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736)
제 777화
184화. 숙명을 넘어(9)
* * *
지하 2층.
진을 비롯한 다섯 사람은 하강을 끝내자마자 공기가 갑갑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지하 2층은 오러와 마력 생성을 방해하는 기운이 훨씬 증폭되어 있었다.
“아까…… 알펜이, 말한 것보다…… 더 심해.”
비앙카가 대검에 오러를 형성하고 해제하기를 반복하며 말했다. 대검에 맺힌 기운은 평상시의 7할 수준에 그치고 있었다.
나머지 인원도 비슷한 상황이었다.
사슬이 끊어지기 전까지는 전혀 영향을 받지 않던 알펜도 마찬가지였다.
“감각도 다소 둔해진 느낌이군.”
“단지 느낌이 아니라 실제로 둔해졌소, 망령대장. 미미하긴 하지만 말이오.”
헤도의 대답에 옥타비아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아군과 떨어진 것도 모자라 개인의 무위에도 문제가 생기고 있으니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확실히 내가 인지하고 있던 것보다 곱절은 심해졌군.]“어쩌면 오러 방해가 심해진 이유가 알펜 경이 흉신의 조종에서 풀려났기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나를 조종하는 일에 쓰던 기운이 빠지는 대신 그만큼 여유가 생겼을 테니, 오러 방해를 더 강화했다?]“그렇습니다.”
[일리가 있는 이야기네.]일행이 직접 확인할 방법은 없으나, 진의 추측은 정확했다.
다만 간과한 부분이 하나 있다면 타샤의 존재였다.
알펜뿐만이 아니라 동맹군 쪽에서 타샤 역시 속박에서 풀려났으니, 방해가 이토록 심해진 건 당연한 일이었다.
어차피 무슨 일이 있든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 진은 일행들에게 그 사실을 재차 상기시켰다.
이번에도 그저 한없이 검고 드넓은 공간이었다.
일행은 마치 사막 위인 것처럼 한동안 묵묵히 걸음을 옮겼다.
무언가 보이기 시작한 건, 일행이 슬슬 걸음 수를 헤아리는 걸 그만두었을 때쯤이었다.
저 멀리 사람으로 보이는 윤곽이 드러나고 있었다.
‘이번엔 다섯인가…….’
거리가 가까워지자 정확한 머릿수가 드러났다.
꼭 일부러 맞춘 것처럼 인원이 같다는 사실에 일행은 잠시 위화감을 느꼈다.
[어서들 오게.]가운데에 서 있는 기사가 입을 열었다.
진은 기사의 허리춤에 걸린 쌍검을 보고 곧장 그를 알아보았다.
‘16대 가주, 리온 룬칸델이다. 대검은 29대 가주 터커 룬칸델, 사슬검은 35대 가주 네프 룬칸델이겠군.’
반면 그 셋과 달리 평범한 장검을 소지한 나머지 둘은 알아볼 수 없었다.
얼굴이라도 드러나 있다면 과거에 본 초상화와 기억을 대조해서 알아볼 수 있을 테지만, 그 둘은 사슬이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즉, 진이 존중할 사람은 그중 두 사람뿐이었다.
“부족한 후손이 두 선조님을 뵙습니다. 조금만 더 버텨주십시오. 제가 곧 속박을 풀어드리겠습니다.”
[거기 서 있는 20대처럼, 여기 이 두 사람도 자네가 구할 수 있을 것 같나?]“그렇게 될 것이오, 리온.”
푹-!
별안간 리온의 검이 그의 옆에 있던 가주의 왼팔을 베었다.
사슬에 묶인 가주였다. 툭, 팔이 떨어진 가주는 인형처럼 반응이 없었다.
진은 미간을 좁히며 리온을 노려보았다.
[가주는 절대적이다. 그건 가문이 시작된 날부터 지금까지 변하지 않은 법도지. 이자나 자네처럼, 그 법도를 어기는 자는 가문에 필요치 않다네. 아무리 뛰어나다 한들 물을 흐릴 뿐이다. 자네들은 현 가주, 로사 룬칸델의 권위를 훼손하고 있어. 지금이라도 그만두도록 하게.]치잉!
한 줄기 섬광이 리온의 가슴팍으로 날아들었다. 알펜이 쏜 검기였다.
리온은 손으로 검기를 쳐내며 알펜을 쳐다보았다.
[내 어린 시절, 가문의 오랜 권속들에게 고조부의 무용담을 들으며 가슴이 뛰었었소만. 오늘 보니 다 거짓이었군……. 권위? 가문을 이 지경으로 만든 괴물에게 무슨 권위가 있다는 말인가!] [20대, 그대는 빛의 기사라 불리며 유례없이 큰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지. 그 업적을 간직한 채 가주의 뜻을 따랐다면 무척 보기 좋았을 것이네.] [닥치시오, 내 오늘 추억이 더럽혀진 값을 받아야겠으니. 사슬 없는 자들은 모조리 소멸할 것이오.]진은 리온이 팔을 벤 가주를 더 공격하지 않는 걸 확인했다.
‘검을 쓰는 오른팔은 남겨두었다. 왼팔을 자른 건 단지 우릴 자극하려는 심산일 뿐, 진짜로 가주를 죽여서 전력을 심각하게 손실시킬 생각은 없어.’
그렇다면 사슬에 묶인 가주 둘 다 구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오 대 오.
한 사람씩 맡아 싸우는 게 자연스럽다.
진은 리온이 옆에 있던 가주의 왼팔을 벤 순간부터 자신의 상대를 고른 상태였다.
‘나는 팔이 잘리지 않은 가주를 상대하며 최대한 온전한 상태로 구출해내고, 알펜 경은 리온을 맡는다.’
진이 생각하는 사이 비앙카는 계속 터커의 대검에 시선을 두고 있었다.
“진…… 나는…… 저기…… 대검, 상대할래…….”
“그렇게 하고, 헤도 경은 사슬검을 쓰는 35대 가주를 상대해주십시오. 옥타비아는 왼팔을 잃은 선조님을 맡아라.”
진은 다섯 중 현재는 옥타비아가 가장 약하다고 생각했다.
망령대원들을 데리고 있거나 마신석에 강화된 상태라면 몰라도, 지금으로서는 그녀가 가장 떨어지는 상대를 맡아야 했다.
“단, 절대로 선조님을 살해하지 마라. 사슬만 풀어내면 아군이 될 분이다.”
“노력해보지.”
“노력이 아니라 반드시 그렇게 해.”
안 그러면 내가 너를 죽여버릴 거니까.
진은 그 뒷말을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으나, 옥타비아는 순간적으로 등허리가 서늘해지는 걸 느끼며 이를 악물었다.
구도 정리가 끝났다.
긴말은 필요치 않았다. 누군가 휘말려 다칠 일도 없으니, 한쪽이 끝장날 때까지 붙으면 그만이었다.
전투의 시작을 알린 건 진의 룬칸델 제3결전기, 유성우였다. 새하얀 검기들이 어둑한 허공을 찢으며 떨어지고 있었다.
전대 가주들이 좌우로 흩어져 유성우를 피했다.
유성우의 검기가 지면을 때릴 때마다 지진이 일어나며 묵직한 충격파가 퍼졌다.
유성우가 중반에 이르기도 전에 곳곳에서 가문의 결전기가 난무하는 모습이 이어졌다.
룬칸델의 가주였던 자만 여섯에 진까지 있으니 당연한 풍경이었다.
이곳이 일반적인 성이었다면.
전투가 시작되고 1분이 지나기 전에 대부분의 건물이 형체도 없이 파괴되었을 것이다.
멀리서 보면 이들의 싸움은 한 수 한 수가 자연재해와 다름이 없었다.
힘의 크기는 전대 가주들 쪽이 우위인 듯 보였다.
진 일행은 기운 생성에 제약이 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전대 가주들은 오러뿐만이 아니라 혼기까지 자유자재로 사용하고 있었다.
시커먼 폭풍이 쉴 새 없이 싸우는 이들을 덮쳐댔다.
진 일행만 그 혼기에 타격을 받았다. 각자 맡은 상대를 온전히 자신에게 묶으려면, 그 혼기를 제대로 피할 수도 없었다.
일행은 탐색전 없이 전력을 펼치고 있었다.
최대한 빨리 각자 맡은 상대를 꺾고 다른 쪽을 지원하는 식으로 전황을 이끌어 가야만 했다.
‘12기수가 나를 이자와 붙게 한 건 왼팔을 잃은 만큼 전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판단이었겠지만, 아무래도 오산이로군.’
옥타비아가 전대 가주의 검을 받아내며 생각했다.
오른손잡이라고 해도 양손을 다 쓰지 못하는 건 분명 치명적인 제약이다.
그러나 옥타비아의 상대는 다른 가주들보다 더 매섭고 빈틈없는 검을 구사하고 있었다.
마법사인 옥타비아의 눈에도 보일 만큼 뚜렷한 수준차가 있는 것이다.
이내 옥타비아는 그 이유를 깨달을 수 있었다.
‘……이자는 지금 자신의 실력으로 싸우는 게 아니다. 조종자, 흉신의 검술이 그런 경지에 닿은 것이겠군. 팔 하나가 없더라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 그런 게 가능한 일인지는 몰라도.’
매 순간 오싹할 정도로 예리한 일격이 몸으로 파고들었다.
내계가 한층 깊어진 탓인지, 로사는 알펜 때보다 더욱 섬세하게 전대 가주를 조종하고 있었다.
진도 그 사실을 알아보고 있었다.
그 역시 자신의 상대와 검을 섞으며 체감하고 있는 것이다.
‘옥타비아가 아니라 헤도 경을 저쪽에 붙였어야 했어. 이대로라면 옥타비아가 당하는 건 시간문제다. 내가 최대한 빨리 선조님을 꺾고 돕는 수밖에 없나.’
진이 거기까지 생각한 찰나, 헤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진! 망령대장은 걱정 마라, 내가 지원할 테니!”
“나도…… 최대……한, 도와…… 볼게!”
다행히 헤도와 35대, 그리고 비앙카와 29대 사이에도 격차가 있는 상태였다.
알펜과 리온은 진조차 가늠할 수 없을 만큼 박빙이었다.
이내 진은 자신의 상대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흉신의 사슬 아래, 끝내 꺾이지 않은 룬칸델의 빛나는 눈동자가 보이는 것 같았다.
“흉신, 이런 식으로 선조님들을 자꾸 욕보이는 이유가 무엇이냐. 사슬로 묶고 억지로 조종해봐야, 결국 알펜 경처럼 모두 다시 네게 검을 겨눌 터. 몸을 빼앗을 순 있어도 영혼을 타락시킬 수는 없다.”
스악!
진과 상대의 손등에서 동시에 핏물이 터졌다. 서로를 찌른 검이 스친 것이다.
두 사람은 각자의 오른편으로 몸을 회전시키며 검기를 쏘았다.
“영혼이 안 되면 육신이라도. 그렇게라도 진짜 룬칸델들을 가지고 싶은 거냐?”
화르륵……!
브라다만테에 미약한 마력이 휘감기며 푸른 불꽃을 일으켰다.
영원화, 무엇으로도 꺼뜨릴 수 없는 불.
“네 룬칸델은 정당하지 않다. 그렇기에 사슬로 포박하지 않고는 적자들을 움직일 수도 없지. 내가 보기에 선조님들을 조종하는 네 사슬은, 그런 결핍과 자괴감이 형상화된 결과물이다. 넌 신인 척하고 있지만, 사실 여전히 나약하고 추악한 인간에 불과하지.”
더러운 힘으로 가문을 취하고, 공포로 사람들을 억압하고, 거대한 성을 짓고, 언제든 온 세상을 멸망시킬 준비가 된 듯 권능을 과시해도.
그렇게 아무리 네 본모습을 가리려고 해도…….
본질은 가려지지 않는다.
진이 말을 이어갈 때마다 상대의 검술에 허점이 생기고 있었다.
팔 하나가 없어도 완전무결할 수 있던 검술이 조금씩 무너지고 있었다.
반대로 진의 검은 점점 더 깊고 투명한 불을 품었다.
한 뼘씩, 영원화가 사슬과 가까워지고 있었다.
흠이 생긴 검으로는 그 불이 가까워지는 걸 막을 수 없다. 버티고 버티며 검이 사슬에 닿는 걸 늦출 수만 있을 뿐.
진과 상대의 공방은 전장을 가득 채운 굉음이 잦아들 때까지 이어졌다.
진은 자신의 싸움에 심취한 탓에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도 알지 못했다.
다만 확실히 알 수 있는 건, 마침내 영원화에 물든 브라다만테가 상대를 휘감고 있는 사슬에 닿았다는 사실.
철걱……!
사슬이 끊기는 소음과 함께, 진은 상대의 눈을 바라보았다.
겨우 육신을 되찾은 선조에게 다시 인사를 올려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사슬이 끊어지며 드러난 상대의 얼굴은 룬칸델의 옛 가주가 아니었다.
“로……사!?”
흉신 로사.
사슬이 가리고 있던 건, 인간의 모습을 한 그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