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737)
제 777화
184화. 숙명을 넘어(10)
헛숨을 삼킨 진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로사의 얼굴에서 사슬 조각이 떨어지는 모습이, 얼어붙은 듯 느리게 지나가고 있었다.
‘도대체 왜…… 로사가!’
사슬이 가리고 있었어야 하는 건 존경 받아 마땅한 전대 가주여야 했다.
진은 분명, 그런 선조를 구해야 된다는 일념 하나로 일부러 불리하게 싸워왔다.
상대의 숨통을 몇 번이나 끊을 수 있었음에도 기회를 버렸고, 치명상을 입힐 수 있던 순간에도 꿋꿋이 참았다.
어서 끝내고 등 뒤에서, 옆에서, 앞에서 사투하는 중인 동료들을 돕지 못한 건 그 이유였다.
그 모든 건 오직 사슬 안에 있었어야 할 선조를 최대한 온전한 상태로 구해내기 위한 노력이었다.
그런데 그토록 어렵게 구한 게 흉신, 로사라니.
그것도 이렇게 멀쩡한 모습의…….
속박에서 풀린 로사는 영묘에서 나온 다른 이들처럼 은은한 쪽빛으로 빛나지도 않았고, 혼돈의 괴물처럼 기괴하게 변형되지도 않았다.
그저 로사는 인간, 아니.
룬칸델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
빨려 들어갈 듯 검고 긴 흑발과 의지라는 광채를 품은 눈동자, 마주한 이를 고요하고도 무겁게 압박하는 시선, 결코 검을 놓치지 않을 듯 단단하게 그러쥔 두 손.
과거 오랜 세월 시론을 대신해 룬칸델을 이끈 가문의 안주인이자, 시대의 거인이었던 기사.
로사 룬칸델이 진과 눈을 맞추고 있었다.
이런 빌어먹을!
진은 저도 모르게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순간적으로 심마가 찾아온 듯 호흡이 가빠졌다.
차가운 현기증과 함께 치밀어 오르는 구토감을 겨우 억누르며, 진은 반사적으로 거리를 벌렸다.
이대로 다시 공방이 이어진다면 실수를 저지를 것 같았다.
당했다.
가장 먼저 그런 생각이 떠올랐다. 흉신이 자신에게 정신적 충격을 주기 위해 연극을 꾸민 것이라면, 이보다 더 성공적일 수는 없을 테니까.
아군들도 충격을 받고 있었다. 그들도 잠시 각자의 상대가 아니라 로사에게 시선을 둘 지경이었다.
‘침착해야 한다. 이건 흉신의 계략일 뿐이야, 저 인간처럼 보이는 로사는…… 흉신의 권능으로 빚은 일종의 파편일 테지.’
검을 다잡는 진.
“악취미가 늘었군…… 흉신. 나를 혼란스럽게 만들기 위해 이런 짓까지 벌일 줄은 몰랐다.”
하지만 진의 말에 로사는 전혀 예상치 못한 대답을 내놓았다.
“그대는 나를 알기에 구하려던 것이 아닌가?”
“……뭐라고?”
“어째서 나를 흉신이라 칭하는 것이지?”
또 한 번, 진은 속이 뒤틀리는 느낌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사슬에서 풀려난 로사는 목소리조차 부활자들 특유의 공명을 갖고 있지 않았다.
마치 정말로 살아 있는 사람 같았다.
어떻게든 끝끝내 룬칸델을 지키려던 사람 같았다.
심장이 미친 듯이 요동치고 있었다.
“나는 로사 룬칸델이다. 지금껏 나를 속박하고 있던 괴물을 어째서 나와 같은 사람이라 착각하는 것이냐?”
“무슨 소리를 지껄이는 거야…….”
“진!”
“12기수!”
뒤편에서 헤도와 옥타비아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시이잇-!
동시에 등으로 찔러 들어오는 날카로운 기운이 느껴졌다.
적이 진을 노리고 쏜 검기였다.
진은 로사에게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던 탓에 평소보다 조금 반응이 늦었다.
검기가 등허리를 스치며 핏방울이 튀었다.
상처가 깊지는 않다.
검기를 쏜 건 외팔이 된 전대 가주였다.
‘……아니, 전대 가주가 맞기는 한 건가?’
사슬을 베어내면 또 로사가 나오는 것은 아닌가.
형용하기 어려운 불쾌감이 계속 진의 뇌리를 어지럽혀댔다.
재차 날아든 검기를 피하며 돌아보니 지친 아군들이 보였다.
비앙카는 29대를 거의 빈사로 만든 상태였고, 알펜과 리온은 둘 다 만신창이가 되었으나 승부가 나지 않았다.
헤도는 35대를 끝장낸 후 옥타비아를 돕는 중이었다.
그들을 동시에 상대하면서도, 외팔의 가주는 오히려 전투가 처음 시작되었을 때보다도 더 강한 무력을 드러내고 있었다.
진이 방금 사슬을 하나 더 풀었으니, 그만큼 그 가주에게 작용하는 흉신의 영향력이 커진 결과였다.
“커헉!”
옥타비아가 한 움큼 핏물을 토하며 앞으로 허리를 꺾었다.
헤도는 그녀를 보호하느라 가주의 검기 몇 줄기를 직격으로 받았다. 그의 거대한 육체 곳곳에 창상이 가득했다.
“12기수? 그대가 가문의 12기수란 말인가? 그러고 보니 그대의 검은 브라다만테로군. 이름은 진…… 진 룬칸델. 이상한 일이야.”
로사는 아무것도 모르는 것처럼 말하고 있었다.
“닥쳐라!”
진이 헤도 쪽으로 몸을 던졌다. 우선 잠시라도 그가 회복할 시간을 벌어줘야 할 것 같았다.
로사는 뒤돌아 달리기 시작한 진을 방해하지 않았다.
오히려 진에게 날아드는 전대 가주의 검기를 요격하며 그를 엄호하기까지 했다.
검기를 요격하는 로사의 검은 지금의 흉신만큼, 혹은 진이 기억하는 가주 대행 시절의 로사만큼 위력적이지 않았다.
진은 흉신의 의도가 무엇인지 더 생각지 않기로 했다.
쩌엉-!
진과 전대 가주의 검이 맞부딪혔다.
단 한 번의 공방으로 진은 헤도와 옥타비아가 이렇게까지 고전한 이유를 납득했다.
가주의 검은 흉신의 그것처럼 상대에게 혼기를 주입하는 힘을 갖고 있었다.
이제 전대 가주는 단지 조종당하는 것이 아니라 흉신 그 자체와 동화되고 있는 것에 더 가까웠다.
진은 다시 브라다만테에 영원화를 일으켰다.
최대한 빨리 전대 가주를 끝내고 이 혼란스러운 상황을 정리해야 했다.
‘전대 가주가 또 다른 로사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으나, 확인은 해야 한다.’
그가 알펜 같은 진짜 전대 가주일 가능성을 그냥 닫아버릴 수는 없다.
상황이 벅차다는 이유로, 의심이 된다는 이유로 그 가능성을 닫는다면. 살아서도 죽어서도, 원치 않는 부활을 한 다음에도 가문을 위해 투쟁한 선조를 포기하는 셈이었다.
따라서 죽이지 않고 사슬을 끊어야 한다.
진이 고민하는 사이, 로사는 계속 엄호 태세를 한 채 진의 뒷모습을 응시했다.
무언가 할 말이 있는 사람처럼. 그러나 어떤 말을 먼저 시작해야 할지 모르는 것처럼.
진은 그런 로사의 모습을 확인하지 않고 전대 가주에게 검을 뻗었다.
‘함정이라 해도 상관없다, 흉신. 나는 네게 끝까지 저항한 선조들을 단 한 분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선조가 아니라 방금처럼 또 로사가 나타난다 할지라도, 뒤에 있는 로사와 함께 모조리 베어버리면 될 뿐.
가주에게 쇄도하는 진의 검은 더 이상 혼란을 품고 있지 않았다. 갑작스레 나타난 로사를 마주하고 어지러워졌던 내면이 정리되고 있었다.
평정을 되찾은 진이 전대 가주를 맡기 시작하자 헤도와 옥타비아 쪽에도 빠르게 여유가 생겨갔다.
비앙카가 마침내 29대를 소멸시킨 건 진과 전대 가주가 백여 번의 공방을 끝낸 시점이었다.
헤도와 옥타비아도 다시 참전했고, 알펜과 리온의 치열했던 혈전도 끝이 났다.
리온과 터커, 네프의 시체가 전투의 충격파에 바닥을 구르며 입자로 분해되고 있었다.
동수로 시작했던 전투는 이제 다대일의 구도를 갖추고 있었다.
아무리 동화되었다 한들 전대 가주는 결국 흉신이 아니다.
지금까지는 팔 하나를 잃은 채로도 전혀 허점이 없는 검을 구사했으나, 한계였다.
애초에 다섯을 상대로 지금까지 버틸 수 있던 건 진이 전대 가주를 죽이지 않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죽이기로 마음먹고 싸웠다면 전투는 훨씬 짧아졌을 것이다.
‘흉신, 이제 이런 같잖은 짓거리는 그만두고 직접 앞으로 나와라.’
키긱, 화르륵……!
브라다만테가 전대 가주의 얼굴에 덮인 사슬 한 가닥을 베어냈다. 영원화가 균열에 들러붙으며 사슬의 연결고리들을 녹이는 모습이 이어졌다.
조금씩 사슬 안쪽의 얼굴이 드러났고, 이번에도 진의 판단은 틀리지 않았다.
‘로사가 아니다……!’
아직 사슬이 다 끊어지지는 않았으나 얼핏 보기에도 로사와는 전혀 다른 얼굴이었다.
이내 진이 한 번 더 사슬을 베어내려는 찰나, 별안간 전대 가주가 브라다만테로 몸을 들이밀었다. 일부러 찔리려는 듯이.
진은 즉시 반응하며 측면으로 보법을 밟았다.
이제 영원화가 사슬을 다 태우기까지 고작 몇 초가 필요할 뿐인데, 여기서 선조를 잃을 생각 따윈 없었다. 몇 초만 지나면 전대 가주를 묶은 속박은 자연스레 녹아내릴 터였다.
전대 가주는 측면으로 빠진 진을 쫓지 않았다.
‘나를 그냥 지나쳐?’
전대 가주를 조종하고 있는 흉신의 목적은, 그가 진의 검에 찔려 죽도록 만드는 것이 아니었다.
흉신은 진이 피할 것을 정확히 예측했다.
애초에 흉신이 노린 건 바로 저 뒤편에서 계속 진을 지켜보고 있는 자기 자신.
로사였다.
아군은 모두 진의 앞쪽에 위치한 상태다. 진의 등 뒤에 남아 있는 건 오직 로사 한 사람뿐이었다.
푹-!
‘아?’
전대 가주의 검이 로사의 가슴팍을 파고들었다.
흉신은 지금껏 전대 가주를 조종하는 것만으로도 완전무결에 가까운 검술을 사용했건만, 어째서인지 진의 뒤쪽에 서 있던 로사는 그 검을 단 일격조차 받아내지 못했다.
분명 자기 자신의 검일 텐데도 말이다.
“큽……!”
로사는 신음을 삼키며 몸으로 들어온 칼날을 부여잡았다.
그녀를 찌른 전대 가주가 풀썩 쓰러지며 움직임을 멈추자, 로사는 한쪽 무릎을 꿇고 거친 숨을 토했다.
“우윽…….”
진은 그 모습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왜 흉신은 자기 자신을 찌른 것이며, 로사는 마치 사람처럼 괴로워하고 있는가.
그리고 어째서 이토록 불길한 예감이 자신을 덮쳐오고 있는가.
그 무엇도 이해할 수 없었다.
다만 진은 무의식적으로 로사를 향해 뛰었다.
치명상이었다. 칼에 찔린 로사가 정말 사람이라면, 곧 그녀는 절명할 것이다.
“흉신…… 이게 대체 무슨 짓거리냐.”
“아직도 내가…… 흉신이라는 존재로 보이는가.”
“왜 사람처럼 굴고 있……!”
진이 흠칫하며 말을 멈췄다.
로사가 왜인지 그가 기억하는 것보다 훨씬 더 젊은 얼굴을 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문득, 진은 로사가 사슬을 끊고 나왔을 때부터 이미 젊은 모습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고작 이십 대 초중반이나 되었을 법한, 자신의 또래처럼 보이는 얼굴을 다시 직시하니.
심장이 내려앉는 것 같았다. 진의 숨소리가 거칠어지고 있었다.
“이제야 상황을 어렴풋이나마 알 것 같군……. 진. 그대는 나와 시론의 자식일 테지. 그와 나는 마지막 아이에게 그 이름을 붙이기로 했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