나더라도 로사와 켈리악, 론, 탈라리스는 전장을 비울 수 없다.
탈라리스는 봉인을 유지해야 하기 때문이고, 나머지는 만일의 사태를 대비하기 위해 반드시 자리를 지켜야 했다.
봉인이 완료된다 할지라도 글리엑이 아예 활동을 멈춘다는 보장은 없으며, 탈라리스가 말한 사흘이라는 시간조차 확실치는 않기 때문이었다.
진이 갈 수도 없었다.
그는 늘 킨젤로를 상대로 유리한 결과를 가져오곤 했으나, 지금 진을 킨젤로의 본진에 보내는 건 약점을 내다 바치는 꼴이나 다름이 없었다.
룬칸델과 지플이 일시적으로 연합할 수 있는 유일한 이유는 진의 목숨이다.
킨젤로가 진을 사로잡기라도 하면, 지플은 이제 룬칸델이 아니라 그들과 협상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룬칸델은 당연히 끝장이었다.
“스탐 경!”
스탐이 전열을 빠져나와 로사의 앞에 섰다.
“하명하십시오.”
로사는 그간 진, 켈리악과 도출해낸 결과를 그에게 간결하게 설명해주었다.
“비궁주에게 해당 사항을 알리고, 킨젤로와의 협상은 그대가 직접 가서 진행하시오.”
“알겠습니다.”
“옥타비아!”
이번엔 옥타비아가 켈리악에게로 다가왔다.
“룬칸델의 흑기사대장과 함께 킨젤로와 협상하도록 하게.”
“알겠습니다, 가주.”
그렇게 스탐과 옥타비아, 두 사람이 킨젤로의 본회에 가기로 결정되었다.
이어 스탐이 탈라리스에게 계획을 전달했다.
탈라리스는 불쾌한 기색을 드러냈는데, 킨젤로와의 협상 계획은 ‘이상 현상으로부터의 세계 수호’라는 비궁의 사명을 벗어나는 일이 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만일 킨젤로가 협상을 거부하고, 정말 룬칸델과 지플의 무력이 글리엑이 아니라 그들의 본진으로 향한다면 세계 멸망은 예정된 수순이었다.
그렇게 되면 탈라리스는 홀로, 혹은 론과 둘이서 글리엑과 싸워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탈라리스는 거대 세력들의 계획을 승낙할 수밖에 없었다. 시론이 올 수 없으니, 그게 아니면 달리 방도가 없기 때문이었다.
‘……엘로나 지플의 봉인을 완전히 풀어버리는 것도 생각할 수밖에 없게 되었군.’
킨젤로가 협상을 거부하고, 일이 돌이킬 수 없게 돌아갈 경우.
탈라리스는 결국 엘로나의 봉인을 해제할 것이다. 기록 속 그녀의 힘은 분명 창성에 닿아 있으니, 글리엑에 충분히 대항할 수 있을 테니까.
대신 그녀가 다시 세상에 나왔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지는 미지수였다.
-비궁은 천 년 동안 지플로부터 이 여자를 숨기고 있다.
-그들에게 발각되면, 이 여자가 다시 활동할 수 있다는 말씀이시군요.
-상상하고 싶지 않은 미래지. 안 그래도 독주 중인 지플에 이런 괴물이 추가되면, 균형 따윈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과거 탈라리스가 처음으로 진에게 비궁의 사명을 알려주며 나눈 대화.
그 말처럼, 엘로나는 글리엑을 저지하더라도 지플의 편에 설 것이며…… 그게 과연 글리엑이 세상을 잠식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결과가 될지는 알 수 없었다.
‘이러나저러나, 킨젤로가 제안을 거부하는 순간 답이 없어지는 건 마찬가지다. 비궁주 노릇도 해먹을 게 못 된단 말이지.’
휘이이이-!
전장에 한풍이 번지기 시작했다.
“절대 봉인을 시작하겠소!”
탈라리스가 후방으로 빠져 자리를 잡으며 소리쳤다. 만빙이 그녀의 앞으로 떠오르고 있었다.
동시에 로사와 켈리악이 글리엑을 향해 몸을 던졌고, 스탐과 옥타비아도 탈라리스의 양옆에 서서 보호막을 펼쳤다.
진은 그 가운데로 나서며 싸우는 거인들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폭풍처럼 몰아치는 론의 잿빛 검기와 켈리악의 마법, 로사의 결전기들에도 글리엑은 조금씩 주춤하는 모습을 보였으나, 미소를 짓고 있었다.
마치 그들의 계획을 모두 알고 있다는 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