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689)
제 666화
176화. 두 사람을 위한 운명(4)
* * *
드락카의 본진에서 1년, 이야기의 탑에서 1년.
그렇게 감금되었던 2년 동안은 켈리악을 비롯한 가문의 수뇌들이 종종 헤도를 직접 회유했으며, 형식이 감금이라는 걸 제하면 헤도는 거의 귀빈에 가까운 대우를 받았다.
켈리악이 헤도를 그렇게 대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되도록 정신 조작을 사용하지 않고 헤도를 지플의 사람으로 만들고 싶었다.
추후 정신 조작이 얼마나 발전하든, 그게 더해지는 순간 헤도의 가치가 떨어진다고 여긴 것이다.
물론 헤도는 그런 켈리악의 진심에도 반응하지 않았다.
심지어 켈리악은 헤도가 그냥 다시 밖으로 나갈 수 있도록 구속구를 풀어준 적도 있었다. 나가서 룬칸델에 붙지 않는 한 보복을 하지 않겠다고 약조까지 했으나, 헤도는 떠나지 않았다.
“자유를 주겠다는데, 그것조차 싫다는 말인가.”
켈리악으로서는 헤도를 그렇게까지 절망시킨 게 무엇인지를 알 수 없었다.
또한, 그에게 세상 밖은 그저 이해할 수도, 섞일 수도 없는 지옥이라는 것도 알지 못했다.
오히려 헤도는 감옥에 갇혀 아무 의미 없이 보내는 날들에 완벽히 적응한 상태였다. 그때까지 그의 삶에 그보다 더 나은 상태는 없던 것이다.
“……아쉽군. 결국 이마저 거부했으니 자네는 이제 실험동으로 옮겨질 것이야. 하지만 그곳에서라도 언제든 생각이 바뀌면, 책임자에게 요청을 하게. 나와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그렇게 헤도는 소타 사막, 백야의 탑 인근에 존재했던 ‘제12실험동’으로 이감되었다.
당시 제12실험동의 총관리자는 ‘이번 실’이라는 인물이었는데, 그는 실험을 빙자한 고문으로 피실험자들 사이에서 악명이 드높은 인간이었다.
“이봐. 드락카와 이야기의 탑에 있을 땐 인세의 신께서 자네를 아낀 모양인데, 여기선 내가 신이다. 그분이 직접 이곳으로 강림하지 않는 한 말이지. 흠…… 자네를 어찌 대해야 할지 조금 고민이 되기는 해. 성격대로 족쳐도 좋을지, 가주를 생각해서 적당히 해야 할지.”
헤도를 본 이번이 처음으로 내뱉은 말이었다. 헤도는 그의 말을 듣지도 않았지만.
“후자가 좋겠어. 그래도 인세의 신께서 눈여겨보는 실험체인데, 너무 함부로 대하는 건 좀 그렇지. 착하고 구시대적인 것부터 시작하자고, 구타 말이야.”
그날부터 이번은 매일 헤도를 폭행했다.
범인, 그것도 무인이 아닌 마법사의 몽둥이질 따위가 초인을 다치게 만드는 건 본래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당시의 헤도는 오랜 섭식 거부로 인해 흑해 시절의 육체가 아니었다. 거인이 야윈 것 같은 모양새였고, 힘을 제하는 구속구까지 있으니 잘 단련한 평범한 무인과도 별다르지 않은 상태였다.
헤도는 단 한 번도 저항하지 않았다.
비명도 지르지 않았다. 고통을 전혀 느끼지 못한 건 아니었으나, 괴롭다는 기색을 낼 필요성이 없었다.
“118번! 고통 따윈 익숙하다는 것이지? 오늘도 네 주둥이가 열리지 않는지 한번 지켜보자고.”
이번은 전형적으로 미친놈이었다. 그는 헤도의 무반응을 반항이라 여겼고, 거기서 비롯된 불쾌감에 집중할수록 헤도가 켈리악이 보낸 실험체라는 사실을 잊어갔다.
말하자면 자신이 지키려던 선을 벗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강도가 높아진 이번의 고문과 단식은 헤도를 순식간에 불구로 만들었다.
불과 얼마 전까지 흑해의 괴물들을 사정없이 찢어발기고, 시론을 찾아온 도전자들을 꺾고, 그의 흑기사들과 나란히 하던 강체가 완전히 끝장난 것이다.
사지는 말라비틀어진 나무처럼 변한 채 움직이지 않았고, 오러를 생성하는 신체 기관은 영구적인 손상을 입어 제 기능을 하지 못했다.
이윽고 헤도가 살아 있다는 사실은, 그의 의지와 무관하게 굳은 혀를 타고 올라오는 옹알이만으로 겨우 알아볼 수 있는 상태가 되었다.
우습게도, 상황이 그 지경에 이르자 이번은 공포에 휩싸이는 모습을 보였다.
“이런 미친…… 내가 무슨 짓을! 정말 고칠 수 없다는 말이냐?”
“죄송합니다, 이번 님. 118번은 현재 누메루스의 신물 없이는 회생이 불가합니다. 게다가 이대로라면, 얼마 못 가 사망할 겁니다. 상부에 보고를 올려야…….”
“보고? 보고라고? 이 새끼가 누굴 엿 먹이려고. 죽는 건 118번이 아니라 네놈이다. 감히…… 현 시간부로 네놈은 145번 실험체야.”
“이번 님? 아, 안 돼!”
이번은 상부에 헤도의 상태가 알려지지 않도록 조치했다. 고문 사실을 알고 있는 자들을 실험체로 강등시켰고, 헤도가 죽지 않도록 최대한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본래도 살고자 하는 의지가 없는 인물을 그 지경으로 만들기까지 했으니 상태가 호전될 리는 없었다.
머잖아 상부에서 감사가 나오기라도 하면 사태가 알려지는 건 시간문제. 이번은 매일 초조한 나날을 보내며 고민에 빠졌다.
‘처음 118번을 인도받았을 때 따로 특별 지시를 받은 건 하나뿐이다. 118번이 가주를 뵙고 싶다고 요청하면 들어주라는 것. 놈은 끝내 그러지 않았으니 죽여도 상관 없는 것 아닌가? 실험 중 사망이라고 보고해도 문제가 없을…… 망할, 그럴 리가 없다. 가주께서 직접 날 처벌하실 것이다.’
헤도의 죽음을 막는 건 불가능하다.
결국 이번은 고민 끝에, 실험동에 있던 다른 사람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방법을 택했다. 바로 실험동에서 그가 함부로 대하지 못하는 유일한 실험체에게 말이다.
‘109번…… 산드라 지플이 죽인 것으로 해야겠군.’
109번, 산드라에게 부여된 실험체 번호.
당시 12실험동에서 산드라를 번호로 부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비록 실험체라고는 하나 그녀는 순혈 지플이었고, 실험동의 모든 연구원들은 그녀를 아가씨라고 부르며 상관처럼 모셨다.
물론 그런 배려의 이면에는 혐오와 조소가 깔려 있었다. 단지 순혈 지플이기에 함부로 대할 수 없었을 뿐, 그녀는 실험실의 짜증 나는 애완동물 같은 존재였다.
자꾸 별 제약 없이 실험동을 돌아다니며 사고를 쳐대는데, 다른 실험체들처럼 학대할 수는 없는.
그게 그때의 109번, 산드라 지플이었다.
“이번! 나를 찾았다던데. 새로운 간식이라도 들어왔어?”
“오, 아가씨. 오셨습니까?”
“간식이 있냐고!”
“하하, 물론 새로운 간식이 들어왔습니다. 설탕이라고 들어보셨는지?”
“설탕?”
“먹으면 아주 단맛이 나는 가루입니다. 자 여기…… 아, 그렇게 막 퍼먹으시면…… 천박한 행위입니다만.”
“달다! 천박한 게 뭔데?”
“하긴, 모르셔도 되겠군요. 그리고 새로운 장난감도 준비되어 있답니다.”
“장난감까지? 오늘 내 생일이야?”
“매일이 생일이랍니다, 아가씨. 단, 주의할 것이 있습니다.”
“뭔데?”
“저번에 드린 장난감처럼 죽이면 안 됩니다. 그러니까 말을 안 듣는다고 목을 비틀거나, 뭔가로 찔러서는 안 된다는 뜻이죠.”
산드라는 이미 생체 골렘화가 일부 진행되었기에 다섯 살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완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 힘으로 인해 실험체를 몇 살해한 적이 있었는데, 그건 그녀의 의지라기보다는 이번과 연구원들의 장난으로 인한 사고였었다.
한번 찔러보십시오, 아가씨, 예, 고분고분하지 않으면 그렇게 하는 겁니다, 같은 말들을 산드라는 아무 거리낌 없이 따르고는 했다.
타고난 성정이 유별나기도 했지만, 그녀에게 제12실험동은 세상의 전부였다. 자아가 형성될 무렵부터 그녀는 오직 실험동에서만 보고 듣고 배워온 것이다.
이번은 산드라의 청개구리 같은 면모를 이용하고 싶었다. 하지 말라면 하고, 하라면 하지 않는 어린애들 특유의 장난기가 도움이 될 것 같았다.
“명심하십시오, 아가씨. 절대로, 절대로 때리거나 죽이면 안 됩니다. 그저 귀여워하고 사랑하십시오.”
“사랑하라구? 그게 뭔데. 좀 알아듣게 말해, 등신 같이 말하지 말고!”
“……음. 머리를 쓰다듬어 주거나, 이야기를 나누거나…… 짜증이 나도 좀 참거나. 뭐 그런 겁니다. 자자, 장난감이 기다리겠습니다. 가시죠.”
그것이 헤도와 산드라의 첫 만남이었다.
“안녕, 118번?”
물론 헤도는 반응하지 않았고, 산드라는 결국 첫날부터 헤도를 두들겨 패고 말았다.
그렇기에 이번으로서는 자신의 선택이 탁월했음을 느꼈으나, 문제는 헤도가 그녀의 잦은 폭행에도 죽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헤도는 오히려 조금이나마 기력을 되찾아가기도 했다.
그래봤자 몸을 움직이지는 못했고, 옹알이만 하다가 간혹 완성된 단어나 말을 내뱉는 정도였으나 누메루스의 신물 없이는 절대 회복할 수 없다던 이들의 예상은 틀린 셈이었다.
“야, 넌 죽은 거야, 산 거야? 죽었으면 죽고, 살았으면 대답 좀 해봐. 맨날 나만 너랑 놀려고 애쓰잖아.”
“꺼……져.”
“으, 열 받아! 입을 찢고 목을 비틀…… 아니, 참는다. 사랑해야 하니까! 하지만 두 대만 맞아. 아니, 세 대! 엇, 죽었어? 숨은 쉬네. 내일 봐!”
그런 기괴한 나날이 이어지고 있었다. 그 시간이 길어질수록 이번으로서는 초조해졌고 말이다.
‘매일 패다가 죽일 듯 말듯, 109번이 날 놀리는 것 같이 느껴질 지경이로군. 118번도 생각보다 너무 끈질기단 말이야…….’
그런 생각이 들었을 때, 이번은 아예 산드라와 헤도를 118번 격리실에 가둬버렸다. 산드라가 갇혀 있다는 스트레스에 못 이겨 헤도를 살해한 다음에야 열어줄 요량으로.
‘이제는 109번이 정말 118번을 끝장낼 테지. 그렇게 되면 상부에서도 제대로 조사할 수 없을 것이다.’
* * *
“……태어나 이보다 추악한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소, 탑지기.”
진은 묻고 싶었다. 어째서 그런 일을 겪고도 얼마 전까지 지플에 충성할 수 있었느냐고.
하지만 그가 충성한 대상은 지플이 아니라 산드라 지플이라는 걸 떠올리고는 말을 아꼈다.
“누구에게나 악몽 같은 시절이 있을 뿐이다. 아가씨는 그날들이 악몽이었다는 걸 지금도 모르시지만 말이네. 아마…… 그대로 계속 시간이 흘렀다면, 이번의 뜻대로 아가씨가 결국 나를 죽였을지도 모르지.”
헤도가 지금 이 자리에 있으니, 당연히 이번의 계획은 실패했다.
그와 산드라가 함께 격리된 후 며칠 지나지 않아, 제12실험동이 룬칸델의 습격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당시 12실험동을 습격한 건 흑표범, 자네의 어머니였다.”
“로사가?”
그녀가 습격한 날, 제12실험동은 완전히 망했다.
모든 자료는 폐기되었고, 실험동에 남아 있던 연구원과 마법사들로서는 본대의 지원이 올 때까지 그녀를 상대로 버티는 것조차 불가했다.
실험동 전체가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 미친 듯이 진동하던 그때.
산드라는 쓰러진 헤도를 끌어안으며 소리를 질렀다.
“자기가 지켜줄 테니 걱정하지 말라더군.”
너를 지켜주겠다.
그건 헤도가 태어나서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고아원과 흑해, 지하 감옥과 실험동을 오갔던 지난 삶에서, 그는 한 번도 그런 당연한 말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의 삶이 당연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도대체 무엇으로부터, 어떻게 지켜주겠다는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헤도는 불현듯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품었다.
남은 삶은 이 이상한 여자애를 위해 살아야겠다고 말이다.
그날, 헤도는 짐승의 삶을 벗어나 처음 인도人道로 발을 내딛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