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570)
제 555화
148화. 검황(3)
지상에 존재하는 가장 어둡고 깊은 심연 속, 인간의 가슴을 밝히는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투명하게 흐르는 론의 눈물은 빛을 머금고 있었다.
“저 때문에…… 제가 속았기 때문에.”
단테는 멍한 눈동자로 같은 말을 반복했다.
그는 자신의 목숨보다도 더 소중한 두 사람, 조부와 진이 자신을 구하러 이곳에 당도했다는 사실에 기쁨이 아니라 죄책감에 휩싸이는 중이었다.
도저히 자책을 멈출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글리엑의 무의식에 갇힌 동안 단테는 바깥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졌는지를 모두 느끼고 있었다.
심연에 묶인 채인지라 정확히 모든 상황을 세세하게 살펴볼 수는 없었으나 적어도 글리엑이 론을 죽이고 하이란을 무너뜨리고 이 땅을 더럽히고 친구를 집어삼키려 하였으며, 그 끔찍한 일들이 모조리 실현되고 있었다는 사실은 명확히 인지할 수 있던 것이다.
단테는 그 모든 것이 바로 자신이 글리엑을 이겨내지 못한 대가라고 여겼다.
자신만 꿋꿋이 버텨냈다면, 자신만 지지 않았더라면, 마지막에 속지 않았더라면, 정말이지 그 한순간만 멍청하고 나약하게 굴지 않았다면……!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전부 다 자신의 책임이건만, 모든 걸 다시 되돌릴 힘은 고사하고 혼자서는 똑바로 설 수도 없다는 사실이 분해서 미칠 것 같았다.
“그런 소리 말아라, 단테야. 그 누구도 너처럼 잘 해낼 수는 없었다. 나와 네 친구가 여기까지 올 수 있던 건, 모두 네 덕이다…….”
론이 단테의 눈물을 쓸어주며 말했다.
“그러니 이제 이 할아비와 친구에게 좀 기대도 괜찮다. 네가 아니면, 아무도 버티지 못했을 것이니.”
단테는 의식을 잃고 그 말에 대답하지 못했다.
숨은 힘겹게 쌕쌕거렸고 맥은 미약했으며 몸 곳곳엔 혼돈이 남긴 검은 흔적이 가득했다.
그러나 생명에 지장은 없다. 진처럼 혼돈이 잠식했던 흔적이 조금 남을 테지만, 치명적인 내상이나 상처는 없었다.
바깥에서 치료를 받고 휴식을 취하면 얼마든지 원기를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 가지 해야 할 일이 남아 있었다.
혼돈의 다섯 번째 왕, 글리엑을 끝장내는 것.
론이 진의 등으로 단테를 올렸다. 그는 느끼고 있었다. 이제 곧, 이 전쟁의 마지막 싸움이 시작되리라는 사실을.
론과 진이 글리엑의 심연에 다다른 것은 놈의 각성을 가속화시키는 일이기도 했다.
본래 무의식의 통제권은 흑해화가 이루어지며 자연스레 거머쥐어야 했지만, 두 사람이 심연을 유린한 탓에 놈은 예상보다 빠르게 각성하고 있었다.
“곧 공격이 시작될 것이다. 너는 단테를 데리고 어떻게든 빠져나가거라.”
심연의 끝이 불안정하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여기까지 건너오며 겪은 혼돈의 풍파보다도 더욱 거대하고 사나운 기운이 그들이 선 공간을 흔들고 있었다.
비록 론은 결국 창성에 올랐고, 단테를 구해내기는 했으나.
전쟁을 끝내려면 글리엑을 처리해야만 한다. 진은 그 많은 역경과 죽음을 딛고도 아직도 싸워야 하는 론과 하이란의 운명이 안쓰러웠다.
키기기기긱-!
심연 곳곳에 역병처럼 혼돈이 들끓고 있었다. 그것들은 칼과 창으로 변해 계속 아래를 찔러댔지만, 론의 보호막에 가로막혀 들어서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론이 검을 들어 자세를 취하며 심연의 중앙을 응시했다.
결계를 잃은 하얀 돌이 진동하고 있었다. 론은 잠시간 하얀 돌로부터 시선을 떼지 못했다.
“지금부터는 단테의 조부로서가 아니라, 하이란의 검황으로서 네놈을 상대해주마…….”
이내 론이 그렇게 말하며 천천히 라시드를 휘둘렀다.
하얀 돌을 향해 느릿느릿 떨어지는 검은 속도만 보면 무엇도 벨 수 없을 것 같으나. 과거 진이 기수가 되기 전에 받아낸 시론의 검처럼, 창성의 업적과 그 무게를 품고 있었다.
진은 그 검을 마주하고 있는 하얀 돌, 글리엑의 표정이 보이는 듯했다. 분노, 그리고 공포로 일그러진 표정이.
반면 당연하게도, 론에게선 더 이상 광기를 찾아볼 수 없었다.
그는 창성에 오른 자들 특유의 절대적인 시선, 이를테면 자신을 꺾을 수 있는 존재도, 자신이 꺾지 못할 존재도 없다는 눈빛을 하고 있었다.
파각!
론의 검이 닿자 하얀 돌에 균열이 일었다. 싸구려 보석이 부서지듯이, 산산조각 흩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칼날은 계속 천천히 하얀 돌을 베어 나갔다.
그아아아악……!
그러자 멀리서 다시금 글리엑의 먼 비명이 들려왔다. 놈은 천천히 하얀 돌을 파고드는 칼날이 견딜 수 없이 괴롭다는 듯 괴성을 질러대고 있었다.
론이 라시드에 집중할수록 보호막을 압박하는 혼돈의 창칼들이 거세졌다. 따라서 보호막도 점점 좁아졌으나, 뚫고 들어오는 창칼은 단 하나도 없었다.
글리엑은 모든 힘을 심연으로 집중하는 모양새였다.
놈에게 아직도 이만한 힘이 남았다는 사실에 진은 속이 메스꺼울 지경이었다.
글리엑 또한 론에게 같은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론 경!”
진이 소리쳤다. 돌연 론이 한 차례 각혈하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창성에 오른 직후, 진에게 나누어준 1할의 빛과 심연까지 돌파하며 소모된 기운이 그의 육체에 부담을 주고 있는 것이다.
론은 괜찮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육체의 한계는 창성기사에게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는다. 혼돈이 흑해의 왕을 이루는 한 형태에 불과하듯, 창성기사의 육체 또한 그저 그의 깨달음을 형성하는 하나의 수단에 불과했다.
피를 토했어도 론의 검세는 전혀 흐트러지지 않았다. 흘러내린 피 역시 곧 그의 기운에 증발해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때쯤 보호막과 혼돈의 창칼 사이엔 겨우 한 걸음 정도의 틈이 남아 있었다. 하얀 돌이 먼저 반으로 갈라지거나, 보호막이 부서지거나. 진은 후자를 전혀 걱정하지 않았다.
그 마음처럼, 결국 라시드의 검신이 먼저 하얀 돌을 반으로 갈랐다. 돌이 떠 있던 자리엔 론이 천천히 그리며 지나온 빛나는 궤적만이 남아 있었다.
천 년이 넘는 시간 동안.
하이란이 오랜 세월 외로이, 그리고 또 묵묵히 지켜온…….
하얀 돌이 마침내 베이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론과 진은, 혼돈의 어둠이 아니라 세상의 빛이 자신들의 눈을 간지럽히는 감각을 느낄 수 있었다.
드디어, 심연을 딛고 다시 바깥으로 나선 것이다. 다만 눈을 찌르는 인세의 빛은 그들이 기대했던 것만큼 밝고 찬란하지 않았다.
빛을 내리쬐어야 할 하늘이 여전히 혼돈의 장막에 가려져 있기 때문이었다. 빛은 황무지에 듬성듬성 한 포기씩 솟아 있는 풀처럼 희미했다.
처음 글리엑이 깨어나며 형성된 혼돈의 장벽도 처음보다 더 견고해진 상태였으며, 진은 곳곳에 열기와 매캐한 기운이 가득한 사실을 의식했다.
‘역시, 바깥에서도 계속 전투가 이어지고 있던 건가.’
진과 론이 글리엑의 아공간으로 들어선 이후 바깥은 꼬박 하루가 지났다.
그리고 바깥에서 싸우던 이들은 두 사람이 어떻게 된 것인지 알지 못하던 상태였다. 잡혀간 것인지, 그대로 소멸한 것인지 그들로서는 도저히 확인할 길이 없던 것이다.
“허억, 12기수, 헉, 12기수 생존 확인되었습니다!”
흑기사 한 사람이 가쁜 숨을 삼키며 소리쳤다.
룬칸델은 진을 포기하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기사들은 대부분 글리엑에게 흡수된 단테와 마찬가지로 진 역시 생존해 있을 가능성이 높지 않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살아 있다면 글리엑의 내부에 남아 있을 터인데, 바깥 전장엔 창성의 힘을 가진 인물이 없으니 뚫고 들어갈 수도 없었다. 베고, 또 베어도 놈을 보호하고 있는 혼돈의 방벽을 걷어내는 것조차 불가했었다.
그런데 난데없이 그 장벽이 저 혼자 허물어지며 진의 모습이 나타난 것이다. 로사조차 두 눈을 휘둥그렇게 뜨며 속으로 가슴을 쓸어내렸다.
[꼬마……!]무라칸이 진에게 달려들며 소리쳤다.
그러나 바닥에서 솟구치는 혼돈의 송곳들 때문에 쉽사리 진에게 나아가지 못했고, 무라칸으로서는 미쳐버릴 것 같았다.
무라칸은 이제 이후 상황이 어떻게 되든, 진을 데리고 탈출해야 한다는 일념밖에 남지 않은 상태였다.
켈리악도 무라칸과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차후 킨젤로와 협상을 해서 글리엑을 해결하더라도 일단 진을 확보해서 전장을 떠나야 할 것 같았다. 세계가 멸망할 위험에 놓이게 되더라도 말이다.
“12기수……!”
로사도 검기를 펼치며 몸을 던졌고, 켈리악도 그 뒤를 따랐다. 기사와 마법사의 시체들이 그들의 발에 밟히고 있었다.
하나 그들만큼이나 진을 걱정했던 탈라리스는 쉽사리 진에게 접근하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그녀는 온몸이 피로 얼룩진 채 겨우 몸을 가누고 있었다.
엘로나 지플, 지금까지 그녀의 봉인을 유예하고 있던 대가였다. 탈라리스는 지금껏 본신의 힘 대부분을 사용하지 못한 채 전투를 이어왔다.
탈라리스가 엘로나 지플의 봉인 해제를 번복한 이유는 다름이 아니었다.
론 하이란.
그가 진과 함께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론이라면, 그 멍청한 노인네가 정신을 차리기만 한다면…… 다시 한 번 기적이 벌어질지도 모른다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탈라리스는 엘로나 지플의 봉인을 푸는 건 쌀알 같은 희망만 있어도 유보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막내!”
진에게 향하던 로사가 날카로운 목소리로 소리쳤다. 백여 걸음 정도의 거리가 남았건만, 별안간 해일 같은 혼돈이 진을 덮치는 모습을 본 것이다.
결코 진이 감당할 수 있는 기운이 아니다. 막아내지 못하면 전신이 갈기갈기 찢어져 흔적도 없이 사라질 위력이었다.
진을 구하려던 이들 모두가 끔찍하고 황망한 감정에 휩싸인 와중.
스아아악……!
그들은 한 줄기의 빛나는 검기가 진을 엄습한 혼돈을 반으로 가르는 모습을 목도했다.
이어 혼돈의 해일이 걷히자 사람들은 그가 단테를 업고 있는 광경과, 그 옆에 론 하이란이 우뚝 서 있는 모습까지 확인할 수 있었다.
그 대목에서는 모두가 일순 멈칫하며 두 눈을 의심했다.
특히 로사와 켈리악, 탈라리스 같은 거인들은 론을 보며 경악했다. 진에게 향하던 갈급한 속내마저 순간 잊어버릴 정도로.
‘론 하이란이, 창성에 올랐다!’
‘정녕 창성에…… 게다가, 단테 하이란까지……!’
거인들의 맥박이 터질 듯이 빨라졌다.
인간의 역사를 다 합하여도, 창성의 힘을 갖게 된 인물은 채 열 명이 되지 않는다. 옛 지플과 현 지플이 역사를 지운 인물을 모두 포함하여도.
특히 이 시대의 거인들은 시론이라는 명확한 기준점이 있기에 또 다른 창성이 등장할 수 없으리라 생각했었다.
그와 자신들의 차이는 남은 생 전부를 다 바쳐도 도저히 어쩔 수 없을 지경이라고 확신했으니까. 시론조차 론이 창성에 닿는 것보다 괴물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예상했던 것이다.
혼돈은 가로막힌 이후에도 몇 번이나 진을 덮쳤으나, 모두 론의 검에 가로막혀 수포로 돌아가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살점처럼 후드득, 떨어지는 혼돈의 파편들을 바라보며 론은 이렇게 말했다.
“글리엑…… 더 이상, 이곳에 네놈이 가져갈 수 있는 것은 없다. 너 자신의 목숨조차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