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624)
제 666화
161화. 복귀(2)
1803년 1월 마지막 날.
라프라로사를 빠져나오며, 진은 언제나처럼 끝없이 펼쳐진 상앗빛 대사막이 자신을 반겨줄 줄 알았다.
첫 라프라로사 행을 마친 후 우연히 어둠 불꽃을 만났던 일이나, 이번에 입성할 때 만난 묘인족이 떠올라 피식 웃음을 터뜨리기도 했었다.
‘이게…… 뭐야?’
그러나 영검으로 문을 열어 인세로 나선 직후, 진이 맞이한 풍경은 그가 알던 미트라 대사막이 아니었다.
썩은 기름처럼 끈적한 바람이 불고 있었다.
그 바람은 지독한 독기를 가득 머금은 채였고, 그 너머로 보이는 땅과 하늘도 불길한 칠흑빛이었다.
게다가 곳곳에서 들려오는 스산하고 깊은 괴성들.
‘이게 미트라 대사막이라고……?’
차라리 흑해라면 모를까.
이내 땅밑을 내려다본 진은, 이 황폐한 풍경이 ‘혼돈에 오염된’ 미트라 대사막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거무튀튀한 땅마다 듬성듬성 남은 모래들이 보인 것이다.
마지막 남은 자연의 생기를 애써 품은 그 모래들조차 탁하게 변해버린 상태였다.
“하아.”
미트라 대사막은 본래 명왕족의 땅이다.
신화와 전설을 쫓아 찾아온 수많은 모험가들을 좌절하게 만든 미트라 대사막은, 명왕족이 멸망하기 직전까지 황금도시 라프라로사를 품고 있던 땅이었다.
그래서 진은 자신과 형제들의 도시가 언젠가 다시 이 사막에서 찬란하게 빛나는 날을 꿈꾸었다.
바로 이 문을 빠져나오기 직전까지.
진이 등에 진 거대한 행낭의 매듭을 한층 더 단단히 조였다.
행낭엔 과거에 죽은 명왕족들의 광심장과 혼돈 정화기, 반의 피 그리고 황금함대의 설계도가 들어있었다.
‘죽어서도 끝까지 난리를 치는군, 글리엑…….’
끔찍했던 흑해의 왕을 떠올리자 이가 갈렸다.
또한, 우려스럽기도 했다.
‘미트라 대사막이 이 지경이라면, 다른 곳은 어떤 상태지?’
오염 지역.
2년 6개월 전, 세상에 알려진 오염 지역은 약 50곳이었다.
날이 갈수록 새로운 오염 지역이 발견되기는 했으나 미트라 대사막은 진이 라프라로사에 갈 때까지도 멀쩡했었다.
‘글리엑이 소멸한 후 전염성 혼돈이 발발한 것처럼, 땅의 오염도 증식하고 있었군.’
얼핏 보기에도 대사막의 오염은 심각한 수준이었다.
단지 혼돈에 오염된 게 아니라, 글리엑의 파편이 직접 떨어진 땅이라 여겨질 정도로 말이다.
전혀 예상치 못한 문제는 아니다.
혼돈 전염이 꼭 생명에게만 국한되라는 법은 없으니까.
하지만 그걸 룬칸델과 지플을 비롯한 거대 세력들이 ‘막지 못했다’라는 것은 다른 이야기였다.
‘아니면 미트라 대사막은 정화 지역에서 제외되었을 수도 있다. 전 세계의 오염 지역 정화에 아직도 대량의 인력이 투입되는 상황이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어.’
다른 지역이 어떤지는 대사막을 빠져나가서 확인해 보면 될 일.
어쨌거나 3년 만에 돌아온 인세에 대한 첫 감상은, 아주 불쾌하다는 것이었다.
“케에에엑!”
별안간 무언가가 흉포한 소리를 내며 진의 등을 덮쳤다.
진은 그쪽을 쳐다보지도 않은 채 뇌기를 터뜨려 놈을 그대로 폭사시켰다.
놈을 필두로 사방에서 괴물이 몰려들고 있으니, 굳이 천천히 관찰할 필요가 없었다.
백, 이백, 삼백, 사백…… 천 이상.
진은 단숨에 자신을 포위한 괴물의 대략적인 숫자를 헤아렸다.
그러나 곧 그만두었다.
천이 넘은 후로는 그 수를 파악하는 게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다 쓸어버리면 될 뿐.
시그문드가 검집을 빠져나왔다.
명왕검 투신기 제9검
멸절
일순 시커먼 하늘이 푸르게 물들었다.
진의 등 뒤에 형성된 날개 형태의 뇌기가 눈부신 광휘를 퍼뜨렸다.
치솟은 뇌기가 금방이라도 검은 하늘을 찢어버릴 듯했다.
그리고 뇌기가 펼쳐지자마자, 전방에서 달려들던 한 무리의 괴물들이 숨을 거두었다.
화염에 먼지가 불살라지듯이 사라진 것이다.
비명을 대신해 뇌기에 재가 된 괴물들의 뼈와 살점이 어디론가 휘날렸다.
근처에 있던 괴물들은, 반사적으로 그 재가 흩어지는 걸 보려다가 그대로 죽음을 맞이했다.
창백한 칼날이 난반사되는 빛처럼 사방으로 검기를 뿌려대고 있었다.
난사를 하는 듯 보였으나 그 수많은 검기들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혼돈의 잔재들을 도륙하고 있었다.
괴물들은 감정이 없는 모양이었다.
진이 가볍게 휘두르는 검에 수십씩 죽어가면서도 계속해서 달려드는 것이다.
진도 그들이 공포를 느끼며 도망치기를 바라지 않았다.
시간과 상황이 허락해준다면, 형제들의 옛 땅을 더럽히고 있는 모든 괴물을 모조리 없애고 싶었으니까.
초마다 적게는 수십, 많게는 수백 마리의 괴물이 터지거나 갈라지고 있었다.
일반적인 혼돈 전염자는 조금이라도 사람이었던 시절의 모습이 외형에 남아있기 마련이다.
지금 진이 학살하고 있는 괴물은 모두 전염자가 아니라 순수한 혼돈의 잔재였다.
‘많긴 많군.’
투왕이 되기 전이었다면 진은 대사막의 괴물을 모두 없애겠다고 마음먹지 못했을 것이다.
일단 돌파해서 탈출한 후 정확한 규모를 파악하고, 보다 효율적인 방법을 모색하는 게 본래 진의 방식이었다.
끝도 없이 달려드는 괴물들을 상대하다 지쳐서 위험해질 가능성을 배제해야 하니 말이다.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었다.
미친 듯이 뇌기와 오러를 쏟아내고 있는데도 가만히 앉아 명상을 할 때만큼이나 몸이 편안하기만 했다.
이런 수준의 괴물 따위는 백만 마리가 덤벼오더라도 더 이상 진을 위협할 수 없었다.
개미가 아무리 많아도 용을 어쩔 수는 없는 것처럼.
‘이쯤 되면 미트라 대사막을 전 세계가 오물 처리장 정도로 사용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니면 킨젤로가 망한 것인가? 그럴 리는 없을 텐데.’
미트라 대사막은 수인들의 땅에 속해 있고, 수인들의 땅은 현재 킨젤로의 영역이다.
대사막이 아무리 가치 없는 땅이라 할지라도 이렇게까지 방치할 이유는 딱히 없었다.
‘킨젤로가 정말 망한 게 아니라면, 어차피 곧 누군가가 올 것이다.’
거기까지 생각한 진이 잠시 검을 멈추었다. 바퀴 떼처럼 몰려드는 괴물 사이로, 사람의 형상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진이 대사막의 전투를 감지하고 찾아오리라 예상한 어느 세력의 하수인이 아니었다.
‘생체 골렘!?’
혹은 마인.
암흑마법회 토벌 당시 구출한 피해자들처럼 뒤틀려 있거나, 완타라모 숲에서 겪었던 황실의 마인처럼 얼굴과 머리카락이 없었다.
직감적으로 진은 그들이 ‘폐기된 실험체’라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또한, 이전에 본 생체 골렘, 마인과 다른 점이 있다면. 그들의 육체가 모두 혼돈에 물들어 있다는 사실이었다.
혼돈 정화기로 효과를 볼 수 있는 건 완전 잠식과 신체 변형이 일어나기 전의 감염자에 한했다.
게다가 그들은 혼돈에 잠식되기 전에 이미 실험까지 당했으니, 보라스의 정화기로도 도저히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태였다.
그들도 괴물과 똑같이 진에게 달려들었다.
피하면서 그들을 유심히 살펴본 진은, 곧 충격적인 사실 하나를 깨달았다.
‘혼돈에…… 일정한 규칙이 느껴진다.’
마치 마법진이나 술식처럼, 전염자들의 몸에 들러붙은 혼돈은 복잡하면서도 일정한 양식을 보이고 있었다.
그 흔적은 실험의 일환인 것 같았다.
바깥의 세력들은 전염자와 오염 지역을 정리하고 있을 뿐만이 아니라, ‘이용’ 또한 하고 있던 것이다.
실험체들은 크게 두 가지 형태로 구분되었다.
킨젤로가 만든 명인의 실패형과 지플과 황실의 합작으로 보이는 마인의 실패형. 전자는 뇌기를, 후자는 오러와 마력을 사용했다.
각 실험체들이 추구하고 있는 바가 명왕족과 마검사라는 건 더 이상 놀라운 일도 아니었다.
진이 해줄 수 있는 건 그들에게 어서 안식을 주는 것뿐이었다.
누군가는 억지로 잡혀 왔을 수도 있고, 각 세력에 충성을 바치다 배신당해 실험체로 전락 당한 것일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진은 그들이 최대한 고통을 느낄 수 없도록 검을 휘둘렀다.
이미 그런 기본적인 감각조차 남아있지 않은 것 같았지만 말이다.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진이 도륙한 괴물은 벌써 수만 마리를 훌쩍 넘어갔고, 버려진 생체 골렘과 마인들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돌격하는 괴물의 밀도는 그대로였으나 진은 여전히 지치지 않고 있었다.
검을 휘두를수록 점점 더 분노가 차올랐다.
진은 이 끔찍한 사태에 대해 묻고 따질 수 있는 인간이 어서 나타나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리고 곧, 오염된 대사막의 캄캄한 풍경 저 너머에서부터 혼돈이 아닌 새로운 기운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드디어 왔군.’
아직 거리가 멀다, 대략 천 걸음 이상.
그런데도 새로 등장한 인물이 내뿜는 기운에 혼돈의 바람이 불안정하게 흔들리는 모습이 보였다.
‘마족이로군, 한 놈이고. 제피린, 비앙카. 둘 중 하나인가?’
혼돈을 밀어내고 있는 오러가 마족 특유의 어두운 기운을 품고 있었다.
제피린과 비앙카 칼리고 같은 마계의 강자들에게서 느끼곤 했던 마기.
진은 방출한 뇌기를 한꺼번에 폭발시킨 후 가만히 그를 기다렸다. 폭발한 뇌기가 다시 진의 광심장으로 수렴했는데, 근처에 있던 괴물들은 그조차 버틸 수가 없어 재로 산화했다.
“오……!”
이윽고 마족이 진의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제피린도 비앙카도 아니었다. 처음 보는 남성 마족이었는데, 그는 진을 보자마자 흥미로운 걸 본 듯 감탄을 내뱉었다.
“대체 어떤 미친 종자가 겁도 없이 내 놀이터에서 깽판을 치나 했더니…… 너, 진 룬칸델이지?”
금자수가 놓인 화려한 코트, 곳곳에 주렁주렁 달고 있는 보석과 금붙이들, 본인은 우아하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지만 부담스러울 만큼 과장된 몸짓. 말하자면, 그는 자신이 존귀한 마계의 귀족이라는 걸 온몸으로 드러내고 있었다.
다만 허영과 사치로 치장된 경박스러운 겉모습과 달리, 그가 가만히 서 있는 것만으로도 일대의 괴물들이 멈칫하고 있었다.
그러다 다시 달려들던 괴물들은 모두 그의 손짓 한 번에 육편이 되어 핏빛 우박이 되었다.
엄청난 강자인 것이다.
이전까지 진이 가지고 있던 무력의 기준에서는, 분명 그랬다.
“검은 머리, 잘생긴 얼굴, 싸가지 없는 눈빛. 맞네, 진 룬칸델! 여기서 이렇게 만나게 될 줄이야. 정식으로 소개하지, 이 몸의 이름은 란케 할로비체. 위대한 마계 4대 공작가 할로비체가의 1공자다. 마계 북부와 그 생명들의 통치자이자 보호자이며, 트나 산과 카리온 산의 주인이자…….”
“네놈, 킨젤로지? 먼저 이름을 알린 건 아주 현명한 판단이었다.”
진이 말을 끊으며 란케와 눈을 맞췄다.
“……듣던 대로 예의가, 없.”
군?
우드득! 란케는 그 말을 끝맺지 못했다.
순식간에 쇄도한 진이 그의 턱에 주먹을 꽂았기 때문이었다.
“억!”
“안 그랬으면 자기소개를 부러진 턱으로 하게 되었을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