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735)
제 777화
184화. 숙명을 넘어(8)
히이이이……!
마신석이 개방되며 일으킨 불길한 공명음과 함께, 전장 전체로 거대한 화염이 번져나갔다.
벌떼처럼 달려들던 기사들이 화염에 휩쓸려 불타는 시체의 강을 이루었다.
베라딘은 마치 쓰레기라도 태우는 듯 무미건조한 얼굴로 적들을 불살랐다.
‘결국 친우가 저 불길한 힘을 직접 사용하는 걸 보게 되는군……. 게다가 저 모습은, 흡사 켈리악 지플과 같지 않나!’
단테는 가슴속에서 씁쓸한 무언가가 올라오는 걸 억누르며 적진을 돌파했다.
변해버린 베라딘의 모습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마신석, 혼돈, 그 밖의 인도와 상식을 벗어난 끔찍한 힘들이 자신의 가족과 땅, 그리고 친구들을 망치고 있었다. 죽음으로 몰아넣고 있었다.
‘진, 그대는 괜찮은 것인가……!’
단테는 화풀이를 하듯 거칠게 검을 휘둘러댔다.
혼돈의 기사들이 육편이 되어 사방으로 비산하는 모습이 쉴 새 없이 이어졌다.
선봉을 맡은 3인방 중 카둔과 베일은 아군의 주포와 마법을 피하며 비행하느라 다소 돌파가 느려진 반면, 단테는 그야말로 막힘없이 적진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라시드에 맺힌 새하얀 광휘가 꼭 귀기처럼 보일 지경.
그런 단테를 처음으로 주춤하게 만든 건, 라이오넬의 검이었다.
쩌엉-! 콰드득!
단테가 직선으로 내리꽂힌 일격을 막아내자 지면에 거대한 반원이 파였다.
하체와 허리가 뻐근해지는 감각에 단테는 눈을 부릅떴다.
[분노가 차오른 듯 보이는군, 젊은 검황성주.]검도의 경지에 이른 라이오넬의 오러가 잔상을 남기며 단테의 온몸에 얕은 상처를 내고 있었다.
“당신은 화가 나지 않소? 한때 당신이 이끌었던 가문이 이토록 타락해버린 것에.”
라이오넬은 씨익 미소를 지으며 라시드에 시선을 두었다.
[강해지기 위한 타락은 투쟁의 또 다른 이름일 뿐이지. 가주와 12기수의 선택 중 무엇이 옳은지는, 이 전쟁이 끝나면 완벽하게 증명될 것이다.]핏!
이번엔 한 줄기의 무형검기가 라이오넬의 뺨을 스쳤다.
[보이지 않는 검이라……. 재미있어. 네 조부가 처음으로 도달한 검이라지? 이 시대는 대체 어떻게 되어 먹은 것인지 모르겠군. 내 시대였다면 절대자였을 자들이 몇이나 되다니, 지금은 참 빛나는 시대이지 않나!]라이오넬은 진심으로 즐거운 듯 광인처럼 웃음을 터뜨렸다.
두 사람의 검이 그 웃음을 잘게 흩으며 뒤엉켰다.
하지만 단테는 좀처럼 전투에 완전히 집중하지 못했다.
진과 동맹군이 엇갈린 이유, 망가진 베라딘, 벌써 몇천은 죽었을 텐데도 오히려 처음보다 늘어난 혼돈의 군대들, 그 속에서 하필이면 지금 이 순간에 감정 조절이 잘 안 되는 자신.
그 모든 요소들이 뒤섞이며 설명하기 어려운 불쾌감을 자아내고 있었다.
‘진이 걱정되기 때문인가? 아니면 적이 너무 많아서? 집중해야 하는데, 도대체 갑자기 왜…….’
방금까진 증오에 차 미친 듯이 적진을 뚫었고, 지금은 코앞에 강적을 두고도 정신이 산만하다.
경지에 오른 후, 아니. 지금처럼 강해지기 전에도 단테는 이렇게까지 해이한 정신상태에 빠져본 적이 없었다.
특히 임전 중이라면 더더욱.
라이오넬은 그 사실을 놓치지 않았다.
[이 나를 앞에 두고 다른 생각을 하는 자는 또 처음이로군. 괜찮겠나? 젊은 검황성주, 나와 달리 네 목숨은 하나일 텐데!]처엉, 콱!
라이오넬의 횡베기를 막은 단테가 왼쪽으로 몇십 걸음이 밀려나며 바닥을 굴렀다.
한 박자 늦게 반응한 탓에 자세가 무너진 것이다.
그리고 그 근처에 떨어진 것은 단테뿐만이 아니었다.
조금 전 베일과 전투를 시작한 또 다른 전대 가주가 단테의 옆에 처박힌 상태였다.
그는 곧장 일어나서 재차 돌진하는 베일을 향해 쌍검을 휘둘렀고, 단테도 후속타로 이어진 라이오넬의 검기를 피하며 자세를 고쳤다.
[야, 단테! 무슨 그딴 놈한테 밀리고 있어? 똑바로 안 싸워? 눈이 왜 그렇게 멍하냐?]그렇게 말하는 베일도 당장은 단테를 도울 여유가 없는 듯했다.
단테는 베일과 싸우는 전대 가주에게 또 한 번 시선을 빼앗겼다.
‘얼굴에…… 저 사슬은 뭐지?’
그 가주에게도 알펜처럼 얼굴에 사슬이 휘감겨 있었다.
그건 그가 로사에게 저항하고 있다는 증거였으나, 아직 이쪽의 동맹군들은 알 수 없는 사실이었다.
애초에 베일이 지금 쉽사리 상대를 밀어붙이지 못하고 있는 건, 그를 조종하고 있는 게 바로 로사이기 때문이었다.
베일은 검술의 현묘함보다는 순수한 파괴력으로 상대를 제압하는 전투에 익숙하니 특히 상성이 좋지 않았다.
다만, 단테는 저도 모르게 베일을 향해 소리쳤다.
[베일 경, 그자를 죽이기 전에, 얼굴의 사슬을 먼저 없애시오!]이유는 알 수 없었다.
어쩐지, 베일이 저 가주의 사슬을 끊어내면 묵은 체증처럼 자신을 짓누르고 있는 압박감이 사라질 것 같다는 직감이 강렬할 뿐.
[뭐라고? 사슬은 왜? 그보다, 네가 나한테 명령할 위치야?]“꼭 그렇게 해주시오! 명령이 아니라 부탁이오.”
[시끄러워, 그냥 죽여버릴 거야.]이어 단테는 카둔이 맡은 전대 가주의 모습도 살폈다. 그에게는 사슬이 존재하지 않았다.
다시 베일은 사슬에 묶인 가주와 왼편 전장으로, 단테는 쇄도한 라이오넬의 검을 받아치며 전장 중앙을 향했다.
[호오, 사슬의 효과를 알기 때문에 집중하지 못하고 있던 것인가? 무슨 수로 알아냈는지 궁금하군.]단테는 대답 대신 무형검기를 흩뿌렸다.
평소보다 감각이 둔하니, 난전을 이끌어 시간을 번 후 정신을 다잡을 요량이었다.
[의도가 뻔해. 게다가 이런 건 지나치게 올곧은 네 검에 어울리지도 않지.]라이오넬은 단숨에 혼기를 폭발시키며 허공을 채운 무형검기를 지워냈다.
단테는 역으로 그의 흐름을 쫓아야 하는 형세가 되었다.
게다가 방금 라이오넬이 ‘사슬의 효과’라는 말을 언급한 탓에, 더더욱 신경이 그쪽으로 쏠렸다.
단테는 수세에 몰리면서도 힐끗대며 자꾸 베일 쪽을 쳐다보는 지경에 다다르고 있었다.
기필코, 저 사슬이 끊어지는 모습을 지켜봐야만 가슴이 뻥 뚫리며 제대로 싸울 수 있을 것 같았다.
[검황성주, 아까부터 자꾸 왜 이러나 했더니…… 심마에 빠진 게로군.]라이오넬의 말대로, 단테의 현 상태는 심마에 빠진 것과 다름이 없었다.
한순간만 방심해도 목숨을 잃을 수 있는 판국에 중심을 잡지 못하고 있으니.
단테의 몸에 쌓이는 잔상처가 점점 깊어졌다.
그런데도 단테는 라이오넬의 검보다 계속 베일과 전투 중인 전대 가주의 사슬을 더 크게 의식하고 있었다.
상공에서 전장 전체를 아우르며 마법을 난사하고 있는 베라딘조차, 그런 단테를 내려다보며 이해할 수 없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검황성주 단테 하이란, 도대체 지금 무슨 짓거리지? 적장을 앞에 두고.’
‘제발 끊어져라, 어서……!’
철컥!
단테의 간절한 마음이 극에 달한 찰나, 베일이 전대 가주의 사슬을 끊어냈다.
알펜과 마찬가지로 혼돈에 물들지 않은 강인하고 맑은 얼굴이 드러나는 모습.
그는 사슬이 끊어지자마자 베일에게 겨눈 검을 거두었다.
[나약하여 죄지은 후손이 인사 올리겠습니다, 십대기사 베일 경. 가문의 21대 가주 타샤 룬칸델입니다. 선조님께서 속박을 풀어주신 덕분에 드디어 흉신이 아닌, 제 의지로 검을 쥘 수 있게 되었군요…….]타샤 룬칸델.
그녀는 룬칸델의 20대 가주 알펜의 딸이자, 21대 가주였다. 그녀도 아버지처럼 흉신의 권능에 굴하지 않고 있던 것이다.
베일은 얼떨떨한 얼굴로 타샤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사라와 무척이나 닮은 얼굴을 지니고 있었다.
[어…… 그, 그래. 그, 사슬이 일종의 구속구였던 거냐?] [그렇습니다, 선조님. 방금까지 흉신의 조종에 의해 감히 무례를 범한 점, 용서해주십시오. 또한 지금부터 제가 현 룬칸델의 12기수를 따라 함께 싸우는 것을 허락해주시겠습니까?]타샤 또한 흉신의 힘에 묶여 있는 동안 그 내면을 통해 현재 상황을 파악한 상태였다.
[그게 나한테 권한이 없기는 한데…… 분명 그 녀석이라면 쌍수를 들고 반길걸.] [영광으로 알겠습니다.]말을 끝맺기 무섭게, 타샤의 눈동자에 지독한 살의와 투지가 맺혔다.
그 눈동자가 향하는 곳은 물론 임시 동맹이 아니라 혼돈의 군대였다.
아!
그 순간 단테는 비로소 깨달을 수 있었다. 지금껏 무엇이 자신을 심마에 빠뜨리고 있었는지를.
‘돌아올 수 있어……! 베라딘 공도! 저렇게, 돌아올 수 있는 것이다!’
지금 타샤 룬칸델이 주박을 벗어나 다시 룬칸델의 의지를 빛내고 있는 것처럼.
마신석을 사용하는 일조차 거리낌이 없을 정도로 괴물이 된 자신의 친구, 베라딘도 얼마든지 돌아올 수 있다는 마음.
그 마음이 생기자 한없이 산만했던 머릿속이 일시에 가라앉고 있었다.
진의 안위나 죽여도 죽여도 끝이 없는 혼돈의 군대, 이 전쟁에서 제국제일검으로서 반드시 보여줘야 할 모습을 실현하는 일에 대한 압박.
그런 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진은 결국 반드시 이길 것이며 흉신의 군대는 오늘로 이 세상에서 영원히 사라질 것이라는, 단테가 가진 그 굳은 믿음은 처음부터 줄곧 흔들린 적이 없었다.
단지 결전이 끝난 후, 베라딘이 끝내 본래대로 돌아오지 못하고 또 다른 흉신이 될까 봐 두려웠을 뿐.
라이오넬과 싸우는 동안 단테의 내면을 어지럽힌 건 오직 그 하나뿐이었다.
혼돈을 빠져나와 혼돈을 향해 검을 뻗고 있는 타샤의 모습이, 단테에겐 강렬한 예언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라이오넬의 검이 단테의 머리로 날아들고 있었다.
단테는 그쪽으로 몸을 돌리지도 않은 채 무형검풍을 형성했다.
맥없이 지워진 이전과 달리, 라이오넬은 좀체 그 검풍을 뚫지 못했다.
“당신의 말이 맞소, 사자왕. 나는 방금까지 잠시 심마에 빠졌었소.”
[드디어 정신을 차리려는 모양이군.]“하지만 당신은 부활한 그날부터 지금까지 점점 더 나락으로 빠지고 있군. 그러니 한때 검가의 지존이었음에도 지금껏 맹하게 있던 나를 베지 못한 것이오. 또한 당신의 곁에, 죽음이 다가와 있다는 것조차 알지 못했을 테지.”
[무슨 소리를…… 흡!]별안간 라이오넬이 헛숨을 내뱉으며 제 옆구리를 내려다보았다.
죽음, 요나를 상징하는 검이 그의 옆구리를 꿰뚫고 있었다.
“히히.”
요나는 라이오넬이 거칠게 뻗은 손길을 피하며 순식간에 전장의 혼란 속으로 사라졌다.
“내 목숨은 당신과 달리 하나라며 경고를 했었지, 사자왕. 그대야말로 계속된 부활과 흉신에 대한 믿음으로 인해 검이 많이 무뎌졌소. 영묘에서 깨어난 후, 이번이 몇 번째 죽음이오?”
단숨에 거리를 좁히는 단테.
“부디, 이번엔 진정 마지막이길 바라오. 죽어서라도 흉신의 늪에서 빠져나오기를 빌어주겠소.”
스악!
라시드가 라이오넬의 목을 지나갔다.
툭, 목이 떨어지는 덧없는 소음이 일었다.
남은 한 명의 전대 가주를 찾아 고개를 돌리는 단테의 시야에, 타샤와 베라딘의 모습이 잡혔다.
‘비록 엇갈렸다고는 하나 계속 흉신의 성을 나아가다 보면 곧 다시 마주치게 될 테지, 진. 저 모습은, 그대에게도 힘이 될 것이라 믿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