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607)
제 666화
156화. 혼돈 정화(12)
[꺼져!]혼돈이 소리쳤다.
이전 같은 위압감은 없었다. 놈은 이제 겨우 늑대 정도의 몸집을 갖고 있었는데, 그조차 유지하기가 쉽지 않은지 초가 지날수록 작아지는 모습이었다.
진이 말을 고르는 사이 송곳이 추가로 더 날아들었다. 잠깐 틈이 있던 덕에 다시 쳐낼 수 있게 되었으나 지친 상태로 계속 맞서는 건 무리였다.
‘생각해보면, 지난 싸움에서 혼돈에겐 언제나 날 죽일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단지 운이 좋았다고 여기기엔 이상한 점이 많았다.
그러나 진으로서는 혼돈이 자신을 ‘죽이지 않는다’고 확신할 수 없었다.
지금에서야 결정적인 순간에 송곳을 멈춤으로써 그 사실이 명백히 드러났지만, 죽기 직전까지 몰린 순간이 한두 번이 아니었으니까.
‘일단 나가는 게 좋겠군.’
혼돈이 언제 마음을 바꿀지 모르는 일.
진은 마지막 남은 영기를 이용해 라프라로사로 향하는 균열을 열었다. 밖으로 나서기 전 돌아본 혼돈은 불안정한 상태로 포효를 내지르고 있었다.
“오, 이번엔 엄청 빠르게 나왔는데?”
“진 형제, 설마 놈을 드디어 이긴 건가!?”
“아직 이겼다고 할 수는 없지만. 영검 궁극기를 펼쳐 놈을 약화시키고, 힘을 되찾기는 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진 형제에게서 다시 강맹한 기운의 흔적이 느껴지는군…… 축하하네!”
“게다가 놈은 약화되었다고 하니, 다음 전투에서는 끝이다! 조만간 연회를 준비해야겠구만.”
형제들이 들떠서 소리치는 사이 진은 왜인지 마음이 찝찝했다.
‘그토록 바라던 승리가 눈앞에 왔건만, 기분이 영 안 좋군.’
반이 다가오자 진은 안에서 겪은 상황을 설명해주었다.
“……마지막에 송곳이 멈춘 걸 보니, 놈은 절 죽일 수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이전부터 그럴 수도 있으리라 생각하긴 했지만…… 투신 형제. 형제는 혹시 알고 계셨습니까?”
“죽이지 못한다는 표현보다는, 않는다에 더 가까울 것이다.”
반의 말에 명왕족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죽이지 않는 것이라고요?”
“그래.”
“자세히 말씀해주십시오.”
“진 형제가 처음으로 놈의 영역에 다녀왔을 때, 내게도 놈의 내면이 전해졌었다.”
반의 시선이 진의 광심장에 닿았다. 지금까지도 두 사람은 혼돈의 문과 1리 이내에 함께 있으면 무조건 투신합일이 펼쳐지고 있었다.
투신합일은 일종의 공명이며, 그를 발현시키는 매개는 혼돈이다.
진에게 있던 투신혈이 혼돈과 섞여 변화를 일으켰고, 그 결과 진과 혼돈은 일정 영역에서 각각 서로의 생각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공명은 진과 혼돈에게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었다. 반 역시 진처럼, 혼돈과 연결고리가 생긴 것이다. 혼돈이 가진 특성 때문에.
“나와 혼돈의 공명은, 형제가 균열을 만들어 혼돈의 영역을 빠져나올 때만 발현이 되더군. 형제가 혼돈의 생각을 이곳에서만 읽을 수 있던 것처럼.”
따라서 반은 진과 혼돈의 싸움이 끝날 때마다 놈의 감정을 읽어왔다. 그 과정에서 반이 알아낸 정보들은 다음과 같았다.
첫째로, 혼돈은 한 번 ‘문’의 형태가 된 이상 다시는 자력으로 그 영역을 빠져나올 수 없다.
둘째로, 놈은 진이 찾아오는 걸 기다리게 되었다.
반이 이러한 내용을 설명해주자, 진은 어째서 반이 결투를 그토록 격하게 종용했는지 알 것 같았다.
그녀는 혼돈이 진을 죽이지 않으리라 확신하고 있던 것이다.
그 이유는 다름이 아니었다.
“외롭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이 자신의 영역 안으로 들어갔지만, 놈은 그곳에서 극도의 고독감을 느끼고 있어. 게다가 그곳을 찾아올 수 있는 건 진 형제뿐이니, 형제를 죽이면 영원히 혼자가 되는 것이지.”
-[칫, 잘도 도망가는군……! 다음엔 꼭 저세상으로 보내주마!]
-[이번엔 좀 오래 걸렸군?]
-[뭐, 지루한 날 위해 장난감이라도 가져온 거냐?]
문득, 진은 혼돈이 했던 몇 가지 말들을 떠올렸다.
대부분은 야유와 조롱이었으나 때때로 혼돈은 은근히 고독을 드러내는 표현을 하고는 했었다.
‘그런 뜻이었나.’
진은 이번 싸움이 끝나고 마음이 찝찝해진 이유를 알 것 같았다.
혼돈에게 연민이 생긴 것이다.
물론 이상한 감정이었다. 불과 조금 전까지만 해도, 진이 혼돈에게 가진 감정이라고는 불구대천의 원수를 향한 증오에 가까웠으니 말이다.
하지만 혼돈이 그토록 큰 타격을 입고도, 다음엔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고도 마지막에 송곳을 멈춘 일과…… 사실은, 그 어두운 공간에서 자신을 죽이겠다고 찾아오는 사람만을 기다렸다는 것을 생각하니.
연민이 생기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내 생각엔, 진 형제도 놈이 자신을 죽이지 않는 걸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을 것 같은데. 놈을 향한 분노 때문에 그에 대해 자세히 생각하지 못했을 뿐.”
반의 말대로였다.
“……분노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놈은, 혼돈입니다. 그것도 제 기운을 모두 훔친. 따라서 제게 놈은 그 심리가 어떻든 반드시 토벌해야 하는 대상이었죠.”
연민을 비롯한 여타 감정들 때문에 조금이라도 마음이 흔들린 채로 싸워도 좋을 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잘 벼려진 명검 같은 상태로 싸워도 이길 수 없을 만큼 강했으니까.
반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 말이 맞아. 그래서 나는 형제가 이길 수 있을 때까지 놈과 싸우는 걸 말리지 않았다. 겸사겸사 형제의 훈련에도 엄청난 도움이 될 것 같았고, 실제로 그렇게 되었지.”
인간을 성장시키는 가장 좋은 원동력 중 하나는 증오다.
지난 1년 3개월 동안, 진은 그 어느 때보다도 깊은 분노를 품은 채 수련과 싸움에 매진해왔다. 그 결과가 영검 궁극기 제1식, 첫 번째 밤이었다.
게다가 오늘로써 옛 힘도 모두 되찾게 되었으며, 그간 쌓은 오러와 마력 또한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순수하게 힘의 크기만을 따지면, 진은 이미 오러와 마력 모두 10성에 닿게 된 것이다. 영기는 궁극기를 완성하며 9성 후반을 바라보게 되었고.
우우우웅……!
돌연 진과 반의 광심장이 한층 더 강렬한 광휘를 내뿜었다. 언제나처럼 진과 반, 두 사람 모두 원해서 벌어진 현상이 아니었다.
“큭……!”
진의 광심장 속으로 난데없이 거대한 힘이 밀려들고 있었다. 방금 전에 본래의 기운을 되찾지 못했다면, 몇 초도 버티지 못하고 졸도했을 것이다.
지금은 버틸 수 있었다. 비록 지친 상태라고는 하나, 육신에 다시 들어찬 기운들은 마치 가뭄에 비를 맞이한 나무들처럼 반의 힘을 순식간에 흡수하고 있었다.
문제는 반이었다.
빠져나가는 기운이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한 탓에, 반은 순간적으로 휘청이는 모습을 보인 것이다.
“투신 형제!”
“투신 형제가……!”
명왕족들이 당황하며 반에게로 다가갔다. 그녀는 괜찮다는 듯 손을 들어 보였으나, 얼굴에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호들갑 떨 것 없다, 형제들. 훈련장 밖으로 이동하도록 하지.”
훈련장으로부터 1리를 벗어나자마자 투신합일이 해제되었다.
“생각해보니, 이제 진 형제가 힘을 모두 되찾았으니 문을 부숴도 되지 않나?”
“그렇게 하면 투신합일 현상은 사라지겠지만…… 애초에 진 형제의 목적은 그게 아니었으니, 혼돈을 토벌하는 건 이제 진 형제가 나설 필요도 없지.”
나타의 말에 보라스가 답했다.
“진 형제.”
“예, 투신 형제.”
“어떻게 할 것인가?”
“혼돈을 죽일 것이냐고 물어보시는 겁니까?”
“그렇다.”
명왕족들의 시선이 진에게 집중되었다.
반은 달리 표정이 없었고, 나머지 명왕족들은 의견이 반으로 갈리는 분위기였다.
당장 최초의 혼돈을 없애자는 사람과 불쌍하니까 좀 지켜보자는 사람으로 말이다.
“흠흠. 진 형제. 이건 형제가 선택할 문제이지만, 나는 놈을 살려주는 게 어떨까 싶어.”
“보라스 형제! 그게 무슨 소리야? 저놈은 최초의 혼돈이다. 이제 진 형제가 힘을 되찾았으니 얼른 제거해야 해. 또 무슨 숨겨둔 힘이 있을지도 모르고, 내버려 두면 추후 어떤 문제를 일으킬지도 모른다고.”
“맞아, 딱한 부분이 있는 건 사실이지만. 최초의 혼돈이 얼마나 위험한지는 형제가 제일 잘 알잖아?”
“난 불쌍하다는 것도 인정할 수 없어. 애초에 투신 형제가 놈을 진 형제로부터 빼내지 않았다면, 놈은 진 형제를 죽였을 것이다!”
“알아, 잘 알지. 하지만 말이야, 혼돈은 연구 대상으로서 가치가 높다네. 진 형제가 바깥에서 상대한 적들도 혼돈의 힘을 사용하고, 또 저 혼돈이 있어야 투신합일에 대해서도 연구를 할 수 있어.”
“형제들.”
진이 말하자 명왕족들이 설전을 멈췄다.
“우선, 제 문제는 아직 다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힘을 되찾기는 했지만…….”
옷소매를 걷어 보이는 진.
“여기, 아직 검은 반점들이 남아 있습니다. 놈의 힘이 약해지니 연해지긴 했군요.”
“그렇다면 놈을 소멸시키면 완전히 사라질 테지. 말만 하게, 우리가 혼돈의 영역으로 직접 들어갈 수는 없지만 문을 없애는 것쯤은 식은 죽 먹기도 되지 않으니.”
“놈은, 이유가 무엇이든 내게 여러 번 기회를 줬습니다.”
명왕족들의 눈동자가 커졌다.
“자신이 외로워서든, 그냥 절 장난감처럼 갖고 노는 게 유일한 낙이었기 때문이든. 아무튼 절 죽일 수 있는데 여러 번 살려주었죠. 그러니 저도 한 번은 놈에게 기회를 줘볼까 합니다.”
“아니, 진 형제! 언제부터 그렇게 자비로운 성격이 된 거야?”
“꼭 그런 이유 때문만은 아닙니다. 보라스 형제의 말대로, 놈은 연구 가치가 있어요. 투신합일을 제외하더라도, 놈으로부터 앞으로 제가 혼돈을 상대할 때 도움이 될 만한 요소를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방금까지 맹렬히 반대하던 형제들은, 진이 결론을 내리자마자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놈이 조금이라도 비협조적으로 나온다면 즉시 제거하도록 하겠습니다.”
“진 형제의 선택이 그렇다면, 우린 따르는 수밖에.”
“뭐, 일리가 없는 이야기도 아니고 말이야.”
“혹시 모르니 이틀만 회복에 전념하고, 최고의 몸 상태로 다시 문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어떤 형식으로든 그때 결판이 날 테니 다들 조금만 기다려주십시오.”
이후 이틀 동안 진은 오랜만에 제대로 된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그리고 반은 내내 지옥 훈련에 매진하던 다른 형제들에게도 휴식의 기회를 주었는데, 그동안 홀로 텅 빈 훈련장을 찾는 일이 잦았다.
혼돈의 이야기를 들으려는 듯, 놈의 영역으로 통하는 문 앞에 가만히 앉아 있는 모습을 보인 것이다.
“혼돈의 내면이 들리십니까? 투신 형제.”
반은 고개를 저으며 이렇게 답했다.
“아니, 형제가 만든 균열이 없으니 들리지 않아.”
그녀는 무척 씁쓸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녀도 진이 혼돈을 죽일 것이라 예상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