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738)
제 777화
184화. 숙명을 넘어(11)
이해할 수 없는 행동, 이해할 수 없는 말.
그리고 이해할 수 없을 만큼 약한 모습.
다리가 풀릴 듯 힘이 빠졌다. 젊은 로사에게선 그 어떤 혼기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야말로 사람이었다.
[이 무슨 일이란 말인가?]“진, 이…… 인간은…… 흉신, 인데.”
“12기수, 당장 죽여야……!”
뒤늦게 달려온 아군들도 두 눈을 휘둥그레 뜨며 진과 로사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옥타비아는 실신할 것 같은 와중에도 로사에게 지팡이를 겨누었다.
헤도가 그 지팡이를 손으로 내렸다.
“망령대장, 상황이 어찌 흘러가는 건지는 모르겠으나, 진이 판단하는 게 맞는 것 같소.”
쿨럭……!
진은 허공에 초점을 둔 채 말이 없었는데, 로사가 한 움큼 피를 토해내자 움찔하며 다시 그녀와 눈을 맞췄다.
이 사람은 정말 흉신이 아니란 말인가.
흉신의 계략이라면, 이렇게까지 해서 얻으려는 바가 대체 무엇인가.
‘단지 나를 혼란에 빠뜨리기 위해서라기에는 지나치다. 정말 이 모든 게 흉신의 개 같은 장난질이라면, 혼란을 유발한 다음 나와 아군들에게 직접적인 타격 또한 주었어야 한다.’
하지만 사슬에서 풀려난 로사는 단 한 번도 진을 공격하지 않았다. 젊은 로사가 보여준 무위는 일행에게 위협이 될 수준조차 되지 못했다.
로사는 오히려 방금 전까지 전대 가주와 일행이 싸우는 동안 엄호를 해주기까지 했다.
게다가 흉신과의 동화가 최고조에 이른 전대 가주는 사슬에서 풀려나기 직전, 마지막으로 진이 아니라 로사를 찔렀다.
그건 곧 흉신이 자기 자신을 죽이려 했다는 의미였다. 혹은 자신의 분신을.
‘……분신?’
불현듯 진의 뇌리에 한 가지 가정이 스쳤다.
만일 지금 죽어가고 있는 로사가 흉신으로부터 떨어져 나온 일종의 파편이라면?
그 추측대로, 젊은 로사는 끝까지 타락하고 싶지 않았던 흉신의 가장 깊은 내면이 분화되어 형상화된 존재였다.
이제 흉신이 절대로 되돌아갈 수 없는, 한때 가장 빛나던 시절의 자신이 분리된 결과인 것이다.
그게 지금 진의 눈앞에서 죽어가고 있는 로사의 정체였다.
애초에 로사는 자신이 흉신으로부터 분화되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했다. 그녀는 흉신과 자신을 완전히 다른 존재로 인식하고 있었다.
다만, 로사는 자신이 무언가 뒤틀린 존재라는 걸 깨닫고 있었다. 이곳은 그녀가 기억하는 세계가 아니었으니까.
왜 자신이 흉신의 사슬에 갇히게 되었는지, 시론과 가문의 다른 기사들은 어디에 있는지, 갇히기 직전까지 자신은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로사는 그 무엇도 기억할 수 없었다.
아무리 사람처럼 보인다 한들, 결국 진짜 사람이 아니라 흉신으로부터 분리된 무의식일 뿐이니 당연한 일이었다. 갇히기 직전의 기억이 있을 리 없는 것이다.
젊은 로사의 기억은 스물셋의 어느 날에 멈춰 있었다.
흉신이 가장 그리워한 시절, 그 어느 날에.
‘보아하니 난 여기 있어선 안 될 뒤틀린 존재로군. 게다가 아마 나의 아들일 진이라는 기사도, 다른 사람들도 모두 나를 흉신이라 부르고 있다.’
그렇다면 자신을 속박하고 있던 그 어두운 괴물이 바로 자신의 미래라는 말인가.
어째서인지 이것이 그저 끔찍한 악몽에 불과할 수도 있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너무나 확실하고 빠르게, 그녀는 자신이 처한 상황을 이해하고 있었다.
“하하.”
로사가 쇳소리 섞인 헛웃음을 내뱉었다.
만감이 교차되고 있었다.
궁금한 것이 너무 많았다. 자신이 어쩌다 그런 괴물이 되는 것인지, 시론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자식은 몇이나 낳았는지, 지금 자신으로 인해 가문은 얼마나 위태로워진 것인지.
로사는 관통된 흉부 속에서부터 독처럼 혼기가 온몸으로 퍼지는 걸 느꼈다.
“진, 조금 더…… 가까이에서. 얼굴을 보여줄 수 있겠나?”
진은 대답하지 않고 몇 초쯤 로사를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보다시피, 나는 치명상을 입었다. 그것도 흉신이 조종한 기사에게. 내가 그자의 편이 아니라는 증거지. 게다가 그대와 동료들은 내가 멀쩡했다 할지라도 감히 위협할 수 없는 수준이더군. 그러니 경계를 풀어주게, 내게 남은 시간은 그리 많지 않아.”
로사는 마지막으로 정신을 집중해 또박또박한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결국 진은 한쪽 무릎을 꿇고 로사 쪽으로 몸을 숙였다.
황망한 마음을 추스르고 다시 보니, 젊은 로사의 모습이 낯설면서도 익숙했다.
“잘생겼군……. 나와 시론의 얼굴을 정확히 반씩 섞은 느낌이야. 12기수라면, 그대가 막내인가?”
“……한 사람이 더 있다.”
“그럼 합쳐서 열셋? 시론과 내 금슬이 상상 이상으로 좋았던 모양이야. 그는, 어떻게 되었나? 설마 내가 시론까지 해한 건 아닐 테지?”
“건재하시다.”
“그렇다면 시론은 다른 곳에서 자신의 사명을 완수하고 있는 중이겠군. 괴물이 된 나를 꺾고 가문을 되찾는 역할은 그대가 시론을 대신해 맡은 것이고…….”
진은 ‘그대’라는 이인칭 대명사가 들릴 때마다 미간을 좁혔다.
로사는 그 모습을 보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시론과의 금슬만 좋았을 뿐, 그대의 표정은 내가 얼마나 끔찍한 어미였는지를 단번에 보여주는구나. 가문의 안주인으로서도 역대 최악이었을 테지. 패도를 넘어 패륜을 저지르는 악인이 그간 룬칸델에 전혀 없던 것은 아니나, 그중 흉신이 된 건…… 나뿐이겠지.”
젊은 로사는 진이 기억하는 로사와 전혀 다른 부류였다.
후자는 가문의 번영과 생존을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저지를 수 있는 악마였다.
반면 눈앞에서 씁쓸하게 웃고 있는 로사는, 오히려 룬칸델보다 하이란에 더 어울린다고 해도 무방할 만큼 맑고 깊은 눈을 하고 있었다.
“로사.”
“말하게.”
“왜 그랬나?”
진이 악에 받쳐 던진 질문에, 로사는 몇 초쯤 생각에 잠겼다.
“내게는 가문의 안주인이 될 자질과 자격이 모두 부족했을 뿐이겠지.”
“아니, 너는 흉신이 되기 전까지 분명 가문 모두가 경외하는 가주 대행이었다. 그 누구도 아버지를 대신해 가문을 이끄는 너를 부족하다 여기지 않았고, 권속들은 어떻게든 네게 인정을 받고자 갖은 노력을 해왔다.”
로사가 고개를 떨궜다. 출혈 때문에 힘이 빠지고 있는 것이다.
“너는 적과 너를 경멸하는 사람들조차 인정할 수밖에 없는 가주 대행이었다. 나 역시 그랬지. 네가 예언자와 결탁하고, 흉신이 되기 전까지는. 세상 전체가 멸망하더라도, 룬칸델의 깃발만 남아 있다면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말하는 미친 괴물이 되기 전까지는.”
“내가 그런 말을 했단 말이지…….”
“네가 한 말이고, 네가 저지르고 있는 일들이다.”
“이, 혼돈이라는 힘을 통해?”
로사가 자신의 환부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어느새 종양처럼 번진 혼기가 도드라지고 있었다.
“그래.”
“그렇다면 내가 괴물이 된 이유는 명료하군.”
투쟁을 포기한 결과다.
로사가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지쳤다는 이유로, 더는 길이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혹은 할 만큼 했으니 이제 됐다는 마음으로. 투쟁을 멈춘 것이다. 흉신이 되는 건 아주 편한 길이었을 테지. 아마…… 내가 태어나 흉신이 되기까지 걸어본 길 중, 가장 유혹적이고 쉬웠을 것이다.”
로사의 뺨을 타고 투명한 눈물이 흘러내렸다.
기억하지 못하는 미래에 대한 회한이, 자기 자신을 향한 증오가, 무슨 짓을 해도 이미 벌어진 끔찍한 미래를 돌이킬 수 없다는 절망이 그녀의 내면을 차갑게 저미고 있었다.
괴물이 된 진짜 로사를 상대로, 자신이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진은 질끈 눈을 감았다.
“나는 가문의 기수로서 그 죗값을 받아내러 가는 길이다. 흉신에게 남길 말이 있다면, 내게 알려라.”
“부디…… 죽음이 편안한 탈출구가 되지 않기를. 죽어서도 그 추악한 영혼과 육신이 어딘가에 갇혀 고통에 빠지기를, 영겁이 흘러도 결코 그 속에서 해방될 수 없기를, 내가…… 그 옆에…… 언제나 함께 있기를, 간절히. 그 무엇보다도 간절히…….”
일행은 잠시 숨을 참았다. 죽어가면서도 온 마음을 다해 자기 자신에게 저주를 퍼붓는 로사의 귀기가 일순 사람들을 짓누르고 있었다.
“전하겠다.”
로사의 남은 숨이 막바지에 이르렀다.
진은 그녀의 죽음을 곁에서 지켜주기로 했다.
로사는 의식이 꺼졌다 돌아오기를 반복하는 동안 진에게 말을 걸었다.
“진, 그대는…… 연인이 있나.”
“없다.”
“과거에는.”
“잘 모르겠군.”
“그대를 마음에 두고 있거나…… 그대가 홀로 마음에 품은 이는.”
“이 상황에 왜 그런 걸.”
“잘, 생겼기에…… 시론처럼. 난…… 시론이…… 잘생겨서…… 좋았다.”
크흡.
그 대목에서 진은 결국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시론과 로사의 자식들은 단 한 번도 부모와 이런 평범하고 쓸데없는 대화를 나눠본 기억을 갖고 있지 않았다.
“그보다…… 잘생긴 자도, 더 강한…… 자도 없어……. 시론 말고는, 다른 누구와도 교제를 하지 않았다.”
“아버지도 그러셨나.”
“그가 아직도 흑해를 헤매고 있다면, 아마도…… 시론은 나와 달리, 지금도 계속, 투쟁하고 있을 테지.”
로사가 한 줌의 더운 숨을 내뱉었다.
“진…… 아들아, 미안하다.”
반드시, 나를 멈춰다오.
그 말을 끝으로 로사는 숨을 거두었다.
그녀가 죽기 직전까지 내뱉은 모든 이야기는 모두, 진이 기억하는 로사가 결코 할 수 없는 말들이었다.
‘그래, 그렇게 할게.’
진은 속으로 대답하며 조용히 로사의 눈꺼풀을 감겨주었다.
죽은 로사가 자신이 알지 못하는 미래를 후회했듯이, 진은 자신이 알지 못하는 과거의 어머니를 보내고 있었다.
한동안 정적이 흘렀다.
“……죽은 로사는 흉신으로부터 떨어져 나온 자아나 영혼이었을 겁니다.”
진의 말에 일행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도 두 사람의 대화를 들으며 진과 같은 추측을 하던 참이었다.
[어쩌면 흉신 스스로 원치 않았거나, 예기치 못한 분리였을지도 모르겠군. 나는 속박된 기간 동안 흉신의 내면에서 이자에 관한 걸 느낀 기억이 없어. 게다가 흉신이 이 가주를 통해 마지막 순간에 공격한 건, 자네가 아니라 이자였지.]알펜이 아까부터 로사의 옆에 쓰러져 있던 전대 가주를 업으며 말했다.
그는 아직 의식을 되찾지 못하고 있었는데, 진과 알펜 둘 다 그의 정체를 알지 못했다.
젊은 로사의 시신이 검게 물들어가고 있었다. 가슴팍에서 시작된 혼돈의 종양이 빠른 속도로 커지는 모습이 보였다.
진은 손바닥 위에 한 덩이의 불꽃을 일으켰다.
시신이 더 흉해지기 전에 수습을 해주고 떠나야 할 것 같았다.
그러나 불꽃을 떨어뜨리려던 진은, 흠칫하며 고개를 들었다.
별안간 흉신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내 마지막 남은 인간성이 소멸하는 모습을 지켜본 감상이 어떤지 궁금하구나, 막내야. 이 어미는 네가 그것을 직접 끝장내는 모습을 기대하기는 했다만…… 이것도 나쁘진 않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