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746)
제 777화
184화. 숙명을 넘어(19)
후우우웅……!
거짓말처럼 일시에, 지상을 뒤덮고 있던 뇌기의 바다가 사라졌다. 막 진이 쓰러진 땅 위에만 그를 휘감은 보호막 형태의 뇌기가 남았다.
‘……역시, 동조율이 지나치게 높은 게 문제였나.’
진은 일어서며 자신의 몸을 살폈다.
태산이 어깨를 짓누르는 듯 몸이 무거웠다.
짧은 시간 안에 본인이 가진 것보다 몇 배는 강한 힘을 사용했으니 타격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싸우지 못할 정도는 아니다. 게다가 나보다 흉신 쪽의 피해가 훨씬 커.’
고개를 드니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처참하게 부서진 람의 모습이 보였다.
앞에는 흉신의 몸뚱어리가 있었다.
꺾여 부러진 뿔과 녹아내리고 있는 육신이 붉은 선을 베기까지의 사투를 나타내고 있었다.
그 몸뚱어리는 진이 무언가 조치를 더 취하기도 전에 완전히 사라져 어디론가 흩어졌다.
“어떻게 된 거지?”
“끄…… 끝난 건가?”
“혼돈을 통한 정신 공격은 멈췄다.”
아군 진형 곳곳에서 떨리는 목소리가 번졌다.
모두 이 끔찍한 싸움이 제발 이렇게 끝난 것이기를 간절히 빌고 있었다.
그러나 오르갈은 눈을 가늘게 뜨며 고개를 저었다.
그와 진은 혼기가 다시 응축되고 있는 걸 가장 먼저 알아보고 있었다.
“각성이라고?”
베라딘의 물음에 오르갈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생사의 경계를 넘으며 성장을 이룩하는 건 필멸자에게만 허용된 축복이 아니다. 내 예상이 맞다면, 흉신은 방금 한층 더 높은 신격을 얻었다. 도박수를 던져가며 명왕족의 투신에게 대항한 대가로 말이지…….]“……그렇다면 전보다 더 강해졌다는 뜻인가?”
[절대적인 의미에서는 그렇다고 볼 수 있다. 충분히 회복할 시간이 주어진다면, 흉신은 분명 더 강해진 게 맞아. 지금은 투신이 소멸시킨 혼기가 너무 방대해. 투신이 현현을 갑자기 멈춘 이유도 짐작은 되나, 3분 정도만 시간이 더 있었어도 흉신이 각성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3분이라, 아쉽게 됐군.”
베라딘은 아쉬움과 더불어 엄청난 허탈감에 휩싸이고 있었다.
인류 최강의 전력이 다 함께 목숨을 걸어도 해내지 못했던 일을, 투신은 30분이 지나기도 전에 해낼 뻔했으니까.
베라딘이 다시 지휘를 시작했다. 반이 흉신을 몰아붙이는 동안, 다행히 함대 쪽은 그다지 큰 피해를 입지 않은 상태였다.
지상에 있던 동료들은 진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진!”
“진, 괜찮나?”
“막내야!”
[12기수!]그들을 돌아보려던 진은, 별안간 등허리가 서늘해지는 걸 느끼며 급히 검을 추켜들었다.
스아악-!
한 줄기의 시커먼 검기가 진의 뺨을 스쳤다.
이어, 족히 수백은 될 검기가 진과 동료들 쪽을 덮치고 있었다.
흉신이 쏜 검기였다.
동료들은 진의 앞으로 나서며 검막을 펼치려 했으나, 진은 그들이 나서지 못하도록 먼저 보호막을 펼쳤다.
“혼기가 더 짙어졌습니다. 피폭될 테니 다들 물러나십시오.”
[막내, 이번엔 정말로 이 어미를 소멸 직전까지 몰았구나.]다시금 흉신의 음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방금 녹아내린 육신은 가짜였다는 듯, 흉신은 어느새 건재한 모습으로 허공을 부유하고 있었다.
콰아아아!
함대가 흉신을 향해 포격을 쏟아부었다.
수많은 포가 직격한 듯 보였으나 폭발은 잠시 흉신을 가렸을 뿐, 이내 펼쳐진 검은 장막에 흡수되어 사라지고 말았다.
흉신은 진을 내려다보며 씨익 미소를 지었다.
[내, 이제 너의 기분을 조금 더 알 것 같다. 운명이 나를 돕는 감각은 이런 것이로군.]“이쯤 되면 그런 개소리는 그만 지껄일 때도 됐는데, 지겹지도 않나?”
[기대하마. 하지만 상황이 변했으니, 무대 또한 바뀌어야 할 테지.]흉신이 말을 끝맺은 직후부터.
진과 아군들은 발밑에서 진동이 시작되는 걸 느꼈다.
지반이 무너질 듯이 흔들리고 있었다.
쿠드득, 쩌어억……!
진동의 결과는 지반의 붕괴가 아니었다.
거목의 뿌리가 뽑히듯, 땅이 통째로 치솟기 시작한 것이다.
치솟은 땅은 허공에 점처럼 박혀 있는 람의 파편을 향해 빠른 속도로 부유했다.
“함대 산개하며 회피 기동하라, 람의 파편에 부딪히면 안 된다!”
함대는 땅이 치솟는 속도에 맞춰 고도를 높이며 산개했고, 지상 병력은 람의 파편을 피하기 위해 미친 듯이 뛰었다.
그렇게 땅과 람의 파편이 합쳐지기까지는 채 10초가 걸리지 않았다.
그 과정에 지상 병력에선 사상자가 나오지 않았으나 이십여 척의 함대와 열댓 마리의 용들이 파편에 부딪혀 짓이겨졌다.
10리.
떠오른 땅의 면적은 정확히 람의 전장에 일치했다.
땅은 흐르는 물처럼 움직이며 부서진 람의 균열을 채우고 있었다.
람이 개수되고 있는 것이다. 아군들은 또 한 번 충격에 휩싸인 채, 균열의 틈을 찾아 피하거나 더 벌리며 람의 상부로 올라서야만 했다.
진은 쉴 새 없이 영검을 휘둘렀다. 광심장은 과부하에 걸린 동력원처럼 뇌기를 제대로 형성하지 못했다.
하나둘씩, 람의 상부로 아군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람의 상부 어딘가가 종양처럼 터질 때마다 아군 함선이나 용, 병력들이 올라오는 모습이었다.
이를테면 아군은 땅과 함께 람의 위, 상공으로 떠올랐다.
그들의 시야에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시커멓게 물든 하늘과 구름이었다.
흉신은 그 한가운데에 선 채 진이 도착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땅과 합쳐지며 수리된 람의 형태는 이전처럼 안정적이지 않았다.
누더기를 기워 만든 옷처럼 곳곳에 얼룩과 균열이 가득했고, 주포는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듯 보였다.
그러나 10리에 육박하는 이 끔찍한 함선이 다시 형체를 갖췄다는 사실은 임시 동맹을 심란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오르갈의 말대로, 시간만 충분히 주어진다면 람 역시 전보다 완전한 형태가 될 터.
여전히 기회는 지금이 마지막이었다.
오늘 흉신을 소멸시키지 못하면 다음에 사라지는 건 반드시 임시 동맹과 인류가 될 것이다.
[이제 어떻게 하겠느냐? 막내. 도망쳐서 다시 투신을 부를 수 있을 때를 노리고 싶겠지만…… 그건 허락하고 싶지 않구나.]람의 가장자리에 다시금 혼기의 폭풍이 휘몰아치고 있었다.
함대가 그걸 뚫고 나아가는 건 불가능했고, 오르갈의 차원문조차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도망 따윈 생각해본 적도 없어. 오늘은 끝장을 보려고 찾아온 거니까…….”
영기 해방.
진으로부터 거미줄처럼 영기가 퍼지고 있었다.
영기는 순식간에 진과 흉신이 서 있는 쪽 전체에 짙은 그림자를 드리웠다.
동시에, 함대의 관측 마법사들은 람의 사방에 벽처럼 쳐진 혼기 장막 쪽에서 혼돈의 병력이 쏟아지는 걸 확인하고 있었다.
“북쪽 장벽, 약 일만에 달하는 군대 확인! 혼돈룡과 흑선, 그리고 기사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뇌우!?”
“옛 10대 기사, 파들러 룬칸델입니다! 그 뒤로 흑기사를 포함한 군대 다수……!”
[그래, 왜 네놈이 안 보이나 했어. 드디어 지옥으로 갈 차례다, 파들러!]“방금 2함대를 공격한 기사는 분명 초인이다, 남은 전대 가주인가!?”
동서남북, 모든 장벽에서 새로운 혼돈의 군대가 몰려들고 있었다.
청뇌왕 파들러 룬칸델과 남은 네 명의 가주였다.
진은 아군의 목소리를 듣지 못했다. 거리가 멀뿐더러, 지금 진과 흉신 사이에는 영기와 혼기가 뒤섞여 소리를 차단하고 있었다.
다만 진은 감각을 통해 새로운 병력이 나온 걸 인지했다.
“숨겨둔 병력이 더 있었나, 흉신.”
[너를 상대하며 가지고 있는 패를 모두 사용해야 한다는 사실도 무척이나 흡족하구나. 게다가 내가 더 높은 신격을 얻는 모험까지 해야 했…… 읍!]거기까지 말하던 흉신이 별안간 허리를 꺾으며 제 입을 틀어막았다. 울컥 쏟아진 검은 덩어리가 손가락 사이를 빠져나왔다. 흉신의 눈동자가 커졌다.
“흡족하다? 중간에 멈추기는 했으나 투신 형제의 오의를 받고도 그렇게 기세등등하면 곤란하지. 아무래도 급격한 성장에 취해 자신이 어떤 상태인지도 정확히 몰랐던 모양이군.”
투신합일이 끝난 후, 진은 반이 흉신과 전투를 진행할 때 쌓은 모든 기억을 그대로 이어받았다.
‘결’은 상대의 영혼까지 찢어버리는 검.
각성을 성공했다 한들, 흉신의 육신과 영혼엔 아직 결에 의한 깊은 상처가 남아 있다. 보이지 않는 뇌기가 흉신의 속에서 꿈틀거리는 중이었다.
“그리고 지원군이 남은 건, 이쪽도 마찬가지다.”
진은 영기 해방을 한층 더 깊이 펼쳤다.
-진에게 그저 영기 해방을 최대한으로 펼치라고 전해라. 가장 필요한 순간에. 그러면 즉시 그 녀석이 현현할 것이다.
결전이 시작되기 전, 미샤가 시리스와 모트를 통해 진에게 보낸 전언.
[크아아악!]흉신이 괴성을 내지르며 진에게 쇄도했다.
진은 눈으로 찔러오는 광란을 피하지 않은 채 조소를 머금었다.
광란이 닿기 전에.
진의 앞으로 영기가 응축되며 한 그림자가 형성되었다.
허리까지 오는 거친 장발, 가늘게 뜬 사나운 눈동자, 한껏 폼을 잡은 낮은 목소리.
“오랜만이다, 꼬마.”
인간 형태의 무라칸이었다.
그는 현현하자마자 맨손으로 흉신의 칼날을 붙잡아 멈추는 괴력을 보였다.
“이런 상황이면 어째 항상 멘트가 똑같은 느낌인데.”
“듣기 좋잖냐.”
“그렇긴 하네.”
[무라칸……!]흉신은 노기에 일그러진 얼굴로 진과 무라칸을 노려보았다.
[그래, 당신이 등장하리라는 건 나도 예상한 바였지. 구시대의 수호신, 지난번엔 도망치기에 바빴는데. 오늘은 제대로 싸워주겠나?]그 말에 무라칸은 씨익 웃으며 멋지게 대답하고 싶었으나, 다소 체면을 구기는 소리를 낼 수밖에 없었다.
“앗뜨뜨!”
광란의 검신에서 퍼진 혼기가 손으로 침투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무라칸은 마치 불에 덴 사람처럼 화들짝 놀라며 뒷걸음질을 쳤다. 그 대목에선 흉신조차 일순 어이가 없을 지경이었다. 진은 반사적으로 이마를 짚었다.
“음, 흉신이 혼기 감염원이라는 걸 잠시 잊었군. 꼬마, 방금 이 모습은 아무도 못 봤겠지?”
진은 어깨를 으쓱였으나, 오자마자 바보처럼 구는 무라칸을 보며 속으로는 안도감을 느꼈다.
그가 진지하지 않다는 건, 상대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위협적이지는 않다는 뜻이기 때문이었다.