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734)
제 777화
184화. 숙명을 넘어(7)
후드득-!
사슬 조각들이 바닥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얼굴이 드러난 알펜은 얼떨떨한 듯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는 진의 예상보다 훨씬 젊은 얼굴이었다.
진은 직감적으로 알펜을 조종하던 로사의 기운이 풀렸다는 사실을 알아보았다.
“처음 뵙겠습니다, 선조님. 룬칸델 59대 가주 시론 룬칸델의 열두 번째 기수, 진 룬칸델입니다.”
진은 한쪽 무릎을 꿇으며 정식으로 예를 갖췄다.
알펜은 잠시 진의 등 뒤에서 이어지는 전투 상황과 그를 번갈아 쳐다보다가 이내 흡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현 세대에도 빛이 나는 자가 있도다. 우선 사태가 시급하니 역도들을 먼저 도륙하도록 하지!]“그리하겠습니다.”
방금까지 혼기에 물들어 탁했던 알펜의 장검이 새하얗게 이글거리고 있었다.
빛의 기사라는 칭호에 걸맞게, 그의 오러는 분명 평범한 무인들의 그것보다 더 강하고 밝은 빛을 품은 모습이었다.
[역도들이여, 네놈들에겐 흑기사의 투구를 쓸 자격이 없음이니…….]알펜이 전장 중앙으로 돌진하며 장검을 내질렀다.
그 검에 비앙카와 공방하고 있던 흑기사대장의 보법이 어그러졌고, 진은 그 틈에 그의 머리로 검을 떨궜다.
투구가 터지며 혼돈에 검게 물든 괴물의 얼굴이 드러났다.
센가도, 이곳에 있는 흑기사들도.
한때는 가문에 헌신해 영묘에 안치되는 영광을 누린 자들이었으나, 지금은 이토록 썩어 문드러진 괴물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알펜과 흑기사대장의 얼굴이 대비되고 있었다.
흑기사대장이 도약해서 위기를 벗어나려는 찰나, 다시 한번 진과 비앙카의 검이 그의 움직임을 묶었다.
그리고 알펜의 찌르기가 흑기사대장의 얼굴로 파고 들어갔다.
터엉-!
포가 쏘아지는 듯 무거운 파공음과 함께, 흑기사대장의 머리는 그대로 사라지고 말았다.
[이제 그만 당치 않은 짐을 내려놓으라.]흑기사대장이 죽자 나머지 흑기사들은 구심점을 잃었다.
그들은 애초에 진이 합류하기 전부터 우세를 잡지 못했고, 아군과 알펜까지 합류했으니 더는 손을 쓸 방법이 없었다.
도주조차 불가능했다. 이 황량한 공간엔 그들이 도망칠 수 있는 길이 존재하지 않았다.
혼돈에 물들었다곤 하나 그래도 흑기사였던지라, 그들은 한동안 나름대로 잘 버티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였다. 인간의 역사 전체를 통틀어도 최상위 순위권에 자리할 무인들을 상대하기엔 한없이 부족한 것이다.
크직!
한동안 이어진 전투가 끝난 건, 헤도가 마지막 남은 흑기사의 몸통을 짓이긴 다음이었다.
“이제 어떻게 된 일인지 설명해주면 좋겠군, 12기수. 왜 혼돈의 기사가 돌연 아군이 된 거지?”
“왜, 내가 흉신과 내통이라도 한 것 같나?”
“그건 아니지만, 오해하기 좋은 상황이긴 하지.”
“난…… 오해…… 안 했어……. 아군…… 늘어나면, 좋지. 흉신…… 너무…… 강하니까.”
“보다시피 나의 선조가 방금 흉신의 조종에서 풀려났을 뿐이다, 옥타비아 지플. 비앙카의 말대로 이렇게 아군이 늘어나는 건 좋은 일이지. 선조님 같은 분이 또 존재할 것이다. 안 그렇습니까? 선조님.”
“알겠습니다.”
“알펜 룬칸델이라고? 성국수호전의?”
옥타비아가 놀란 듯 말했다.
[그렇다. 아마 옥타비아라 불린 자네는…… 나와 함께 성국수호전을 치렀던 하넬 지플의 후손이겠군. 하넬, 그는 비록 사특한 지플의 가주였으나 꽤 품위가 있는 자였어. 때문에 나는 그가 투항한 마족을 살려주었을 때도 지금 자네처럼 의심하지 않았다네.]“알펜 경, 나는 의심을 한 게 아니라 단지…….”
[흉신의 제어에 묶여 있을 때, 그자의 내면을 통해 대략적인 상황은 파악을 해두었다. 12기수, 오직 자네만이 그자를 꺾고 이 사태를 멈출 수 있을 테지. 나, 알펜 룬칸델은 지금부터 자네를 따라 가문을 되찾는 일에 전념토록 하겠다.]알펜이 옥타비아의 말을 끊었다.
진은 한 번 더 가슴속이 뜨거워지는 걸 느꼈다.
분명 룬칸델이라는 가문엔, 희망이 남아 있었다. 진 혼자만이 어렵게 희망을 붙잡고 있는 게 아니었다.
“감사합니다, 알펜 경.”
이제 위에 있는 아군들을 불러 상황을 알리고 다시 이동을 시작해야 했다.
하지만 알펜은 동맹이 전혀 예상치 못하고 있던 이야기를 꺼냈다.
[이 흉악한 성은 한 번 내려오면 다시 올라갈 수 없는 구조로 되어 있다, 12기수.]“다시 올라갈 수 없는 구조라고 하셨습니까?”
[그래. 성의 각 층은 모두 철저히 분리된 아공간으로 형성되어 있어. 정확히는 아공간이 아니라, 흉신의 내면세계라고 해야겠군.]내면세계.
얼마 전 진은 자신의 내계에서 로사와 결전을 치렀었다.
그리고 반대로 지금 흉신의 성은, 그 자체로 현실에 구현된 로사의 내계였다.
그게 위층에서 돌연 하위 전력들이 정신 공격에 노출된 이유였다. 약할수록, 이 내계를 나아가는 건 점점 힘들어질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위층에 남은 아군에게 신호를 보내는 것도 불가능하다.]평범한 아공간이라면 진이 영검으로 베어서 해결하면 될 테지만, 흉신의 내계에는 해당하지 않는 내용이었다.
“그렇다면 아군이 이곳으로 올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겠군요.”
[그 또한 뜻대로 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지플가의 마법사와…… 저 말이 느린 마족은 칼리고가의 공녀겠군. 어쨌거나 마법사와 공녀, 그리고 기사가 합류한 건 운이 좋았기 때문이야. 내계의 구조는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으니까.]무엇보다 내계는 보는 바와 달리 미로와 같았다.
한 번 왔던 길을 그대로 되돌아간다 한들 같은 공간이 나오지는 않는 것이다.
알펜의 말처럼 헤도와 옥타비아, 비앙카가 합류할 수 있던 건 방금까지는 내계의 구조가 변하지 않은 까닭이었다.
“……알펜 경의 이야기가 사실이라면 낭패로군.”
헤도가 말했다.
“십 분이 지나더라도 아군의 연락이 없다면, 다음 층으로 이동하겠습니다.”
진은 그렇게 결론을 내렸다.
오래 기다릴 이유는 없었다. 그 안에 아군이 추가로 합류하지 않는다면 이미 길은 엇갈린 것이니까.
기다리는 동안 알펜은 일행에게 흉신의 전력에 관한 정보들을 전달해주었다.
[12기수, 내가 알기로는 현재 영묘에서 열세 명의 가주가 부활하였다.]알펜과 라이오넬이 포함된 숫자였다. 일행은 하필 부활한 가주가 순혈 2세대와 같은 수라는 사실에 묘한 느낌을 받았다.
[각 층마다 배치된 가주들이 일종의 문지기인 셈이다. 다만 그중 나처럼 흉신의 의지에 굴복하지 않은 자가 몇이나 될지는 모르겠군. 가주를 제외한 전력에 대해선 나도 정확히 아는 바가 없으나, 방금 죽은 전 흑기사들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네.]그렇다면 대략적인 전투는 임시 동맹군 각 진영의 영웅들과 부활한 가주들, 그리고 함대 이하 전력과 혼돈의 기사들이 맞서는 모양새로 갈 터였다.
[정신 공격과 오러, 마력의 생성을 방해하는 요소 역시 밑으로 갈수록 심해질 것이다. 여기 있는 사람들 정도라면 큰 문제가 되지는 않겠지만, 보다 격이 떨어지는 이들에겐 치명적일 수밖에 없겠지.]“함선 람과의 공중전을 상정했기 때문에 함대를 모두 이끌고 온 것인데…… 잘못된 선택이었을지도 모르겠군요.”
애초에 병력을 최소화해서 결전을 치렀어야 하나, 진이 그런 의문에 빠진 찰나 알펜은 고개를 저었다.
[성국수호전 때, 나도 자네와 같은 고민에 빠진 적이 있었지. 시대를 대표하는 이들과 달리, 그 아래의 정예들은 그야말로 파리처럼 죽어 나갔으니까. 그러나 그들이 없었다면 결국 우린 패했을 것이야. 흉신은 가진 것을 분명 모두 이용할 테고, 그전에 이곳에서 임시 동맹군의 전력을 최대한 줄이고 싶을 것이다.]십 분이 지났다.
지하로 더 내려온 아군은 아무도 없었다. 그사이 일행은 정말 위층으로 돌아가는 게 불가능한지 몇 차례 확인 작업을 했으나 소득이 없었다.
결국 진과 임시 동맹이 닿아야 할 종착지는 흉신이 있을 이 내계의 심연이었다.
아군들과 그곳에서 무사히 합류하기를 바라며, 계속 나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다시 이동이 시작되었다.
한참 뒤, 일행은 위층에서 본 것과 마찬가지로 터무니없이 깊고 거대한 절벽을 마주할 수 있었다.
“내려갑시다.”
진, 알펜, 헤도, 비앙카, 옥타비아. 다섯 사람은 동시에 절벽 아래로 하강을 시작했다.
* * *
한편, 위층에 남아 있던 동맹군들은 전원 함대에 탑승한 채 진이 내려간 절벽을 내려가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이 지면에 닿아 마주한 것은 진 일행이 아니라, 영묘에서 부활한 세 명의 전대 가주와 셀 수 없이 많은 혼돈의 병력들이었다.
그 중심엔 사자왕, 라이오넬이 우뚝 서 있었다.
[쳐라.]라이오넬이 건조한 목소리를 내자 해일처럼 혼돈의 군대가 밀려들었다.
상공엔 혼돈룡과 흑선, 지상엔 거신수와 유사한 정체불명의 괴물과 기사들이었다.
‘진과 앞서간 이들의 전투 흔적은 없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진 쪽과 갈린 모양이군……. 성내 구조가 일정치 않은 것인가.’
베라딘은 당황하지 않고 빠르게 판단을 내렸다.
“전투 개시, 화룡 카둔, 기사 단테와 베일이 적장들을 맡는다. 오르갈과 제피린은 함대 보호에 전념하도록.”
베라딘도 즉시 명령을 하달하며 응전을 시작했다.
문제는, 코젝을 비롯한 함대 주포의 위력이 현저히 낮아졌다는 사실이었다.
흉신의 기운이 오러와 마력이 생성되는 걸 막고 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내계가 한층 깊어진 만큼 정신 공격도 거세졌다. 함대 내의 중하위급 전력들이 비명을 지르며 쓰러지고 있었다.
함선은 혼자 조종하는 것이 아니다.
의식을 잃는 마법사가 많아질수록, 함대의 운영은 둔해질 수밖에 없었다.
“로닐, 지휘하라. 나도 내려가겠다.”
“예, 소가주.”
“카둔과 투얀, 피니아를 제외한 용은 전원 함내로 복귀시키고 마신석이 개방됨을 알려라.”
코젝이 동력부에서부터 불길한 공명음을 퍼뜨리고 있었다.
마신석이 개방되기 시작하자, 하강하는 베라딘의 육체가 빠르게 노화하고 있었다.
이내 그는 켈리악 지플과 같은 백발의 노인이 된 채 가주의 지팡이, ‘흐로티’를 앞으로 뻗었다.
[너희만 괴물처럼 부조리한 힘을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흐로티에서부터 켈리악이 변형한 멸살화염옥이 펼쳐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