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606)
제 666화
156화. 혼돈 정화(11)
* * *
[이번엔 좀 오래 걸렸군?]혼돈이 고개를 들며 말했다.
오늘은 1801년 시월 첫날, 진은 마지막 대결로부터 3개월 만에 혼돈의 문을 넘어왔다. 줄곧 한 달 간격으로만 전투를 치렀으니 처음 있는 일이었다.
“네놈에게 줄 선물을 고르느라.”
나지막한 목소리로 대답하는 진.
그 차분한 대답엔 혼돈을 향한 짙은 적개심이 배어 있었다. 그 깊은 적의를 알아볼 수 있는 눈을 가진 이들이 본다면, 지금의 진은 거의 악귀처럼 보일 것이다.
[선물?]지난 1년 3개월 동안, 진에겐 많은 변화가 있었다. 길고 어려웠던 지난날들의 싸움을 통해 약 5할가량의 기운을 되찾았고, 수련을 통해 새로운 힘도 축적했다.
그럼에도 지금까지는 혼돈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
마지막 싸움에서 얻은 최고 기록, 18분 27초의 전투 또한 사실상 제대로 된 싸움이라 할 수 없었다. 대부분의 시간 동안 회피만 하다가 도주를 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진은, 오늘은 다르리라 생각했다.
[뭐, 지루한 날 위해 장난감이라도 가져온 거냐?]혼돈이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영검 궁극기…… 저놈이 싸울 때마다 종종 생각하곤 했던, 그 기술을 완성해서 온 건가?’
이 공간에서, 혼돈은 진의 생각을 읽을 수 있다.
그렇기에 혼돈은 전투 때마다 영검 궁극기를 비롯해 진이 새로 익히고 있는 모든 무공에 대한 정보를 얻어왔으며, 쉽게 파훼해왔다.
‘정확히는 파훼고 뭐고 할 필요도 없었지. 좀 괜찮을 것 같은 기술도 저놈이 가진 힘이 부족해 온전히 펼쳐진 적이 없으니.’
지금껏 혼돈을 거슬리게 만든 건 오로지 진이 가진 순수한 적의 하나뿐이었다. 적의를 읽는 것만으로도 왠지 찝찝해지는 느낌을 받았던 것이다.
혼돈이 몸을 일으켜 진을 내려다보았다. 언제나처럼 놈의 눈에 진은 그저 앞발로 꾹 눌러서 죽일 수 있을 만큼 약하게 보였다.
그러나 잠시 후, 혼돈은 진이 품고 있는 적의가 갑자기 잦아드는 것을 느꼈다.
[오, 뭐야. 이제 나한테 안 된다는 걸 깨달은…… 엥?]그뿐만이 아니었다.
적의가 사라지는 것과 더불어, 혼돈은 그때부터 진의 내면이 읽히지 않게 되었다는 것도 깨닫고 있었다.
이 또한 처음 있는 일이다.
[무슨 짓을 한 거야?]진은 대답하지 않았다.
어느새 그의 오른손엔 영기로 검게 물든 브라다만테가 있었는데, 혼돈은 그 모습에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진이 검을 뽑은 순간을 전혀 인지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어떤 불길한 직감이 서늘한 바람처럼 등골을 서늘하게 만들었고, 비늘이 바짝 곤두섰다.
[이게!]샤악-!
재빠르게 앞발을 휘둘렀으나 묵직하게 걸리는 감각이 전해지지 않았다. 재차 앞발을 휘둘러도, 사방을 급하게 꼬리로 내리쳐도 마찬가지였다.
‘어디로 간 거야!?’
이리저리 고개를 돌려도 진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마치 처음부터 이 공간에 들어오지도 않은 것처럼, 어디서도 진을 찾을 수가 없었다.
‘문을 열고 도망친 흔적은 없다.’
그러니 공간 전체에 기운을 방출하면, 결국 진은 당할 수밖에 없다.
다만 혼돈은 그렇게 했을 때 발생할 수 있는 한 가지 문제를 걱정했는데, 지금은 사실 그렇게 여유를 부려도 될 때가 아니었다.
난데없이 시야가 차단된 것이다.
‘눈이……!’
일순 혼돈은 자신의 눈이 멀었다고 착각할 수밖에 없었다.
이 아공간은 본래도 혼돈으로 이루어져 있으나, 혼돈과 진의 육체가 가진 색과 윤곽은 그 공허한 어둠에 가려지지 않는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었다. 앞발과 꼬리를 얼굴 앞에 갖다대 보아도, 고개를 돌려 양 날개를 쳐다봐도 그저 캄캄한 어둠뿐이었다.
보이지 않는 것.
혼돈은 그때가 되어서야 알 수 있었다.
진의 적의는 사라진 것이 아니며, 단지 지금 난데없이 시야가 사라진 것처럼 차단되었을 뿐이라는 사실을.
무엇이 그것들을 차단하고 있는지는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영기.
순식간에, 아공간 전체를 이루고 있는 혼돈의 기운이 영기로 뒤덮이고 있었다.
“이번엔 네놈에게도 통하는 모양이군…….”
다시 진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려오자, 혼돈이 반사적으로 몸을 비틀었다.
어느 방향에서 시작된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때쯤 혼돈은 걱정을 접어둔 채 사방으로 기운을 폭발시키고 있었는데, 그조차 진을 타격하는 감각이 전해지지 않고 있었다.
생명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 어둠은 단 한 번도 ‘공포’라는 상징을 벗은 적이 없다. 따라서 혼돈은 처음으로, 공포에 휩싸일 수밖에 없었다.
불과 몇 초 전까지 그토록 가소롭게만 보였던 상대는, 이제 미지의 공포가 되어 혼돈을 압박하고 있었다.
[야, 잠깐, 잠깐만. 어떻게 이런 게 가능한 건데? 여긴 내 영역인데……!]“드디어 네놈이 처음처럼 당황해서 얕은 속내를 훤히 드러내는 꼴을 보는구나.”
[이 자식이!]“아, 그리고 이 상태에서는 내 생각을 읽을 수 없나 보군? 네놈이 주둥이만 가만히 닫고 있었어도, 그건 몰랐을 텐데.”
혼돈의 시야가 차단된 것은 ‘징조’였다. 영검 궁극기가 펼쳐질 때의.
그 징조는 진이 영검 궁극기를 쓰기로 마음먹은 순간부터 자연스레 아공간을 물들였고, 그때부터 혼돈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모든 감각이 둔해졌으며, 진이 검을 뽑은 시점은 바로 그때였다.
혼돈이 진의 발검을 눈치채지 못한 건 방심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덕분에 좀 더 자신감을 가질 수 있게 됐어.”
지난 1년 3개월 동안, 진을 수도 없이 절망으로 빠뜨린 영검의 오의가 시작되고 있었다.
영검 궁극기 제1식
첫 번째 밤
혼돈을 잠식한 어둠이 한층 더 깊어졌다. 눈을 떠도, 감아도 오로지 끝없는 어둠만이 혼돈의 뇌리를 어지럽혔다.
머릿속이 이상해지는 것 같았다.
그저 느낌이 아니었다. 혼돈은, 자신이 알고 있던 감각이 촛불처럼 하나씩 꺼지고 있는 걸 인지하고 있었다.
시야 다음은 감각이다.
몸을 움직이는 감각이, 공기가 육체에 닿는 감각이, 귀로 소리가 전해지는 감각이, 그렇게 모든 감각이 사라지고 있었다.
마치 사물이 된 것처럼 말이다.
두려운 마음에 마구 악을 쓰고 싶으나 그조차 뜻대로 되지 않았다. 목구멍이 콱 막힌 듯 아무런 소리가 나오질 않았다.
시야를 확보할 수도, 몸을 움직일 수도, 소리를 낼 수도 없다.
심지어 발버둥을 치는 느낌조차 받을 수 없다. 그저 실이 끊어진 인형처럼, 죽은 것처럼 있는 것만이 혼돈이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생각…… 생각까지!?’
마지막으로 차단되는 것은, 의식이다.
사방을 뒤덮은 어둠이 물처럼 혼돈의 머릿속을 침식하고 있었다. 허망하게 꺼지려는 의식을 어떻게든 붙잡으려 했으나, 속수무책이었다.
‘안 돼……!’
그 생각을 마지막으로, 혼돈의 모든 감각과 의식이 꺼졌다.
그보다 더 무방비한 상태가 될 수는 없다. 혼돈은, 아무리 베어도 깨어날 수 없으며 충격에 고통조차 느낄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저벅, 저벅…….
이윽고 어둠 속에서 서서히 혼돈을 향해 걸음을 옮기는 진의 모습이 도드라졌다.
혼돈과 달리, 진은 놈이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를 똑바로 인지할 수 있었다. 혼돈은 영기의 장막에 매달린 채 미동이 없었다.
‘투신 형제에게 사용했을 때와는 다르군. 놈이 단지 힘만 강한 괴물이어서 이렇게 성공할 수 있던 거다.’
진은 잠시 동안 혼돈을 바라보았다.
여유를 부리는 게 아니었다. 영검 궁극기를 펼치느라 순간적으로 다른 어떤 행동도 할 수 없을 만큼 지쳤기 때문이었다.
‘확실히, 영검은 형제들의 말대로 검보다는 권능에 가까운 느낌이군.’
영검 궁극기 제1식, 첫 번째 밤은 영검 1식 ‘영혼 베기’에 근간을 두고 있다.
-그런데, 아까 영혼 베기는 영검의 시작이자 끝이라 하지 않았습니까?
-그랬지.
-그렇다면 영혼 베기를 대성하더라도, 이 훈련장에 고작 백 보 정도의 검흔을 남기는 게 한계라는 뜻인가요?
-영혼 베기만 대성하면 그게 한계가 맞다. 그러나 영검이라는 무예의 끝에 다다르면, 영혼 베기는 검술이 아니라 권능이 된다.
처음 라프라로사에서 영검을 전승받기 시작했을 때 가르문드와 나눈 대화.
당시 가르문드는 영검의 극의에 다다라 영혼 베기를 펼치면, ‘자신보다 의지가 약한 상대’의 목숨을 언제든 거둘 수 있게 된다고 말했었다.
첫 번째 밤은, 그런 수준의 영혼 베기를 구사할 수 있게 되기까지의 중간 단계라고 할 수 있었다.
만일 혼돈이 진보다 드높고 강한 의지를 지니고 있었다면, 지금과는 전혀 다른 결과가 나왔을 것이다.
“후우…….”
진이 호흡을 고르며 자세를 취했다. 이제 놈을 베어버리고, 이 길고 긴 악몽을 끝낼 시간이었다.
스겅, 쓰아악-!
진은 사방을 뒤덮은 영기의 어둠 속을 뛰어다니며 브라다만테를 휘둘렀는데, 그때마다 섬광처럼 날카로운 검은 검기가 혼돈을 베어냈다.
유리가 깨지듯.
혼돈의 육신이 부서지고 있었다.
이제껏 단 한 번도 혼돈에게 타격을 주지 못했건만, 영검 궁극기를 익히자마자 이토록 쉽게 놈을 베고 있다는 사실에 허망한 마음과 전율이 동시에 진의 내면을 두들겼다.
드디어 힘을 되찾고 있다는 쾌감도 함께였다. 혼돈의 몸이 조각날 때마다 광석처럼 빛나는 덩어리들이 하나씩 드러났고, 그건 모두 놈이 빼앗아간 진의 기운들이었다.
진은 그것들을 낚아채 기운을 보충하며 검을 휘두르는 속도를 점점 빠르게 높여갔다.
오래지 않아, 진은 놈으로부터 모든 기운을 되찾을 수 있었다. 온몸에 가득 들어차는 힘에 눈이 번쩍 뜨였고, 직후에 보인 것은 본래의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분해된 혼돈의 몸뚱어리였다.
그렇게 첫 번째 밤이 끝나자, 방금 모든 힘을 회수하며 얻은 충만한 감각이 무색해질 정도로 강렬한 탈력감이 찾아왔다.
‘안 돼, 지금 이렇게 지쳐버리면.’
아직 혼돈을 끝장냈다는 확신은 없다. 거의 그렇게 된 것처럼 보이기는 하나, 놈이 회복할 수 있는 가능성은 얼마든지 남아 있었다.
그리고 채 몇 초가 지나기도 전에 우려는 현실이 되었다.
[너, 젠장……!]어느새 다시 육체를 형성한 혼돈이 공중에서 진을 내려다보고 있는 것이다.
한 가지 다행이라면, 놈이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이 약해졌고 작아진 상태라는 사실이었다.
반면 진은 일시적으로 지쳤을 뿐이니, 이번 위기만 넘기면 다음 싸움에서는 무조건 완전한 승리를 거머쥘 수 있었다.
[나쁜 자식!]혼돈이 하강하며 진의 가슴팍으로 송곳을 토해냈다. 세 개까지는 막아낼 수 있었으나, 네 번째 송곳은 도저히 어쩔 수가 없었다.
심지어 네 번째 송곳이 노리고 있는 것은 얼굴, 맞으면 그대로 머리가 사라질 터였다. 진은 이를 악물며 검을 치켜들었으나, 조금 늦었다.
‘멈췄어?’
어째서인지 송곳은 진의 눈앞 한 뼘 앞에서 움직임을 멈추었다. 멈추지 않았다면 최소 얼굴의 반 정도가 그대로 뜯겨나갔을 텐데 말이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영검으로 문을 열어 도망치면, 다음 전투에서의 승리는 확정이다.
그러나 진은 그렇게 하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며, 혼돈과 눈을 맞췄다.
“너 설마, 날 죽일 수 없는 거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