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739)
제 777화
184화. 숙명을 넘어(12)
일행은 즉시 사방으로 검을 겨눴다.
흉신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드넓은 어둠 전체를 진동시키는 음울한 목소리만이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그것이 네게 무슨 말들을 하였느냐? 그 같잖고도 긴 저주는 명백히 나를 향한 원한 덕에 모두 똑똑히 전해졌으나, 다른 내용은 들리지 않더구나.]진은 가만히 허공을 노려보았다.
“사람끼리 나눈 말을 괴물이 알 필요는 없지 않겠나.”
[사람끼리 나눈 말이라, 이런. 너는 나로부터 떨어진 이 불순물을 사람으로 느꼈다는 말이냐?]“적어도 너보다는 사람에 훨씬 더 가깝더군.”
[후후,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지는 모르나, 아무래도 내 마지막 인간성이었던 불순물이 네 마음을 흔든 것 같구나. 내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하자마자 이 시체를 의식하고 있는 것을 보니…….]“멋대로 넘겨짚는군. 그만 떠들고 모습을 드러…….”
즈아아아악……!
진이 거기까지 말한 찰나, 별안간 젊은 로사의 시신이 갈기갈기 찢어지며 살점과 뼛조각이 튀었다.
시신에 맺혀 있던 혼기가 급속도로 부푼 까닭이었다.
흉신의 말대로 진은 젊은 로사와의 짧은 만남에서 묘한 감정을 느꼈었다.
만일 그녀가 그 순수하고 강인한 마음을 그대로 간직한 채 자신의 어머니가 되었다면, 흉신이 되지 않았다면, 그랬다면 어땠을까…… 그런 마음이 들었던 것이다.
그래서일까.
진은 눈앞에서 젊은 로사의 시신이 형체도 없이 찢어지는 모습에 상당한 충격을 받고 있었다.
겉으로는 전혀 내색하지 않았으나 흉신을 속일 수는 없었다.
[저런, 보기 힘든 모양이지? 지난번 내가 주려던 선물을 받았다면, 그런 쓸데없는 감정은 느끼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말이다…….]지난번 내계에서 진행된 진과 로사의 전초전에 대한 이야기였다.
젊은 로사의 시신은 형체조차 남지 않고 찢어졌는데, 증식된 혼기는 아귀처럼 사방에 떨어진 시신 조각을 집어삼키기까지 했다.
이어 혼기는 곧 일정한 형체를 갖추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거대하고 어두운 몸뚱어리가 형성되고 있었다.
사족보행을 하는 짐승과 유사한 형태였다.
시뻘건 안광을 내뿜는 불길한 눈동자, 사람의 몸통보다도 큰 발톱과 어금니, 빛을 모조리 빨아들일 것만 같이 어두운 털가죽. 인세에 존재하는 한 맹수와 매우 유사한 모습이었다.
흑표범.
인간 시절의 로사를 상징하던 이명.
놈은 거친 숨을 토하며 일행을 내려다보았다.
진은 흑표범의 눈동자를 마주하며 조소를 머금었다.
“마지막 인간성을 버렸으니, 이제 과거에 불리던 이명을 버릴 차례인가? 묘하게 인간 시절에 집착하는 느낌이 드는군. 실은 타락해서 흉신이 된 자기 자신의 모습이 후회스러워서, 무의식적으로 자꾸 이런 요사스러운 짓을 벌이는 것이 아닐까 싶은데.”
[내가 후회하는 단 한 가지가 있다면, 그건 너 대신 조슈아에게 힘을 실어주었던 것이다. 진즉부터 네가 진짜임을 알아보았다면…….]흉신은 뒷말을 흐리며 한동안 기괴한 웃음소리를 냈다.
그리고 십여 초가 지나자 더는 흉신의 목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다. 대신 흑표범이 성큼성큼 걸음을 옮기며 그림자를 드리웠다.
[크르륵…….]흑표범은 일행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천천히 주위를 돌았다.
용보다 육중한 몸뚱어리가 움직이고 있는데도 발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았다.
상황이 썩 좋지는 않았다. 방금 전까지 전대 가주들과 치열한 전투를 벌인 탓에 일행 대부분은 중상을 입은 상태였다.
일행 중 그나마 평소처럼, 혹은 평소와 유사한 전력을 낼 수 있는 건 진과 비앙카뿐이었다.
특히 옥타비아는 아예 전투가 불가한 수준이었다.
전투가 시작되면 일행은 그녀와 더불어 의식을 잃은 정체불명의 전대 가주까지 지키며 싸워야 했다.
때문에 일행은 잠시 대처를 고민했으나, 진은 이미 방법을 정했다.
“비앙카, 네가 아군들을 보호해라.”
진은 혼자서 흑표범을 상대할 생각이었다.
“혼자…… 싸우게?”
“그래.”
“저거…… 얼마나…… 강한지…… 알 수 없는데. 위험, 할지도.”
“내가 위험하다 싶으면 그때 도와.”
“그, 어…… 알았어.”
비앙카는 다시 생각해보라는 말을 하고 싶었으나, 진의 눈빛을 보고는 그만두었다.
그녀조차 일순 등허리가 서늘해질 정도로 진한 살기가 맺혀 있었다.
흉신을 향한 분노와 지금껏 전대 가주들을 구하느라 어쩔 수 없이 불리한 싸움을 해온 울분이, 한꺼번에 폭발하고 있었다.
“쳐부숴주마.”
진이 나지막이 말한 순간, 흑표범이 먼저 공격을 시작했다.
놈의 앞발이 공간을 일그러뜨리며 진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진은 그것을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받았다.
충격파가 번지며 거대한 반원 형태로 바닥이 내려앉았다.
하지만 앞발이 가격한 것은 진이 아니라 바닥일 뿐이다.
진은 앞발이 닿기 직전에 측면으로 보법을 밟으며 검을 휘둘렀다.
그때 휘두른 일격이, 잠시 멈춘 흑표범의 앞발 위로 검흔을 남겼다.
마치 공간 전체가 그대로 잘려나간 듯이 터무니없이 길고 반듯한 직선.
잠시 후 잔상이 사라지자 흑표범으로부터 한 덩이의 묵직한 무언가가 떨어지며 바닥을 굴렀다.
쿵-!
지면에 떨어진 것은, 방금 진을 향해 휘둘렀던 흑표범의 오른쪽 앞발이었다.
[크하악!]떨어진 앞발이 물처럼 녹으며 질척한 혼기의 웅덩이를 만들어냈다.
본래라면 잘려나간 부위는 순식간에 재생이 되어야 했으나, 브라다만테는 이미 흐릿한 영원화에 물들어 있었다.
흑표범의 환부는 쉴 새 없이 재생을 시도했으나 들러붙은 영원화 때문에 속도가 더뎠다.
[크흐으으…… 카하악!]흑표범이 남은 왼발을 휘두르며 진을 밀어냈다.
그러나 진은 그조차 단번에 베어버리며 눈을 부릅떴다.
또 한 번 흑표범의 발이 바닥에 떨어지며 묵직한 소음을 냈다.
앞발이 모두 없어진 흑표범은 제대로 중심을 잡지 못했다.
단 두 합 만에 단순 근접전에서는 진이 압도적으로 우위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그건 흑표범도, 아군들도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물론 아군들은 진이 우세하리라 생각하긴 했으나, 저 괴물을 이렇게까지 간단하게 압도할 줄은 몰랐다.
‘흉신이 이놈을 단지 젊은 로사의 시신을 능욕하기 위해서만 만들었을 리는 없다. 뭔가 위협이 될 만한 요소가 있기는 할 텐데.’
진의 시선이 떨어진 흑표범의 앞발들에 닿았다.
질척하고 검은 혼기로 이루어진 웅덩이들이 부글부글 끓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마치 강한 산성을 지닌 용액처럼.
‘바닥이 뚫리고 있어?’
지금껏 내계를 내려오며, 진과 일행은 이 공간에 대한 몇 가지 사실을 알아둔 상태였다.
우선 알펜이 말한 대로 한번 내려오면 다시 올라갈 수 없다는 것과, 내부 구조가 끊임없이 변한다는 것.
그리고 아공간을 이룬 혼기는 평범한 건물처럼 완벽히 무너뜨리는 게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
만일 그게 가능했다면 굳이 문지기처럼 각 층을 지키고 있는 적들을 만날 필요도 없이 그냥 다 파괴하면서 지하로 향했을 것이다.
그러나 흑표범의 신체가 녹으며 남긴 웅덩이들은 달랐다.
진의 영검으로도 뚫을 수 없던 혼기의 벽을 설탕처럼 녹이고 있었다.
때문에 진은 잠시 공격을 멈추고 웅덩이를 살폈다.
흑표범은 그 틈에 앞발들을 재생해냈는데, 완벽한 형태는 아니었다. 환부는 겨우 뼈대만 남은 듯 흉한 모양으로 재생되었고, 갈라진 틈마다 영원화가 이글거렸다.
콰직, 크드드득-!
다시 앞발로 진을 난타하는 흑표범은 영원화의 고통 때문에 움직일 때마다 비명을 내질렀다.
진은 일부러 공격을 피하기만 했다. 웅덩이의 효과를 알아내기 전까지 섣부르게 놈을 베어서는 안 될 것 같았다.
다만 문제는, 영원화가 놈의 재생 부위에 이미 균열을 일으켰다는 사실이다.
흑표범이 앞발을 헛치기만 해도 균열이 벌어지며 놈의 살점과 뼈 같은 게 사방으로 튀고 있었다.
그것들은 모두 처음 떨어진 앞발들과 마찬가지로 바닥을 녹였다.
진과 흑표범 근처는 벌써 커다란 구멍들이 수십 개나 뚫리고 있었다.
그 속으론 하층으로 내려갈 때마다 보았던, 끝을 알 수 없는 나락이 펼쳐진 모습.
불이 붙은 종이처럼, 바닥에 생긴 구멍들은 계속 넓어지고 있었다.
겨우 몇 초가 지났을 뿐이건만 벌써 뒤로 물러나 있던 아군 근처까지 확장된 것이다.
구멍의 정체는 알 수 없다. 내계의 하층으로 이어지는 구멍인지 아니면 빠져선 안 될 함정인지.
확실한 것은, 어느 쪽이든 저 구멍 속으로 빠지는 건 흉신이 바라는 일일 터였다.
때문에 진은 전투를 멈추고 아군들과 아직 구멍이 형성되지 않은 공간으로 뛰려는 생각을 했으나, 이미 그와 아군들 사이엔 뛰어서는 넘어갈 수 없는 나락이 형성되어 있었다.
‘대체 어느새!?’
초가 지날 때마다 흑표범에게 들러붙은 영원화가 거대해지고 있었다.
놈은 이제 흑표범이 아니라 푸른 불에 휩싸인 살덩이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놈이 움직일 때마다 그 살점들이 튀며 진과 아군 사이를 순식간에 녹여버린 것이다.
‘애초에 흑표범은 전투를 위해 만든 게 아니었다. 흉신은 내가 곧바로 영원화를 사용하리라 예상하고 이런 함정을 준비한 건가……!’
말하자면 이 상황은, ‘영원화’에 대한 흉신의 파훼이자 경고였다.
계속 자신과 자신의 군대를 상대하며 영원화를 사용하면 오히려 더 위급한 상황이 펼쳐질 수 있다는 경고, 추락하게 될 거라는 경고.
일단 진은 빙결계 마력으로 길을 만들어 아군을 향해 뛰었다.
바닥이 이런 속도로 붕괴된다면 추락을 피할 방도는 없다.
그러니 차라리 아군들과 붙어 있어야 했다.
“잡아라!”
진은 마지막 얼음길을 건너며 간신히 헤도가 내민 손을 붙잡았다.
하지만 그때는 이미 바닥의 9할 이상이 녹아내린 상황이었다. 진을 쫓던 흑표범조차 이미 아래로 떨어져서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결국 일행은 서로 꽉 붙은 채 추락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떨어질 때 다들 절대로 잡은 손을 놓지 말게. 아래층으로 이어지는 것이라면, 잠깐 손을 놓는 것만으로도 엇갈릴지도 모르네.]아군들이 알펜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자마자, 마지막 남은 바닥이 꺼지며 일행이 추락하기 시작했다.
쿵……!
이전과 달리 추락은 순식간에 끝났다.
바닥에 닿자마자 일행은 서로가 모두 손을 잡고 있는 모습을 확인하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으나.
주위를 둘러보자마자, 안도할 상황이 아니라는 걸 깨달아야만 했다.
[……저게 다 몇 마리란 말인가?]사방에 흑표범이 우글거리고 있었다. 얼핏 보기에도 수백 단위에 이를 것 같았다.
그 중심엔 일행과 함께 떨어진 흑표범의 모습도 보였다.
그리고 놈은, 고통에 미쳐 날뛰며 자신에게 들러붙은 영원화를 다른 흑표범들에게 옮겨붙이고 있었다. 전염병을 옮기듯이 말이다.
일행은 자연스레 다음에 벌어질 일을 상상했다.
이제부터 저 모든 흑표범들이, 영원화에 문드러지며 바닥을 녹여댈 터였다.
그걸 막지 못하면 기다리는 것은 단 하나.
끝이 없는 추락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