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625)
제 666화
161화. 복귀(3)
당혹, 란케 할로비체의 뇌리에 가장 먼저 들어찬 감정.
‘내 턱이, 부러졌다고!? 그것도 일격에……!’
튼튼하기로는 마계 4대 공작가 제일이라 자부하는 육체였다.
태어나 지금껏 마계의 강자로 군림해오며, 단 일격에 뼈가 부러진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다음에 란케의 가슴 속에 들어찬 감정은 분노였다. 감히 자신의 말을 먼저 끊은 것도 모자라, 다짜고짜 주먹까지 날리다니!
그러나 아직은 품위를 잃을 때가 아니었다. 상대가 천박하다고 하여 귀족인 자신도 같아질 수는 없는 노릇.
쿠득! 거리를 벌린 란케가 어긋난 턱뼈를 억지로 맞추었다.
제자리로 돌아간 뼈는 빠르게 회복되었다.
“방심한 상대를 공격하는 건 예로부터 천것들의 전유물이었지. 흥, 반가운 마음에 먼저 인사까지 해주었더니 이런 무례…… 켁!”
빠각!
진이 휘두른 팔꿈치에 막 붙은 란케의 턱뼈가 다시 한 번 부서졌다. 란케는 눈물이 핑 도는 걸 느끼며 다시 거리를 벌렸고 말이다.
“아, 좀!”
또 다시 돌아간 턱을 맞추는 란케.
“또 방심했나?”
“아니, 품위를 유지하려고 했을 뿐이다.”
“그렇다면 네놈은 같잖은 품위를 지키려다 내게 두 번을 죽은 셈이로군. 제대로 쳤으면 머리가 사라졌을 테니.”
“그러나 더는 이 란케 할로비체가 네놈을 존중할 이유가 없구나!”
란케의 눈동자가 피처럼 붉은빛으로 변했다.
어느새 한 자루의 가시 채찍이 그의 손에 형성되어 있었다.
“가시 채찍? 참 고상한 무기를 쓰는군.”
샤아악!
파공음과 함께 채찍이 날아들었다.
란케는 가볍게 손을 휘둘러 마기를 방출하는 것만으로도 혼돈의 잔재 수십을 육편으로 만들었다.
당연히 제대로 기운을 실어 내지른 채찍의 위력이 그에 비할 바가 아닐 것이다.
‘그러고 보니 바바 형제와의 마지막 대련 이후 누군가와 겨루는 건 처음 있는 일이군.’
그래서일까.
진은 란케의 채찍이 그저 무해하게만 느껴졌다.
꼭 견습 무인들의 어설픈 검술을 보는 것만 같았다.
도저히, 란케가 강하다는 느낌을 받을 수가 없었다.
‘피할 생각이 없어?’
텁, 꽈악……!
진이 맨손으로 가시 채찍을 휘어잡자, 란케의 두 눈이 튀어나올 듯 휘둥그레졌다.
그 단단한 마계 혼가시나무의 가시들이 진의 손아귀 속에서 맥없이 부서지고 있었다.
‘2년 반 전까지만 해도 비앙카보다 한참 아래라고 했는데……! 다들 내게 거짓말을 한 건가!? 이걸 지금 맨손으로 잡았는데?’
란케가 가진 진에 대한 정보는 킨젤로의 단원들로부터 들은 이야기가 전부였다.
따라서 진의 무력이 2년 6개월 전에도 이미 10성 근처였다는 건 알고 있으며, 폐관 수련에 들어선 후 상당한 성장을 이룩했으리라는 것도 염두에 두었다.
그런데 지금 채찍을 붙잡은 인간은, 단원들이 그에 대해 했던 이야기와 달라도 너무 달랐다.
“내가 널 곧장 죽이지 않은 이유는 딱 한 가지다, 마족.”
“란케. 란케 할로비체다!”
“궁금한 게 있기 때문이지. 미트라 대사막이 왜 이 지경이 되었는지, 그리고 네놈은 왜 여길 놀이터라고 말했는지. 가능한 상세히 설명해라. 그렇다면 적당히 자비를 베풀어주마.”
“자비라. 하, 기가 차서 말문이 막히는군.”
“아주 고통스럽지는 않게 죽이겠다는 뜻이지.”
“그간 들은 것보다 조금 성장한 모양인데, 너무 우쭐대지는 마라. 이 란케 님은 아주 강하다.”
“그러냐? 비앙카 칼리고에 비하면 아주 우스운 수준인 것 같은데.”
“나는 칼리고가의 그 덜떨어진 녀석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우월하다…… 그딴 저열한 놈과 비교하지 마라!”
이이익!
란케가 있는 힘껏 채찍을 잡아당겼다.
그러나 진은 거석처럼 요지부동했고, 란케의 자세만 우스워졌다. 심지어 진은 한 손만 사용한 채 여유가 넘쳤다.
“하, 하하. 그래, 인정하지. 힘은…… 나보다 세구나!”
란케가 새로운 가시 채찍을 꺼내며 다시 진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진은 그때야 시그문드를 휘둘러 어렵지 않게 채찍을 쳐냈다.
“정말 상황 파악이 안 되는 거냐, 아니면 다른 믿는 구석이 있는 거냐? 네 동료들이 찾아오는 걸 기다리는 건가?”
“이 란케 님은 그런 게 없어도.”
거기까지 말하던 란케는, 별안간 목덜미가 서늘해지는 걸 느꼈다.
소나기처럼 퍼붓고 있는 채찍 너머에 있어야 할 진이, 어디론가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자신보다 강한 상대와 싸우는 게 익숙하지 않은 모양이군. 이럴 땐 공포를 밀어내겠답시고 억지로 용기를 짜내는 게 아니다…….”
진의 목소리는 옆에서부터 들려왔다. 열 걸음이 떨어진. 눈 깜짝할 새에 목이 베여도 이상할 게 없는 거리였다.
“빠르게 패배를 인정하고, 살아남을 궁리를 하는 게 최선이지. 그러려면 상대에게 가치를 증명해야 한다. 당장 살해당하지 않을 만한 이유와 근거를 제시해서 목숨을 부지해야 훗날이 있는 거니까. 게다가 난 친히 네게 내가 원하는 걸 이야기해주지 않았나.”
콰아아아-!
란케가 쏜 마기가 용의 숨결처럼 진을 덮쳤다.
물론 진은 어렵지 않게 마기를 피해 다시 자리를 잡았다.
허공으로 뻗어간 마기는 저 멀리까지, 가로막는 모든 것을 쓸어버리며 나아갔다.
두근, 두근, 두근……! 란케의 가슴 속에서 심장이 두방망이질을 쳐댔다.
공포, 상당히 긴 세월 동안 느낄 일이 없던 감정이 그를 무섭게 압도하고 있었다.
“왜 대사막이 이렇게 되었는지부터 말해.”
진의 목소리에는 살의가 묻어있지 않다.
그저 담담한 어조였으나 란케는 온 모공에서 식은땀이 삐져나오는 걸 느꼈다.
하아, 하아, 란케의 호흡이 거칠어졌다.
그는 자신의 아버지를 떠올리고 있었다.
‘이 새파란 인간이…… 정녕 아버지에 준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말인가?’
아버지가 앞에 서 있는 것 같았다.
절대로 깨부술 수 없는 거대한 벽이 사방에서 자신을 옥죄어오는 것 같은, 끔찍한 감각이 란케를 공황의 늪에 빠뜨리고 있었다.
“대, 대사막은…….”
“그래, 이제야 조금 똑똑해지기로 했군.”
“대사막…… 사막은, 그러니까.”
한동안 기다렸으나 란케는 덜덜 떨며 뒷말을 잇지 못했다.
‘이놈, 상태가 좀 이상한데.’
위협을 위해 한 번 베고자 다가가려는 찰나, 란케의 채찍이 진의 눈앞을 스치고 지나갔다.
너끈하게 반응하기는 했으나 확실히 방금까지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예리한 공격이었다.
그건 란케가 무의식적으로 휘두른 공격이었다.
이제는 진의 눈빛에도 살기가 맺혔다.
“내가 무서운 건지, 아니면 뭔가 좋지 않은 기억이 떠오른 건지는 모르겠지만. 맞다 보면 정신이 들 거다.”
* * *
같은 시각. 수인들의 땅, 킨젤로의 옛 본회.
“뭐어? 란케가 갑자기 대사막에 일이 생긴 것 같다며 혼자 나갔다고?”
“엥? 거기에 문제가 생길 일이 있나?”
아이나스 칼리고와 부바르 가스톤. 두 사람은 여느 때처럼 사이 좋게 고구마 크로켓을 나눠 먹으며 수인들의 보고를 받았다.
옛 본회에 남아있던 이들 중, 대사막의 전투를 감지할 수 있을 만큼 뛰어난 인물은 란케가 전부였다.
“란케의 소환술 실험이라면 그럴 수 있어.”
“아, 옛 마계 대공들의 영혼을 불러내겠다는 그 이상한 실험이 있었죠.”
“흐음. 어떻게 생각해, 부바르! 대공이나 언니한테 전해줘야 할까?”
“저번처럼 또 단순 실험 사고면, 란케 님이 민망해지지 않을까요? 그런 걸 잘 못 견디는 성격이잖아요, 란케 님은.”
“혹시 란케의 실험이 아니라 침입자 같은 게 들어온 거면? 대사막은 진 룬칸델이 마지막으로 움직였다고 추정되는 지역이기도 하고…….”
“에이, 대사막이 오염된 건 벌써 일 년도 더 된 일이라고요. 그때 이후 다들 실험 폐기장으로 사용해왔는데, 그 망할 놈이 수련하겠다고 계속 거기 있었겠어요? 수색도 했었고.”
“역시, 그렇겠지? 부바르는 아무리 봐도 똑똑하단 말이야! 하긴, 침입자라고 해봐야 폐기물을 구하러 온 티칸 놈들뿐이겠지.”
“란케 님이 비록 좀 바보 같기는 하지만, 티칸 놈들 따위한테 당할 분도 아니죠.”
“뭐, 우리 언니한테는 한주먹거리도 안 되겠지만. 란케도 세기는 해. 특히 폭주했을 때는 진짜로 강하지. 마계가 망하기 전에도 꽤 알아줬다고, 폭주한 란케는. 아무튼 란케 오면 밥이나 차려달라고 하자. 맛있는 걸로!”
“리트라 다과점을 깨부술 새로운 쿠키도 시험해보고 말이죠!”
* * *
“커헉, 켁…….”
아이나스와 부바르가 시시덕대는 동안 란케는 진에게 그야말로 처참한 패배를 겪었다.
아버지에 대한 트라우마가 발동될 때면 란케는 대개 폭주를 하며 강해졌고, 그 상태에서는 누구에게도 진 적이 없었다. 본인이 어떻게 이겼는지는 기억하지 못했지만 말이다.
그러나 오늘로 ‘폭주 란케’의 무패는 깨지고 말았다.
이겼을 때는 과정을 기억하지 못했으나 이번엔 아니었다.
아주 잠시 호각세를 이루기는 했으나, 본격적으로 밀리기 시작한 시점부터는 폭주가 해제되며 정신이 돌아온 것이다.
“후우.”
진이 이마를 훔치며 숨을 골랐다.
그 역시 몸 곳곳이 베이고 터진 채 피를 흘리고 있었다.
치명상은 없었으나, 그래도 몇 군데는 중상이라 부를 만한 부상이었다.
하지만 라프라로사의 물건들을 가져온 행낭을 지키면서 싸우지 않았다면, 잔상처를 입는 정도로 끝났을 것이다.
“그러니까 마족, 네놈 말은.”
“또…… 마족이라…… 부르다니, 나는 라…… 란케…… 할로비체라고. 내가, 네놈의 바람을 들어주었으니…… 너도…… 조금은, 커헉, 예를 갖춰라…….”
울컥 핏물을 토하는 란케. 그는 사지가 모두 부러진 채 간신히 숨만 붙어있는 모양새였다.
“그래, 란케 할로비체. 근성 하나는 봐줄 만하군. 아무튼, 네놈 설명에 의하면 대사막이 이렇게 된 건 오염된 후 모든 세력이 실험 처리장으로 이용했기 때문이고. 네놈은 그저 이곳이 마음에 들어서 놀이터로 사용했다는 말인가?”
“그래…….”
“첫 번째는 납득이 가지만, 두 번째는 부족해. 네놈은 여기서 뭔가를 하려고 했어.”
“그냥…… 난 여기가, 쿨럭, 좋을 뿐이다.”
진은 잠시 이곳에서 란케가 무엇을 하려 했는지를 생각해보았다.
그리고 란케는 진이 줄곧 지키려던 행낭을 의식하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그걸 노려서 빈틈을 만드는 것만이 자신이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 것 같았다.
그리고 진은 란케가 무엇을 하려 했든, 그건 차차 알아도 될 문제라는 판단을 내렸다.
“뭐, 그만하면 됐어. 나머지는 내가 알아서 하도록 하지. 아, 그리고 미리 말해두는데. 내 행낭을 어떻게 해서 위기를 벗어날 생각이려거든 접어둬.”
란케가 고개를 떨구었다.
이렇게 엉망진창이 되기 전에도 계속 시도했으나 결국 행낭엔 작은 흠집조차 내지 못했다.
지금은 더더욱 어려울 것이며, 진이 똑똑히 인지하고 있는 한 절대로 불가능했다.
“졌다, 죽여라…….”
“그럴 계획이다. 남기고 싶은 말이 있나?”
“이 자리에, 내 위명과 존귀함을, 기리는 비석을…….”
란케의 유언을 들어주는 와중.
돌연 진은 쓰러진 란케를 향해 황급히 검을 내리쳤다.
킨젤로의 중요 인물이 위기에 빠질 때면 어김없이, 또 난데없이 등장하고는 했던. 마수왕 오르갈의 철문이 란케의 위에 형성되었기 때문이었다.
‘하! 저 빌어먹을 철문도 오랜만이로군.’
쩌엉-!
철문이 란케를 빨아들이는 속도가 조금 더 빨랐다. 진은 짜증스러운 듯 미간을 좁히며 철문을 노려보았다.
철문은 란케를 구한 뒤에도 곧장 사라지지 않고 진에게 목소리를 들려주었다.
[돌아왔군, 진 룬칸델.]킨젤로의 단장, 오르갈의 목소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